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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이 출중한 여성, 아버지의 딸


            아버지의 딸, 아테나


그리스 신화 중 전쟁의 신이자 지혜의 신인 아테나 여신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탄생합니다. 


제우스의 머리를 가르고 태어난 여신이죠. 보통 신이라도 아기로 태어나는 법인데, 


아테나는 번쩍이는 황금 갑옷을 입고 한 손에는 창을, 한 손에는 방패를 들고 


벽력같은 고함을 치면서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태어납니다. 


그것도 대장장이 신 헤파이토스가 제우스의 머리를 도끼로 쪼갠 사이에서 튀어 나온 것입니다. 


제우스가 자신의 첫 번째 아내 메티스 여신을 삼켜 버리자 


아테나는 태어날 산도를 찾지 못하여 아버지의 머리를 깨고 나온 것입니다. 


아테나는 태중에서부터 범상치 않았기 때문에 태어나는 방식도 평범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왜 아테나 여신은 이렇게 태어나는 것이 오늘날 현대인들과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앞의 글「결혼, 여성의 여성성의 죽음」에서 여성은 자신의 여성성을 죽이면서 


결혼생활이 시작된다고 언급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제우스가 메티스 여신을 삼켜 버리는 것으로 나타나는 것이죠. 


이렇게 태어난 아테나는 곧 <아버지의 딸>의 전형이 됩니다. 


아테나 여신은 메티스 여신과 제우스 신의 딸로서, 일찍이 어머니와 분리되어 


아버지와 동일시하는 <아버지의 딸>이 되는 것입니다. 


라캉 학파의 정신분석학자 프랑수와즈 돌토는, 엄마가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한 중에 


잉태된 태중의 딸은 무의식적으로 엄마의 자리를 엿본다고 말하였습니다. 


엄마는 왜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요? 


여성들 중 70%가 평생 오르가즘이 뭔지 알지 못하고 생을 마감한다고 합니다. 


그 만큼 히스테리화된 여성이 많다는 말이죠. 


히스테리화된 여성은 어릴 때부터 여성성을 아예 반납하고 남성처럼 살든지, 


아니면 모성성만 발휘하면서 여성성을 대신하게 됩니다. 


이것은 제우스가 메티스 여신을 삼켜 버린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집니다. 


아내는 자신의 여성성을 발현하지 못하고 남편의 여성성을 자신의 여성성으로 대신함으로써, 


남편이 원하는 여성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여성이 성적 욕망이 없어 오르가즘을 느끼지 못하는 가운데 딸은 태중에서부터 아버지를 욕망하기 시작하게 되고, 


태어나서는 아버지의 아내로 자리잡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 대개 아버지는 딸 바보가 됩니다. 


엄마는 자신의 딸에게 아내의 자리를 내어 주면서도 질투심을 갖지 않습니다. 


나 대신 딸이 아내로서 역할을 해 주니까 오히려 편해졌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딸이 바로 <아버지의 딸>인 것입니다. 




「결혼, 여성성의 죽음」이라는 글에서 보듯이, 결혼이 여성성의 죽음으로 시작하지만, 


그런 여성들 가운데는 많은 여성들, 적어도 70%에 해당하는 여성들이 결혼 이전에 이미 


자신의 여성성을 죽이면서 살아가는 히스테리화된 신체로 존재해 온 셈입니다. 


그 중에서도 <아버지의 딸>은 출생에서부터 독특한 양상을 띠면서 엄마와 일찍이 분리되어 


아버지가 속한 남성적 범주에 들기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하는 가운데 


스스로 여성성을 저버리는 삶을 선택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녀들은 여성성 대신 거리낌 없이 남성성을 발휘하는 데에 정열을 바치며 살아가는 겁니다. 


즉 아버지를 닮아 가는 일에 전념을 다하게 되는 것이죠. 


여자아이가 태어나면 엄마와 분리될 필요 없이 엄마와의 한 몸처럼 움직이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그것은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더욱 그렇습니다. 


보통의 여성들은 이러한 엄마와의 동일시가 너무 오래 가는 것이 문제가 됩니다. 


그러나 아버지의 딸은 그렇지 않습니다. 엄마와의 동일시를 짧게 하고 


일찍부터 아버지를 동일시하면서 엄마로부터 일찍 분리해 나옵니다. 


대부분의 여성은 엄마가 규정해 주는 여성다움을 가지고 살아가지만, 


<아버지의 딸>은 아버지가 정해 준 여성성을 내면화하여 살아가게 됩니다. 


이런 여성은 자라면서 남성들의 세계에 머무르게 되면서 남성들이 지향하는 사회적 지위, 남성적 권위, 돈과 힘의 논리,


 그리고 명성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이 여성들은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원리를 흡수한 결과, 


일찌감치 남성적 능력을 갖춰 남자들의 세계에서 경쟁에서 두각을 드러내는 법을 몸으로 터득해 온 것입니다.



오늘날 가부장적 권위주의가 추락하는 데에는 이런 여성들의 부상이 크게 작용해왔습니다. 


남성들의 군복무 가점제가 없어지면서, 똑같은 출발선상에서 남성과 여성이 동시에 


‘요이, 땅!’ 하면 10명 중 7~8 명이 여성의 승리로 끝납니다. 


하급 공무원 시험, 교육대학교 시험, 사법고시, 행정 고시, 스포츠, 정치, 예술 등 남녀가 공평하게 경쟁하는 곳에서 


여성의 성공 비율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이 당연한 현상으로 굳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든 여성들이 이렇게 경쟁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사회적 성공을 거두며 다니는 여성들은 바로 <아버지의 딸>들입니다. 


제도적으로 남녀 균등 비율 합격제도를 도입하지 않을 경우, 


남자와 경쟁하는 데에 능한 <아버지의 딸>들의 출중한 능력은 달리 제어할 방도가 없습니다. 


<아버지의 딸>들은 왜 이렇게 능력이 탁월할까요? 아들은 한 동안 아버지와 동일시하지만, 


사춘기를 지내면서 언젠가는 ‘심리적 부친살해’를, 딸은 어머니에 대해 


‘심리적 모친살해’를 감행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그렇다고 모든 아들딸들이 그런 모험을 감행하는 것은 아니죠.) 




그러나 아버지와 딸 사이에는 상호간에 경쟁꺼리가 없기 때문에 걸림돌이라 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특히 사회적으로 지위와 명성이 뚜렷하고, 사회적 능력이 증명된 아버지라면, 


<아버지의 딸>이 아버지로부터 받는 권위와 능력의 동일시는 모래가 물을 흡수하는 듯한 흡입력을 발휘합니다. 


아버지의 사회적 성공은 곧 <아버지의 딸>의 현실적 자신감과 


미래에 대한 야망의 성취로 이어지는 것으로 당연시 됩니다. 




[이상한 나라 엘리스]에서 다음의 대화가 나옵니다. 


“왕은 지금 꿈을 꾸고 있어. 그가 무슨 꿈을 꾸고 있다고 생각해?” 트위들디가 물었다.


엘리스가 대꾸했다. “그걸 누가 알겠어?” 


“바로 너에 관한 꿈이지!” 트위들디는 의기양양하게 손뼉을 치면서 말했다. 


“만일 왕이 네 꿈을 다 꾸고 나면 넌 어디에 있을 거라고 생각해?” 


“그야 물론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 있겠지.” 엘리스가 대답했다.


“너는 어디에도 없을거야. 왜냐고? 너는 단지 왕의 꿈에 나오는 존재일 뿐이니까!”


“왕이 잠에서 깨어나면,” 트위드덤이 거들었다. “너는 사라질 것이야. 펑! 촛불처럼 꺼져 버리는 거지!”


이 대화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여성이 자신의 여성성을 주체적으로 소유하지 않으면,


 아버지 또는 남편에 의해 여성의 존재의미는 사라져 버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남자의 환상의 대상이 될 때에야 여성은 겨우 존재감을 유지해 온 것이라면, 


남성이 환상을 투사할 대상을 옮기게 되면 이 여성은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버지의 딸>은 직업적으로는 성공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들이 어려워하는 부분은 감정의 영역이나 관계 영역입니다. 


오직 경쟁하는 데에만 정열을 쏟고, 남자들을 넉 다운 시키는 데에 유능하지만, 


정작 그들과 우호적인 관계를 만들어 간다거나 연애 감정에 사로잡힌다거나 하는 일은 매우 드물게 됩니다. 


어쩌다 자신의 능력을 찬양하는 남자가 나타나 연애사건으로 이어진다 할지라도 


결혼이라는 주제는 장애로 다가오게 됩니다.


 ‘내가 이렇게 능력있고, 야망이 있어 앞으로 미래가 보장되어 있는데, 


내 능력을 죽여가면서 굳이 시-월드에 들어가면서까지 수모를 겪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을 짧게 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내 몫이 아니라고 쉽게 포기해 버리는 됩니다. 


<아버지의 딸>은 오직 아버지에게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일에 일생을 바치고 싶지만, 


그런 일에 정열을 쏟아 붓는 것도 중년기를 넘기지 못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아버지의 딸>은 중년기가 되면, 자신의 사회적 능력으로 성취한 모든 것들이 


어느 순간 공허하고 허무하다는 생각이 드는 시점이 오게 됩니다. 


이때 속히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봐야 합니다. 여성은 자신이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 답은 바로 자신의 <고유한 여성성>일 것입니다. 


내가 찾아야 할 <고유한 여성성>이 뭘까요? 다음 글을 기대해 보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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