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건 장편소설 『급류』를 읽고

선화의, 선화에 의한, 선화를 위한 후기

by 김공은


정대건 작가의 장편소설 <급류>를 완독했다.



-아래부터는 스포일러 포함-


본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도담과 해솔의 이야기보다 선화의 이야기가 마음에 들었다. 누가 우리 선화 울리냐 이해솔 이 나쁜 놈아...... 소방관 일이야, 나야 선화는 해솔에게 선택하라고 했고, 해솔은 전자를 택했다. 둘은 그렇게 헤어졌고, 다시 만났을 때 해솔은 자신과 도담 사이의 이야기 전부를 들려주었다.


그런 거였어? 맨날 무슨 생각하는지 모르겠다고 느껴졌는데……. 선화는 해솔에게서 사랑한다는 말을 좀처럼 듣지 못했다. 애정 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건 부끄러움을 많이 타는 성격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믿고 싶었다. 선화는 두려운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해솔은 가족도 없는 외톨이였다. 해솔이 나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단지 외로워서 만나고 있는 거라면, 처음부터 그랬던 거라면……. 선화는 방금 오래 품었던 의문에 대한 답을 해솔의 입으로 직접 들은 기분이었다. 도담에 관한 이야기를 하며 몰입한 해솔은 사랑에 빠진 걸 숨길 수 없는 사람의 얼굴이었다. 해솔은 선화의 곁에 있었을 뿐 그저 아무 선택도 하지 않은 거였다. 관계를 끝내는 일도, 분명하게 거절하는 일도. 선화는 배신감을 느꼈다. 숨을 쉬기가 힘들었다. 지난 6년간 속이 빈 거죽만 끌어안고 있던 것 같았다.

(p.259-260)


선화는 해솔에게 묻는다. 이제 와서 그 이야기를 왜 하는 거냐고. 해솔은 담담하게 말한다. 거짓말하고 싶지 않다고. 그 말에 선화는 다시 묻는다. 그럼 나랑 보낸 시간은 다 뭐야?

여기서 해솔의 시점이 나온다. 자신을 안아 줬던 선화의 따뜻함 덕분에 해솔은 얼어붙었던 마음에 온기를 되찾을 수 있었다고.


“그 시간들은 다 진짜야. 너한테 고맙고.”


모르겠다. 해솔은 선화에게 미안하다는 말은 안 할 거라고, 그게 더 이상한 거라며 확신 있게 말하는데, 나는 해솔이 진솔하게 굴어서 더 화가 났다. 선화와 보낸 시간이 다 진짜였던 만큼 도담과의 시간이야말로 진짜라는 것 같아서. 이 대화 끝에 선화는 울음을 터트리고 이렇게 말한다.


“방금 너는 우리가 보낸 시간을 모욕한 거고, 내 6년을 다 쓰레기통에 처박은 거야.”


독자인 나는 해솔이 용서가 안됐는데, 선화는 아주 마음이 넓은 사람이었다. 해솔은 이별 후 화재 현장에서 사고 당하고 선화는 “걱정하지 말고 잘 살라며. 뉴스에 나오지를 말든가!” 하고 해솔이 있는 병실을 찾는다. 이후 일어난 큰 사고로 해솔이 깨어나지 못하고 있을 때에도 해솔을 찾아간다. 해솔의 첫사랑이자 진정한 사랑인 도담과 나란히 간호를 하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저는 해솔이한테 뭐였을까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만큼 할 거예요. 그러니까 조금 시간을 주세요.”


그리고 해솔과 ‘작별’ 하던 날의 선화.


“가. 너 벌 받을 거야.”

“벌 받을 거란 말, 취소할게.”

“그래도 축복은 못 해 주겠어. 조금만 행복해. 아프지 말고.”


아니 우리 애 눈에서 피눈물 나는데, 남의 사랑이 절절한 게 다 무슨 소용이야. 선화가 끝까지 담담해서 슬펐다. 아, 나 선화 보면서 이와 비슷한 캐릭터가 어렴풋하게 떠올랐는데 글을 쓰면서 생각났다. 영화 <브로크백 마운틴>의 알마였다! 2018년에 <브로크백 마운틴>을 보고 썼던 글을 덧붙여본다.


브로크백 마운틴에서 제일 눈에 밟힌 캐릭터는 알마.

에니스와 잭이 4년 만에 재회하고 낚시를 가겠다며 떠나는 길에, 품에 안은 알마 주니어에게 얼굴을 묻으며 눈물을 쏟던 장면과 에니스에게 낚시통 속 쪽지에 대해 이야기하던 장면이 아픈 손가락처럼 남았다.

어떤 사랑은 영원히 기억되고,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 알마에게 배웠다.


욕하지 않고 아주 담담하게 잘 쓴 것처럼 보이지만... 글 쓴 지 7년이 지났는데도 당시에 화난 거 애써 누르고 쓴 흔적이 역력하다. 내가 ‘우리 애 눈에서 피눈물 쏟게 한 저놈들 다 죽이고 지옥 가겠습니다‘와 동일 선상에 놓고 쓰는 단어가 ‘아픈 손가락’이기 때문이다. 2018년에 알마가 있었다면 2025년에는 선화가 있다.


모르겠다, 모르겠다 했는데 사실은 모르지 않다. 에니스랑 잭한테 그랬던 것처럼 도담이랑 해솔이 행복은 모르겠고, 그냥 선화의 행복만을 바란다. 후기를 이렇게 편향적으로 써도 되냐고? 뭐 도담이랑 해솔의 사랑을 애틋해하는 후기가 있다면 오직 선화만을 애틋해하는 후기도 있기 마련이라는 생각이 든다. 그 사람이 바로 저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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