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청이 준 선물

by 지니아

온전한 나만의 자유로움.

그 누구도 아닌 오롯이 나 자신.

완벽한 고요. 여유로운 유영.

지금도 물속에 있는 기분이다.


"돌발성 난청입니다."



얼마 전 남편이 응급실에서 연락했다. "너무 놀라지는 말고, 입원을 좀 해야 할 것 같아.” 차 핸들을 잡은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심장이 덜컹하고 떨어져 더는 운전 할 수 없었다. 갓길에 잠깐 차를 세우고 아이들을 부탁할 곳과 입원 시 필요한 몇 가지를 머릿속으로 그리며 겨우 집으로 돌아왔다. 남편은 대동맥 연결 부위에 이상이 있다며 응급상황이 발생할지 몰라 대기 중이었다. 일부러 그 상태에 대해 따로 알아보지 않았다.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정신을 좀 차려보려고 샤워기 앞에 섰다.

다행히 더 이상 위급한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정말 감사합니다) 일상으로 편안히 돌아왔지만, 남편의 생활은 몇 달간의 주의를 요했다. 그만하길 다행이다. 난 조금, 아니 많이 놀랐나 보다. 한껏 어떠한 상황에서도 튀어 나가기 위한 준비를 하던 내 몸은 남편의 퇴원과 함께 신호를 보내왔다. 그리고 난 돌발성 난청 판정을 받았다. 하루는 종일 비행기를 타고 있는 기분이다. 또 어떤 날은 높은 산에 올라 있는 기분이다. 오늘은 물속에 있는 기분이다. 아이들의 말이 완벽히 잘 들리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좋은 점은? 상대방이 말을 할 때 온전히 얼굴과 입술에 집중하게 된다. 나를 포함 바쁜 요즘 현대인들은 시간에 대한 강박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두 시간 관리를 잘하고 싶어 하며 한 번에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는 멀티태스크형 인재들이 넘쳐난다. 나는 멀티태스크형은 아니었다. 그들을 부러워하며 시간에 쫓기고 한 번에 더 많은 것을 이루고 싶어 했지만 잘되지 않았다. 그나마 세월이 흐르며 요령이라는 것이 생겨 흉내만 조금 낼 뿐이었다. 난 사람들의 말을 주의 깊게 잘 듣는 편이라 자부했다. 말하는 것보다 듣는 것이 더 편했고 많은 이들은 내게 고민을 털어놓았다. 그런데 의외로 난 잘 못 듣는 사람이었다. 아이들의 말을 잘 놓쳤으며 바쁘다는 핑계로 눈은 다른 곳에 손은 또 다른 일을 하며 아이들과 대화를 하고 있었다. 귀가 잘 들리지 않으니 그런 멀티 흉내 생활은 불가능했다. 많이 괴로웠고 귀에서는 이명도 들려왔다. 밖에서는 마스크를 끼고 대화하기 때문에 입술을 읽을 수가 없으며 소리 또한 명확하지 않다. 미안해하며 한 번 더 이야기해 주길 조심스럽게 요청했고, 아이들 일로 간 병원에서는 주의할 점을 놓칠세라 온 신경을 집중했다. 외출은 피곤했다. 장애를 가질 수도 있어 겁도 덜컥 났다. 상태는 약을 먹으며 좋아졌다 나빠지기를 반복했다.

그런데 의외로 난 이 생활에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했다. 아이와 손을 잡고 눈을 쳐다보며 입술을 읽으며 아이의 말을 놓치지 않게 노력했다. 아이들은 나를 위해 천천히 말해주었으며 나를 부를 때는 꼭 다가와 부드럽게 터치했다. 우리는 조금 더 가까워졌다. 평소에 서로의 듣고 싶지 않았던 말을 한쪽으로 흘리며 겪게 되는, 날 선 갈등은 '잘 못 들었구나'의 배려로 바뀌었고 난 가끔 전화에서도, 소음에서도 강제 해방되었다. 멀티태스크는 불가능해졌고 오롯이 하나의 활동에 집중했다. 설거지를 할 때도, 책을 읽을 때도, 산책할 때도, 글을 쓸 때도 그 행동에 집중했다. 마음이 편안해졌다. 이상했다. 평소 같으면 아무것도 안 하는 기분이 들어 불안했을 텐데 몰입하는 시간은 점차 길어졌고 오히려 더 완벽하게 마무리되는 일들이 많아졌다. 이것이 나만의 속도였나 싶다. 몸과 마음이 편안해지는 기분이었다. 상대에게 정성을 다하고 겸손한 마음을 갖게 되었다.

성실 병에 걸린 난 내 몸이 힘든지 아픈지 잘 몰랐다. 그러나 내 몸의 신호에도 귀를 기울였다. 몸이 조금 피곤해지면 귀의 상태는 바로 신호를 보내었다. 그럴 때면 모든 것을 접고 내 몸을 쉬게 했다.

코로나 이전까지 난 수영의 매력에 푹 빠져있었다. 물속에서 난 그 누구도 아닌 나 자신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 속에서 난 자유로웠다. 욕심이 생기는 날에는 몸에 힘이 들어가 오히려 물을 거스르게 되었고 오래가기 힘들었다. 내려놓고 힘을 빼면 물은 나와 조화를 이루며 내 몸을 유유히 원하는 곳으로 보내주었다. 편안한 자유로움이었다. 코로나로 난 그 소중한 느낌을 잊고 있었다.

오늘의 난청은 날 물속에 있는 기분에 들게 한다. 그럴 때면 조용히 눈을 감고 그때의 느낌으로 돌아가 본다. 유유히 자유롭게 물을 느끼고 나 자신에게 집중….


가만히 다가와 아이가 내 손을 잡는다. "엄마~."

난 눈을 맞추고 조용히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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