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그릇

by 지니아

엄마의 찻잔으로 새벽을 연다.


몇 해 전부터 엄마는 취미로 도자기를 만드신다. 흙을 빚어 물레를 돌리고, 모양을 다듬어 새기고, 굽고. 난 도자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예전부터 한번 배워보고 싶다는 생각만 한 채 시간이 흘렀다. 같은 꿈을 가진 엄마는 실행력 있게 시작하여 벌써 도자기의 매력에 흠뻑 빠지셨다. 엄마와 이야기를 할 때면 도자기 이야기가 8할이다. 물론 그 이야기는 도자기 수업을 어떻게 하는지, 선생님이 어떠신지 도자기의 재료인 흙의 종류와 성질, 그날 작업량과 동기들의 우애까지…. 엄마의 삶에 활력이 돋고 그 결과물이 보이니 성취감 또한 뛰어나다. 흙은 참 무거워 엄마의 관절염을 걱정하게 만들지만, 이제는 의욕과 요령을 적절히 조정하여 우리의 걱정을 덜고 계신다.


엄마의 작품들은 우리 집으로도 전해졌다. 아이들 밥그릇과 국그릇, 접시와 컵까지. 투박하고 각기 크기가 다른 그릇들이지만 거기엔 아이들에 대한 사랑이 깃들고 외할머니의 체취가 묻어있다. 수줍게 건네시며, 받는 내가 싫은 내색을 할까 조심스러우시지만, 엄마의 정열과 기쁨, 사랑의 조각들은 내 그릇장을 기꺼이 채운다.

어릴 적 난 엄마처럼 살기 싫었다. 맏며느리이며 3남매를 둔 엄마는 늘 바쁘셨고 많이 희생하셨다. 엄마의 수고와 고단함이 싫었고 배려가 우선인 삶과 아빠의 가부장적인 태도가 싫었다. 사춘기를 심하게 겪으며 나의 모든 고민과 감정들이 엄마 탓인 듯해 화를 쏟아붓기도 했고, 엄마와 아빠 사이의 갈등이 있는 날엔 엄마에 대한 연민으로 아빠에게 모진 말도 많이 했다. 난 내가 제일 잘난 줄 알았다.

바쁜 남편, 그리고 스스로 모든 것을 해야 직성이 풀리는 나는 육아도 독박일 때가 많았다. 자존심도 세었으며 자신감도 넘쳐흘러 육아 관련 서적을 읽고 강연을 들으며 열심히 공부했다. 공부했으니! 가뿐하게 잘 해낼 줄 알았다. 아이는 내 마음대로 될 줄 알았다. 그런데 열심히 하면 할수록…. 잘되지 않았다. 책에서, 강연에서 배운 것들이 물론 다 맞지 않거나 도움이 안 되는 것은 아니었으나 이론과 실전은 그 강도가 너무나! 달랐다. 화장실이 급해도 제시간에 못 가고 아이 끼니는 자로 잰 듯 챙겨도 내 끼니는 싱크대 앞에 서서 해결하거나 거르기가 일쑤였다. 그 단계가 익숙해지면 아이는 자라 새로운 모습을 보여 주었고 그때마다 아이에 관한 공부는 다시 시작되었다. 잘 해낸 듯싶으면 다시 제자리, 익숙해졌다 싶으면 다음 단계의 새로움…. 지친 마음과 아이에 대한 사랑이 균형을 이루지 못할 땐 그 화가 아이를 덮치기도 했다. 다 던져버리고 싶었다. 그럴 때면 엄마는 구세주처럼 나타나 나의 고통을 덜었다. 나지막한 말로 아이를 어르고 아이의 눈높이에서 존중의 눈 맞춤을 한다. 무조건적 헌신이 아닌 아이의 요구를 이해하고 공감하는 자세. 정중한 부탁. 아이는 기꺼이 수긍한다. 나와 아이는 그 순간만큼은 평화를 찾는다. 내가 그토록 싫어했던 엄마의 삶. 한없이 업수이 여겼던 그 낮은 삶에서 지혜가 넘쳐흐른다. 나는 기꺼이 머리를 숙인다.


나는 늘 고민한다. 나는 얼마만 한 크기의 사람인가. 결혼을 하고 아이를 키우며 나는 분명 성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 주변의 모든 것을 담지 못하는 내 작은 그릇을 한없이 탓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늘 완벽하고 싶었고 나를 돌봄에 있어서도 인색했다. 몇 달간 지속되는 두통에 시달렸고 그 고통은 아이를 향한 과한 욕심으로도 이어졌다. 아이의 그릇에 넘쳐흐르는 세상을 쏟아붓고 다 담지 못하는 부분은 질책했다. 나는 아이의 세상을 다 지배하고 싶었다. 아이도 나도 괴로웠다.


엄마의 그릇은 제각각이다. 색깔도 모양도 정형화되어 있지 않다. 매끈한 그릇도 투박한 그릇도 크고 작음에 상관없이 각자의 개성을 담아 자기 자신을 증명한다. 그 나름의 조화가 아름답고 자신만의 빛을 머금고 있다. 나, 그리고 아이 또한 그렇다. 크고 넓은 화려한 그릇은 아닐지라도 나름의 세상을 품고 있다. 그것이 깨지지 않게 소중히 다루며 비교에서 오는 아름다움이 아닌 그 자체의 빛을 찾아야 한다. 아니…. 찾고 싶다.

나 이외의 존재에 대한 무한한 애정과 그들로 인해 경험하게 되는 새로운 세상은 나를 원하는 곳으로 혹은 원치 않는 곳으로도 안내한다. 그곳에서 우리는 서로의 균형을 맞추며 어제와 다른 오늘을 빚어간다.

오늘은 엄마가 보고 싶은 날이다. 엄마의 투박하고 튼튼한 그릇에 밥 한가득 담아 뚝딱해야겠다!

엄마의 그릇은 따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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