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도 여자를 모른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여성의 진정한 자아 사이에 괴리가 발생하여 여성성은 인류가 풀어야 할 난제 중 하나가 되어왔다.
우리 사회에서도 소설가 이외수는 [여자ㅗ 여자를 모른다]는 에세이를 썼다.
여자도 여자를 모르니, 남자는 더더욱 알 수 없는 것이 여성성이다.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은 어릴 때부터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여성성을 숨기도록 교육받는 경우가 많다.
여성은 어린 시절부터 여성의 자기 보호의 필요성을 지시하는 사회적 규범에 노출된다.
여자아이들은 종종 여성성이 취약성과 잠재적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미묘한 메시지를 받는다.
대중문화, 미디어, 심지어 교육 시스템까지 이러한 관념을 강화하여 여성들이 타고난 여성성을 억누르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한 사회적 압력으로 인해 많은 여성들이 남성 중심 사회에서 적응하고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더 남성적인 특성이나 행동을 취하도록 강요받는다.
가부장적 사회는 종종 여성성을 약함 및 취약성과 연관시킨다.
이러한 인식은 여성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치며, 여성은 남성 중심 시스템에 자신을 맞춰야 한다는 압박을 지속적으로 느끼게 된다.
여성들이 남성적 이상을 내면화하고 자신의 여성성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기대는 남성의 행동 기준에 따를 것을 요구하며 가부장적 사회에서는 여성성이 약점이라는 생각을 강화한다.
여성은 자신의 본성이자 자연스러운 여성성을 억압하고 남성적 특성에 더 가까운 행동과 태도를 채택해 간다.
이러한 문화적 조건화를 통해 여성은 자신도 모르게 진정한 여성의 본질과 거리를 두게 된다.
남성중심 사회에서 경쟁하기 위해 여성은 종종 남성적인 특성을 채택하여 타고난 여성성을 억압한다.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본성인 여성성을 인격의 전면에 내세우지 못하고 남성성을 자신의 여성성을 가리는 페르소나로 사용한다.
그 결과 여성은 진정한 자신과의 접촉을 잃어버리고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사회적 기대와 조화시키는 페르소나를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민주화되는 과정에서 여성의 존재감을 높이는 데 있어 페미니즘의 공로가 매우 크다.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여성의 권익이 높아지고, 여성들의 주장이 분명해졌다.
나의 개인적 견해로는 페미니즘의 역할은 딱 여기까지 이었어야 했다.
페미니즘은 여성이 남성화된 결과이자 남성과 경쟁하는 과정에 있다.
최근 페미니즘이 과도해 지는 것은 여성이 남성을 투쟁 대상으로 계급투쟁을 하는 것과 유사한 경향을 띠고 있다는 점이다.
페미니즘 문제의 핵심은 여성이 여성성으로 남성과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여성의 본성을 억압하고 내면에 있는 남성성을 가지고 남성들과 투쟁한다는 점이다.
그 결과 페미니즘은 여성에게 남성혐오를, 남성에게 여성혐오를 가지도록 몰아가고 말았다.
페미니즘이 꽃피는 곳마다 남성과 여성이 조화를 이루어야 할 커플 개념이 흔들리고 있다.
페미니즘을 지나치게 주장하는 여성을 사랑의 대상으로 여기다가는 그 여성에 의해 자신의 존재가 위태로워질지 모른다.
아름다운 여성도 페미니즘을 필요이상으로 숭배하면 갈수록 표독해지는 모습을 보여준다.
페미니즘에 흠뻑 젖은 여성일 수록 남성의 마음을 살 수 있는 여성적 아름다움보다 남성을 밀어내는 표독함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
이런 여성에게 가까이 다가갈 남성은 없다.
페미니즘 문화가 일찍 싹튼 뉴질랜드의 경우, 어린 남성이 성인이 되면 괴물이 된 여성들에게서 도망가는 것을 최상의 선택으로 여긴다.
어머니 대에서는 페미니즘의 주장으로 여성권익이 크게 향상되었지만, 만약 이런 주장으로 인해 남자들이 다 도망가 버린다면 남녀평등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문제는 다음 세대인 딸들에게 이어진다.
남성이 없는 사회에서 그들은 페미니즘 타도를 외치고 있다고 한다.
뉴질랜드의 딸들은 남자를 몰아내어 여성들만이 존재하게 만드는 페미니즘보다는 남자와 여자가 함께 있어 더불어 조화를 이루는 사회를 원한다고 한다.
현재 뉴질랜드는 성인 남성들이 공동화되어 젊은 여성들은 국제 창녀로 전락하고 말았다고 한다.
딸 세대의 여성들은 성욕을 해결해야 하는 점과 자녀를 낳고자 하는 여성의 욕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가는 외국 관광객들을 유혹하여 그런 문제들을 해결해 간다고 한다.
뉴질랜드는 남성성을 페르소나로 사용한 여성들의 천국이 얼마나 끔찍한 지옥인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나라가 되었다.
여성성을 잃어버린 상태에서의 사회는 어떻게 될까?
여성들이 자연스러운 여성성을 억압하고 남성성과 경쟁하며 자신을 변형시키는 과정은 결국 우리 사회가 추구하는 조화를 무너뜨릴 수 있다.
페미니즘은 여성의 권리와 역할을 강화하는 중요한 운동이지만, 과도한 남성화와 남성과 경쟁해야 한다는 강박적 개념으로 인해 남녀 간의 교류와 조화가 손실되는 상황을 만들어 낼 수 있다.
그러한 사회적 손실은 뉴질랜드처럼 미래에까지 미쳐 언젠가 국가적 위기까지 도래할 수 있다.
우리는 여성성과 남성성을 균형 있게 받아들이고 서로 존중하며 협력하는 사회를 추구해야 한다.
여성성을 잃어버리지 않고 자신의 진정한 정체성을 찾아가며, 남성과의 조화를 이루는 것이 중요하다.
사회적으로 정해진 역할이나 행동의 틀에 갇히지 않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문화를 형성하는 것이 우리의 과제이다.
여성의 본성인 여성성은 약점이 아니라, 남성의 취약한 점을 보완해 줄 뿐 아니라 남성성과 조화를 이루는 데 반드시 필요한 요소이다.
여성은 그 자체로 외적 아름다움과 내적 숭고미를 가지고 있으며, 여성성 자체가 진리이다.
그렇기 때문에 여성은 남성에 의해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남성이 여성을 존중하고, 여성성에 대한 존경과 경외심을 가질 때 여성은 남성을 경쟁대상으로 삼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외수의 [여자도 여자를 모른다]를 다음과 같이 봐야 한다.
여성은 절대 스스로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없다.
여성이 '내가 여자라는 것을 모른다'는 말은, '나는 누구인가?'를 모른다는 말이다.
여성이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남성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남성과 여성이 함께 이루는 미래를 위해, 우리는 자신의 본질을 찾고 서로를 이해하며 공존한 길을 선택해야 한다.
여성성은 오랫동안 인류에게 봉인된 수수께끼 중 하나이다.
누군가가 알지 못하도록 잠금장치를 한 봉인이 아니라, 각자 마음속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봉인한 수수께끼다.
안타까운 것은, 대부분 여성들은 그 봉인을 풀어낼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