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땀띠
3:04 p.m.
사랑스러운 아기가 푹 자고 일어나 눈을 반짝인다.
보드라운 볼의 붉은 이불자국이 잘 잤노라고 오돌토돌 떠든다.
살며시 아이와 눈을 맞추고 이름을 불러준다.
다 알아듣는 듯한 눈빛에 이것저것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어떤 말을 하든 코를 찡긋이며 웃어 주는 0세.
기저귀를 갈면서 마사지를 해준다.
조물조물 다리를 만져주고, 등을 슥슥 쓸어주는 것뿐이지만
코까지 킁킁거리며 웃는다.
배튕기기 장인은 틈만 나면 어딘가로 돌진한다.
장풍을 쏘며 회전하는 선풍기, 주황 불빛이 매력적인 멀티탭,
오빠가 만지지 말라던 로봇, 이런 것들이다.
말을 알아듣는 게 분명하다.
모두 '하지 말라' 했던 것들이다.
다시 시선을 뺏어와야 한다.
야심 차게 준비한 재롱잔치 시간이다.
손수건 까꿍놀이, '음메, 꽥꽥' 동물소리, 율동 같은 막춤.
주목한다. 그 순간 반짝.
소재가 떨어져 간다.
필살기인 '산책'은 더운 날씨에 실행할 수 없다.
계속해서 놀아달라는 눈빛이 따갑다.
3:19 p.m.
놀아준 시간보다 놀아줄 시간이 많이 남았다.
막막함이 밀려온다. 여름 땀띠 같다.
한번 돋아나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잠시 잊을 만하다가도,
땀이 베기 시작할 때마다 다시 부풀어 올라 가렵다.
어디든 뿌리내려 언제든 재발할 태세다.
잔잔히 귀찮게 굴면서도, 담담히 마음을 괴롭히는 녀석.
이럴 땐 아이와 눈을 맞추고 마법의 주문을 외쳐야 한다.
"사랑해 아가야"
진심이자 의지가 담긴 말을 입 밖으로 꺼내면, 신기하게 위로가 되고 힘이 난다.
조용히 아기를 안고 거울로 다가선다.
거울 놀이를 하며 새로운 개인기를 연습한다.
한층 더 업그레이드된 장기자랑을 준비한다.
친구들이 종종 묻는다.
"아기 낳으면 어때?"
그럼 그들이 예상하는 대답을 해준다.
"힘들긴 진짜 힘든데, 처음 느껴보는 류의 행복을 알게 돼"
힘들긴 힘들다.
- 만성적인 수면 부족
- 허리, 손목, 발목 등 근육 신경통
- 예민함 (잠 부족, 육체적 통증, 호르몬 변화 삼중주에 의한 것이라 생각하고 있음)
- 남편과 육아, 교육 철학을 맞춰 갈 때의 팽팽한 긴장감
- 가치관이 재편되는 과도기적 혼란
- 세상에 뒤처지는 듯한 조급함
- 달라진 시간과 자유의 감각
처음 느껴보는 류의 행복
- 임신과 출산 내내 스며든 신비로움
- 나와 닮은 모습을 발견했을 때의 기쁨
- 고개도 못 들던 아이가 뒤집을 때 느끼는 대견함
- 나를 알아보고 함박웃음을 터뜨릴 때의 환희
- 잘 먹고, 잘 자고, 잘 쌀 때의 안도감
- 언제나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에게서 느끼는 가치로움
- '이 아이의 엄마'라는 사실만으로 차오르는 뿌듯함
- 하루하루의 육아를 무사히 마치고 품게 되는 소명의식
이런 의미들을 담아 말한다.
엄마라면 공감할만한, 어쩌면 공감 못 받을,
개인적인 나의 이유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