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언니를 소개합니다.
주방 한쪽 창가 선반에는 크기가 다른 산세베리아 화분 두 개가 놓여있다. 그 아래 작은 행거에는 지금껏 힘들 때 쏟아낸 일기 및 메모들, 앞으로 쓸 메모장들이 가지런히 꽂혀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게 자리한다. 아침 습한 공기에 허덕이며 눈을 떠 주방을 서성이는데 오늘따라 산세베리아가 더위에 지쳐 보인다. 마시던 물 한 잔을 따라 주다 보니 몇 달간 펼치지 않던 지난 일기들에 눈이 간다. 그중 삐져나온 한 권을 집어 들었다. 몇 줄 읽는 순간 갑자기 눈물이 터졌다. 주체할 수 없는 먹먹한 감정이 소용돌이쳐 가슴을 짓눌렀다. 이해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감정이었다. 심지어 평범한 주제에 별것 없는 일상이다. 예전 일기를 들여다보는 일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데….
나는 양가의 첫째로 태어났다. 아버지도 장남이라 내겐 사촌 언니 하나 없다. 어렸을 땐 그래서 언니 있는 친구들이 부러웠다. 힘들 때 보듬어주고 때론 친구 같은 언니….
내 마음속에는 맘 놓고 기댈 수 있는 언니가 한 명 있다. 맏며느리로 세 자녀의 엄마로 늘 바쁜 엄마 대신 나를 안아주는 마음속의 언니. 힘이 들 때면, 억울한 일이 있을 때면, 괜히 화풀이하고 싶은 날이면 언니를 소환한다. 나는 글로 내 안의 언니에게 말을 걸고 언니는 묵묵히 내가 쏟아내는 글을 ‘들어준다’. 가열찬 감정들이 글로 풀어지면 내 마음은 차분해지고 어느새 담담하게 나를 다시 들여다보게 된다. 내가 글을 쓰는 이유다. 나의 감정들을 받아낸 그 글들은 언니의 또 다른 모습이다.
전기포트에 버튼을 누르고 뜨거운 물을 부어 좋아하는 차를 우려낸다. 진한 차 한 잔과 함께 오랜만에 다이어리를 펼치고 언니를 소환한다. 원인 모를 눈물과 감정의 정체가 무엇인지 찬찬히 되짚어 본다. 너무 힘이 들 때는 힘이 드는지도 모를 때가 있다. 다만 그것을 글로 옮겨내면 그 글은 나를 마주하게 하며, 생명이 되어 미처 몰랐던 내 상처를 어루만지고 나를 보듬는다. 내가 몰랐던 나의 힘듦을 언니는 이미 알고 있었던 것처럼, 글은 내게 힘을 주기도 하고 나를 일깨우기도 한다. 내가 주저앉을 때 딛고 일어설 수 있는 디딤돌이 되기도, 나를 바로 볼 수 있는 너무도 명료한 거울이기도 하다. 그래서 때론 너무나 아프다. 그러나 그때 글은 진정한 성장을 돕는 스승을 자처한다. 정확히 나를 바라볼 수 있을 때야말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다. 그래서 글은 스승이기도 하다. 어린아이를 향해 ‘커서 훌륭한 사람이 돼’라는 강호동의 말에 ‘그냥 아무나 돼’라고 외치는 이효리의 말처럼 무엇이 되지 않아도 좋다. 우리는 존재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다. 글은 이미 그런 우리를 조건 없이 보듬는다. 그렇다. 그 무엇이 되지 않아도, 성장해야 한다는 강박이 없어도 좋다. 누군가가 글을 만나는 순간 이미 그 누군가는 어제와 다른 오늘을 살고 있을 테니…. 글은 그렇게 우리를 돕는다. 그리고 내가 쏟아내고 돌아서 버려도 글은 우리를 영원히 기다린다. 아마도 형용할 수 없었던 감정의 눈물은 그런 이유였으리라.
나의 지난한 삶을, 흔적을, 상처를 치유하며 버텨냈던 순간을 고스란히 기억하고 같은 자리에서 나에게 위로를 건네는 언니.
이제 그 언니를 소개하고 싶다. 내가 받은 위로가 그 누군가에게도 위로가 되기를...
오늘도 나는 식탁 한켠에 앉아 차 한 잔과 함께 언니를 소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