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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사적 동일시와 자녀교육

부모의 욕망 충족을 위한 자녀 심리 조작

부모와 자녀 사이의 투사적 동일시


부모와 자녀 사이에 발생할 있는 투사적 동일시의 유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한 가지 유형은 부모가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자녀에게 투사하는 경우이다.

예를 들어, 부모가 분노를 표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 경우, 표현되지 않은 분노를 자녀에게 투사하여 자녀로 하여금 부모에게 공격적이거나 분노표출을 행동화하는 경우이다.


투사적 동일시의 또 다른 유형은 부모가 자신의 이상화된 자아상을 아이에게 투사하는 경우이다.

이는 부모가 충족되지 않은 욕망이나 꿈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가 자녀를 통해 대리만족으로 성취하고자 하는 경우에 발생할 수 있다.

부모는 자녀에게 특정 분야에서 뛰어나거나 부모가 하고 싶어 하는 활동에 자녀를 참여하도록 강요할 수 있다.

이를 위해 부모는 자녀에게 무한정 지원해 주고, 지속적으로 지지한다.

그것도 사랑의 이름으로...

부모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끼는 자녀는 부모의 이상화된 자아상을 내면화하여 그에 부응하기 위해 노력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투사적 동일시가 더 병적인 형태로 나타나 부모가 무의식적으로 자신의 특정 측면을 부인하고 이를 자녀에게 투사하는 경우도 있다.

이로 인해 자녀는 부모의 부정된 특성을 받아들이고 행동으로 옮길 수 있다.

예를 들어, 부모가 스스로를 나약하거나 무력하다고 여기는 경우, 이러한 감정을 자녀에게 투사하여 자녀가 보호자 또는 보호자의 역할을 맡게 될 수 있다.


투사적 동일시, 자아 정체성 혼란에 영향


투사적 동일시는 자녀의 자아감과 정체성에 장기적인 영향을 끼친다.

자녀는 자신의 감정, 욕구, 신념을 부모의 감정, 욕구, 신념과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또한 자신의 정체성이 부모의 정체성과 얽히게 되면서 자신을 주장하고 관계에서 경계를 설정하는 데 스스로 어려움을 겪게 만들 수 있다.


투사적 동일시를 인식하고 해결하는 것은 부모와 자녀 모두에게 매우 중요하다.

부모는 자신의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탐색하고 처리하고, 자신의 경험과 자녀의 경험을 이해하고 분리하는 데 도움이 되는 치료나 지원을 받으면 도움이 될 수 있다.

또한 부모는 열린 의사소통을 장려하고 자녀가 자신의 생각, 감정, 열망을 표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녀가 자신의 관심사와 열정을 탐구함으로써 강한 자아감과 개성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자기표현과 자기 발견을 촉진하는 활동에 참여하면 자녀가 부모의 투사적 동일시와는 별개로 개인 정체성의 탄탄한 기반을 다지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


결론적으로, 부모와 자녀 간의 투사적 동일시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며 자녀의 자아감과 개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러한 역학관계를 인식하고 부모-자녀 간에 얽히고설킨 해결하는 것은 모두의 건강한 발달을 위해 매우 중요하다.

부모는 열린 의사소통을 장려하고 자녀의 자율성을 증진함으로써 자녀의 성장을 지원하고 강한 자아감을 키울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의 투사적 동일시는 종종 부모가 자신의 감정이나 특성을 자녀에게 투사하고, 자녀가 그것을 수용하는 관계로 나타날 수 있다.

이 관계에서 주로 일정한 패턴이 유지되며, 이 패턴은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것이며, 자녀가 투사를 수용하는 쪽이 주로 된다.

이는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잃을까 두려워하기 때문에 자주 발생한다.


부모-자녀 간에 복잡한 정서적 얽힘의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그 자녀가 가정 밖의 사회에서 부모 역할을 하는 권위자와의 관계에서 똑같은 관계 재연이 일어난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 일어나는 투사적 동일시가 사회에서의 권위자나 동료와의 관계에서 반복해서 일어날 때,


'이것이 <투사적 동일시>로구나'


라고 인식할 수 있으면 다행이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서의 투사적 동일시는 부모의 감정, 기대, 불안 등을 자녀가 수용하고 반응함으로써 발생한다.

이것은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유지하려는 자연스러운 욕구에서 비롯될 수 있기 때문에 부모의 일과 자녀의 일을 구별하기를 어렵게 만든다.


부모의 자녀 심리 조작


부모가 스트레스를 받거나 불안감을 느낄 때, 이러한 감정을 자녀에게 투사할 수 있다.

부모가 자녀에게 과도한 기대를 갖거나 자신의 불안을 자녀에게 옮길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자녀는 부모의 행동이나 감정을 모방하거나 그에 반응하여 부모의 투사를 수용하게 된다.


예를 들어, 부모가 자녀에게 학교에서 성적이 좋아야 한다고 강조하면, 자녀는 부모의 기대를 충족시키기 위해 공부에 대한 압박을 느낄 수 있다.

부모의 투사를 받아들이는 것은 자녀가 부모의 사랑을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다.


우리나라 많은 부모들은 이러한 투사적 동일시 과정에서 자녀를 심리조작하는 경우가 많다.

이 경우, 심리조작을 가능케 만드는 <터널 이론>에서 그 터널의 입구는 바로 '대학 입시'이다.

자녀가 초등학교만 들어가면, 오로지 명문대 입학을 위해 목표를 설정한 후, 모든 일정(하루 일정, 장기 일정, 삶의 목표)을 거기에 맞춰 자녀를 양육하는 부모가 많다.


부모는 자녀를 심리조작을 위해 터널 속에 집어넣은 것처럼 오직 입시라는 정해진 목표만 바라보게 하고 외부세계의 정보를 차단한다.


'외부 세계 정보 차단'이라 하여 진짜 외부 세계를 차단하는 것은 아니다.

외부에서 어떠한 정보나 지식이 들어와도 입시라는 목표에서 벗어나는 것이면 자녀로 하여금 그것들을 무용하고 무가치한 것으로 취급하게 만든다.


이렇게 심리조작이 일어나면, 자기 자신뿐 아니라 주변 친구들에 대한 가치판단을 오로지 '공부를 잘하느냐 아니면 못하느냐'로 삼는다.

공부를 잘하는 친구는 가치 있는 친구이고, 공부를 못하는 친구는 친구로서 관계를 계속 맺어 나갈 이유를 찾지 못하게 된다.

이런 사람은 나이가 들어 동창회에 나가서도 한 친구를 바라볼 때 현실 속에서 그가 어떤 사람으로 존재하는지, 사회적으로 의미 있는 일을 하고 있는지, 자신 만의 고유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저 친구가 지금은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지금 그는 누구인지 등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저 친구가 고등학교 때 공부를 얼마나 잘했는지, 아니면 못했는지'


그것이 친구를 판단하는 기준이 된다.


심리조작이 일어난 엘리트 가정


보통 입시 문제로 자녀를 터널로 집어넣어 부모가 원하는 대학에 입학시키는 경우의 부모는 대개 자신이 공부를 잘하지 못했거나, 학벌에 콤플렉스를 가지고 있다.

이런 부모 밑에서 심리 조작이 일어났을 때 자녀가 겪는 폐해는 그리 작지 않다.

그런데 부모가 엘리트이면서 자녀를 대단하게 키우기로 작정하면 그런 관계 안에서는 대단히 역동적인 일들이 발생하여 그 폐해가 어마어마할 수 있다.


내가 접한 사례 중 아래의 사례가 바로 그런 경우일 것이다.


부모가 서울대 출신의 엘리트이며, 그 부모는 사회적으로도 상류층에 속한 사람들이다.

그 부모의 부모 또한 사회적으로 명망 있는 분들이며, 예로부터 대단한 가문의 후손으로 혈통이 이어져 왔다.

그 부모는 자녀들을 어느 누구도 감히 넘볼 수 없는 존재들로. 키우고자 했다.

그 결과 3명의 자녀는 모두 하바드 학부에 예일대 대학원, 그곳에서 박사학위까지 취득했다.


지금 50대를 넘어가는 자녀들은 하나같이 사회적으로 상위층의 직업에 속해 있다.

나와 접한 K는 맏아들로서 직장인으로서 최고의 영광의 자리에 올라있다.

최고경영자로서 회사를 운영할 뿐 아니라, 동남아에 규모가 꽤 큰 지사를 운영하고 있다.

남편은 미국의 유수한 회사의 CEO가 되어 있으며, 여동생의 남편은 미국 유수 회사의 도쿄 지사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약 5년 전부터 자신의 집안에 변고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아버지는 뇌졸중으로 거의 식물인간 상태이며, 어머니는 폐암 말기로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

게다가 여동생은 교통사고롤 온몸이 으스러져 스스로 몸을 가누지 못해 재활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다.

여동생의 남편은 도쿄 지사장을 맡고 있어 아내를 돌볼 수 없는 위치에 있다.


이 여성은 50대 중반의 미혼으로서 지난 5년 동안 일어난 집안의 변고를 혼자 감당해야 하는 결과가 되었다.

그녀의 이야기의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모든 원인은 어머니의 자녀에 대한 심리조작에 있었다.

자녀들은 어머니가 원하는 삶을 사느라 자신의 본성대로 살지 못한 채, 사회적 지위로서 만족감을 얻으며 살고 있을 뿐이었다.

거기에는 어떤 행복이나, 존재 자족감은 없었다...


이 사람, 그리고 온 가족이 할 줄 모르는 것이 있었다.

그것은,


"그들은 남들보다 못한 것을 못한다."


는 것이다.

항상 다른 사람들의 머리 위에서 놀았고, 머리 위에서 사람들을 내려다보는 일에 익숙했다.


이제 그는 그동안 자신의 정체성이라 여겨왔던 사회적 지위, 엘리트 의식 등을 다 내려놓고 남들처럼 평범한 삶, 낮아짐의 겸손을 가질 필요가 있다.

여동생의 남편 역시, 진정한 부부관계라면, 도쿄에서 지사장직을 내려놓고 아내 곁에서 아내를 돌보는 삶을 살기를 자처할 수 있어야 한다.


어머니의 특별한 선민의식 때문에 모든 가족이 남들보다 높은 곳에 사는 것이 너무나도 당연해져 있었다.

지금은 그 높은 곳이 자신의 삶의 현실과 관계없는 구름 위라는 사실을 알 필요가 있다.


어머니가 그 자녀들을 터널 속에 가둬 놓고, 터널 끝 구름만 바라보게 만든, 매우 치밀한 심리조작이 있었던 것이다.


그 어머니는 대단한 어머니이지만, 자녀의 존재를 무시하고 자신의 욕망을 투사하여 동일시하고자 하였을 뿐이다.

그 결과 어머니가 원했던 가족 모두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하고, 그녀의 자녀교육을 위한 열심은 모든 가족에게 불행의 씨앗을 뿌린 것이 되었고, 지금은 그 결과물을 거두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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