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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톤의 Idea와 데카르트의 idea

천상의 이데아와 나의 사고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


탐구자 : 플라톤이 이데아(Idea)를 제시했고, 데카르트는 사고(idea)를 제시했군요.

둘 사이에 무슨 관계가 있을 것 같군요.

철학자 : 서양에서 철학이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시점이 바로 파르메니데스(Parmenides. BC 510~450)

입니다.

물론 파르메니데스의 주장과 정반대의 입장에 있는 철학자가 있었습니다.

그가 누굴까요?

탐구자 : 그야, '만물의 본질을 변화'라고 주장한 헤라클레이토스(Heracliuts. B.C 535~ 475)곘죠?

철학자 : 맞아요. 그래서 헤라클레이토스는 '만물의 근원은 불이다'라는 주장을 하죠.

그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는데, 기억하시겠죠?

탐구자 : 네. '같은 강에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라는 명제죠.

철학자 : 그래요. 그런데 파르메니데스는 전혀 다른 주장을 합니다.

철학은 진리를 탐구하는 것인데, '진리란 불변하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파르메니데스의 명제는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입니다.

신학자 : 그 명제는 동어반복과 유사한 부분이 있습니다.

신의 이름이 바로 동어반복이죠.

I am who I am.

이것보다 확실한 진리는 없습니다.

철학자 : 그렇습니다.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는 완벽한 진리인 듯 하지만, 있는 것과 없는 것

사이에는 많은 헛점이 있거든요.

탐구자 : 그 헛점이란 이런 것이 아닌가요?

'있는 것이 없고, 없는 것이 있다.'라는 명제 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파르메니데스의 명제는 구멍이 많은 것 같아요.

신학자 : 파르메니데스의 있음(being)은 곧 존재(being)라는 점에서 비인격적인 신을 상정할 수 있습니다.

유일하게 변하지 않는 존재는 곧 신이니까요.

철학자 : 그래도 파르메니데스는 존재를 신이라고 종교화하지 않고, 철학적 사유대상이 되어야 한다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존재와 현상을 철저히 구분했죠.

존재는 진리에 속하지만, 현상은 거짓이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현상은 없는 것이어서 사유의 대상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탐구자 : 그것은 과학이전의 시대에는 통할 수 있었겠어요.

근대시대에 0이 발견되면서 수학, 물리학, 화학분야에서 눈부신 발달이 일어났잖아요.

0은 '없음'의 표현이지만, 다른 한편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수가 되는 것이거든요.

예를 들어, 1,2,3,4,5,6,7,8,9 다음이 0이거든요.

0이 9보다 큰 수 인거죠.

철학자 : 탁월한 식견입니다. 그렇게 보면, 0은 없음의 개념과 가장 큰 수의 개념이 중첩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1,2,3,...9, 10, 11,...20......99, 100,...999, 1000,....9999, 10000 .. 100000 ...

이렇게 수를 확장해 갈 수 있게 만드는 것이 0 역할입니다.

하지만, 파르메니데스 시대에는 아라비아 숫자가 없었기 때문에, 실재성이 없는 관념적 사고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의 천금같은 명제가 헛점이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그렇게 불변하는 존재를 이 땅에서 찾으려고 하니까 그 틈을 노리고 사기꾼들이 활개를 치며 세상을

휘젓고 다니는 것을 플라톤이 보게 됩니다.

탐구자 : 그 사기꾼들이 바로 소피스트들이군요. 오늘날로 말하자면 보이스 피싱 또는 건전하지 못한 다단계

판매 시스템같은 것이겠죠?

특히 다단계 판매의 경우, 어떤 제품을 구매하면 그 제품을 더 많이 판매해 주는 것에 대한 보상으로

수수료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리는 방식입니다.

이러한 다단계 판매 방식은. 대개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구입하는 물건에 대해서도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에서는 수수료를 받기 위해 수많은 제품을 팔아야 하며, 이를 위해 주변인들을

상대로 억지로 판매를 유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철학자 : 맞습니다.

신학자 : 진리를 찾다가 대상을 잘못 만나면 이단으로 쉽게 넘어가는 사이비 종교 시스템도 오늘날 다단계

판매 시스템과 유사한 부분이 많습니다.

최근 어떤 사이비 종교에서는 "나는 신이다"라는 주장을 하면서, 그 뒷편에서는 여성들을 조직적

으로 유혹하여 교주에게 성상납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고 해요.


철학자 ; 맞습니다. 진리, 최고의 것을 찾으려다가 최악의 오류에 빠져버리는 거죠.

그래서 플라톤은 이런 점을 안타깝게 여겼습니다.

플라톤이 보기에 파르메니데스가 '있는 것은 있고, 없는 것은 없다'하여 절대적 진리만 추구하다가

현실에서 좋은 것은 소피스트들에게 다 빼앗기고, 일반 대중들이 그들에게 착취당하는 현실을 보고

안타까워 했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이 땅에는 그런 진리가 없고, 그런 진리는 '하늘'에 있다고 주장하게 된 것이죠.

플라톤은 불변하는 존재는 '천상에 있는 이데아'라고 상정했지요.

그리고 이 땅에 있는 모든 것은 하늘에 있는 이데아를 본떠서 만들어진 것이라고 생각했죠.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 있는 것은 진짜로서 '불변하는 존재'라고 볼 수 있지만, 이 땅에 있는 것은 늘

변하는 현상에 불과하다 하여, 눈에 보이는 현상은 부정되었습니다.

그러는 와중에 무지한 대중을 향한 소피스트들의 착취가 일어나고 있는데, 파르메니데스는 그런

'현상'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그래서 플라톤이 등장하여 현실의 현상을 살리기 위해 자칭 '부친살해'(파르메니데스의 철학을 무너

뜨림)를 감행하는 거죠.


하늘에서 땅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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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자 : 저의 부족한 식견으로는 플라톤이 그런 노력으로 현상을 얼마나 구제할 수 있었을까 싶네요.

왜냐하면, 이데아가 천상에 있는 한, 이 땅의 현상과는 너무 괴리가 크기 때문에 현실에서 발생하는

현상적 비리는 통제하기 힘들 것 같네요.

철학자 : 중요한 지적입니다.

데카르트는 <천상>에 있는 ‘이데아(Idea)’를 <나>안에 있는 ‘사고(idea)’로 끌어 내립니다.

그는 ‘나는 사고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명제를 세우면서 존재와 사유가 일치하는 장소를

<천상>에서 <나> 안으로. 바꿔버린것이죠.({자기의식과 존재사유}. 김상봉, 서울: 한길사, 1998,

117~119)

이 명제로 데카르트는 교황청에 소환됩니다.

탐구자 : 말하자면, 천상이 땅에 의해 전복당하는 매우 파격적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군요.

그런 전향적인 선언에 대해 지금 시대에 사는 우리에게는 별 것이 아닌 것으로 보이겠지만, 당시에는

대단한 충격을 주는 발언일 수가 있었겠습니다.

당시 교황청의 입장에서 보면. 갈릴레이가 천동설 대신 지동설을 주장한 것보다 더 큰 도전이었겠

어요.

말하자면 진리가 하늘에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데카르트에 의하면, ‘나’가 진리의 담지자가 되는

것이잖아요.

교황청에서 데카르트를 불러 들일 만도 한 일이었군요.

철학자 : 당시에는 ‘나’라는 개념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진리의 담보자가 '하나님'이 아니라 ‘나’가 된다는 사실은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보다 더욱

충격적인 것이었을 겁니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계의중심을 지구에서 태양으로 바꾼 정도이지만, 데카르트의 명제는 ‘나’가

우주의 중심이 되는 사건입니다.

물론 데카르트는 그럴 목적을 가지고 그런 명제를 만든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교황청의 입장에서는 데카르트가 하늘을 뒤집어 버리는 엄청난 반란을 일으킨 것이었습니다.


I am


신학자 : 교황청에서 볼 때, 천상의 이데아를 나의 사고로 가져왔을 뿐 아니라, '나의 사고'(I think)의 결과

내가 존재한다(I am)이 되는 거잖아요.

I am이라는 용어는 함부로 쓸 수 있는 용어가 아닙니다.

왜냐하면, I am은 하나님의 이름이거든요.

교황청에서 보면, 천상의 이데아를 내가 가져왔을 뿐 아니라, 그 결과 나는 하나님이 되었다

말이거든요.

교황청의 입장에서 보면, 데카르트의 명제는 매우 참람하기까지 하죠.

예수께서도 종교지도자들에 의해 같은 올무에 걸려 십자가형을 받게 됩니다.

예수께서 I am the way, the truth, the life.(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I am the vine(나는 포도나무요)

I am the bread of life(나는 생명의 떡이니). 등등

바리새인들은 예수가 감히 하나님의 이름을 자기 것처럼 쓴다고 참람죄를 적용하죠.


"제가 생각해보니까(I think) 하나님이 계시더라고(I am)."


분석가 : 데카르트가 그런 명제를 만들내기까지 과정을 살펴보면, 그의 저서 [성찰]에서 혼자 만의 적막 속에

들어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리고 끝없는 의심이 시작되죠.

저도 데카르트를 의심해 봅니다.

그의 의심은 모두 편집증적 의심이 꾸며낸 망상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대목이 있습니다.

왜냐하면 데카르트는 밤과 낮이 바뀌어 있었거든요.

정신병이 발병을 하는 과정에서 밤과 낮이 바뀌는 현상이 있지요.

데카르트는 1649년에 스웨덴 여왕의 초청을 받아 철학강의를 하였는데, 새벽시간에 강의가 이루어.

져 매우 힘들었다고 합니다.

스웨덴을 떠나 파리로 돌아오게 되지만, 그런 피로가 누적되어 몇달 지나지 않아 데카르트는 곧

사망하게 됩니다.


철학자 : 저는 데카르트의 의심이 편집증이었다는 점에 대해 동의하지 않습니다.

그는 '천상'의 이데아를 ‘나’안의 사고로 끌어내려서 ‘나’안에서 존재와 사유의 일치를 이루었지만,

천상, 그리고 신과의 관계를 끊어버렸기 때문에 이데아와 같은 존재의 보편적 지평을 상실하고

말았습니다.

저는 이것이 더 안타까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천상을 전복시켰지만 우주의 중심이 되기는커녕 존재로서의 보편적 지위를 확보하지 못해 급기야

신의 존재를 증명해야만 했습니다.

신의 존재 증명을 통해 ‘나’의사고의 가치를 확보하였지만, 문제는 기껏 존재와 사유의 일치를

‘나’안에 이루어 놓고는 다시 존재와 사유가 분리되는 결과를 낳게 되었습니다.

즉 사고는 ‘나’안에서 이루어지지만 존재는 사고 너머에 있는 신에게 귀속시켜야 했습니다.

데카르트의 성찰이 계속되어 가면서, 신의 전능성은 과학의 전능성으로 대체하게 됩니다.

신의 자리에 과학이 대신 들어서게 된 것이죠. 그리하여 데카르트는 자신의 철학에서 신을 배제시킴

으로써 무신론 철학으로 넘어가게 된 것입니다.

반면, 데카르트의 철학은 과학 발달에 큰 물꼬를 터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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