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를 치유하다
철학자 : 프랑스의 문화적 현상에 비해 우리나라의 문화는 매우 독특해요.
최근의 K-Pop 문화는 기존의 문화를 부정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떤 면에서 주류 문화를 뒤집어
엎어 버렸죠.
오랫동안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라는 것은 미국과 일본의 영향하에서 벗어나지 못했고, 뭔가를
새로운 것을 만들어낸다 하더라도 미국과 일본의 아류에 불과했어요.
K-Pop은 기존 문화에 속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면에서는 시뮬라크르(원본이 아닌 사본)에 해당
되죠.
그런데 ‘방탄소년단’은 완전히 별종이에요.
미국 일본 눈치도안 보고 독자적으로, 그리고 자생적으로 나와서 세계를 석권해 버린 케이스입니다.
그런 면에서 순종 ‘시뮬라크르’(여기서 '시뮬라크르'는 사본이지만 원본을 넘어서는 가치를
가진다는 뜻)라고 볼 수 있죠.
그런데 이 시뮬라크르는 독특하게도 기존의 질서를 부정하지 않고, 기존의 권위를 인정하면서
세계인들을 사로잡아 버렸어요.
프랑스의 후기 구조주의 사상가들이 해체주의나 동성애 등을 캠페인으로 들고 나올 때는 그들이 2차
대전 때 독일점령을 당하는 동안 청소년세대가 성적으로 엄청난 피해를 당하고 정신성을 빼앗길
정도의 상처를 받아서 그 결과 그런 문화를 만들어 냈던 것이었어요.
충분히 이해가 가는 부분이죠.
방탄소년단 멤버들도 자기 시대의 아픔을 겪고, 양육환경에서 고통과 증상을 가지고 자랐을 것
아니겠어요?
그들은 자신들의 문제를 극복해 가는 과정을 가사로 담았죠.
탐구자 : 제가 보기에도 BTS 멤버들은 대단해요. 자신이 부모 때문에 아프다고 해서 부모세대와 단절을 선언
하지 않고, 부모의 권위를 아름답게 계승하고 있다고 볼 수 있어요. 그게 대단한 것이죠.
철학자 : 말하자면 시뮬라크르이면서 동시에 이데아적 본질을 놓치지 않고 기존의 가치관과 권위를 인정
했던 거죠.
이것은 일종의 인간의 본성에 해당되는 것이기 때문에, 말하자면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인의 본성을.
회복하도록 격려하고 독려해온 겁니다.
그래서 ‘너 자신이 돼라’(Be yourself)고 강조하잖아요.
방탄소년단은 전 세계 젊은이들에게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법, 부모를 공경하는 법, 기존의 질서와
본질을 존중하고 대를 이어 계승하는 것 등의 영향을 주고 있습니다.
전 세계 젊은이들은 그동안 억압되어 있었지만, 독자적으로 자기 색깔을 드러내기 힘들다 여겼던
부분들을 방탄소년단 덕분에 마음껏 펼쳐도 된다는 안도감을 갖게 되었어요.
이런 부분이 이 세대 젊은이들의 정신적 가치의 지축을 제대로 흔들어 놓은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세계의 젊은이들은 시뮬라크르 시대에 잃어버렸던 이데아의 본질들을 회복하게 되면서 각자가
자기다워지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고, 자기답게 살아가는 법을 터득해 갈 수 있는 새로운 시작을 열어
주고 있는 것입니다.
분석가 : 방탄소년단이 이 시대에 ‘자기’ 회복을 노래하고 ‘자기’ 다움을 강조하게 된 것은 매우 획기적인
일입니다.
기존의 아이돌들은 해낼 수 없었던 것을 그들은 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기존 아이돌은 매우 집단화되어 있기 때문에, 자기다움에 대해 방점을 찍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요즘 젊은이들이 대단히 집단화되어 자기다움을 잃어버린 표징으로서 젊은 세대의 자살사건 증가를
들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방탄소년단의 7명의 멤버들은 집단화되어서 집단적 가치를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화된
멤버들로 구성되어 각자가 자기 스토리를 가지고 있어요.
멤버 중 한 사람의 약함이나 아픔도 무시되지 않고 서로 끌어올려주고 독려하면서 함께 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어 낸 것이에요.
그게 방탄소년단의 위대한 점들이에요.
그래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중심이 되고, 각자가 매우 개별화되어 있는 것, 그리고 개별화된
각자가 집단이 아닌 공동체를 만들어 내어 서로의 존재를 상승시키는 시너지 효과가 엄청나다는
사실을 우리는 염두에 둬야 합니다.
탐구자 : 그렇군요. 그래서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출신성분을 보면 소위 흙수저에 불과했지만 다이아몬드
처럼 빛난 거군요.
철학자의 말씀을 들어보면, 방탄소년단은 보수적 가치를 이끌어냈다고 볼 수 있겠군요. 세계는
그동안 68 혁명의 영향 하에 있으면서 진보적 사회주의가 득세를 해왔는데, 이에 대한 균형을 잡아.
주는 역할을 방탄소년단이 하고 있는 셈이군요.
철학자 : 시뮬라크르 관점에 보면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본질, 또는 공통된 동일성을 호소함으로써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방점을 두게 되었어요.
그 결과 방탄소년단을 바라보는 사람들은 자기 안에 억압되어 있던 그 가치를 끌어올릴 수 있게
됨으로써 각자가 자신의 자존감을 높일 수 있게 된거죠.
그래서 방탄소년단을 좋아하는 사람은 계층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비록 아미(Army: BTS fan group)에 속해 있지 않다 하더라도 모든 계층의 사람들이 모두 환호를
하는 겁니다.
유튜브를 보니, 미국의 부모들이 방탄소년단의 음악을 보면서 “우리 아이들이 왜 이 그룹을 좋아
하는지 알겠다”라고 말하더라고요.
그 말은 그들의 음악활동을 보는 부모 세대들도 정서적으로 공감하고 있고, 그 음악에 동의한다는
뜻이죠.
즉 방탄소년단의 음악은 너무나 다른 두 세대를 하나의 공감대로 묶어주고 있는 것입니다.
방탄소년단 멤버들은 팬들의 환호에 응답하면서 이런 말을 해요.
“우리도 한때는 찌질이였어요(I was 찌질이).”
만일 그들은 포스트모더니즘 사상에 물들어 찌들어 있을 세대이지만, 이 찌질이들은 자신이 겪어 온
고통의 삶을 철학화하고 체계화해서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 냈습니다.
그 결과 방탄소년단멤버들은 'I am'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 'I am'은 본질적인 동일성, 그것이 전통 가치관일 수도 있고, 하나님일 수도 있죠.
영향력 있는 사람들 중에는 방탄소년단을 ‘제2의 비틀즈’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등장하는 모습이나 세계적인 영향력에서는 그렇게 비유가 되죠.
그러나 비틀즈와는 시대적으로, 또는 사상적 의미가 많이 달라요.
비틀즈는 전후 세대의 상처와 아픔을 커버하기 위해 사랑과 평화를 노래했죠.
그래서 반핵 반전캠페인분위기로 이어지면서 자연스럽게 프랑스의 <68 혁명>으로 이어지게 된
겁니다.
비틀즈는 아름다운 노래를 불러 2차대전의 후유증으로 고통받아 온 많은 사람들을 위로할 수 있었죠.
그렇게 위로받은 사람들이 힘을 얻어 상처를 드러내고 아픔을 사상화한 것이 <후기구조주의>입니다.
탐구자 : 지금 포스트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를 번갈아 가면서 사용하시는데, 그 차이가 뭔가요?
철학자 : 철학사조로서 사상사적으로 보면 ‘후기 구조주의’에 해당하고, 일반 문화적인 용어로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고 부릅니다.
그렇다고 동의어라고 볼 수는 없습니다.
후기 구조주의는 프랑스에서 주도적 사상이 되었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유럽, 미국, 일본, 한국 등
주로 선진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문화현상입니다.
지금 프랑스에서는 후기 구조주의 사상이 많이 후퇴하였지만, 문화적으로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은
여전히 엄청나게 큽니다.
프랑스에서는 후기 구조주의가 한창일 때는, 적어도 지성인으로 대접받기 위해서는 해체주의를 수용
해야 했고, 이성애자도 유행따라 동성애를 해야 했어요.
그래서 지성인들 사이에 멀쩡한 가정을 해체하고 동성애 결혼하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죠.
그런데 지금은 후기 구조주의 사상가들이 다 죽고 나니까 그런 유행 같은 분위기는 잠잠해졌지만
그 후유증은 보다 길이 남게 될 것이었습니다.
프랑스뿐 아니라, 유럽과 미국에서도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력은 프랑스의 후기구조주의 못지않게
강력합니다.
그 후유증이란, 자신의 본성대로 살지 못하도록, 그리고 보편적 가치를 부정해 가는 경향성으로
남기게 된 것을 말합니다.
바로 이런 사회적 분위기 가운데 있는 세계를 향해 동방의 작은 나라의 ‘방탄소년단’이 나타나서
‘너 자신이 돼라(Be yourself)’며, 인간이 마땅히 추구해야 할 보편적 가치와 인간 본성을 되찾을
것을 주저하지 말라고 독려하는 노래를 불러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치 아기가 탄생할 때 레테의 강을 건너면서 잊어버렸던 이데아의 기억들을 되찾음을 주장하는
플라톤의 ‘상기설’의 원리대로 사람들은 잃어버렸던 자신의 본성을 찾아 나서는 것입니다.
이런 자녀들이 보편적 가치와 본성을 회복하는 것을 바라보는 부모들은 환호를 하고 있는 것이고요.
지금 놀라운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 부모세대로부터 받은 억압과 압박에서 점차 벗어나면서 부모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존경하는 멘트를 던질 때마다 가족 해체 위기에서 조금씩 회복되고, 세대 간에 이해가 촉발되면서
자녀들은 부모세대를 존경하고 부모들은 자녀의 정서와 마음을 공감하며 존중해 가고 있는 겁니다.
분석가 : 저는 BTS의 등장을 후기 구조주의의 등장 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후기 구조주의는 보편적 가치, 합리성을 해체하려 했지만, BTS는 무너진 보편적 가치와 합리성을
다시 회복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고 봅니다.
금수저가 다이아몬드수저가 되는 사건이 아니라, 흙수저가, 찌질이가 영웅이 되는 것을 보면서
누구나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심어줬죠.
시뮬라크르로 I am A에 불과했던 내가 I am 이 되는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을 각자에게 심어준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진정한 I am A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해체시대 또는 정서적으로 파편화된 시대에 젊은이들이 부를 노래를 가지게 되었고, 보편적
이고 고전적인 존재 가치, 인간 안에 본래적으로 있는 본성적 가치를 각자 안에서 끌어올릴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어요.
탐구자 : 그 말씀은, 'BTS가 그런 가치를 심어 준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팬들 각자가 자기 안에 있는
셀프를 끄집어 내어 스스로 고유한 존재가 될 수 있었다.' 이런 뜻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BTS 팬들이 'BTS음악을 통해 각자가 자기 안에서 자존감을 찾게 되고, 고유한 존재를 끌어올리게
되었다'는 면에서 이것이 대단한 사건인 겁니다.
그렇다고 그들이 하는 말이나 노래 가사가 위대한 시심을 담았다거나 표현력이 문학적으로 탁월하다
거나 한 것은 아니에요.
BTS는 그냥 일상의 이야기, 사소한 이야기, 주변 이야기, 상처받은 이야기, 그리고 상처를 극복하고
회복하는 이야기 등인데 전 세계 젊은이들이 그런 삶이 담긴 노래에 열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을 분석해 보면, 그동안 그들의 낮은 자존감으로 인해 파편화 되고 해체된 삶은 그런
평범한 일상과 사소함에서 오는 자기만의 고유한 이야기들을 잃어버리게 만들었다는 말이 됩니다.
그런 그들이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듣는 순간, 그 노래가 바로 내 모습을 이야기하고 있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고 있더라는 것을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가사에 담긴 이야기는 그동안 각자 안에 억압되어 있던, 자기 자신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과 희망으로
자신의 상처와 분열과 아픔을 딛고 일어서게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