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의 집단 무의식 'red-complex'
개별화 욕구를 잃어버린 사람들은 엄청난 에너지를 담고 있는 집단무의식에 압도되기 십상이다.
개별화 과정은 무의식의 내용들에 자신을 개방함과 동시에 의식의 토대를 유지하여 무의식의 내용들을 의식적 인격 속으로 통합하는 섬세한 균형을 요구한다.
즉 개별화 과정은 무의식 내용에 의식과 통합하여 인격으로 세워져 가는 과정을 말한다.
바리새인들이 잃어버린 것은 개별화 욕구이다.
바리새인들은 자신의 내면세계를 외면하고 페르소나에 집착하게 됨으로써 내면에 있는 하나님-원형(God-archetype)과 만나지 못하게 될 뿐만 아니라, 집단무의식에 쉽게 압도되고 그 결과 집단의식적 행동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될 때, 오히려 자기를 하나님-원형과 무의식적으로 동일시하여 자신의 가치와 능력을 과대평가하기 시작하고, 거기에 비롯된 행동은 파괴적으로 변하게 된다.
무의식 속에 있는 원형이 의식과 만나지 못하고 인격화되지 못하면, 원형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거나 환경에 투사하게 되며, 그 원형에 의해 자신이 다시 사로잡히게 된다.
이런 일은 연인 간에 연애 초기에 쉽게 나타난다. 대개 첫눈에 반한다고 하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원형을 상대방에게 투사하여 그 원형에 사로잡혀 홀리는 현상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것은 기복주의 신앙에서 많이 볼 수 있다.
기복주의에서 강조하는 것은, 물질적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 신유를 행하시는 하나님이다.
한마디로 자신은 아무 노력 없이 믿음만으로 전능하신 하나님을 찾는 것이다.
바리새인들과는 또 다른 측면으로 나타나는 페르소나라고 말할 수 있다.
성도들을 내면으로 들어가게 하지 못함으로써 하나님-원형을 만나지 못하게 되고, 그 원형을 목회자에게 투사하게 만들게 된다.
성도는 무의식적으로 그 결과 목회자에게 투사한 하나님-원형에 사로잡히게 되면서, 그 목회자는 필요이상으로 이상화되고, 우상화과정이 일어나게 된다.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자신의 원형을 투사한 그 목회자의 설교가 아니면 은혜를 받지 못하게 되고, 그 목회자의 기도를 통해서만 치유가 일어난다고 생각하게 되고 등등의 일련의 과정이 진행되면서, 영적인 예속화가 일어나게 되는 것이다.
이러한 일은 한국교회의 대형화 과정에서 흔히 일어나고 있는 현상이라고 볼 수 있겠다.
바리새인들이나 기복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이나 그들이 잃어버린 것은 개별화이다.
그들은 집단무의식에 쉽게 사로잡히기 때문에 또한 집단의식에 노출되기 쉽다.
비근한 예가,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의 응원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 부분이다.
한국 사람들 속에 있는 집단무의식 중에는 오랫동안 억압되어 있던 red-complex 가 있다.
경제논리로 나라를 부흥코자 수십 년 동안 억압해 온 레드 콤플렉스가 있었다.
'저 친구 빨갱이야'
한번 지적질당하면, 그 사람은 그 조직에서 살아남기 힘들었던 때가 있었다.
현대그룹의 정주영 회장도 노조와 협상하면서 빨간 두건을 벗을 것을 전제조건으로 제시했다.
공산주의자들이 빨간색을 선호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빨간색으로 둘렀다고 해서 공산주의자로 몰고 가는 것은 그 시대의 한국사회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독특한 정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처럼 우리 사회는 오랜 red-complex가 있어왔다.
그 red-complex가 2002년 월드컵에서 '붉은 악마'구호를 통해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기독교 일각에서는 '붉은 악마' 대신 'white angels'로 대체할 것을 요구했지만, 억압된 것의 회귀 현상으로 나타난 red devil의 출현을 막을 수는 없었다.
‘하얀 천사’라는 명칭을 가지고는 집단무의식을 자극할 수 없고, 아울러 집단의식으로도 결집될 수 없는 것이었다.
집단무의식에 사로잡혀 있는 것 자체가 바로 ‘악마’의 상태인 것이다.
지난 독일월드컵에서, 한국의 이런 길거리 응원을 도입하고자 시도했지만 성공할 수 없었다.
한국의 고유의 집단무의식의 억압적인 역사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흉내 낼 수 없는 역사적 전유물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이라고 하는 이벤트를 통해서 억압된 집단무의식을 표출할 수 있는 기회를 얻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엄청난 양의 집단 무의식적 에너지는 온 사회, 온 국민을 결집시키는 역할을 했고, 또 월드컵 4강까지 올라가는 기록을 남기기도 할 수 있었다.
그 힘은 또한 한국 축구를 세계 정상급 수준에 근접하도록 올려놓는 역할도 하였다.
그 힘은 한갓 축구 4강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2022년 UN에서 한국을 선진국 진입을 선포한 것 또한 거슬러 올라가면 2002년 월드컵에서 발휘한 집단무의식의 폭발적인 거사가 중요한 변곡점을 만든 덕분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집단무의식의 힘이 반드시 필요할 때가 있다.
집단무의식 속에 있던 콤플렉스가 드러나자 한국인의 온갖 잠재력이 다양하게 펼쳐졌다.
한국인의 집단정신은 다른 민족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이점을 가지고 있다.
집단정신이 이처럼 긍정적으로 사용되기도 하지만, 개인은 집단정신에 매몰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집단 무의식에 잠식되면 개인의 정체성을 상실하고 집단 정서에 민감해질 수 있다.
'붉은 악마'구호는 깊이 억압된 콤플렉스의 영향과 그것이 집단적으로 표현되는 순간에 어떻게 폭발할 수 있는 지를 잘 보여주고 있다.
2002년 이전은 공산주의를 악마화하던 시대라면, 2002년 이후 각 개인이 붉은 악마임을 자처함으로써 악마화 프레임이 풀렸다.
이제는 어느 쪽이든 각자의 선택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역학관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은 집단적 사고와 개인의 개별화 및 개성을 보존하는 것 사이의 미묘한 균형을 요한다.
내가 제안하고자 하는 바는 좌파냐 우파냐가 아니라, 진보냐 보수냐 로 가야 한다.
우리나라의 정치사회적 특성으로 볼 때, 좌파우파 프레임은 갈라 치기 색채가 강한 반면, 진보-보수는 상황에 따라왔다 갔다 할 수 있는 프레임이다.
진보 안에서도 보수적인 진보가 가능하고, 보수 안에서도 진보적인 보수가 가능하다.
나는 상황에 따라 보수적 진보이기도 하고, 진보적 보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