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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수 애호와 정서적 관계

후각발달과 친밀함

"아이는 자신의 존재를 한 명의 타자와의 관계 속에서만 수립한다. 유아는 처음에 엄마의 정서와 엄마와의 공통적인 요소들에 젖어서 살아간다. 타자는 주체의 정체성을 보유한다. 왜냐하면 아이가 냄새라는 영역 속에서 친숙한 주변 공간에서 자신을 인식하는 것은 바로 육아를 하는 엄마의 존재 때문이고, 그 엄마가 세계의 경험을 여과하고 있기 때문이다. "([프랑수아즈 돌토], 미셀 앙리 르두, 숲, 97)



앞의 글에서, 나는 돌토의 견해를 따라 태중 아이는 세 가지 감각을 발달시킨다고 말했다.

청각, 후각, 그리고 미각.


냄새로 판단하는 사람


어떤 어머니가 내게 자신의 딸 이야기를 하면서,

"우리 딸은요. 냄새로 모든 판단을 해요. 누군가를 처음 만나면, 보통 사람들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자기도 모르게 살피게 되잖아요. 대개 그 사람의 눈을 보게 되고, 그 사람의 이미지가 어떤가를 살피게 되잖아요. 말하자면 모든 감각을 동원해 '첫 인상이 어떻더라'하고 그냥 느끼는 거잖아요. 그런데 제 딸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냄새로 판단해요. ' 그 사람 냄새가 좋다 나쁘다'로요. 어떤 새로운 장소에 들어가면 분위기 파악을 냄새로 해요. 그래서 약속장소에 도착하고도 그곳 냄새가 안 좋으면 아무리 반가운 친구가 기다려도 그냥 나와 버려요. 특이한 것은 아침에 기상을 하면서 냄새를 맡으면서 '지금 6시 40분이다'라는 것을 정확하게 맞춰요."


그래서 내가 그 어머니에게 물었다.


"혹시 그 딸이 태어날 때 인큐베이터에 들어간 적이 있나요?"

"맞아요. 조산으로 태어나서 두 달 동안 인큐베이터에 있었어요."


계속된 질문과 답변을 통해 그 딸이 감각이 골고루 발달하지 못하고 태중에서 발달한 세 가지 감각 중에서도 후각이 두드러지게 발달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딸은 생애 초기 엄마의 품이 중요한 시기에 품의 부재가 다른 감각들과 통합되는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 것이다.


태중에서 발달한 후각 능력은 엄마의 품을 통해서 다른 감각과 통합되는 과정에서 나머지 감각과 어우러지면서 골고루 발달한다.

아이는 타고난 후각능력으로 냄새를 탁월하게 잘 맡는 것보다는 엄마의 고유한 냄새를 맡으면서 주변 공간에 대한 친밀감을 확보해 가는 것이 중요하다.


은둔형 외톨이도 후각의 문제일 수 있다

서울시에 바깥을 나가지 않고 집안에 처박혀 사는 <은둔형 외톨이> 인구가 13만 명이 된다고 한다.

그들이 그렇게 사는 것은 외부세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집 안에서도 오직 자기 방만 안전하게 느끼는 사람이 바로 그런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은 왜 그럴까 하는 답답한 마음이 있겠지만, 그 사람이 왜 그런지에 대한 이해를 제대로 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사람마다 각기 다른 여러 가지 이유들이 다 있을 것이다.

그런 다양한 이유들 저변에는 유아기의 문제에서 발견되는 공통된 부분을 가질 가능성으로 나는 후각의 문제로 제시하고자 한다.

서두에 제시된 돌토의 견해에 의하면, 아기는 탄생 직후 냄새를 통해 엄마를 찾아 태중의 엄마와 동일한 존재라는 것을 확인한다.

나의 엄마만이 가지고 있는 고유한 냄새를 확보하면서, 외부세계 또는 외부의 타자들의 냄새와 차별화를 꾀한다.

내가 태어난 곳은 더없이 넓은 세계이자 끝이 안 보이는 우주 속에 있는 매우 작은 장소이다.

내가 작다고 해서, 또는 나를 둘러싼 세계와 우주가 광활하다고 해서 아기는 외부세계에 의해 압도될 필요는 없다.

넓고 광활한 세계와 광대무변한 우주에 의해 압도되지 않기 위해 엄마가 필요하다.

아기는 곁에 엄마만 있으면 자신이 우주의 한 점으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우주의 중심의 위치를 확보한다.

엄마만 있으면, 밖에서 전쟁이 일어나도, 폭풍우로 나무가 부러지고 건물이 무너져도 전혀 상관치 않는다.

아기는 엄마를 다른 존재, 다른 사물들과 배타적으로 구별한다.

아기는 이렇게 엄마와 존재론적으로 융합하는 관계를 만들어내면, 엄마와의 배타적인 친밀감을 확보하게 되며, 엄마가 활동하는 주변에 있는 공간마저도 친숙하게 여기게 된다.

아기는 자기 인식을 이처럼 엄마의 냄새를 맡는 것으로 시작하여 점차 엄마 주변 환경에 대한 친숙함으로 확대해 간다.

이처럼 아기는 엄마 냄새를 중심으로 주변공간에 대한 친숙함을 확대해 나간다.

이렇게 볼 때, <은둔형 외톨이>는 그렇게 될 수밖에 없는 여러 가지 개별적 상황들이 있겠지만, 그것의 근본적인 문제로 내려가면 곧 <엄마의 품>의 문제라고 볼 수 있다. 그중 하나가 후각의 문제일 것이다.

말하자면, 태중에 있을 때 엄마의 냄새와 태 밖에서의 엄마의 냄새의 동일성을 확보하지 못함으로써, 태중에서 경험한 엄마와 탄생 후의 엄마가 같은 엄마라는 동일성을 확보하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의 존재는 모호해질 수 밖에 없다.

모호한 존재는 외부의 세계와 우주에 의해 압도될 수 밖에 없다.

가장 안전한 공간은 나의 방 밖에 없다.

그런 사람이 외부 세계로 나갈 때의 느낌은 마치 넓은 땅위를 걷는 것이 아니라, 발 하나 놓은 만한 간격의 길뿐인 절벽길을 걷는 것과도 같다.


엄마만의 배타적인 냄새

유아에게 있어 엄마 냄새는 배타적인 냄새여야 한다.

세상의 모든 사람, 모든 사물 및 공간에서는 온갖 냄새들이 있지만, 유아는 엄마를 그 외의 다른 것과 구별할 수 있는 것으로서 엄마의 냄새를 배타적으로 구별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사람은 어느 정도 후각을 통해 냄새로서 상황을 파악하고, 냄새로서 사람을 판단한다.

예민한 사람은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지 나쁜 사람인지, 착한 상인인지 교활한 상인인지를 냄새로 구별한다.

그 사람은 "어떤 종교 집회가 정통신앙인지, 이단인지 나는 냄새를 맡아보면 안다. 이단은 이상하게 역겨운 냄새가 난다."라고 말한다.


향수를 진하게 뿌리고 다니는 사람


향수를 분위기에 맞게 유독 잘 사용하는 사람은 세련되어 보이는 부분도 있지만, 그 이면을 보면 후각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다.

어떤 사람은 향수를 잘 쓰는 사람에게 매혹되기도 한다.

어떤 광고에서 여자가

"이 향수를 쓰는 남자와 데이트하고 싶어"


라고 말한다.

향수를 잘 사용하는 사람은 자신의 매력을 돋보이기 위해 향수를 사용하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그것은 착각일 가능성이 높다.

향수를 지나치게 사용하는 것은 주변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수 있다.

말하자면, 향수를 뿌린다는 것은 사람과 사람, 또는 사람과 상황을 이어주는 고유한 냄새를 차단하고 인위적인 냄새를 뿌려 관계성을 차단하는 것이다.

친밀한 공간을 만들어내는 능력의 부재는 스스로 강한 냄새를 뿜으면서 친밀함 또는 친숙함을 미리 차단한다.


향수는 결코 인격을 만들어내지 못한다.

향수를 지속적으로 사용하는 사람은 무의식적으로 주변 사람과 정서적 관계를 차단하기를 원하는 사람이다.

이 말을 뒤집어 보면, 그 사람은 주변사람과 차단된 정서적 관계를 향수를 통해서라도 잇고 싶은 무의식적 욕망을 가졌다고 말할 수 있다.

만일 이러한 가정이 맞다면, 향수를 사용해서라도 두려운 세상 속으로 뛰어드는 그의 용기는 칭찬받아 마땅하다.

친밀할 수 없는 타인, 친밀할 수 없는 낯선 공간을 향수를 뿌려서라도 관계를 맺고자 노력하는 사람이라고 인정할 필요가 있다.


사람의 인품은 고유한 향기를 자아낸다.

아름다운 여인의 향기는 눈으로 맡아지고 피부가 진동하며 마음 안에서 공명한다.

사람의 훌륭한 품격은 은은한 향기로 마음 안에 배어들어 화사한 느낌을 주면서 파동처럼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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