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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 나이>로 두 살이 젊어졌다고?

<만 나이>의 폭력

2023년 구정 새해가 시작되었다.

올해는 세월이 거꾸로 돌아가는 해이다.

올해부터 국가행정적으로 나이 세는 법이 달라졌단다.

이제 누군가가 나이를 물어오면, <한국나이>를 접고 <만 나이>를 말해야 한다.

최근 나이가 들어가면서 나는 나이를 잊어버리기 일쑤였다.

젊을 때는 사람들에게 꿀리지 않으려고 한 살이라도 더 들어 보이려고 <한국 나이>로 몇 살이라는 것을 제시해 왔다면, 어느 순간부터 한 살이라도 덜 드는 <만 나이>로 말하게 되었다.

그래서 늘 두 가지 나이를 가지고 있어서 누군가가 갑자기 나이를 물으면 내 나이가 헷갈려 한참을 세어 봐야 했다.

그런데 올해부터는 전국적으로 <만 나이>가 각자의 나이로 통일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는 늦은 생일이라 2살이 젊어지기는 했지만, 그렇게 좋아할 만한 일은 못된다.


왜냐하면 누구나의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시기인, 태중에서의 시간이 무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모두가 잘 아는 바이지만, 한국 나이는 태어나자마자 한 살을 먹고 시작한다.

12월 생인 나는 태어나자 한 살 먹고, 보름이 안되어 또 한 살 먹게 되면서 태어난 지 한 달도 안 되어 두 살이 되는 영광을 얻고 살았다.


<만 나이>보다는 <한국 나이>


한국식 나이 계산법으로 태중에서의 10개월을 한 살로 쳐주는 것은 대단한 의미를 가진다.

사람은 태중에서 의 만 9개월이 진화론적인 계산에 따르면 36억 년의 진화과정에 해당되는 것이다.


신은 36억 년의 진화를 만 9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의 창조로 바꿔냈다.

"누구나 한 여자의 밤 속에 머물렀다."([우리 모두는 시간여행자이다], 32)

이 밤손님은 9개월 동안 여자의 몸에서 머무는 동안 36억 년의 긴 신성한 생명탄생 과정을 선물로 받는다.

그래서 이 밤손님은 어느 여자의 몸에 머물든 환대받아야 마땅하다.

"우리 안에 쉬기로 한 그들에게, 손님을 환대하는 따뜻한 마음으로 신성한 불가침의 권리를 보장하면 좋겠다."(같은 책, 32)


시간의 밀도


엄마의 몸속에서 보내는 9개월의 밤을 통해 아기는 완벽한 자율적 존재로 탄생한다.

이 밤손님은 9개월 동안 36억 년의 진화적 시간만 가져온 것이 아니다.

137억 년 전에 있었던 태초의 별에서 가져와 몸을 구성하는 요소가 36년의 진화과정을 거쳐 9개월의 시간의 밤을 잠자다 깨어나서 겨우 100년의 세월을 산다.

이 얼마나 억울한 일인가?

137억 년이라는 우주의 역사를 아우르는 몸의 구성요소를 가지고 36억 년이라는 생명 탄생과정을 겪어내는 9개월은 사람의 인생에서 가장 밀도 있는 삶을 살아온 신성한 기간이다.

성경은 "하루가 천년 같고 천년이 하루 같은"(벧후 3:8) 시간 개념으로 '하루'라는 시간 안에 1000년이라는 세월을 밀도 있게 압축했다.

한 살이라도 젊어지고자 하는 부자연스러운 욕망 때문에 한 여자의 뱃속에서 벌어지는 신성한 밤의 향연과 세 가지 차원의 시간 밀도의 통합은 철저하게 무시되고 말았다.


무시되는 자궁 내에서의 삶

자궁 내에서 벌어지는 파란만장한 모험은 태어나서도 얼마나 억울하게 부인되어 왔던가!


"엄마, 나는 어떻게 세상에 나왔어?"라는 질문에 엄마는,

"다리 밑에서 주워 왔지" 또는,

"황새가 물어다 우리 집에 떨어뜨려주고 갔지."


부모들의 이러한 무책임한 반응은 처음부터 아기의 존재를 보잘것없는 존재로 보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아기 생명의 탄생을 존재의 신성함으로 인지하지 못하고, 부모들의 성적 욕망의 결과로만 보고 수치스러워하여 아이의 존재 기원을 무시한다면 그 아이의 자존감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이에 대해 돌토학파의 정신분석가들은 아이들에게 제대로 답해 줄 것을 어머니들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했다.


아이가 태어나자마자,

"네가 우리 부부의 아들로, 또는 딸로 태어난 것에 대해 환영한다."로 시작하여,

"우리는 너를 낳기 위해 엄마-아빠가 어떻게 만나 얼마나 사랑했고, 그 사랑의 결실을 맺기를 간절히 원하는 중에 네가 태어나고자 하는 욕망으로 너 자신의 삶을 선택한 결과, 너는 이 세상에 나오게 되었단다."


아기는 존재하고자 하는 욕망으로 태중에서 생명으로 잉태되기를 선택했고, 아기의 탄생에 대한 부모의 환영과 존재 출발 선언으로 아기는 더 이상 자신의 출생에 의문을 가질 필요가 없게 된다.


노예화되는 자존감


생제르는 자존감이 높은 엄마들을 많이 만난 듯하다.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내가 만난 엄마들 가운데 자기 아이가 태어날 때부터 이미 구성이 완료된 자율적 존재, 두말할 여지없이 완전한 존재였음을 부인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프랑스의 엄마들은 대부분 이렇게 자존감이 높은 여자들일까?


한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은, 137억 년을 거슬러 우주에서 벌어지는 물질에 대한 역사를 수집하고,

36억 년의 생명체 진화과정을 집단무의식으로 모아 최신의 정보화 생명체로 탄생하는 것이다.

태중에서의 만 9달 동안, 아기는 자신이 살아갈 100년을 대비해 필요한 모든 능력을 다 가지고 태어난다.

그런데 대부분 부모들은 아이들의 이러한 존재 상태를 철저하게 무시한다.

아이를 키우기 위해 부모 자신의 재력, 지식, 학력 그리고 욕망이 크게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아이는 아무것도 모른다고 생각하여 부모가 계속 지식을 제공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 자식이 남한테 뒤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어 엄마는 아기가 돌이 되기도 전에 엄마는 아이의 눈앞에서 프래쉬 카드놀이를 한다.

진정한 교육은 그 아이가 태어나면서 가지고 나온, 내면에 잠재되어 있어 망각 상태에 있는 이데아를 깨어나게 하고 그 깨어난 것을 스스로 끄집어내는 것이어야 한다.

주입된 지식은 남의 것일 뿐, 절대 자신의 것이 되지 못한다.

주입된 지식을 많이 담고 살아갈수록, 그는 그 지식에 대해 주체가 되지 못하고, 그 지식에 대해 권력을 쥐고 있는 사람의 노예가 되어갈 뿐이다.


학교폭력은 가정에서 시작한다


부모는 왜 아기존재의 완전함을 인정하지 않는가?

부모는 자녀의 존재를 무시함으로써 아기가 천부적으로 타고난 '고유한 존재로서의 욕망'을 쉽게 꺾어 버린다.

이런 아이는 대개 자신의 욕망이 무엇인지 모른 채, 엄마의 욕망을 실현하는 데 평생을 바친다.

이것이 오늘날 가정교육, 학교교육의 현장에서 일어나는 현실이다.

이것은 사랑을 가장한 엄연한 폭력이다.

유아기부터 부모에 의해 당해 온, 존재에 대한 폭력은 곧 학교 폭력으로 나타난다.


오늘날 가정교육과 학교 교육의 겉과 속은 완전히 다르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없다.

우리 사회의 도덕성은 세계적인 수준으로 높아졌지만, 그 이면의 폭력성은 매우 잔인해지고 있다.

학교 폭력의 뿌리는 학교 및 사회 환경에서 찾기 전에 엄마의 뱃속에서 스스로 존재하고자 하는 아기의 욕망을 무시하는 데서 출발한다는 점을 기억하자.


진짜 나이를 기억하자


"까치까치설날은 어저께고요, 우리 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라고 노래하는 한국인에게 <만 나이>는 말이 안 된다.

그렇지만 이제는 어쩔 수 없다.

그러나 엄마의 뱃속에서 셈이 시작되는 나의 진짜 나이를 기억하고 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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