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인도덕과 노예도덕
대부분의 사람은 주인도덕으로 살기보다는 노예도덕으로 산다.
어릴 때부터 상처를 받으면서 자라왔고, 그 결과 원한 감정을 많이 가지고 있다면 그(녀)의 삶은 어릴 때부터 부정당하며 살아온 것이다.
이런 사람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기가 쉽지 않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주인도덕으로 살기보다는 노예도덕으로 산다.
이러한 사람들은 누군가에 의해 자신이 통제하고 조종되는 것을 원한다.
그들은 자신의 삶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과 자유를 잃은 것처럼 느낄 때, 자신의 삶이 불안정하고 불확실하다고 느낀다.
이러한 감정은 어린 시절 상처를 입은 사람들에게서 특히나 많이 나타난다.
어린 시절 상처는 그들을 영구적으로 변화시키고, 그들이 감정적으로 부정적인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불행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
어린 시절에 상처를 입었거나, 불행한 경험을 많이 한 경우, 그들은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할 가능성이 높다.
그 상처들이 자라나면서, 그들은 원한과 불만으로 가득 차게 된다. 그래서 그들은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보거나 살아가기 어렵게 된다.
이는 자존감 저하, 우울증, 불안감 등의 문제를 야기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자신의 삶을 긍정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들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기란 어렵다.
그러나 그들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삶을 긍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그들은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고 그들이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을 내 안에서 찾아보아야 한다.
어릴 때 상처를 입는 것은 누구나 피할 수 없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삶을 부정적으로 바라보고, 자존감이 낮아지며, 그 결과로 더욱 불공정한 인생을 겪게 된다.
하지만 그들은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 긍정적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자신의 삶을 긍정적으로 바라보기 위해서는, 과거의 상처에서 벗어나야 하며,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리고 불공정한 상황에서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 나아가야 한다.
노예도덕으로 산다는 것은 이는 자신의 인생을 스스로 설계하고 이루어 가는 것이 아닌, 타인의 요구나 사회적 압박에 따라 행동하는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자신의 인생을 부정적으로 바라보이게 하며, 우울감이나 불안감을 유발한다.
이로 인해 자신의 인생을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이 어려워진다.
어린 시절에 상처를 입은 경우, 그들의 인생은 부정적으로 시작되었기 때문에 자신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게 되는 경향이 있다.
자라는 아이가 상처를 입는다는 것은 꼭 외상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유아기에 엄마로부터 따뜻한 품을 받지 못하였거나, 공감받지 못하거나, 마땅히 받아야 할 돌봄을 받지 못한 것도 아기에게는 상처가 된다.
상처를 입은 사람들은 그들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 한, 부정적인 관계를 형성하며 원한감정을 마음에 품게 된다.
원한감정을 품은 사람은 자신의 삶을 긍정하기란 쉽지 않다.
성숙해지는 것은 노예도덕을 주인도덕으로 바꾸어 자기 자신을 긍정하고 타인을 긍정하는 것이다.
노예도덕으로 사는 사람은 자기를 긍정하기 위해 타인을 부정해야 된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이 놈은 이래서 나쁜 놈이고, 저 놈은 저래서 죽일 놈이야. 그 결과 나는 선하다'
그러므로 노예도덕을 따르는 사람은 자신을 직접적으로 긍정하지 못하고, 다른 사람들을 부정한 결과를 가지고 자기를 긍정한다.
이렇게 되면 노예도덕을 따르는 사람은 늘 주변 사람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아이가 자기 존재로 살지 못하고 엄마가 시키는 대로 해내면서 시험 치는 일과 남과 경쟁하는 일에 능숙해진다면 늘 주변 사람을 의식하면서 자신의 삶을 살지 못하는 노예도덕을 따르게 된다.
부모가 긍정적인 시각에서 자녀를 바라보면, 자녀가 공부를 잘 하든 못하든 상관하지 않는다.
긍정적인 부모는 공부만이 자녀를 양육하는 유일한 기준이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자녀가 공부를 제외한 다른 면에서도, 성품이나 근면 성실함, 친절함 등 여러 가지 긍정적인 면을 가지고 있다면, 노예도덕을 따르는 부모는 자녀의 다른 면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공부 못하는 것에만 스트레스를 받을 수 있다.
그런 부모는 자녀 자체에 대한 사랑보다는 남의 시선을 더 의식한 것이다,
상황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주인도덕을 갖춘 사람은 긍정적 시각으로 상황을 지켜볼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주인이 과연 성숙한 사람이냐 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일 수 있다.
북한의 김정은은 국가적 상황이 극심하게 부정적임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으로 상황을 이끌어 가는 모양으로 주인도덕을 행사한다.
백성들을 사지로 몰아넣으면서 혼자 유일한 존엄으로 자신의 삶을 긍정한다.
이것은 노예도덕보다 저급한 주인도덕이다.
주인도덕은 사슴을 목표로 살금살금 다가가는 사자처럼 사유가 필요 없다
그러나 노예도덕을 따르는 사람은 사유를 할 수 있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자녀를 부모의 욕망의 대리인으로 삼는 부모는 주인도덕을 가지고 사유 없이 자녀를 노예도덕으로 몰아간다.
노예도덕으로 사는 자녀는 엄마의 욕망을 따라 살아가기 때문에 늘 엄마를 의식하게 되고, 그 결과 주변사람의 눈치를 보는 사람이 된다.
노예도덕으로 사는 자녀는 남과 경쟁하는 데에 능하지만, 사실상 경쟁력이 없다.
그(녀)는 시험 잘 치는 능력을 갖출 뿐, 기초 실력이 없다.
자녀의 존재를 망가뜨려 놓아 시험 치는 데에만 유능해진 자녀는 자기 존재가 부정당하는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엄마는 이런 부정적 상황에 대해서도 긍정할 뿐 아무런 사유가 없다.
이런 사람이 고귀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도 모른다.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삶의 가장 좋은 조건은 좋은 부모를 만나는 것이 최우선이다. 그런데 이렇게 품위 있는 삶에 익숙해 있는 사람은 선과 악을 따지면서 도덕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고통에 대해서는 알 수가 없다. 공감할 수 있는 길이 없다. 서로 다른 길로 살아왔기 때문이다. 이런 사람은 결코 상담자가 될 수 없을 것이다. 이런 사람은 파이팅이 없고 그저 좋은 것을 물려받아서 좋게 긍정적으로 살아갈 뿐이다. 이런 삶이 다른 사람과 구별되고 품위 있게 살아갈 수 있을지언정, 성숙할 기회는 없는 것이다. 그저 삶을 긍정하면서 살아갈 뿐이다.
사람은 누구나 영웅신화를 가지고 있다.
여성은 자신의 영웅신화를 자신의 인생에서 실현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삶을 사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여성의 영웅신화를 스스로 실현하기는 매우 어렵다.
대부분 여성은 자신의 영웅신화를 실현해 줄 남편을 찾아 결혼한다.
연애할 때는 남성은 여성에게 영웅신화의 꿈을 실현케 해 주겠노라고 약속한다.
'연애할 때는 63 빌딩도 사주겠노라'라고 남성이 허풍을 떨어도 그런 말을 듣는 여성은 남성의 이런 말이 거짓말인 줄 알면서 진짜로 들린다.
막상 결혼을 하면, 연애 때 불별할 것 같았던 사랑이 모양의 변형을 겪기 마련이다.
아내는 남편이 정하는 서열에 적응해야 하고, 연애 때의 감성은 아내의 추억 속으로 사라진다.
연애 때의 감성은 결혼 후 길어야 1년 7개월 내외로 사라지게 된다.
카이스트 대의 뇌과학자 김대수 교수는 '만일 연애의 감성이 기한 없이 계속 연장해 가면, 뇌 에너지의 고갈로 죽는다'라고 경고한다.
남성은 그동안 여자의 환심을 사기 위해 아내 앞에서 굴종적으로 살아온 삶을 후회하는 경우가 많다.
결혼한 남성은 집안에 아내를 '다 잡아 놓은 물고기'로 알고 자신은 외부에서 마음껏 자유롭게 행동할 수 있다.
남성은 연애 시절부터 로맨틱 러브가 끝나는 시점까지 헌신적으로 아내를 사랑했기 때문에 여자는 그 사랑에 대한 추억으로 남편의 사라진 헌신의 공간을 메운다.
그때부터 아내는 노예도덕으로 살아간다.
아내에게 남편은 더 이상 영웅신화를 실현시켜 줄 대상이 되지 못하고 만다.
아내의 시선은 남편의 눈치를 보는 시선이 되고, 남편의 시선은 오직 외부세계를 향할 뿐이다.
이제 아내는 남편에게 투사했던 영웅신화를 회수하여 자녀에게 투사한다.
아내는 남편으로부터는 결정적인 배신을 당했지만, 자녀에게 영웅신화를 투사한 결과 투자한 만큼 그 이상을 효과와 결과를 되돌려 받게 된다.
그 결과 아내는 남편과의 관계에서는 노예도덕을 따르고, 나의 영웅신화를 실현해 줄 자녀에게는 주인도덕을 행사한다.
자녀는 엄마에 대해 노예도덕을 따르며, 자신의 존재를 잃어버림에 대한 억울함 즉 원한 감정을 쌓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