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차적 모성 몰두와 심혼의 작용
(표지 사진 출처 : pexel)
일상생활 중에 우리가 뭔가에 몰입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우리 삶에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몰입은 우리가 현재의 경험에 완전히 몰두하고, 마음과 몸이 일치하는 상태를 의미한다.
몰입은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이점을 제공하며,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데 도움을 줍니다.
내가 챗 지피티에게 <몰입> 전문가인 황농문 교수가 강조하는 '몰입' 개념의 핵심이 뭔지를 물어보았다.
그랬더니 다음과 같이 답변했다.
황농문 교수님은 몰입을 "완전히 파묻히고 흡수되는 상태"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그는 몰입의 핵심이 주어진 활동에 절대적인 집중과 열중을 가지는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현재의 경험에 완전히 몰두하고, 외부의 간섭과 분산을 최소화하여 내면적인 흐름 상태(flow state)에 진입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황 교수님은 몰입을 통해 깊은 학습과 창의성이 발휘되며, 개인의 성장과 발전이 이루어진다고 주장합니다. 또한 몰입은 삶의 다양한 영역에서 적용될 수 있으며, 예술, 스포츠, 학습, 직장 업무 등 다양한 활동에 활용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황 교수님은 몰입을 이루기 위해서는 목표 설정, 도전, 피드백, 몰입 환경 조성 등의 요소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몰입을 경험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목표를 설정하고, 도전적인 활동에 도전하며, 지속적인 피드백을 받으며 개선해 나가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한, 외부 환경과 내부 상태를 최적화하여 몰입을 유도하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황농문 교수님은 몰입의 핵심적인 개념을 통해 개인의 성장과 창의성을 촉진하는 중요한 요소를 제시하고 있으며, 몰입을 경험하는 방법과 몰입을 유도하기 위한 요소들을 강조하고 계십니다.
황교수님이 강조하시는 몰입을 개념을 보니, 아마도 몰입의 건강한 측면을 강조하는 것 같다.
아마도 황교수님은 <몰입>의 대가로서 어려운 문제, 복잡한 기획적 과제를 당면하면 몰입함으로써 과제를 풀어가는 데에 명인인 것 같다.
몰입이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매우 특별한 경우가 있다.
그것은 산모가 아기를 낳을 전, 그리고 낳은 후 3~4개월 기간 동안 자신도 모르게 아기에게 몰입하는 경우이다.
이것을 영국의 아동 정신분석학자 도널드인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일차적 모성몰두(primary maternal preoccupation)>이라 칭한다.
이 상태에 대해 위니캇은 '어머니가 아기와의 상호작용에서 자신을 완전히 잃고 아기의 요구와 감정에 완전히 흡수되는 상태'라고 정의하였다.
이것은 어머니가 아기와의 상호작용에서 완전한 유대를 형성하고, 아기의 신체적인, 정서적인, 심리적인 요구를 채우며, 그들의 관계에서 필요한 보호와 안전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위니캇은 초차원적인 모성의 몰입이 아기의 발달과 성장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하였다.
이 몰입은 아기가 안전하고 확고한 기반을 형성하며, 자아의 발달과 자아 정체성의 형성에 필수적인 요소라고 본다.
일상적 차원 너머에 있는 '모성의 몰입'은 아기의 기본 신체적인 요구를 충족시키고, 안정감을 제공하여 아기가 안전하게 자아를 개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한다.
이러한 몰입은 아기와 어머니 사이의 상호작용에서 발생하며, 어머니의 감정적인 조절과 인식, 상호작용의 유연성과 예지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위니캇은 초차원적인 모성의 몰입을 통해 어머니가 아기에게 필요한 의미 있는 상호작용과 안정성을 제공하면서, 아기의 성장과 발달을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였다.
갓난아기는 온종일 거의 잠만 잔다. 그러나 엄마는 아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민감하게 감지한다. 아기가 울면 그 울음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기저귀를 갈아달라고 우는 건지 젖을 달라고 우는 건지, 엄마는 딱 알아챈다. 깊은 밤 아빠는 세상 돌아가는 줄 모르고 자고 있어도 아기가 조금만 움직여도 엄마는 자동으로 깬다. 엄마와 아기는 정서적으로 하나의 몸처럼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엄마와 아기의 이러한 정서적 연결은 아기가 태어나기 전부터 시작된다. 아기를 품은 엄마는 아기를 낳기 약 2~3주 전부터 비현실적인 상태로 바뀌기 시작한다. 정서적으로 건강한 엄마일수록 비현실성의 정도는 빠르게 진행한다. 예전에 없던 민감성이 두드러져 성격이 날카로워진다. 직장을 다니는 엄마라면, 현실에서 유능하던 직무도 빨리 놓아 버리고 싶어 진다. 사고력이 급격하게 퇴보하면서 현실 판단능력이 떨어지고 감정적 반응이 많아진다. 엄마의 관심 초점이 곧 태어날 아기를 향해 점점 ‘미친 상태’처럼 진입해 들어가는 것이다. 아기가 세상에 나올 때쯤 되면 산모는 외부상황을 차단하고 아기에게만 집중할 준비를 한다.
아기가 태어났다. 아기는 엄마의 존재를 흡수하는 블랙홀과도 같고, 엄마는 그 블랙홀을 3주 전부터 이미 감지해 왔다. 두 사람은 유아 안에서 존재가 겹치면서 ‘융합’ 된다. 이 ‘융합’ 상태에서는 아기가 아무 말을 못 해도 이미 엄마는 알고 있다. 아기는 엄마만이 알아들을 수 있는 수많은 신호를 보내면서 이런저런 요구를 한다. 울음, 미소, 시무룩한 표정, 생생한 몸짓 등으로 엄마에게 지시한다. 당분간 엄마의 주체는 아기에게 반납한다. 엄마는 아기의 생명이 요구하는 신호에 맞춰 민감하게 반응한다. 이런 상태를 도널드 위니캇(Donald Winnicott)은 ‘일차적 모성 몰두’라 불렀다. (초록색 문장들 출처: [불안한 부모를 위한 심리수업], 졸저)
남성의 내면에는 이면 인격으로 여성성(아니마)이 있고, 여성의 내면에는 이면 인격으로 남성성(아니무스)이 있다.
아니마 아니무스가 각자에게 여러 가지 기능이나 역할을 하게 되지만, 오늘 몰입의 주제와 연결하여 이야기하자면, 아니마와 아니무스는 어떤 일을 하면서 '신바람 나게' 만들어 그 일을 하는 것을 흥겨워하거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되는 상황을 발생시킨다.
(그림출처: pixabay)
예를 들어, S라는 미술가는 미술 창작 작업을 통해 자신의 내면세계를 표현하고, 탐구하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킬 수 있다.
S의 창작 작업은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었다.
작업 중에 마음에 들지 않아 도중에 찢어 버리기도 하고 포기하거나 작업에 진전이 없어 멈추는 일이 다반사다.
어느 날, S는 창작 작업 중 어느 순간 창조적인 흐름에 자신의 몸과 마음이 빠져든다.
그때 자신은 시간이 흘러가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작업에 몰두하게 되며, 자신의 능력의 한계와 시간의 제약을 잊을 정도로 자기 작업의 매력에 푹 빠져드는 순간을 경험하게 된다.
예술가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작품을 창작하는 중에 작업에 대한 열정과 자아를 초월한 창조적인 상태를 경험하게 된다.
그 순간 그는 자신을 작품에 녹여내는 과정에서 심혼(아니마 또는 아니무스)과의 접촉을 통해 내면세계의 풍부한 측면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끄집어내어 탐구하고 표현하게 된다.
이는 자아와 비인식적인 부분 간의 조화를 이루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시간이 무의미하게 흐르는 것처럼 느껴질 수 있다.
예술가는 그 자체로 작업에 몰두하여 시간의 흐름과 외부의 세계를 잊고, 작품을 통해 자아를 발견하고 성장할 수 있다.
이는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의 영향 아래에서 현실과 판타지가 융합되는 경험이 될 것이다.
이러한 일은 반드시 예술가가 예술 창작을 하는 동안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농부들이 함께 모여 작물을 심거나 추수할 때, 흥을 북돋우기 위해 서로 노래를 부르거나 장단을 주고받으면서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이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해치워버린 느낌을 받을 때가 있다.
이러한 경우 서로 흥을 주고받으며 리듬을 타는 동안, 심혼(아니마, 아니무스)이 작용하여 모심기나 추수일에 몰입하게 된 것이다.
한 작가가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의 작용으로 글 쓰는 일에 빠져들어 시간을 잊고 매료되어 있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 작가는 소설 속 주인공과 깊은 연결을 형성하고, 소설 창작 작업에 몰두하게 된다.
그의 마음은 소설 속 인물들과의 대화, 사건들의 전개, 감정의 흐름에 몰두하여 작품을 진행시키는 동안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다.
쓰고자 하는 이야기에 대한 열정과 집중력으로 마음이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이 작가는 작업에 몰두하여 여러 시간을 보내며 소설을 완성하게 된다.
작업 중에는 외부의 시간 경과나 주변의 환경 변화에 대해 거의 관심을 두지 않고 작업에 몰두한다.
이러한 현상은 작가의 아니마 또는 아니무스의 영향으로 이 작가의 내면세계와 창조적인 에너지가 상호작용하여 나타난 결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