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몬느 베이유Simone Adolphine Weil, 1909 ~43, 프랑스 철학자)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연극 '리어왕'은 세 딸이 자신을 얼마나 사랑하는지에 따라 왕국을 나누기로 결정한 왕의 비극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막내이자 가장 사랑받는 딸 코델리아는 이 사랑의 게임에 참여하기를 거부하고 왕국에서 추방되어 일련의 불행한 사건으로 이어진다.
극 초반에 고네릴과 리건은 아버지를 칭찬하기 위해 장엄한 언어를 사용하여 겉보기에 진실한 방식으로 아버지에게 사랑을 고백했다.
그들은 왕이 아첨을 통해 사랑을 표현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의 약점을 유리하게 사용할 수있을만큼 똑똑했다.
그 결과 리어 왕은 그들에게 왕국의 일부를 주기로 결정했고 코델리아는 아무것도 남기지 않았다.
그러나 고네릴과 리건이 권력을 잡자마자 그들은 아버지를 상대로 음모를 꾸미기 시작했다.
왕국의 더 많은 몫을 받은 고네릴은 리어의 측근들에게 금세 싫증을 느끼고 그들이 가져온 소음과 소란에 대해 그를 원망하기 시작했다. 한편 언니를 늘 질투하던 리어는 고네릴과 손잡고 아버지에 대항해 더 큰 권력을 얻을 수 있는 기회를 엿보게 된다.
리어는 딸들의 본성을 깨닫기 시작하면서 점점 더 동요하고 화를 냈다.
그는 딸들이 배은망덕하고 무례하다고 비난했지만, 딸들은 이미 그를 반대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들은 리어 왕의 행동이 불규칙하고 통치하기에 적합하지 않다고 주장했고, 결국 권력 다툼이 격렬해져 리어 왕은 황야로 추방당하게 된다.
리어왕이 황야로 추방되는 장면은 이 극에서 가장 강력하고 가슴 아픈 순간 중 하나이다.
이 장면은 딸들의 배신의 무게와 아버지이자 왕으로서 자신의 진정한 가치를 이해하지 못하는 딸들의 모습을 반영한다.
리어왕은 충성스럽고 헌신적인 어리석음을 제외하고는 모든 것을 빼앗긴 채 홀로 남겨진다.
관객은 탐욕과 권력, 속임수가 가져오는 결과와 그것이 주변 사람들에게 미치는 파괴적인 영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
결론적으로 고네릴과 리건이 아버지 리어왕을 대하는 태도는 기만과 조작이었다.
그들은 리어왕의 사랑과 애정을 이용해 권력을 얻었고, 결국 자신들의 목적에 부합하는 순간 리어왕에게 등을 돌렸다.
그들의 행동은 스스로에게 비극적인 결과를 초래했다.
리어왕과 그의 셋째 딸 코델리아는 개인적인 이익을 위해 아버지의 아첨을 거부한 코델리아의 오해와 거부로 인해 소원해졌다.
코델리아는 항상 아버지를 깊이 사랑했지만, 그녀의 정직함과 성실함 때문에 두 사람은 소원해진 것이다.
1막에서 리어왕은 세 딸 고네릴, 리건, 코델리아에게 자신에 대한 사랑을 선언해 달라고 부탁한다.
고네릴과 리건은 아버지에게 지나치게 아첨하지만 코델리아는 침묵을 지킨다.
리어왕이 입을 열라고 재촉하자 코델리아는 "인연에 따라" 아버지를 사랑한다고 말하며,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딸이 아버지에 대한 의무를 다하는 것일 뿐이라고 말한다.
두 딸의 끊임없는 아부에 익숙해져 있던 리어왕은 코델리아의 대답에 분노하여 그녀를 추방하고 왕국을 두 자매에게 분할한다.
그러나 두 딸 고네릴과 리건에 의해 추방당한 리어 왕은 코델리아를 추방한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셋째 딸과 화해하려고 노력한다.
아버지를 위해 헌신해 온 코델리아는 아버지가 자신에게 준 고통에도 불구하고 그를 기꺼이 다시 받아들인다.
그녀는 과거에 자신을 끔찍하게 학대했던 아버지를 용서하고 건강을 되찾도록 지극정성으로 간호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리어왕과 코델리아의 관계는 회복된다.
아버지에 대한 코델리아의 변함없는 사랑과 강한 도덕성은 결국 리어왕이 딸과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이 된다.
결국 리어왕은 코델리아가 자신의 권력이나 재물이 아닌 인간으로서의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결론적으로 리어왕과 셋째 딸 코델리아가 소원해진 것은 리어왕의 오해와 이해 부족 때문이었다.
하지만 리어왕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코델리아와 화해하려고 노력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회복된다.
용서, 사랑, 이해를 통해 두 사람은 가족과 관계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중요한 교훈을 얻게 된다.
세익스피어의 [리어왕] 속의 리어왕은 무한한 권력을 가진 왕으로서 그의 삶은 힘과 권력에 대한 지배와 관리에 매몰되어 있었다.
이것이 그의 중력이었다.
그는 자신의 권력과 통치력을 굳건하게 유지하기 위해 자신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결정하려고 했다.
첫째 딸과 둘째 딸은 왕의 힘과 권력에 대한 열망을 충족시켜주는 존재였다.
그들은 자신들의 부자와 권력을 이용하여 리어왕에게 다가가, 그의 지지와 사랑을 받으며 자신들의 삶을 즐길 수 있었다.
그러나 리어왕은 자신의 중력과 의식에 매몰되어 셋째 딸을 무시하여, 그녀가 품고 있는 은총과 사랑이 왕의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중력 무게를 견디지 못하는 리어왕은 자신의 삶에 대한 불만족과 불안감에 시달려, 자신의 판단력과 판단 능력을 잃고 말았다.
그는 자신의 선택이 옳은 것인지 의심하며, 그것이 그의 통치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는 셋째 딸의 은총과 사랑을 발견하게 된다.
그녀는 왕의 중심에 자리 잡았지만, 그녀의 사랑과 은총은 왕의 통치력과 권력을 향상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균형잡는 것이다.
그녀의 사랑과 은총은 왕을 다른 사람으로 변화시키며, 그것은 리어왕이 결국 자신의 불안과 불만족을 극복하고, 자신의 판단력과 판단 능력을 되찾게 되는데 일조했다.
결론적으로, 리어왕의 삶은 그의 중력과 은총의 관점에서 보면, 그가 자신의 권력과 통치력에 집착하며, 자신의 불안과 불만족을 해결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셋째 딸의 사랑과 은총을 통해 균형과 안정을 찾게 되었다.
동양 문화에서는 경시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어 중국에서는 잉태의 순서에 따라서 첫째, 둘째, 셋째를 각각 귀하다, 중하다, 비천하다고 부른 적이 있다.
동양과 서양 문학 모두에서 셋째 딸은 종종 망각되거나 외면받는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셋째 딸은 다른 딸들과 달리 아버지나 사회에서 인정받지 않는 자아실현을 꿈꾸는 모습으로 나타날 때도 있다.
이처럼 셋째 딸은 문화적인 배경과 작품의 구성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전통적인 가족 구조에서 셋째 자식이나 딸이 상대적으로 소홀히 다뤄지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러한 셋째딸들은 종종 진정한 가치를 갖고 있으며, 이를 통해 가족이나 사회의 가치를 발견하도록 도와준다.
셋째딸은 종종 자신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성장하고, 인생의 어려움을 극복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이러한 셋째딸들은 종종 자신의 능력을 발견하고,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으면서 사회나 가족 구성원들의 인정을 얻게 되며, 이는 우리 모두에게 영감과 용기를 준다.
결국, 셋째딸은 종종 가족 구성원들의 눈에 잘 띄지 않지만, 그녀만의 독특한 가치와 능력을 발견하여 성장하는 모습으로 묘사되며, 이를 통해 우리는 가족의 소중함과 인간의 내적인 성장의 중요성을 깨닫게 된다.
문학 작품 속에서 셋째 딸은 기존 가치에 저항하면서 반전을 일으키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많다.
<최진사댁 셋째딸>노래에서도 볼 수 있듯이, 우리나라 셋째 딸은 얼굴도 안 보고 장가가도 된다.
대개 문학작품 속에서 셋째 딸은 진리 담지자이다.
성경에서는 은총이 장남보다는 차남에게 있으며, 장남에게는 중력이 있을 뿐이다.
장남 '에서'보다는 차남 '야곱'에게 하나님의 은총이 있다.
사울의 실패는 첫째의 실패요, 둘째 왕인 다윗의 흥왕을 보증하는 실패다.
두 왕은 첫째 아담의 실패와 둘째 아담 예수의 승리를 보여주는 예표다.
아들이 둘째이라면, 딸은 역시 셋째다.
이들은 진리의 담지자이다.
오늘날 같이 아들을 하나만 낳고, 딸을 둘만 낳는다면 가족관계 안에 담지된 참된 진리를 보지 못하고 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