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의 존재와 비존재(투사적 동일시의 두 번째 단계 사례)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의 투사적 동일시 개념을 이론적으로 확장한 토마스 옥덴(Thomas Ogden)은 워렌 브로디 (Warren Brodey)이 투사적 동일시 관점에서 가족을 관찰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브로디는 가족을 관찰하면서 어떤 식의 상호작용이 상대에게 투사적 판타지와 일치하게 행동하도
록 요구하는 압력을 일으키는지를 연구했다. 그는 가족 구성원 중 한 명이 다른 구성원에게 투사를
입증하도록 강하게 압력을 가하면서 실을 조종하는 방식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투사적 동일시를 사
용하는 사람은 투사를 확신하는데 유용하지 않은 현실은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취급한다. 이러
한 현실의 조작과 그에 따른 현실 검증 능력의 악화는 상대를 자신의 무의식적인 투사적 판타지에 순
응시키려는 압력을 형성하는 하나의 기법일 뿐이다.
투사적 동일시에서의 유도와 관련하여 강조되어야 하는 바는 투사적 동일시에 순응하라는 압력 뒤
에 은근히 드러나는 '안 그랬단 봐(or else)이다. 나는 다른 책(옥덴, 1976, 5장)에서 어머니의 병리
와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하라고 유아에게 가해지는 압력과 만약 어머니의 병리와 동일한 방식으로.
행동하지 않으면 어머니를 위해서 더 이상 존재하지 못하게 될 거라는 항시적인 위협에 대해 설명했
다. 바로 이런 위협이 순응하라는 요구의 배후에 있는 압력이다. "만약 내가 너에게 요구하는 대로 하
지 않는다면, 넌 나에게 있어 존재하는 게 아니야.”, 혹은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나는 너 안에서. 내.
가 집어넣은 것만 볼 수 있어. 만약 내가 네 안에서 내가 집어넣은 것을 볼 수 없다면, 나는 아무것도.
안 보이는 거야.”
심리 치료상황에서 치료사와 환자가 상호작용 할 때, 치료사는 그가 환자의 투사적 동일시에 따라서
행동하지 않는다면, 자신은 환자에게 있어 실재하지 않게 될 거라는 두려움을 느끼게 된다
(출처: [투사적 동일시와 심리치료 기법], 경남가족상담연구소, 38~39쪽)
상기의 사례는 매우 건강한 관계를 가진 가정이 아니라면 대부분의 가정에서 다 일어나는 일이라고 보면 된다.
브로디는 가족환경에서의 상호작용에서 특히 (대개는) 가족 내 권력자가 어떻게 다른 가족에게 자신이 투사한 환상을 따르도록 압력을 가할 수 있는지를 밝혔다.
가족 내 권력자는 현실을 조작하고 자신이 투사하지 않는 사실에 대해서는 아예 무시하고 가족들에게 압력을 가하면서 상당한 영향을 끼치게 된다.
가족 내 권력자는 이런 형태의 투사적 동일시가 가족들로 하여금 현실 검증능력과 순응에 대한 근본적인 압력을 가할 수 있다.
그런 압력은 가족들이 가족 내 권력자가 투사한 환상에 순응을 요구하면서 암묵적인 '안 그랬단 봐' 요소를 발생시킨다.
유아는 종종 어머니의 병리를 반영해야 한다는 강한 압력을 받는다.
이런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어머니의 인식에서 존재하지 않게 될 수 있기 때문에 존재가 위협받을 수 있다.
이러한 근본적인 위협이 순응을 요구하는 주된 힘이다.
투사적 동일시에서 순응에 대한 요구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가족 내 권력자는 자신이 투사한 환상을 가족 중 누군가가 따르지 않으면 그는 가정 내에서 존재하지 않는 '비존재'(not to be)로 인식될 수 있다는 위협을 가한다.
가족 내 권력자에 의해 투사된 측면이 투사자의 지각의 유일한 초점이 되어 투사와 일치하지 않는 특성에 대해 선택적 맹목으로 이어진다.
그런 선택적 맹목에 익숙해지는 사람은 현실 이외의 다른 현실을 인정하거나 인식하는 능력을 잃게 된다.
가족 내 권력자는 이러한 심리적 과정을 활용하여 가족 내에서 순응을 강요하고, 자신의 투사된 환상과 일치하지 않는 사람들을 비존재로 인식한다고 위협한다.
가족 내 권력자가 자신의 욕망, 기대 또는 환상을 다른 사람에게 투사할 때, 투사자의 인식의 중심이 된다.
이러한 선택적 인식은 투사된 이미지와 일치하지 않는 특성이나 자질에 대해 일종의 맹목적인 태도를 만든다.
그 결과, 투사된 기대에 부합하지 않는 개인은 가족 시스템 내에서 무시되거나 평가 절하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의 예는 대학 입시와 명문대 진학이라는 목표의 맥락에서 관찰할 수 있다.
우리 사회의 많은 부모들은 어릴 때부터 자녀에게 이러한 목표를 강요하고 이를 중심으로 삶을 구성하기 시작한다.
부모는 입시에만 집중하게 함으로써 자녀의 심리 상태를 조작하고, 결국 외부 세계에 대한 인식을 제한하는 터널 비전을 만들어 내어 자녀에게 투사한다.(이 내용은 앞의 글 [투사적 동일시와 자녀교육]에서 이미 언급하였다)
이러한 터널 비전은 입시라는 목표에서 벗어나는 정보를 차단할 뿐만 아니라 입시라는 맥락에서 벗어난 지식이나 경험을 평가절하한다.
이러한 조작을 경험한 아이들은 학업에 도움이 되지 않는 정보는 쓸모없거나 가치 없는 것으로 간주하는 법을 배운다.
그들의 가치 체계는 개인을 독특하게 만드는 다양한 자질과 재능을 무시하고 오로지 학업 성취도에만 기반하게 됩니다.
결과적으로 투사적 동일시에서 적합성에 대한 요구는 자녀의 사회적 관계에도 적용된다.
아이는 학업 성적과 교육적 성공에 대한 적합성을 기준으로 친구의 가치를 평가하기 시작한다.
학업적으로 뛰어난 친구는 가치를 인정받는 반면, 그렇지 못한 친구는 무시당하거나 덜 가치 있는 존재로 여겨질 수 있다.
우정에 대한 이러한 좁은 기준은 개인이 친구의 개인적인 성장, 독특한 경험 또는 사회에 대한 기여를 무시하고 고등학교 성적만을 기준으로 친구를 판단할 수 있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투사적 동일시에서 적합성에 대한 요구는 개인과 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가족 내 강력한 권력자가 투사하는 것은 투사된 환상 밖의 특성을 인식하는 것을 방해하는 터널 비전을 만든다.
이러한 심리조작은 개인으로 하여금 투사된 목표에서 벗어나는 정보나 경험을 평가절하하고 다른 사람에 대한 판단을 오로지 학업 성취도에만 근거하도록 만든다.
투사적 동일시의 영향과 그 결과를 인식하는 것은 가족 안팎에서 더 건강하고 수용적인 관계를 조성하는 데 기여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