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의 위험(5): 여성이 잃어버린 여성성(3)

아버지의 딸

두 가지 유형의 딸


부모로부터 다른 자질을 물려받은 두 유형의 딸이 있다.


첫째, 어머니의 자질을 물려받아 모성 본능을 발휘하는 것을 삶의 모토로 삼는 딸로서, 그녀는 <어머니의 딸>이라 불린다.

둘째, 어머니의 자질을 물려받는 것을 거절하며 아버지와 더 밀접하게 동일시하여 남성적인 특성을 강하게 발휘하는 딸로서, 그녀는 <아버지의 딸>이라 불린다.

두 유형은 모두 고유한 강점을 가지고 있지만, 인생에서 직면하는 도전과 경험은 서로 완전히 다르다.


<아버지의 딸>의 부성적 전이


프랑스의 아동정신분석가인 프랑수아즈 돌토(Francoise Dolto)의 글을 보면, 아버지의 딸이 되는 최초의 계기를 볼 수 있다.


돌토에 의하면, 어머니의 자궁 속에 있는 딸은 다음과 같은 생각을 한다는 것이다.


"내가 잉태되는 순간, 어머니는 오르가슴을 느꼈는가 아니면 안 느꼈는가?"


만일 어머니가 오르가슴을 안 느끼고 나를 임신하였다면, 그 딸은 아버지를 엿보기 시작한다고 한다.

이런 딸은 대개 어머니의 딸이 아니라, 아버지의 딸이 된다고 돌토는 지적한다.

이 무슨 해괴망측한 말인가?

태중의 딸은 아버지와 어머니 사이 존재의 틈을 노린다는 것이다.

딸은 그 틈 사이에 들어가서 아버지를 내 편으로 만든다는 것이다.


이런 딸을 둔 아버지는 대개 <딸 바보>로 불린다.


대부분 딸은 <어머니의 딸>이다.

그런데 <아버지의 딸>은 어머니의 딸과는 자라는 과정이 확연하게 다르다고 한다.

젖을 먹고 나면, 어머니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유독 아버지를 따르고 좋아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 딸에 대한 사랑이 어머니보다는 아버지가 훨씬 우세하기도 하다.


이런 딸은 어머니의 모성적 역할을 따르기보다는 아버지의 부성적 역할을 예의주시하면서, 아버지의 치밀한 사회적 기술들을 어릴 때부터 배운다.

커서는 남자들이 살아가는 방식, 아버지들이 만들어 낸 사회적 규칙, 규범, 세상을 통찰하는 방법 등을 터득해 간다.


경쟁에서 능한 <아버지의 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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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딸>은 경쟁에서 능하다.

특히 남성을 경쟁 대상으로 할 때 능력이 배가된다.

<아버지의 딸>은 아들을 바라는 아버지였지만 딸로 태어났을 경우에 해당되는 확률이 높다.

그때 딸은 남근선망을 한다.

<아버지의 딸>은 자신의 남근(클리토리스)을 가지고도 남근을 가진 아들보다 더 잘할 수 있다는 것을 보이기 위해 어릴 때부터 탁월한 능력을 끌어올린다.

그래서 남성들과의 경쟁에서 결코 지는 법이 없다.

그녀에게 주변의 여자들은 처음부터 경쟁 상대가 되지 않는다.

그녀는 일찍부터 아버지의 부성적 전이를 받아 온 터라 남성들이 살아가는 사회에 필요한 규칙과 규범, 사회성에 매우 능숙하다.


우리 사회의 <아버지의 딸>들


‘아버지의 딸’들의 약진으로 사회가 많이 변하는 중에 남성은 여성과의 경쟁에서 맥을 못 추는 현상들이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다.

공무원 채용고시, 교육대학입시, 전문대학원입시, 대기업시험, 각종 고시 등에서 여성의 진출이 남성의 진출을 압도한다.

전국 교육대학의 경우, 2020년 남자가 35%를 기록하면서 전년도 33.9% 대비 1.1%가 높아졌다.

이 기록이 1990년 이후 최고 높은 기록이라고 한다.

이러한 현상은 남녀 모두가 선호하는 전문분야일수록 더욱 두드러진다. ‘아버지의 딸’의 등장으로 남성의 경쟁력이 확연히 떨어졌다.

‘아버지의 딸’ 중에는 어릴 때부터 부모님의 부부관계를 봐 오면서 결혼에 대한 환상이 깨져 여성적인 삶을 선택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런 여성은 남성을 오직 경쟁대상으로 볼 뿐 사랑하는 대상 또는 결혼대상으로 보지 않는다.

그렇다고 모든 ‘아버지의 딸’이 결혼을 거부하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의 딸’이어도 부모님의 관계가 그리 나쁘지 않았다면 굳이 결혼을 거부할 필요까지는 없다. 이런 여성은 결혼한 남편까지도 경쟁상대로 볼 수 있다. ([불안한 부모를 위한 심리수업], 졸저])


‘아버지 딸’은 어릴 때부터 남달리 똑똑하다.

특히 남자들에 대한 경쟁력이 남다르다.

그녀는 남자들에게는 절대로 지지 않는다는 신념으로 무장되어 있다.

그녀가 발휘하는 모든 능력은 탁월한 경쟁력을 가진다.

그녀가 결혼하면 최소한 맞벌이를 하게 되고, 능력이 남달리 탁월하여 고효율의 직업을 가지게 되는 경우, 남편이 전업주부를 맡는 경우가 많아지고 있다.

‘아버지의 딸’은 능력이 탁월하여 이런 선택을 할 수밖에 없다.

그녀가 자녀를 낳으면 자녀 양육을 희생시켜야 하는 아픔도 감당해 낸다.

그녀는 모성성 발현과 사회경력 사이에 갈등이 있으나 어릴 때부터 아버지가 열어준 미래를 포기할 수 없다. 거기에는 사회적 지위, 권력, 경제적 보상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여성들이 자율성의 욕구와 생산성의 욕구라는 양립하기 쉽지 않은 문제들을 받아들이는 데는 사회적 태도 변화와 남성들의 지원이 필요하다.”( [여성 영웅의 탄생] 모린 머독, 고연수 옮김, 2014, 교양인, 105)


남성을 이기고 지배하는 데 희열을 느끼는 여성들이 남성을 위협한다.

어느때부터인가 결혼시장에서 연상의 여인과 연하남과의 결혼이 성행하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딸>은 남녀가 평등한 정도로는 성이 안 찬다.

여자가 남자를 압도할 수 있어야 남자가 감히 고개를 들지 못한다,



늘 남자를 이기기를 원하다가 남자에게 밀리는 부분이 있으면 페미니즘에 호소(사실상 고발이다)하여 남자로 하여금 꼼짝 못 하게 만든다.


그 결과 자신의 영역에서 남자를 도망가게 만든다.

남성이 여성과 성적인 문제가 개입되면 '피해자의 고통의 호소'를 진리로 여기는 페미니즘의 영향으로 수사과정에서 일단 유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된다.

수년 전에 우리 사회에서 경험했듯이, '미투'는 공소시효가 없어 연애가 끝난 후에도 남성들은 불안에 떨 수 밖에 없다.

왜냐하면, 관계가 끝난 연애라고 해서 감정까지 끝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여성입장에서 어떤 남성과의 끝난 연애를 반추하면서 성적 수치심을 느끼게 만든 장면이 기억나면 언제든지 고발할 수 있는 길을 열어 놓았다.


남성이 여성에게서 여성적 아름다움에 반해 다가갔지만, 남성화된 표독함으로 바뀌는 순간을 맛본 남자라면 더 이상 여성을 자신의 파트너나 커플로서 동반자 의식을 가질 수 없게 된다.


<아버지의 딸> 주변에는 오직 자신을 아씨로 모시는 돌쇠나 마당쇠가 남아 있을 뿐이다.


<아버지의 딸>이 잃어버린 것들


<아버지의 딸>은 자신에게 어울리지 않는 삶을 살아온 것이다.

남성의 이기는 영웅이 되는 것을 일상의 목표로 삼아 살아온 삶이 결국 자기 자신을 돌보는 방법을 잊어버리게 만드는 것임을 나중에야 깨닫는다.

그때는 중년기 전반 내지 후반, 자신 앞에 더 이상 남성들이 경쟁대상으로 나타나지 않는 때이다.


아버지의 딸들이 그렇게 경쟁력이 강해 남자들을 제치고 여자 중심으로 사회를 구성하지만, 왜 최고 위치에는 오르지 못하는가? 남자에 대한 경쟁심 때문에 치고 올라가다가 어느 정도 높은 위치에 올라가면 경쟁대상자인 남자는 위로 올라가든지 더 이상 올라오지 못하기 때문에 경쟁상대가 사라져 버린다. 그 결과 그동안 남자에 대한 경쟁심과 분노를 자신의 에너지원으로 역동적으로 활용해 오다가 대상이 사라지니까 목표도 사라져서 인생의 허무와 공허를 느끼게 된다.


자신을 돌아보며 공허감을 느끼는 순간, "많은 여성들이 가슴에 뻥 뚫린 구멍을 느끼고서야 성공을 좇는 과정을 끝맺는다."([여성영웅의 탄생], 24)


모린 머독은 "어떤 여성들은 성공하고 인정받으려고 분투한 것이 부모, 특히 내면화된 아버지의 마음에 들기 위한 일이었음을 알게 된다."(같은 책, 24~25)고 말한다.

이것을 깨닫는 순간 더 이상 가부장적 규칙에 따라 경쟁을 하지 않을 거라고 결정하지만, 이제 "그녀에게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느껴야 하는지에 관한 지침이 따로 없다."(같은 책, 25)는 것이 <아버지의 딸>이 처한 현실이다.


<아버지의 딸>은 모든 면에서 탁월하지만, 단 한 가지 모자란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 인격의 본질인 여성성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버지의 딸>이 잃어버린 것은 바도 '여성성'인 것이다.

그녀가 잃은 것은 '여성성' 뿐 아니라, 여성으로 살지 못한 긴 시간 또한 그녀가 잃어버린 소중한 목록이다.

또 하나의 목록은, 자신이 여성으로 살아왔다면 만날 수 있었던 '남성성'이다.


<아버지의 딸>은 어릴 때부터 부성적 전이를 받아 남성화되어 살아왔을 뿐, 진정한 '남성성'을 만날 수는 없었다.

여성에게 있어 '남성성'은 여성의 전면 인격인 '여성성'과 더불어 조화를 이루는 이면 인격으로서 '영혼'에 해당되는 것이다.

<아버지의 딸>은 그동안 남성화되어 여성성을 가지고 살지도 못했고, 진전한 남성성이 뭔지로 모른 채 영혼 없이 남자들과 경쟁만 하다가 인생을 다 보내고 말았던 것이다.

<아버지의 딸>이나 페미니스트들이 남성성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남성화'된 채 살아가는 것이다.


‘아버지의 딸’은 자기 한계를 뛰어넘는 법을 배웠지만, 정작 뛰어넘고자 하는 ‘나는 누구인가’를 알지 못한다. ‘슈퍼우먼의 환상’으로 주변 사람들을 다 이겨내기는 했지만, 자신의 경쟁자가 다 사라질 때, 더 이상 갈 길을 몰라 방황하다가 그 자리에서 주저앉는다.

‘슈퍼우먼의 환상’은 꼭 ‘아버지의 딸’에게만 국한되는 것은 아니다.


“어머니들이 느끼는 자기모멸의 그늘에서 자란 여성들은 자신을 여성으로 여기지 않을뿐더러 자신의 어머니가 이루지 못했던, 완벽한 어머니이자 사회에서 인정받는 여성이 되려는 슈퍼우먼의 덫에 빠져들기 쉽다”(위 책, 126)


여성적 하강은 여신의 회복이다


이런 사실을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는 더 이상 <아버지의 딸>이기를 포기하게 된다.

이제 그녀는 하강을 시작해야 한다.

모린 머독은


"하강은 왕을 퇴위시키는 시간이자 여성이 자신의 잃어버린 조각들을 찾고 어두운 여성성을 만나는 시간이다"


라고 말한다.


이 시기에는 역동적인 꿈을 꾼다.

사지가 절단된다거나 죽음에 관한 꿈, 누군가가 내 집에 침입해 들어오는 꿈, 사막이나 긴 강을 건너는 꿈, 신성한 동물이 등장하는 꿈들로 채워진다.


<아버지의 딸>로 사는 동안, 월경은 매우 귀찮은 것이었다.

이제 그녀가 하강을 시작하면 월경을 통해 자신이 여성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되고, 몸과 영혼의 정화, 그리고 재생에 경의를 표하는 중요한 시간을 갖는다(같은 책, 26)


더 이상 남과 경쟁하거나 남을 정복하는 일을 멈추고, 나 자신과 대면해야 한다.

쉽지는 않을 것이다.

스스로 발가벗겨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다.

오랜 세월 나와의 관계를 부인하고 살았으니, 이제부터라도 내 안에 있는 보물들을 캐내야 한다.

그 보물은 자신의 영혼을 살필 때 찾을 수 있는 것들이다.

모린 머독은 그 보물을 여성적 감정, 직관, 성, 창조성, 유머를 회복하는 데서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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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적 감정과 직관은 갑자기 도자기나 요리 강좌를 듣고 싶다거나 정원을 가꾸고 싶다거나 편안한 안식처를 만들고 싶다거나 하는 충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같은 책, 28)

성에 대해서는, 갑자기 마사지를 받고 싶다거나 요가나 필라테스를 하고 싶다거나 하는 형태로 여성적 몸을 회복하고자 하는 충동으로 나타날 수 있다.

또는 갑자기 여성들과 만나서 수다를 떨고 싶어질 때가 있다.

그동안 남성들과 경쟁하느라 같은 여성으로서 여성을 발가락의 티눈만큼도 안 여겨 왔지만, 어느 순간 여자들과 수다를 떨고 싶은 충동이 올라온다.

그것은 바로 내면의 창조성과 유머감각을 회복하고자 하는 충동이다.


외부지향적인 힘이 내면의 창조성, 몸 가꾸기, 주변 여성들과 어울려 여성성을 회복하고자 하는 방향으로 변화되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모린 머독은 변화된 여성은 더 이상 페미니스트로 살 필요가 없음을 강조한다.


"나의 일은 나 자신의 온전한 모습과 우주에서 내 위치를 즐기면서 여성으로서의 삶을 풍부하게 사는 것이다."(같은 책, 30)


이것이 모린 머독이 강조하는 여성성의 핵심이다.

이렇게 될 때, "남성성과 여성성의 신성한 결혼이 이루어진다."(같은 책,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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