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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울반영(2);어머니의 시선에 따라 달라지는 삶의 질

look at vs look into

어머니의 시선과 달라지는 아기의 삶의 질


탐구자 : 수치심이라 함은 부끄러움과 같은 것인가요 아니면 다른 것인가요?


철학자 : 당연히 다릅니다. 언듯 보면 비슷한 감정이지만 몇 가지 중요한 차이점이 있습니다.

부끄러움은 영어로 shyness로서 존재론적으로 자연스러운 감정이면서도 사회적인 규범과 문화적인 배경에 기인한 감정이기도 합니다. 자연적인 감정이라면, 아기가 벌거벗고 있는 모습을 보면 대부분의 사람은 그 상황에 대해 자연스럽게 부끄러움을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벌거벗은 아기의 몸을 무언가를 가지고 가려주게 되지요.

또 사회적 규범과 연관되는 부분은, 누군가가 혼자 옷을 벗고 있다고 칩시다. 만일 아무도 없는 곳에 혼자서 옷을 벗고 있다면 그것은 부끄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멀리서 다른 사람이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면 순식간에 부끄러움이 올라와서 옷을 찾아 입게 되지요.

문화적 배경에서의 부끄러움이라면, 내가 어떤 행동을 하는 것을 어릴 때는 몰랐는데, 똑같은 행동을 성인이 되어서 하고 있을 때 이게 아니다 싶으면 그때 자기 행동에 대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되죠. 어릴 때와 성인 때의 문화적 배경이 달라진 것입니다.

반면에 수치심은 사회적인 상황에서 나타나는 감정으로, 다른 사람들로부터 어떤 인격적인 모독이나 패소감을 받았을 때 생기는 상처입니다. 수치심은 다른 사람들에 의한 비난, 조롱, 괘씸한 표정 등이 원인이 될 수 있습니다. 수치심은 자존감과 관련이 깊으며, 자신을 낮추거나 소외감을 느끼도록 합니다.


분석가 : 자연스러운 감정으로서 부끄러움 사람이 부끄러움을 인식하는 때는 만 1.5세에서 2세 사이 라고 해요. 그것은 아기의 성장과정에서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정서적 측면이죠. 프로이트의 ‘리비도 발달 과정’의 측면에서 보면 ‘항문기 조직’의 맥락에서 일어나는 것이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입니다. 이 시기는 어머니가 아기에게 배변훈련을 시키는 기간인데, 이 기간 중에 어머니가 아기의 존재를 의식하고 아이의 감정을 배려하면서 대소변을 잘 가려주고, 조심스럽게 다뤄준다면 부끄러움의 감정은 도덕성과 함께 자라나게 됩니다. 이처럼 ‘부끄러움’은 한 존재가 마땅히 갖춰야 할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그런데 수치심은 자연스러운 감정이 아니라 타자의 시선과 연결되는, 감정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증상입니다.


탐구자 : 아까 철학자께서 부끄러움이라는 것이 혼자 있을 때는 못 느끼다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순간 느끼게 되는 것이라고 하셨는데, 그 차이가 무엇인가요?


분석가 : 아~ 그건 좀 다르죠. 모두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는 것이지만, 부끄러움은 타자의 시선을 의식하게 될 때 누구나 느끼는 상황에서의 감정인데, 그것은 존재론적인 감정이죠. 그런데 수치심은 타자의 시선과 연결되지만 상대방으로부터 모독을 당한다거나 한 결과로써 심리적으로 상처로 남게 되는 증상을 말합니다.

유아기에 남의 시선을 의식하지 않고도 수치심을 가지는 경우가 있습니다. 딸 부잣집에 종종 있는 일인데, 어떤 여자는 부모님의 아들에 대한 기대 속에서 여섯 번째 딸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는 삼일 동안 젖도 안 먹이고 머리맡에 두고 울든 말든 아기 생명줄을 스스로의 운명에 맡긴 중에 친할머니가 와서 데리고 가서 세 살까지 키우고 어머니에게 돌려줬습니다. 그 와중에 남동생이 태어났답니다.


탐구자 :이 과정에서 딸은 부모의 시선을 무의식적으로 의식하여 자기 존재에 대한 수치심을 가지며 자라게 되겠군요. 과연 그 아이는 태어나자마자 그 사실을 알까요?


분석가 : 저는 충분히 인지하고 있는 경우를 알고 있습니다. 6번째 딸로 태어나서 엄마가 그 아이를 보고 싶지 않아서 머리맡에 두고 쳐다보지도 않았는데, 그 아이는 이틀 동안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신이 태어난 것이 부끄러워 자기 존재를 스스로 숨겨 버린 것이죠.

이 딸이 6 세 때,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 집으로 돌아와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어머니가 꼼짝 않고 서서 이 딸을 노려보는데 한참을 노려보더라는 겁니다. 이 딸은 그 자리에서 울어 버렸고, 어머니는 방으로 들어가면서 문을 꽝! 하고 닫으면서 들어가더라는 겁니다.

그 순간은, 아이가 느끼기에, 존재를 꿰뚫어 구멍을 내어 버리는 느낌의 순간이었을 겁니다. 어떤 심리학자는 이런 시선을 맞는 아이는 마치 '눈에 화살을 맞는 느낌’이라고 부르더라고요. 그 순간 이 아이에게는 수치심이 존재에 들어와 버린 것입니다.


탐구자 : 지금은 어엿한 청년이 된 피아니스트 희야를 아시죠? 그 청년에 대한 방송이 특집으로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오랫동안 아이를 갖지 못하는 중에 기적적으로 임신을 하게 되어 희야를 낳았는데, 희야는 손가락을 한 손에 두 개씩 달고 합쳐서 4개의 손가락을 가지고 태어났답니다.

그 아이를 낳고 처음 대면할 때 그 어머니의 말은 지금 생각해도 감동적이에요. 그 아이가 손에 달고 있는 각각 두 개의 손가락을 보는 순간, 그 어머니는 마치 ‘두 송이의 튤립이 피어나는 것 같이 아름다웠다’고 표현을 하더라고요. 그 어머니는 아이의 손가락을 보고 전혀 수치스러워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머니가 그 아이를 수치스러워한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 그 아이도 자기의 신체적 결핍에 대해 수치스러워해 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유치원 다닐 나이 때에 희야는 동네 아이들과 함께 놀고 싶어서 아이들에게 가까이 가면 ‘와! 괴물이 나타났다. 도망가자’ 하며 무리들이 모두 흩어지는 일들을 자주 겪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한 번은 희야가 동네 아이들 놀이에 끼어들어서 ‘우리 괴물놀이 하자. 내가 괴물 할게’ 하면서 함께 놀 수 있었다고 해요.


분석가 : 희야는 대단히 높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자존감이 어디서 오는 것이겠습니까? 바로 어머니가 이런 아이를 낳게 된 것에 대해 자기 존재의 부끄러움을 가진 적이 없고, 자기 아이가 장애를 가졌다는 부분에 대해 수치스럽게 여긴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탐구자 : 어머니가 아기를 보는 시각에 따라서 아기는 생애 초기부터 삶의 질이 달라지는 것이라 보여지는군요.


분석가 : ([수치 어린 눈] 85-87) 어머니의 얼굴은 아기가 애착을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가장 중심 된 장소입니다. 그래서 초기 6개월 동안 유아가 존재 연속성을 확보해 가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어머니의 얼굴일 겁니다. 그것은 어머니가 제공하는 품이나 젖가슴과는 또 다른 정서 형성의 중요한 축이 되죠. 유아는 젖가슴을 대상이라 여기지 않고 자신의 창조물이라고 여기지만, 어머니의 얼굴, 특히 어머니의 눈은 유아에게 최초의 대상이 됩니다. 프로이트는 오이디푸스 단계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사회적 존재가 되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그것보다 더 근원적 관계성은 바로 어머니의 얼굴에서 수많은 표정들을 읽어가면서 사회적 존재가 되어가는 준비를 하게 됩니다. [수치 어린 눈]에 의하면, 아기는 생후 7~10일 정도 되면 어머니와 안정적인 눈 맞춤을 유지할 수 있고, 4주가 되면 유아는 어머니와 더 오랫동안 눈 맞춤을 유지할 수 있게 되며, 눈으로 신호를 보낼 줄 알게 됩니다. 세 달이 지나면 눈 맞춤으로 대화적 놀이가 가능하다고 해요. 생후 한 달이 지나면서 아기는 어머니의 얼굴을 구석구석 보지는 못하고 마치 물 흐르듯이 훑어본다고 합니다. 이때 아기는 무의식적 수준에서 어머니를 다른 사람과 구별하기 위해 어머니 얼굴의 움직임이나 전체적 형태 등을 인식한다고 합니다.



꿰뚫어 보는 시선(look into) vs 사물화 시선( look at)


분석가 : 무엇보다 아기는 어머니와의 관계를 통해 인격을 형성해 가는 것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두 사람 상호 간에 내면의 깊은 부분으로 들락거릴 수 있어야 하는데 아기는 바로 그 부분에 제한을 가지게 됩니다. 아기는 어머니의 깊은 부분을 관찰할 수 있고 그 부분에 아기가 머물 수 있으며, 그 부분을 아기가 자기의 것으로 가져올 수 있어야 합니다.

앞에서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 충분히 머물기에서 설명한 부분인데 그 연장선상에서 생각되어질 수 있는 부분입니다. 아기는 어머니를 온전한 거울로 볼 때 어머니를 꿰뚫어 보는 시선(look into)으로 봐 왔다면, 거울이 깨어져서 어머니의 얼굴 표정에서 기후를 살피게 되면 더 이상 꿰뚫어 보는 시선을 주지 못하게 되고 사물화 시선(look at)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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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구자 : into는 속을 꿰뚫어 보는 것이지만, at은 어느 한 지점, 또는 사물의 표면만 보게 되는 것인데, 만일 아이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다면 그 인생에 참으로 슬픈 사건이 발생한 것이네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아기가 어머니를 그렇게 보게 된 것은 아기의 탓이기 이전에 어머니가 아기를 하나의 인격체로 보지 못하고 사물화 시선을 보낸 결과인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아이의 인격도 역시 내면을 채우지 못하게 되면서 껍데기로 남습니다.


탐구자 : 어머니의 텅 빈 시선(look at), 영혼 없이 바라보는 시선은 아이에게는 어머니에게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 이후의 삶에서 만나게 되는 중요한 사람들, 즉 선생님들, 친구들, 선배들, 상사들, 교수님들의 시선으로 대체된다는 점을 간과할 수 없겠죠? 그런 시선이 어떤 것인지 그 느낌들을 알 것 같아요.


분석가 : 아기가 어머니로부터 인격적인 시선을 받지 못하고 텅 빈 시선을 마주치게 되면, 아기 자신 안에 있는 중요한 것들, 그리고 자신이 존재 상승을 위해 부자연스럽게나마 해야 하는 행동들, 새로운 동작들, 얼굴을 통해 표현하고자 하는 다양한 표정들을 놓치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성장과정에 있는 동안, 아이가 뭔가 새로운 것들을 해 나가면서 자신이 잘하고 있는지, 잘하고 있다면 얼마나 잘하고 있는지, 어떤 것을 해도 되고 해서는 안 되는 것인지, 어떻게 하면 나 자신을 잘 표현하고 있는 것인지, 상황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 것인지 등등 매우 복잡다단한 상황들에 대한 확인을 어머니로부터 받을 수가 없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내가 누구인지’가 모호해집니다.


탐구자 : 그때 아기 안에는 ‘왜곡된 나’가 똬리를 틀고 있겠고요.


분석가 : 어머니가 아기를 텅 빈 시선, 즉 사물화 시선(look at)으로 바라보게 되면, 그 시선은 아이가 무의식으로 들어와서 꿈으로 작동하게 됩니다. 아기는 꿈에서 어머니는 악몽을 만들어내는 괴물로 등장하는 것을 보면서 땀을 뻘뻘 흘리며 잠을 자게 되죠. 성인이 되어서도 훤한 대낮에 눈을 뜬 상태에서도 자신 안에 삐에로가 광대의 복장을 하고 마구 날뛰면서 돌아다니는 장면을 보게 되는 경우가 발생하죠.


탐구자 : 사물화 시선은 아기로서는 감당하기가 매우 힘들겠어요.


분석가 : 어머니의 공감 있는 시선(look into)은 유아의 벌거벗은 부분을 가려주는 반면, 어머니의 사물화 시선은 아이에게 수치심을 불러일으킵니다. 아기 입장에서는, 그런 시선을 통해 나의 존재, 나의 행동, 나의 말을 확인받을 길이 없어지는 것이기 때문에 자존감이 낮아지고 자신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런 일들이 너무나도 초기에 일어나는 일이기에 간과되기 쉽습니다.


탐구자 : 그렇게 쉽게 간과되는 일인데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죠?


분석가 : 분석 상황이라면, 이런 경우 내담자는 거울을 보는 꿈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깨진 거울을 본다거나 거울이 있기는 하는데 너무 멀리 있다거나 등등의 꿈들을 꾸게 되죠.


탐구자 :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너무 의식하는 사람, 다른 사람들 앞에 나서서 발표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 사람의 눈을 맞추지 못하고 고개를 숙이면서 말하는 사람 등이 바로 어릴 때부터 사물화 시선에 노출된 사람이라 볼 수 있겠군요.


분석가 : 딱 이것은 이렇고, 저것은 저런 것이다라고 공식화시키기는 어렵습니다. 그러나 그럴 가능성에 대해서는 열어놔야 되겠지요. 어떤 사람은 눈이 마주치지 않아도 버스에서 옆에 다른 사람이 서 있다거나 길거리를 지나가면서 옆으로 사람이 지나가는 것만으로도 자신의 에너지를 빼앗긴다고 느끼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사람 많은 곳에 잘 가지 않죠. 왜냐 하면 보이는 모든 사람들이 다 내 시선을 요구하거나 내 시선을 빼앗아가 버리는 사람으로 느껴져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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