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와 여자는 역가가 다르다

남자에 대한 여자의 9배 사랑

역가란?


'역가'는 이해하기 쉬운 단어가 아니다.

글자 뜻은 힘 '력'에 값 '가'이다.

영어로는 potency이다.

잠재력, 수용할 수 있는 힘이라는 뜻이다.

의학에서 high potency라 하면 '고효능'이라는 뜻이 되지만, 일반적 의미로는 '강하고 오래 견딘 활동을 가진 높은 힘', 또는 '안정되어 있는 성과'를 말한다.

일상을 빌어 표현하자면, 페인트가 칠해져 있는 벽에 다른 페인트를 바르고자 할 때, 사포를 문질러 표면을 거칠게 만든 후 페인트를 칠한다.

그것은 바로 벽 표면의 '역가를 높이기' 위해서이다.

그래야 페인트가 벽에 흡수되어 칠하고자 하는 목적이 달성된다.

매끄러운 페인트 위에 다시 페인트를 칠하면 페인트는 그냥 흘러내린다.

벽의 표면이 '역가가 낮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역가가 낮은 곳에서는 변화를 줄 수 없지만, 역가가 높은 곳은 원하는 만큼 얼마든지 변화를 줄 수 있다.

사람 중에는 30세 노인이 있는가 하면, 70세 청년이 있다.

30세 노인은 고정관념과 각종 이데올로기, 또는 고유한 습성에 젖어 있어 어떤 변화도 추구하지 않는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 아니라, 환경의 변화나 시대 변화에도 꿈쩍하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역가가 매우 낮은 사람이다.

70세 청년은 아직도 뭔가를 배우고자 의욕이 넘치는 사람이며, 환경의 변화나 시대 변화에 매우 민감하게 대처하는 사람이다.

그는 역가가 매우 높은 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 살다가 중년이 되어 미국이나 캐나다로 이민 가는 사람이 있다. 한국사회에 살 때는 잘 모르다가 이민을 가면 부부 관계에 예기치 못한 불상사가 발생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는 한국에서나 이민사회에서나 삶의 태도는 거의 대동소이하다.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끼리 모여 골프 치고, 노래방에서 모여 노래 부르고, 술 마시는 등 한국에서 하는 행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남자는 대체로 역가가 낮기 때문에 변화를 싫어한다.

그러나 여자는 다르다.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여성의 삶에 대한 존중과 소중하게 다뤄지는 여성인권의 이슈가 피부에 와닿는다.

꼭 여성 관련 이슈뿐 아니라, 문화차이에서 오는 삶의 태도 변화, 관계 기억의 변화, 다른 문화권에서 느껴지는 시대적 변화 등에 대해 여자는 피부를 통해 절실하게 느낀다.

그러면서 '지금까지 내가 너무 잘 못 살아왔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한다.

여자는 높은 역가를 통해 그런 깨달음을 얻게 되면서 그동안 내가 얼마나 바보처럼 살았는지, 왜 그렇게 참고 살아왔는지 자각한다.

어느 시점이 되면 마음 깊은 곳에서 그동안 억압해 온 억울함이 올라오면서 이혼을 꿈꾸게 된다.

이런 식으로 이혼을 당하는 남편은 이혼 후에도 자신이 왜 이혼을 당해야 하는지도 모른 채 일방적으로 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이민 사회에서 많은 남자들이 이런 식으로 이혼을 당해도, 남자들은 자각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이민 사회에 새로운 멤버가 들어와도 어떤 충고도 해 줄 수 없게 된다.

역가가 낮은 남자들끼리 모여 봤자, 그들은 유행처럼 번지는 이혼 제기를 막을 수 있는 어떤 대안도 마련하지 못한다.

최근 페미니즘의 돌풍, 젠더이슈 등으로 남녀평등 문제는 매우 중요한 주제가 되었다.

어느 문화학자는 요즘 하이힐을 신는 여자가 거의 없는 것을 보면 여자의 지위가 많이 향상되었다는 점을 보여준다고 말하였다.

여자 앞에서 기세등등하던 남자의 자세가 많이 낮아졌고, 남자 앞에서 여자들의 꾸준한 약진이 거의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가 되었다.

남자와 여자 사이에 어떤 문제가 발생하면, 오히려 남자가 여자에 비해 사회적 약자가 되는 경우가 많다.


여자는 남자보다 역가가 높다


오랜 세월 동안 가부장 사회는 여자를 무시해 왔고, 여자는 스스로 비하한다.

그래서 이외수가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는 책을 썼지만, 이외수도 여자를 잘 모르는 것 같다.

페미니즘 시대가 되니까, 여자는 남자와의 평등을 주장하면서 겨우 남자와 같아지는 것에 만족하는 경우가 있다.

평등이라는 저울 위에서 여자가 남자와 같아지려는 노력 자체가 우스운 일이다.

여자는 남자보다 9배의 사랑능력을 가졌다.

그래서 여자가 남자와 같아지려고 노력하려다가 오히려 9배 사랑능력에 크게 손해를 본다.

최근 양성평등과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성을 젠더관점으로 접근하면서, 여성도 이제 ‘성적 자유를 누리자’고 주창한다.

소개팅하는 첫 만남에서 서로 마음에 든다는 표현이 어렵지 않게 모텔행으로 합의하는 것으로 모아지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남녀 간 그런 합의가 이루어지는 데에는 꼭 첫 만남이 아니라 하더라도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분명히 알아야 하는 것은 그런 만남이 결혼까지 관계를 이어가기란 매우 힘들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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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남녀의 모텔 출입이 보편화되면서 자녀의 결혼을 위해 부모들이 속궁합을 보러 사주를 보러 가는 일이 많이 줄어들었다.

최근에는 여성들이 속궁합 파악을 위해 남자와 잠자리를 먼저 해 보고 계속적인 만남을 추구하겠다는 새로운 경향이 생겨나고 있다고 한다.

이런 경향은 여성이 양성평등을 몸소 실천하며 남자에 대한 정신승리를 얻기 위한 것일 수는 있겠다.

그런데 이런 여성들이 간과하는 부분이 있다.

이런 정신승리는 남자와 여자가 평등하다는 젠더의 관점에서만 접근하느라 남녀 간 성적 본질의 차이를 간과하는 것이다.


여자가 속궁합을 알아본다는 것은 그 남자와의 잠자리에서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는가를 확인하는 것이다.

이런 시도가 간과하기 쉬운 것은 남자와 여자는 본성적으로 역가가 다르다는 점이다.

남자는 어떤 여자와 잠을 자도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

그것은 남자는 성관계 문제에서 역가가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자는 오르가슴을 느끼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복합적인 것이 필요하다.

여자는 언제, 누구와, 어디서, 왜, 그리고 어떤 분위기에서 잠자리를 하는가 등등 종합적인 맥락에서 자신의 심리적 초점과 일치될 때에 오르가슴을 느낄 수 있다.

그만큼 여자는 오르가슴에 대한 역가가 높다.


여자만 손해인 남녀평등


여기서 여자가 유의해야 하는 점이 있다.

성평등을 주장하면서 남자와 똑같은 성적 태도를 견지하면, 남녀 간 역가의 차이로 여자만 손해를 보게 된다. 여자는 ‘자고 나서 만남을 추구’(유튜브, <백설마녀>의 용어다)하는 태도를 유지하는 한, 만족스러운 파트너 찾기가 매우 어렵다.

설령 단번의 잠자리에서 속궁합이 잘 맞는 탁월한 남자를 만날 수는 있겠지만, 그런 남자는 그 여자를 하룻밤의 쾌락을 위한 대상 정도로 여길 수 있다.

역가가 높은 여자의 하룻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남자는 분명 탁월한 남자일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탁월한 남자는 이런 여자를 연애 대상으로는 여길 수 있어도 결혼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속궁합을 찾는 여자가 단번의 잠자리에서 어쩌다 자신의 높은 역가에 맞는 최고의 남자를 만났다 치자.

이런 남자는 속궁합이 맞는 짝을 찾기 위해 이 남자 저 남자 사이에서 잠자리를 쉽게 옮기는 여자를 위해 헌신하지 않는다.

이런 남자는 여러 여자 중 최고의 여자를 선택하여 결혼할 생각이다.

이런 남자는 연애나 일시적인 잠자리에서는 역가가 낮을지 몰라도 결혼 대상을 고를 때는 조신한 여자를 찾기 때문에 매우 높은 역가를 가진다.

그는 내게 몸을 쉽게 허락하는 여자는 연애 대상이 될 수는 있어도 결코 결혼 대상이 될 수는 없다고 생각하는 남자이다.

여기서 성평등 사고로 성관계를 직접 해 본 후 결혼 대상을 결정하겠다는 여성의 생각은 환상에 불과함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성적으로 차별받는 여성을 위해 만들어진 성평등사상을 받아들여 그대로 실천한 결과, 피해자는 오직 여성 자신이 될 뿐이다.

여성이 알아야 할 것은 여성은 성적으로 절대 남자와 평등하지 않다는 점이다.

여자가 역가가 높다는 말은 여자는 남자보다 9배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여자가 남자보다 탁월한 9배 능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남자보다 열등하다고 여겨 왔기 때문에 그 열등감을 극복하려고, 한 술에 배불러 보이는 성적 평등을 날름 받아먹다가 크게 손해를 보는 것이다.


성적으로 남녀평등을 맛보려고 그런 쓸모없는 노력을 반복하다가 여자는 어느새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로 전락한다.

젠더 관점에서 받은 성교육에 충실하느라 남녀 본질의 차이를 무시한 결과, 남자보다 9배 탁월한 사랑능력을 가진 여자가 자기 능력을 알지 못한 채 빛 좋은 개살구로 전락한다.

9배 능력을 가진 여자가 겨우 남자와 동등해 지려다가 성적으로 문란한 여자로 남자들 사이에서 구설수에 오르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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