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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권의 역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보다 행복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제 11화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11화 중, 복권 이야기가 나온다.

 무직인 남편과 자녀를 부양하기 위해 김밥장사로 겨우 생계를 꾸려온 아내가 있다. 

'사랑꾼'인 줄 알았던 남편은 로또 당첨된 친구와의 공동배분 약정에 따라 14억 원을 배분받자 태도가 돌변한다. 

약정한 공동배분을 위해 소송을 진행할 때 문서로 된 약정서 없이 증인의 증언에 의해 재판의 판도가 달라지는 형국에 도박장 직원 '커피장'이 증인으로 등장하여 재판의 판세를 바꿔 14억 원을 받게 된다. 

남편은 이 커피장과 불륜관계에 있었고, 14억 원을 거머쥔 남편은 이혼소송을 하게 되지만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로또 당첨 분배금과 사망보험금은 그의 아내에게로 돌아왔다. 

이 사건에서 아내도 크게 착각한 부분이 있다. 

갑자기 14억 원을 거머쥔 남편이 그동안 무직으로 있으면서 그동안 남편 대신 가장 역할을 하고 경제주체의 위치를 감당해야 했던 아내는 남편이 그렇게 큰돈을 가지게 되었을 때 그동안 겪은 아내의 고초에 대해 마땅히 보상을 해 줄 줄 알았던 것이다. 

그 착각은 내가 이 고생을 하면 언젠가 남편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줄 줄 알았다는 착각이다. 


                                    복권의 역설 


어떤 남편은 연봉 1억이 되어도 그렇게 행복하지 않다. 그 연봉으로 4인 가족이 얼마든지 잘 살 수 있지만, 이 집은 빚이 많다. 

집 담보로 은행 대출 4억을 받아서 전 금액을 코인에 투자하였다. 

2021년 이맘때쯤 그 남편은 연말이 되면 코인이 4배 정도 뛸 것으로 예상했다. 

그런데 반대현상이 일어났다. 

1/3로 가격이 폭락한 것이다. 

그래서 4억 대출받아 투자한 금액은 현재 1억 2천으로 급감했다. 

그런데 아직도 코인 투자에 미련을 두고 코인 시장에 머물러 있다. 

억울하다는 것이었다. 

이 억울함을 본전이라도 찾아야 그만둘 수 있다고 말한다.

아내가 아무리 말려도 소용이 없다. 

그렇게 말릴 때마다 아내는 오히려 설득당하는 것으로 상황이 마무리된다.

"생각해봐, 지금 우리 연봉으로 두 아들 어떻게 장가보내고 결혼한다 해도 무슨 돈으로 걔들이 집을 살 거야? 부모가 되어 가지고 집 하나 마련해 주겠다는 데 뭐가 잘못되었어?"

"코인이라는 것은 하루에도 수십 번 변하고 잘하면 지금 가지고 있는 1억 2000만 원을 가지고도 수십 억을 만들 수 있는 거야. 생각해 봐. 우리가 언제까지 연립주택에서 살 거야? 최소한 40평 아파트도 사야 하고, 차도 바꿔야 하지 않겠어? 내가 당신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게."


이 아내가 그 순간 깨달은 것이 '복권의 역설'이었다. 

복권을 사서 수백억 원 당첨된 사람은 하나같이 불행해진다는 역설이다. 

이 역설의 첫 희생자가 바로 아내 자신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설령 코인으로 수십억 원을 만든다 해도, 그런 날이 오지도 않겠지만, 그날이 온다면, 제일 먼저 하는 것이 '아내를 바꾸는 것일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단다.

아내는 남편이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하지만, 그때가 되면 과연 내가 행복할 수 있을까? 아파트 평수가 넓어진다고, 좋은 차 탄다고 내가 행복해질 수 있을까를 생각해 보았다고 한다. 


                         양적 공리주의, 질적 공리주의 


많은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는 요인으로 여러 조건의 환경에서 찾는다. 

예를 들면, 많은 수입, 넓은 평수의 아파트, 남편의 좋은 직장이나 높은 지위, 자녀들의 탁월함과 좋은 성적, 좋은 대학에 입학하는 자녀, 출세 가도를 달리는 자녀들의 사회적 경쟁력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조건을 행복이라 여기는 한, 그 사람에게 유효한 철학은 공리주의일 수밖에 없다. 공리주의란, 행복을 수적 양화의 조건을 극대화시키는 것을 행복이라 여기는 가치관이다. 

국가를 이끌어 가는 행정부나 정치인들의 논리는 대부분 공리주의에 입각해 있다. 그래서 많은 성과를 거둔 것도 사실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사회 복지제도이다. 

사회적 공리주의는 사회를 좋게 만들어 가는 것, 좋은 복지, 좋은 시설, 높은 임금, 높은 GDP, 좋은 교육 등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외적 환경을 최적의 조건으로 만들어 간다. 

정치가나 사회복지사, 교육자는 이런 환경을 확충해 나감으로써 행복을 누리고 있는 사람의 수를 늘려 나가게 만드는 데 주력할 것이다. 

그 결과 그 사회의, 또는 그 가정의 쾌락의 총량이 증가하게 만들어 가는 것이 그 사회의 , 그 가정의 중요한 목표가 된다. 

이런 것들이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조건이 될 수 있다. 

이런 사회에 산다고 해서 사람들은 과연 행복할 수 있는가? 


'배부른 돼지보다는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라.'라는 말은 같은 공리주의자인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이 한 말이다. 밀은 양적 공리주의자 제러미 벤담(Jeremy Bentham)의 말이 불만족스러워 새로운 버전의 공리주의, 질적 공리주의를 만들어냈다. 

그러나 배고픈 소크라테스가 되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표가 될 수는 없다.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을 추구하는 한 공리주의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사람은 행복해 지기는 추구할 것이 아니라, '행복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들은 행복해 지기 위해서 주변 환경을 바꾸려고 한다. 

그런 사람은 자신이 행복하지 못한 이유를 외부 환경에서 찾게 된다.

그래서 사람이 불행해지면, 주변 환경을 탓할 가능성이 높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들기 vs 행복한 사람으로 만들기


진정한 행복은 '좋은 관계를 맺는 능력'에서 나온다. 이것은 부모가 자녀를 양육할 때 좋은 팁이 될 수 있다.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것(making people happy) 보다 행복한 사람(making happy people)이 되게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가 자녀를 행복하게 해 주기 위해 애쓰는 것보다 행복한 사람이 되도록 도와주는 것이 더 중요하다.

자녀의 좋은 성적으로 위해 부모가 미리 공부할 환경을 만들어주고, 명문대를 위한 대책을 세워줘서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그렇게 부모가 자녀를 위해 만들어 주는 세계는 자녀가 오래 거주할 수 없다. 자신이 만든 세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를 자녀를 행복하게 만들어주고자 사랑의 이름으로 그렇게 애썼음에도 불구하고, 행복한 사람이 되지 못하는 결과로 귀결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은 부부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아내와 남편의 관계를 보면, 결국 남자와 여자의 차이로 귀결된다.

여자는 지금-여기 감정이 중요하고, 현실에서 남편과 보다 생생한 관계 안에서 사랑받기를 원한다.

그런데 남자는 대개 현실에 관심이 없다. 남자의 시야는 저 멀리 미래에 가 있다. 그래서 현실에서 1억이 넘는 연봉에도 만족하지 못해 주식이나 코인에 투자해 연봉 3000만 원 수준의 삶을 살아가면서 판판이 자산을 잃어가는 많은 남편들이 있다. 

아내를 자녀를 행복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그것도 먼 미래에... 결과적으로 현실에서 아내와도 자녀와도 관계를 상실해가는 많은 남편들, 많은 아버지들이 있다. 

이런 남편을 그냥 놔두면 영원히 철들기 힘들다.

이런 남편을 철들게 만들 수 있는 아내의 무기가 있다.

그것은 바로 '지금-여기의 감정'을 발휘하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남편은 미래의 대박을 꿈꾸며 현실을 살지 못하는 허깨비 인생을 살게 될 것이다. 

그렇게 부부는 영원한 남이 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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