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접촉 상실과 자아 왜곡

자아 왜곡은 현실 왜곡


탐구자 : 지금까지 어머니의  현존, 특히 어머니 따뜻한 품의 제공, 어머니와 유아의 피부접촉 등은 건강한 자아형성이라는 주제와 직결되는 것 같습니다. 어머니의 따뜻한 품이 제대로 제공되지 못하면 건강한 자아 형성이 불가능해지는 것이겠죠? 그때 자아 왜곡이 일어나겠군요.  


분석가 : 맞습니다. ‘자아 왜곡’은 먼저 아기를 양육하는 어머니의 자아가 먼저 왜곡되어 있기 때문에 아기에게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아이에게 여러 가지 다른 모양의 자아 왜곡을 예상할 수 있습니다. 자아 자체가 왜곡되어 있는 경우, 잘 지내다가 어느 특정상황에서 자아가 왜곡되는 경우, 또는 상대방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해서 오해를 발생시키는 경우, 아니면 정상적으로 살아가는 것 같지만 상대방의 좋은 부분을 보지 못하고 나쁜 부분만 보게 되는 경우 등 여러 모양으로 나타납니다. 



탐구자 : 그렇다면 결국 대상을 대상 그 자체로 보지 못하고, 상황을 객관적으로 보지 못하는 결과가 되는 것이군요. 노란 안경을 쓰면 세상이 모두 노랗게 보이지만, 자신이 노란 안경을 썼다는 사실 자체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겠죠.  자아 왜곡은 꼭 대상이나 관계 만의 문제는 아니겠죠? 자아 자체가 왜곡되는 경우도 있을 것 같은 데요.   


분석가 : 어머니의 삶이 왜곡되어 있다면 그 왜곡을 그대로 유아에게 전이시키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그런 왜곡의 상태가 아이 존재의 출발점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탐구자 : 참으로 무서운 이야기로군요. 그렇다면, 만일 어머니가 우울증에 걸려 있는 상태에서 아기를 양육해야 한다면, 아기는 어머니의 우울증을 그대로 받아서 자기 존재를 우울증으로 시작하게 된다는 이야기가 되는 것이잖아요?   

분석가 : 그건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아기가 만날 수 있는 최악의 어머니는 우울증에 걸린 어머니입니다.

아기는 어머니에게서 생생함을 맛볼 수 있어야 하는데 인생 출발지점에서 죽음부터 보는 것과도 같습니다.  

하지만 우울증 어머니를 만났다고 해서 100% 다 그렇다는 것이 아닙니다. 유아가 가지고 있는 선천적인 기질을 감안해야 됩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그런 상황이라고 해서 그런 어머니에게 양육받은 아기도 누구나 꼭 그렇다고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유아는 아직 자아가 형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어머니와 하나로 융합되어 있는 상태가 될 수밖에 없어요. 그러니까 유아는 어머니의 정서적 증상에 대해 방어할 수 있는 기제를 가지고 있지 않은 상태입니다. 만일 여자가 결혼해 시댁에서 더불어 살고 있을 때, 시어머니의 시기심을 받게 된다면, 남편이 전혀 울타리를 쳐주지 못하면 여자는 그 시기심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본인도 시기심을 방어하지 못하면 함께 시기심을 발동하게 되겠죠. 만일 그런 상태에서 아기를 양육하고 있다면 그 시기심이 어디 가겠습니까? 아기는 시기심을 그대로 받아서 인생을 시기심으로 시작하게 됩니다.  


탐구자 : 그 아이의 인생은 끔찍한 이야기의 연속이 되겠군요. 이런 아이가 커서 힘 있는 사람이 되고 권력의 자리에 앉게 되면 그 끔찍함이 실화로 이어지겠군요.   


분석가 : 그럴 수 있죠. 그러나 반드시 그렇게 되는 것은 아닙니다. 살아가면서 자신의 인생을 개선할 여지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으니까요.  


탐구자 : 그럼, 어떤 특정한 상황에서 자아 왜곡이 일어난다면 어떤 경우일까요?  


분석가 : 미국의 어느 대학의 남자 기숙사에서 일어난 일이에요. 어떤 학생이 옆방의 친구를 절친이라 여기고 친구의 노트북을 장난으로 자기 방으로 가져와서 감추게 되었어요. 옆방의 그 친구는 바로 경찰에 신고하게 되었고 수사 상황이 심각해지는 것을 보고 이 친구는 자수를 하게 되었죠. 장난으로 그랬다고. 그런데 이 친구는 너무 화가 나서 장난으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이 친구는 그대로 절도죄를 선고받게 되면서 감옥으로 가게 되는 일이 발생하게 된 겁니다.      


탐구자 : 그 친구, 변덕을 부렸군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변덕은 일종의 ‘존재 연속성’의 문제죠.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경우에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끝까지 친구가 되어 주지 못한 것입니다. 그 친구의 변덕은 거슬러 올라가 보면 바로 어머니의 정서와 관련이 있을 수 있어요.       


탐구자 : 유아기 때 어머니로부터 존재 연속성 경험이 부족함으로 인해 일관성 있는 행동을 하지 못하고 변덕을 부리는 형태로 나타날 수 있다는 말씀을 하시는 거군요.   


분석가 : 상대방의 의도를 전혀 파악하지 못한 채 자신의 생각과 판단으로 상황을 주도해 버리는 경우도 있죠. 예전에는 여자를 놓고, 남자들 사이에 통했던 격언 같은 것이 있었어요.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나무 없다’라는. 그런데 요즘은 큰일 날 소리입니다. 요즘은 여자가 원치 않는 접근을 세 번 정도만 시도해도 신고가 들어가는 시대가 된 것이죠. 예전에는 남자가 여자에게 키스를 시도할 때 허락받고 하면 팔불출 취급을 당했죠. 그런데 요즘 그렇게 하지 않으면 고소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탐구자 : 그럼, 요즘 젊은이들이 하는 연애가 옳다는 것을 말씀하시는 건가요?  


분석가 : 사람에 따라서는 그게 옳을 수 있죠. 틀렸다고 볼 수 없죠. 일단 오해의 상황을 만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조심해야 할 일이죠. 그러나 유아기 때부터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깊은 사랑을 체험한 사람이라면, 분별력이나 행동이나 감정이나 모두 깊은 존재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오해할 일을 일으키지 않고 상대방의 존재에 대한 이해도 깊을 수밖에 없죠.  

‘자아 왜곡’이 일어나면 어떤 현상이 일어나는 것인가요? 

분석가 : '자아 왜곡'은 곧 '현실 왜곡'입니다. 자아가 현실을 현실답게 제대로 살아갈 수 없게 되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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