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어벤져스 : 엔드게임>을 보며,
마블의 '인피니티 사가(saga)'가 막을 내렸다. 지난 7월, 페이즈 3의 마지막 영화 '스파이더맨 : 파 프롬 홈'까지 개봉하면서 우리는 이제 또 다른 마블을 하염없이 기다리는 신세가 되었지만 최근 마블에서의 스파이더맨 은퇴라는 안타까운 소식이 들려오면서, 우리는 때아닌 마블 걱정을 시작하게 됐다. 하지만 <어벤져스 : 엔드 게임>의 결말만으로도 마블은 그들의 역량을 충분히 보여주었고 우리는 그들에게 또 다른 무언가를 기대하게 된다. '엔드 게임'은 반전이었다. 마블이 받고 있던 수많은 사랑만큼 엔드 게임 내용에 대한 추측도 정말 많았지만, 그 내용들은 전부 예상을 빗나갔다. 나 또한 그런 추측 영상들을 보며 영화를 기다려왔기에 엔드게임을 봤을 때는 더 놀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진짜 마주한 엔드 게임이 색다른 경험을 선사해주는 걸 보면서 '우리가 뛰고 있다면, 마블은 이미 날아다닌다'는 생각이 저절로 들었는데, 이것은 우리에게 선물이라는 걸 믿어 의심치 않았다. 또한 인피니티 워의 엔드게임을 넘어 마블의 엔드 게임을 알리듯, 그동안의 마블 영화에 대한 많은 오마주가 있었는데 이것은 마블 팬들에게 사랑이자 추억의 순간이다. 22편의 마블 영화를 모두 본 사람들이라면, 엔드게임을 보면서 향수처럼 다가온 장면들이 많았으리라. 비록 엔드게임을 통해서 어떤 히어로들과는 작별 인사를 해야 할지라도 <어벤져스 : 엔드게임>은 마블의 끝이 아닌 새로운 시작을 알리고 있다는 걸 믿는다. 우리가 헤어짐의 순간에 항상 바라는 것처럼.
엔드 게임엔 마블의 많은 순간들이 녹아있었기에 우리는 엔드게임의 어느 순간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전율을 느끼기도 했을 것이다. 마블의 10년을 장식해준 히어로들과 그 영화들을 추억하며, 엔드게임에서 보여준 많은 감정들을 이 글을 통해 다시 한 번 느껴보자.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동시에 우리가 특별한 감정을 느꼈던 그 순간들을 정리해 12가지로 모아보았다.
타노스가 숨어있는 행성으로 찾아간 어벤져스들. 그들은 타노스가 스톤을 없앴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한다. 그러나 그 순간에 타노스의 목을 벤 토르를 보고 우리는 히어로들보다 더 큰 혼란을 가진다. '인피니티 워에서 치열하게 싸웠던 타노스가 엔드게임에선 이렇게 허무하게 죽는다고?' 타노스와의 리턴매치가 중심을 이룰 것이라고 생각했던 엔드게임은 시작부터 우리를 놀라게 한다. 예상을 벗어나는 전개에 우리는 영화가 앞으로 어떻게 이어질지 더욱 몰입하게 된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엔드 게임의 '신의 한 수'는 5년 후로 지나간 시간이다. 히어로들의 충격적인 패배에 이어, 그들은 '패배에 대한 적응'까지 해야만 했다. 5년이라는 시간은 체념하고 살아갈 수 있었을 만큼 오랜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5년 후 다시 주어진 기회로 승리를 그리고 소중한 사람들을 되찾아오고자 한다. 인피니티 워 이후 바로 엔드게임을 시작하는 것보다 관객들의 마음에 여운을 더 남길 수 있는 훌륭한 연출이 아닐까 싶었다. 흘러간 시간 동안 '어떤 사람은 그저 잊고 나아갔을지라도 그들은 그러지 않았다는 걸 확실하게 보여준다.'
공식 포스터에서는 물론이고, 예고편에서까지. 그 누구도 토르와 헐크의 외모 변화를 예상하지 못했다. 타노스의 죽음 그리고 5년이 지난 이후 토르는 자기관리에 소홀해졌고 헐크는 득도했다(?) 그들이 얼마나 많은 고뇌와 고통 속에서 살아왔는지를 알 수 있었던 순간이다. 캡틴 마블의 짧은 머리도 인상적이었지만, 토르와 헐크에 비하면 소소한 변화이지 않을까. 과연 엔드게임 이후 토르는 과연 예전과 같은 몸짱으로 돌아갈 수 있을지 그리고 우리는 더 이상 헐크의 화난 모습을 볼 수 없는 것인지. 그들의 갑작스러운 변화에 아쉬운 점도 있지만, 마블이 어떻게 이 변화를 유지해 나갈지도 궁금하다. 하지만 헐크의 솔로 무비가 한 편 정돈 더 나왔으면 하는 바람이었는데.. 앞으로 활약할 영웅들도 많이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다.
네뷸라는 엔드게임 내에서 '스파이'와 '조력자' 역할을 동시에 해냈다. 과거의 네뷸라는 타노스의 편이고, 미래의 네뷸라는 어벤져스의 편이기에 네뷸라는 자기 자신과도 싸워야만 하는 상황에 이른다. 과거와 미래의 네뷸라가 서로 연결되어 있던 탓에 극적인 상황이 연출되는데, 타노스는 과거의 네뷸라를 통해 자신의 미래를 알게 되고 네뷸라를 스파이로 이용한다. 그렇게 타노스는 미래에서 어벤져스가 모아둔 인피니티 스톤을 '다시' 손에 넣으려 한다. 네뷸라의 역할과 타노스가 미래로 오는 과정을 그리는 순간은 우리를 더 긴장하게 만들고 영화에 흥미를 더한다.
소울 스톤을 얻기 위한 여정을 떠난 블랙 위도우와 호크아이. 어벤져스 중 누구도 소울 스톤에 대한 경험이 없었기에, 누군가의 목숨을 바쳐야 한다는 사실도 모르는 게 당연했다. 만약 이 사실을 누군가 알고 있었다면 그들은 다른 선택을 했을까? 무엇보다 어벤져스에서 블랙 위도우의 은퇴는 예상치 못했기에, 더욱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많았으리라. 무엇보다도 호크아이와 함께 서로의 목숨을 소중히 하는 그들의 우정, 그리고 나타샤의 죽음은 아마 많은 사람들을 처음으로 눈물 흘리게 만든 장면이 아니었을까.
과거를 여행하면서 우리들뿐만 아니라 히어로들도 추억을 만난다. 우리가 그들을 추억하는 것처럼, 토르와 토니는 자신의 사람들을 추억하며 깨달음을 얻는 듯한 순간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아이언맨과 그의 아버지가 대화하는 부분이 인상적인데, 테서렉트를 무사히 가져올 수 있을지에 대한 본연의 임무보다도 그들의 대화에 더 집중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대화 중에서 토니의 아버지는 곧 태어날 아이가 아들이라면 자신을 닮을까 봐 걱정한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자신은 대의를 위해서 보단 자신을 위해서 살아왔다고, 자신의 아이는 그러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그렇게 아이언맨은 과거의 아버지를 통해 과거의 아버지가 걱정하던 자신의 모습을 본다.
헐크의 핑거스냅이 성공한다는 건 사라진 어벤져스들이 다시 돌아올 수 있다는 뜻이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핑거 스냅의 성공 여부에 더더욱 몰입하던 순간. 우리는 계획이 성공했다는 것에 기뻐할 틈도 없이 타노스 군대의 공격에 정신을 빼앗긴다. 어벤져스들 또한 계획이 성공했다는 사실에 기뻐하기보다 타노스 군대의 공격을 막는데 바빠진다. 그렇게 영화는 순식간에 우리를 영웅들의 부활이 아닌 타노스와의 전투로 몰입하게 한다. 다시 모일 어벤져스는 잠시 잊고, 우리는 전투의 절정에 이르러서야 그들을 다시 기억한다, 'On your left'라는 팔콘의 대사와 함께. 모두 모이게 되는 어벤져스를 통해 우리는 또 한 번의 전율을 느낀다. 'Avengers assemble.'
인피니티 워에서 닥터 스트레인지가 타임 스톤을 내주면서까지, 아이언맨을 살린 이유는 아이언맨이 타노스를 처치할 유일한 열쇠였기 때문이다. 닥터 스트레인지가 본 1400만 개 이상의 미래, 그중에서 승리의 순간은 아이언맨이 핑거스냅을 하는 그 순간이었던 거다. 엔드게임의 마지막 전투에서 승리하기 직전의 순간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아이언맨에게 뻗었던 손가락 하나의 의미. 그 순간은 말하지 않아도 모두가 알게끔 무의식을 건드려준 인상적인 장면이다.
인피니티 워와 엔드 게임 사이에서, 영웅들은 누구도 변하지 않았으나 달라진 것이 있다면 바로 '캡틴 마블의 어벤져스 합류'이다. 어쩌면 캡틴 마블이 시시하게 모든 걸 끝낼 정도로 강력한 힘에 많은 사람들이 걱정했지만, 마블은 이런 상황을 허용하지 않았다. 캡틴 마블이 엔드게임에서 큰 역할을 할 거라는 예상이 빗나간 것이다. 정말 필요한 순간에만 데우스 엑스 마키나처럼 어벤져스를 도와준 캡틴 마블(우주에 표류한 아이언맨 구출, 타노스 일당의 폭격을 해결…). 그렇기에 엔드게임은 더욱 빛날 수 있었다.
고귀한 자만이 들 수 있다는 '묠니르', 엔드게임 막바지에서 묠니르를 드는 캡틴 아메리카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놀랐을 거라 생각한다. 특히 그동안 마블을 꾸준히 보아왔던 사람들이라면 이 장면을 보고 <어벤져스2>에서 캡틴 아메리카가 묠니르를 아주 살~짝 드는 장면이 떠올리지 않았을까? 처음에는 캡틴 아메리카가 엔드게임을 통해 마침내 묠니르를 들 수 있는 자격을 얻게 된 거라 생각했지만, 나중에 알고 보니 캡틴 아메리카는 '어벤져스2 때부터' 묠니르를 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감독의 오피셜로 밝혀지게 되었다. (아래 링크 참고) 개인적으로는 엔드게임에서 이 장면이 캡틴이 성장하는 순간으로 느껴져 감동을 받았었는데.. 어쩌면 가끔은 감독의 의도를 모르는 척 속아주는 게 영화를 더 감명 깊게 느낄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이 되지 않을까..?
https://hypebeast.kr/2019/5/avengers-endgame-captain-america-thor-hammer-mjolnir?amp=1]
타노스와의 전투 중에 닥터 스트레인지가 말했던 1400만 분의 1의 순간. 아이언맨이 자신이 아닌 모두를 위해 희생하는 순간. 아이언맨이 죽으며 남기는 명대사는 모든 관객들을 울리게 한 순간이기도 했을거다. 그의 죽음과 유언에서, 아이언맨이 남긴 말은 모두의 마음속에서 영원히 맴돌 그만의 명대사다. 아마 마블 팬들의 마음속에 영원토록 기억되지 않을까. 'I am iron man' 'I love you three thousand.'
캡틴 아메리카가 인피니티 스톤들을 원래의 시공간에 되돌려 놓으면서, 그는 그만의 방식으로 어벤져스를 떠났다. 과거를 지나 미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 다시 과거를 살면서 말이다. '아이언맨이 말한 삶'을 한 번 살아보고 싶었다는 캡틴 아메리카, 그동안 대의를 위해 자신의 삶과 사랑, 모든 것을 포기했던 그는 이제 중대한 임무를 마치고 그를 위한 삶을 선택함으로써 어벤져스와 마블을 은퇴한다. 어쩌면 아이언맨의 죽음보다도 인상 깊었던 순간, 마음에 진하고도 잔잔한 여운을 남기는 마지막이 아니었나 싶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는 그들이 사는 동안 이루지 못했던 것을 이룬다. 동시에 두 영웅의 은퇴 방식은 서로를 닮아 있다는 기분이 든다. 대의를 위해서 누구보다 자신을 '완전히' 희생한 아이언맨과 자신을 위한 삶을 '다시' 살게 된 캡틴 아메리카. 같으면서도 완전히 달랐던 두 영웅은 그렇게 마블을 떠났다.
마블의 '인피니티 사가'는 10년이라는 시간을 끝으로 우리 곁을 떠난다. 아이언맨과 캡틴 아메리카, 블랙 위도우… 그리고 스파이더맨까지 없는 마블이라니. 하지만 새로운 마블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의 마블이 보여준 역량이라면 우리는 앞으로의 마블에게도 기대를 걸어도 좋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