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서적 허기짐
탐구자 : 오늘의 주제는 ‘거울’이군요. 거울반영이 주제가 되는 시점은 아마도 유아가 탄생 후 최소한 6개월은 되는 때가 아닌가 싶네요. 이 시기에는 유아가 자신의 존재의 초점을 입에서 눈으로 옮긴다고 봐야 하나요?
분석가 : 일단 유아의 리비도가 입에서 눈으로 확산된다고 보는 게 맞겠죠. 입은 어머니의 젖가슴과의 만남을 통해 물리적 허기짐을 채우는 곳이라면, 눈은 정서적 허기짐을 채우는 기관이죠. 물론 입으로 젖가슴을 빠는 동안에도 어머니의 공감적인 품 제공 자체가 유아의 정서적인 부분을 채워주지만 그것은 아이 입장에서는 수동적으로 채워지는 것입니다. 이제 유아의 리비도가 입에서 눈으로 확산되면서 어머니의 얼굴, 특히 눈을 바라보면서 아기가 능동적으로 자기 정서를 채워 나가는 단계에 도달하게 됩니다.
탐구자 : 정서적 허기짐이 해소되지 못하면 어떤 증상을 가지게 되나요?
분석가 : 만일 아기가 입으로도 눈으로도 정서적 허기짐을 해소하지 못할 경우 그 증상은 입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즉 과식을 하거나 폭식을 하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게 되는 겁니다. 아기는 원래 젖을 먹든 젖병을 빨든 자신이 먹고 싶은 만큼만 먹는 게 정상이거든요. 그런데 어머니가 젖을 주지 않고 사라질 때가 많거나 어머니가 공감적인 품을 제공해 주지 못해서 스트레스를 받게 되면 자신이 먹어야 할 이상의 양을 먹게 되는 거죠.
탐구자 : 제가 TV를 보는 중에 어떤 의사 선생님이 사람이 먹는 이유는 두 가지에 대해 말씀하시더라고요. 첫째는 위장이 비어서 둘째는 뇌의 영양을 공급하기 위해서다(2015, 7,20일 자 ‘엄지의 제왕’)라고요.
분석가 : 아마도 그 의사 선생님의 말씀 중 두 번째 것은 정서적 허기짐의 문제를 말씀하시는 것 일 겁니다. 내 주변에도 스트레스받으면 먹는 것으로 해소하려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탐구자 : 네, 제 주변에는 마구 폭식하면서 살이 찔 것을 두려워해서 의도적으로 구토까지 하는 사람이 있어요.
분석가 :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거나 과식하게 되어서 비만하게 되는 것도 정서적 허기짐 때문입니다. 정서 조절을 잘하는 사람일수록 아무리 진수성찬이 앞에 차려져 있어도 자기 먹을 만큼만 먹고 숟가락을 놓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자기표현을 잘하지 못하는 사람이 억압기제를 가지고 평소의 감정을 억압한 결과 무의식 안에는 분노가 많이 쌓이게 되는데, 그런 사람은 대체로 살이 찌게 됩니다. 분노와 비만과는 모종의 인과 관계가 있습니다.
탐구자 : 어떤 사람은 조금 전에 밥을 분명히 충분히 먹었는데, 30분도 안 되어서 또 배고프다고 하소연하던데, 이런 경우는 어떻게 봐야 하는 건가요?
분석가 : 어떤 수험생이 실기시험을 치는 날, 집에서 나오기 전에 충분히 아침식사를 했어요. 그런데 수험장으로 가는 중에 또 배가 고프다는 겁니다. 그 상황은 바로 조금 전에 의사 선생님의 말씀 중 두 번째의 경우에 해당됩니다. 아침을 먹어서 위장이 차 있었지만, 가는 도중에 배가 고픈 것은 이제 가서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해야 할 것은 생각하니 스트레스를 받아서 과도하게 에너지를 쓰게 되니까 뇌가 영양분을 채워달라고 요구하는 상황이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스트레스가 오면서 정서적 허기짐이 갑자기 찾아오게 됩니다.
탐구자 : 아기가 어머니의 눈을 맞추고 어머니의 얼굴을 살피는 때가 되었는데, 만일 어머니가 아기에게 정서적인 눈 맞춤을 해 주지 못하면 정서적인 허기짐에서 벗어나기가 힘들겠군요.
분석가 : 당연하죠. 초기에는 어머니는 아이에게 따뜻한 품을 제공해 주는 것이 중요하지만,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는 아기가 차츰 어머니의 얼굴을 또렷하게 쳐다보기 시작하는 시점이 오게 됩니다. 이때 어머니는 아기에게 거울로서 역할을 하게 됩니다.
탐구자 : 거울로서 역할이라 함은 그대로 비치는 것을 말하는 건가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어머니가 아기의 시선을 어떻게 반영하느냐에 따라 아이 존재의 자존감이 달라집니다. 물론 거울반영이 유아의 자존감을 전적으로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머니가 제공하는 품의 연속선상에서 거울반영의 단계로 발전해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초기에 유아에게 좋은 품을 제공해 왔다 해도 거울반영에서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거울반영의 단계에서 어머니가 실패하면 아이는 자기 존재의 수치심을 느끼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