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에 뭐 먹지?
오전 10시 50분. '뭐 먹지' 회의시간이다.
점심식사 파트너와 진지하게 머리를 맞댄다.
아침과 저녁에는 암묵적 룰이 존재한다.
입맛 없는 아침에는 국물요리로 소고기뭇국, 미역국, 콩나물국, 계란국 등등이 오른다.
저녁에는 메인요리로 고기반찬이 있어야 해 소, 돼지, 닭, 오리가 바쁘게 오고 간다.
이도저도 아닐 땐, 간편 짜장이나 냉동 함박스테이크가 대안이 된다.
반면 점심은 어떤 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맵고 짠 것, 패스트푸드, 편의점 음식, 이국적인 음식, 모두 가능하지만 선택지가 많아 오히려 길을 잃는다.
예의상 냉장고 문을 열어보지만, 점심으로나마 일탈을 하고 싶은 마음을 알아줄 녀석은 없다.
'샌드위치'를 후보군에 올렸지만 반려당했다.
한 명이 거절하면 과반수를 넘길 수 없어 '오늘의 점심'으로 채택될 수 없다.
5분 정도 고요한 검색의 시간이 지나고, 선택에 지친다.
남편이 그나마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자며 샌드위치를 다시 제안하지만,
이미 흥미가 떨어져 버려, 이번에는 내가 거절한다.
“그럼… 그건가…”
“그렇지? 그 만한 게 없지?”
체념과 현실을 받아들인다는 제스처를 주고받고는 회의가 끝이 났다.
오전 11시 40분. 물 올릴 시간이다.
잘게 썬 냉동 파를 한 줌 넣어 나름의 채수를 만든다.
물이 끓으면 건더기, 스프, 라면을 넣고,
불을 끄기 30초 전에 계란 두 개를 깨트려 넣으면 끝이다.
오늘도 결국 가장 효율적인 선택을 했다.
보장된 맛과 짧은 조리시간, 극강의 가성비를 자랑하는
라면.
중학생 때 요리사를 꿈꿨었다.
그래서 그랬을까?
요리에 대한 막연한 자신감이 있었다.
그런데 아니었다.
재능이 없다는 건 결혼 후에야 알게 되었다.
애쓸수록 망쳤다.
최악의 음식은 시댁식구들을 모실 때 했던 음식이다.
요리랄 것도 없었다.
준비한 건 연어회, 연어구이가 다였다.
차리다 보니 덮밥용 장을 만들면 좋을 것 같아
즉석에서 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예전에 했던 것처럼 물, 간장, 설탕만 넣고 살짝 끓이면 되었다.
그래도 손님이 계시는 특별한 날이니 레몬즙을 살짝 넣었다.
양파도 좀 썰어서 넣어주고, 요리스럽게 다진 마늘도 살짝 넣었다.
그럴 리 없는데 냄새가 이상했다. 먹어보니 짜장 맛이 났다.
재료 조합의 문제인지, 불 세기의 문제인지, 아무튼 문제였다.
착한 시댁식구들은 "오! 별미다!" 해주었지만
그것으로 덮밥을 해 먹지는 않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반면, 남편은 뚝딱뚝딱 쉽게 툭툭 하는데 뭐든 맛있게 했다.
요리 센스라는 것이 저런 것이구나 싶고, 벽을 느꼈다.
아들은 아빠가 음식을 할 때면 '간 보기'를 하겠다며 식사 전부터 달려든다.
내가 한 음식을 맛볼 때면 '사회적 미소'를 날려준다.
그동안은 노력으로 모든 걸 이루어왔었다.
이제는 안다. 노력으로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어쩔 수 없다.
잘하는 사람이 하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