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르소나의 위험(6): 여성이 잃어버린 여성성(4)

어머니 딸의 넘치는 모성성

남자는 여자를 경멸한다


남자아이는 3~6세를 거치면서 자신이 남자라는 것을 자연스럽게 자각한다.

그런 자각은 남자아이로 하여금 자신이 어머니에게서 태어났다는 사실에 대해 수치스럽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내가 여자의 몸에서 태어났다'


는 사실이다.

그래서 자신의 몸에서 여성적인 요소를 떨쳐 버리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이것이 오이디푸스를 거치면서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시하게 되면서, 남자다움을 찾으려는 심리적 전환을 위한 하나의 방편이다.

남자아이는 '내가 남자다'하는 것을 증명하여야 진정한 남자의 세계에 들어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남자아이는 남자그룹이 지켜보는 가운데 여성을 경멸하는 기회를 갖고자 이런저런 시도를 한다.

과거 같으면 여자아이들 고무줄 놀이할 때 고무줄을 끊는다거나, 여자아이들의 치마를 들춰 '아이스케키'를 한다.

남자아이들은 이처럼 남자 세계에 진입하여 여자들 세계로부터 자신을 확연하게 구분해 낸다.

이렇게 남자세계에 진입한 후, 정서적인 성장을 멈춘다.

그래서 남자는 성인이 되고, 노인이 되어도 별다른 내면 작업이 없으면 '영원한 소년'으로 머물게 된다.


<어머니의 딸>의 '처음부터 모성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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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아이는 어머니와 같은 여성이기 때문에 남자아이들 같은 고민을 할 필요가 없다.

여자아이는 오이디푸스 단계(3~6세)를 거치면서 어머니와 동일시되어 더 어머니와 같아지려고 노력한다.

그래서 여자아이는 어릴 때부터 어머니의 모성성을 그대로 차용해서 쓴다.

그렇게 해도 여자 아이는 아무런 불편함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초등학교, 중학교까지는 여자아이가 남자아이들보다 훨씬 강하고 능력이 뛰어나다.

여자가 모성성을 너무 자연스럽게 자신의 몸에 장착하였기 때문에 일평생 모성성으로 살아가도 별로 문제가 없어 보인다

여기서 문제는, 대부분 여성이 이 '모성성'이 '여성성'인 줄 알고 착각하며 살아간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내가 여러 글에서, 여성은 어릴 때부터 자신의 몸을 히스테리 화했다는 점을 서술해 왔다.

히스테리화된 여성의 몸은 남성화되었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여성의 몸에 장착된 모성성과 남성성은 매우 친화력이 있어 아무런 거부감 없이 잘 살아간다.


남성과 여성은 1 대 1 대응 관계가 아니다


여성이 가부장적 사회에서 살아내는 방식으로 자신의 몸을 히스테리 화하는 쪽을 택한다.

그것은 단순히 여성이 자기 몸을 보호하고자 하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그리스 신화에 의하면 여성은 모든 면에서 남성보다 능력이 9배이다.

여성의 리비도(사랑 에너지)는 남성의 리비도보다 9배로 많다.

만일 여성이 자신의 몸을 히스테리 화하지 않고, 성욕 대 성욕으로 남자를 상대하면 감당할 수 있는 남자가 거의 없다.


그것이 단지 성욕뿐만이 아니다.

사랑이라는 측면에서도 여자의 사랑을 전적으로 다 받아낼 수 있는 남자는 없다

여성은 자신의 리비도를 이 모양 저 모양으로 분산시킨다.

주변의 온갖 것에 다 관심을 가지면서 수많은 대상에 대해 리비도를 투사하는 것이다.

강아지도 키우고, 고양이도 키우고, 온갖 식물도 키운다.

그리고 여자들끼리 모이면 아무런 의미 없는 수다들을 떤다.

여성은 대개 이런 형태로 모성성을 발휘하면서 자기표현을 한다.


대부분 여성은 모성성을 페르소나로 사용한다,

그런데 여성들은 이것이 자신의 페르소나인 줄을 모른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성성을 여성성으로 여기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딸>을 찾는 남자들


요즘 젊은 세대는 좀 다를 수 있지만, 최소한 40대 이상의 남성은 자신의 배우자를 찾을 때 어머니 같은 여자를 찾는다.

그래서 2000년 이전에는 모성성을 풍성하게 발휘하는 여성이 결혼시장에서 주가가 높았다.


남자가 그런 여자를 배우자로 선호하는 데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유가 있다.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남자는 대부분 정서적으로 <영원한 소년>이기 때문이다.

성인이 된 남자는 사회적 능력이 탁월할 뿐이지, 정서적으로는 자라지 못한 <영원한 소년>이다.

대부분 남자는 자신의 페르소나를 잘 사용하여 자신의 능력을 극대화시켜 만들어 낸 '사회적 자아'가 곧 자신의 인격인 줄 안다.

그래서 자신의 사회적 위치가 높을수록 자기 자신이 대단한 인격을 소유한 줄로 착각한다.

오히려 그 반대이다.


사회적으로 높은 위치에 올라간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보다 정서적으로 더 어린 아이다.

왜냐하면, 내면의 <영원한 소년>을 감추기 위해 끊임없이, 그리고 경쟁적으로 자신의 페르소나를 극대화시켜 왔기 때문이다.

그리고 남성이 사회적으로 잘 알려져 있는 만큼 정서적으로 어린아이이다.

요즘 정치인들을 보라.

얼마나 어린아이들 같은가?


요즘 정치인들을 보면, 그들이 과연 나라를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는 능력이 있는가 싶다,

국가의 큰 경제와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다뤄가고, 다양한 계층의 이익을 공평하게 보장해 줘야 하는 정치적 행위는 마치 수학 대학원 박사과정의 고등수학으로 고차원적인 문제를 풀어냄으로써 박사학위가 수여되는 것과 같다.

그런데 정작 현실 정치인은 가감승제와 1차, 2차, 3차 방정식을 푸는 실력 밖에 안 되는 것 같다.

그래서 상황파악을 못하고, 거짓 선동을 하며, 가짜 뉴스를 밥먹듯이 생산해 내는 것이다.

국민들의 평균 수준이 4년제 대학 수준인데, 정치인은 초등학생의 수준이다.


<어머니의 딸>들의 집단 모성 투사


최근에는 이런 수준의 정치인들을 품어주고 지지해 주고 무조건 옳다 해주는 어머니들이 나타났다.

이 어머니들은 <어머니의 딸>들이다.

자식이 무슨 짓을 해도 다 품어주는 어머니들이다.

이 어머니들은 왜 이런 짓을 하는가?

남자보다 9배의 리비도를 가지고 살다 보니, 남편은 <영원한 소년>인지라 그를 품어줘도 남아도는 리비도를 가지고 그런 모양으로 사회화시키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라도 리비도를 풀어내야 하니까 그들은 그렇게라도 해야 하는 것이다.


과거 독일에서 그런 중년기 <어머니의 딸>들이 그렇게 만들어 낸 인물이 있었다.

바로 아돌프 히틀러였다.

그는 당시 독일 중년 여성들의 집단 히스테리와 집단 모성성 투사로 만들어 낸 괴물이었다.


우리 사회에도 <어머니의 딸>들이 집안에서 리비도를 해결하지 못해 사회적으로 집단몰이를 한다.

그들의 남아도는 모성성 리비도를 <영원한 소년>에게 투사하여 그를 괴물로 만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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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보다 9배 많은 리비도를 가진 여성들이 모이면 무섭다.

<어머니의 딸>들이 한 가정 안에서 자신의 리비도를 해소하지 못한 결과 집단 모성성과 집단 히스테리를 투사할 때 이 사회에 무서운 그림자를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집단 모성성과 집단 히스테리를 투사받는 <영원한 소년>은 얼마나 기분 좋은지 모른다.

어머니 같은 여자들이 보호해 주니까, 이보다 더 안전한 곳은 없다.

<어머니의 딸>들의 집안 모성으로 안전이 보장된 <영원한 소년>은 스스로 자각하거나 반성하는 일은 절대 없다.

그가 할 수 있는 것은 계속 어리광을 부리는 일이다,

이 어리광에는 윤리, 도덕, 양심, 규범, 표준, 질서, 배려, 공감, 공의 등은 일절 없다.

<영원한 소년>은 이런 따위를 사용할 필요가 없다.

<어머니의 딸>들의 집단 모성이 다 커버해 주기 때문이다.


<어머니의 딸>의 인생과제


<어머니의 딸>이 자신의 모성성을 자신의 가족관계 안에서 발현할 때, 그녀의 인생 목표는 '현모양처'일 것이다.

현모양처 또한 <어머니의 딸>의 또 다른 페르소나이자 이데올로기이다.

2010년 이전 사회구조나 사회적 계층이 그렇게 다양하게 분화되지 않았을 때는 <어머니의 딸>들의 불만이나 분노는 가족 관계 안에서 폭발하거나 '화병'의 형태로 혼자 감당해 냈다.


DSM-IV에는 '화병'이 진단명으로 정식 게재되어 '한국 중년 여성에게만 있는 병'으로 정의되었던 적이 있다.

그런데 DSM-V로 업그레이드되면서 '화병'의 목록은 사라졌다.

그것은 아마도 <어머니의 딸>들이 모성성을 가족 관계 안에서 해결해 내는 국면에서 벗어나 사회가 분화되면서 그것을 집단 모성으로 사회화시키는 과정에서 사라진 것일 수 있다.


<어머니의 딸>들의 넘치는 리비도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 것인가?

그런 해결을 위해서는 보수적으로 돌아와야 한다.

집단 모성을 가정에서의 부부관계의 문제로 환원해야 한다.

<어머니의 딸>은 자신이 넘치도록 가지고 있는 모성성을 더 이상 사회화하지 말고, 부부관계에서 해결해야 한다.


부부관계에서 해결한다는 것 자체가 엄청나게 복잡한 과정이 기다리고 있다.

지금까지 어떤 학문으로든 이런 문제을 해결할 방법도 제시된 바가 없고, 문제를 이렇게 초점화시켜 본 적도 없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머니의 딸>은 자신의 넘치는 모성성을 포기하고, '여성성'을 찾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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