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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치심을 일으키는 투사적 동일시

상담상황에서 상담자의 두려움


초등 5학년 아동을 상담하는 상담자 C 가 아동과 놀이치료를 끝낸 후, 잠시 부모 상담을 하게 되었다.

그 어머니는 매우 교양 있는 사람이었지만, 매우 자기애적인 사람이다.

이런 양면성의 갭은 C가 가장 대면하기 힘들어하는 범주의 사람임을 암시한다.


소위 교양 있지만 나르시스틱 한 사람!!


C는 상대방이 교양과 자기애 사이의 간격이 크면 클수록 힘들어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여기저기 꽉 막혀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기만의 세상이 옳다고 여기는 사람이다.

아동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의 문제를 가지고 오히려 상담자에게 책임이 있다는 듯이 따진다.

어머니의 양육방식이 잘못된 결과 놀이치료실을 찾아왔음에도 불구하고 빠른 치료 진전이 일어나지 않음에 대해 상담자에게 따지고 들며 상담비 값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는 듯이 밀어붙이는 어머니이다.


어머니 자신이 상담자에게 요구하는 것을 스스로의 책임으로 자녀를 키워내면 되는 것을, 상담자에게 미루고 상담자의 책임인 양 몰아간다.

그 어머니는 굉장히 미묘한 뉘앙스를 통해 자신의 감정을 상담자에게 전달하는데, 그때 상담자 C는 겁을 내게 된다.

이런 사람을 처음 만나게 되면, 촉이 생겨서 대화를 하기도 전에 이미 상담자가 먼저 두렵고 일을 그만두고 싶어 진다.

그 아이와 어머니가 오는 시간이 다가오면, 벌써 몇 시간 전부터 상담자는 두려움으로 떨고 있다.

그 어머니로 인해 상담자 C의 증상은 공황장애까지 발전하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C는 그 어머니가 별말도 하지 않았는데, 한마디 한마디에 엄청난 수치심을 느낀다.

그 어머니의 한 마디는 상담자 C의 옷을 한 올 한 올 벗겨내어 최종적으로 발가벗기는 수치심까지 도달하게 된다.

C는 마음의 내면을 날카로운 손톱으로 확! 하고 긁어놓는 듯한 심리적 아픔을 느끼는 상태까지 이른다.


그래서 상담자 C는 그 케이스를 센터 사무장에게 요청하여 다른 치료사에게 넘겼다.


아이 대신 느끼는 상담자의 두려움과 수치심


이러한 상황은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는 경우에 해당된다.

상담자가 그 어머니에게서 느끼는 느낌, 두려움 그리고 공포는 그 아이가 자신의 어머니에게 평소 느끼는 것이다.

상담자는 내담자 아이가 자신의 어머니에게서 느끼는 것을 고스란히 대신 느껴주는 것이다.

그것은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나는 핵심적 과정에 해당한다.

아이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제반 감정들을 상담자에게 투사하여 자신과 동일시를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C가 그 어머니를 통해서 느끼는 공황장애까지 느끼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아이는 아직 공황장애까지 감당할만한 심리적 구조를 만들어내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아이가 느끼는 감정을 상담자에게 그대로 투사적 동일시를 일으킬 때 그 감정은 상담자로 하여금 공황장애까지 경험하게 만드는 것이다.

그것은 공황장애는 C로서는 이와 비슷한 다른 상황을 중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중요한 기표이기 때문이다.

만일 그 아이가 지금 이 상황에서 치료를 제대로 받지 못한 채 성인이 되면 공황장애가 나타날 가능성이 매우 높아지는 것이다.

상담자는 그 아이의 미래 정신적 상황을 미리 경험하는 것일 수 있다.


상담자 C 자신의 복잡한 투사적 동일시 상황


상담자 C는 이 일이 있기 전에 자신의 부모님과의 관계에서 발생한 문제를 먼저 접했다.

C는 부모님의 부부관계 문제가 C자신에게 불똥이 튀면서 곧바로 이 어머니와의 사건으로 연결됨을 느꼈다.


어머니가 자기애적으로 무장한 채 40년 동안 아내를 착취한 남편에게 반기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나밖에 모르는 아버지에게 40년 동안 당해만 오다가, 최근 어느 날부터 어머니는 자신의 남편에게 저항의 기치를 올린 것이다.


그동안 C가 늘 착취만 당하는 어머니에게 아버지에 대해서 아무리 설명해 줘도 못 알아먹는 어머니가 드디어 사고(thinking)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C의 아버지는 위의 어머니와 유사하게 교양으로 포장되어 자신이 매우 유식한 사람이며 늘 엘리트 의식으로 가득 차 있다.

그녀의 아버지의 기억력은 어마무시하여 보는 대로 기억하는 암기력을 가지고 있다.

그녀의 아버지는 일반적으로 디지털 시대에 퇴화되어 가는 기억력, 70세 중반의 나이에 희미해져 가는 기억력과는 전혀 상관없다.

아버지는 조금도 손상 없는 기억력 덕분에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는 전화번호를 다 외우고 있다.


반면, 아버지는 위 사례의 어머니처럼 자기밖에 모르는 자기애를 가지고 있다.

이런 아버지에게 어머니가 40년 만에 대들었다.

그러니 C는 어머니의 딸로서 어머니 편을 드는 것이 당연했다.

그래서 C와 남동생까지 처음으로 어머니와 합세하여 아버지를 공격했다.


난공불락의 아버지를 공격하는 순간부터 딸은 정신적 위기 의식을 느껴야만 했다.

그 이후 C는 공황장애에 시달려야 했다.

C의 공황장애는 대체로 몇 가지 증상을 동반한다.

그 신체적 증상은 어지럼증, 과호흡, 가려움, 소화 불량으로 나타난다.

정신적 증상으로는 수치심과 두려움, 불안증이 동반된다.


C는 아버지에 대한 이러한 반발심과 저항을 자신의 남편에게 행하고 있음에 대해서도 죄책감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태도를 C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편에게 행사하고 있다는 것 또한 투사적 동일시에 해당한다.


이처럼 투사적 동일시는 대부분의 사람들에 의해 외면당하고 있고, 심지어 상담현장에서 매 순간 일어날 수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상담자들 사이에서도 외면당하고 있는 개념이다.

상담자가 투사적 동일시를 이해하지 못하고 외면하고 있는 한, 상담 상황에서 내담자를 효과적으로 치료할 수 있는 기회를 수없이 놓치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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