2019. 12. 23. (월)

5년 전 일기

by 공담소

인정하기 싫지만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실행하지는 않는다.

못하는 게 아니다. 자세히 지켜보면 하지 않는 것이다.


스스로를 행동파로 여겼다.

실행하는 사람인 줄 알았다.

결심한 것을 이뤄낸다는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니 그렇지 않았다.


성실하다는 말과 책임감이 강하다는 말은 많이 들어왔다.

이 두 표현에 공통점이 있는데,

주어진 것을 잘 해냈을 때 들을 수 있는 말이라는 것이다.

해야 하는 것을 해낼 때 주어지는 칭찬과 위로다.


'성실'과 '책임감'이라는 키워드는 무겁다.

무언가를 지속하고, 유지하고, 스스로를 통제해야만 할 것 같다.

스스로 생각하기보다 해야 하는 것을 수행하고

머릿속에 하고 싶은 것은 꼭꼭 누르며

어른들이 말하는 '쓸데없는 짓'은 하지 않으며

모범생, 착한 어린이가 되어갔다.


'생각이 없다'는 것이 그 어떤 무개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주장이나 본인의 이야기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라면

생각 없이 산 것일까?


뭐가 맞고, 틀린 건지는 상식적으로 알지만

누가 무슨 말을 해도 아무래도 그저 괜찮은 나야말로 문제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이런 게 주관이 없다는 것인가?


더 큰 문제는 또 따로 있다.

하고 싶은 게 뭔지 더 이상 알 수가 없다.

억눌렀던 마음들이 지금이라도 용수철처럼 튀어나와 주길 기다렸지만

하고 싶은 게 하나도, 단 하나도 없다.


그립다.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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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닫·시

서른을 앞두고 있던 저 당시에는 마지막 20대를 정리하며
'모종의 무언가 들'이 부족하고, 모자라고, 아쉽고, 너무 늦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반성의 의미가 컸다.
앞으로는 더 성숙하고, 더 잘 지내고 싶어서, 그것을 꿈꾸며
내가 이뤄왔던 것을 낮추고 낮춰, 상처를 내고 싶었던 것 같다.
그 상처가 아물면 더 단단해질 걸 알아서였을 것이다.

놀랍게도 5-6년 정도 후인 지금은 오히려
뭐라도 할 수 있고,
뭐든지 시작하고 싶고,
지금이 제일 빠른 것 같다.

그럼에도 지금도 그리운 건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이다.
무언가에 푹 빠졌을 때의 몰입감과
그 열정이 주는 도파민을 알기에 놓칠 수 없다.

난 계속 무언가를 좋아하는 마음을 갈망할 것이다.
그게 일이든, 작품이든, 가족이든, 취미든, 토마토 스튜든.
월, 목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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