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을 채워주는 여자
이 이야기는 모든 남성의 이야기는 아니라, 어떤 남성의 이야기이다.
그렇지만 모든 남성은 아닐지라도 많은 남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누구나 유아기에 토하고 뱉고 싸고 설사하지만 유아로서는 매우 자연스럽고 당연한 생리작용이다.
아기를 양육하는 어머니가 하는 일이 바로 유아의 생리작용을 사랑으로 잘 처리해 주는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는 양육과정이다.
그렇지만 K라는 남성은 그것을 양육 과정으로 경험하지 못했다.
왜냐하면 그것에 대해 어머니가 짜증 내고 화내는 등 눈치를 줬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때리기까지 하였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6개월 된 아이가 똥을 싼 후에 어머니가 없는 틈을 타서 나름 치워보겠다고 자기가 싼 똥을 손으로 이리저리 흩어버렸을까!!
이런 장면을 본 어머니는 더 화가 났다.
가만히 놔 두면 오히려 치우기가 쉬울 텐데, 방의 여기저기로 배설물의 공간을 몇 배로 넓혀 놨으니 어머니는 이 아이를 때리기 시작했다.
6개월 된 아기가 뭘 안다고 야단맞지 않으려고 싼 똥을 치우려고 흩어 놓고, 또 흩어 놓았다고 두들겨 맞아야만 했을까?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양육과정 경험을 K는 여러 모양의 상처로 무의식화시켰다.
아기가 기본적으로 싸고, 내뱉고, 때로는 토하는 것을 어머니가 소화해 내지 못한 채 무의식화된 과제로 남겨 두었기 때문에, K는 자신의 결혼 대상자를 찾을 때 바로 그 과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여성을 찾고자 했다.
그래서 이런 사람은 뱉고 싸고 설사하고, 토하는 것을 받아줄 만한 여성을 만나면 첫눈에 반하게 된다.
K가 그런 대상을 만나게 되면 강렬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상대방 여성은 그의 애착에서 감히 벗어날 수가 없게 된다.
대개 이런 여성은 어머니와 같은 넓은 품을 가져 모성성이 풍부하다.
그래서 이런 사람끼지 만나 연애로 이루어 가는 사랑은 매우 드라마틱하게 이루어질 가능성이 높다
K는 그런 여성에게 홀딱 반해 버리고 자신의 소중한 것을 다 준다.
K는 여성이 좋아할 만한 것들을 미리 챙겨서 선물한다.
K로서는 그녀에게는 아무리 돈을 써도 아깝지가 않다.
K는 여성이 원할 만한 것을 미리 파악하여 온갖 선물 공세를 하였다.
K는 생전 써 본 적도 없는 시를 써서 여성에게 바친다.
연애를 하면 누구나 시인이 되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시적 영감이 마구 떠오르는 것은 아니다.
영감의 부족으로 시를 쓸 수 없으면 남의 시를 베껴서라도 사랑하는 여성에게 바친다.
내가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은 다 줄 수 있으며, 심지어 자신의 내장과 온갖 장기까지 다 내어준다.
K는 여성에게 다음과 같이 고백한다.
"당신은 내가 감히 감당할 수 없는 귀한 존재입니다."
"당신은 나의 주인이요 나는 당신의 노예가 되겠습니다."
나의 소중한 것을 다 줬기 때문에 '당신은 내 삶의 주인이 되는 것'이고, 소중한 것을 다 줬기 때문에 나는 껍데기로 남아 버리는 것이다.
그래서 상대방은 나의 주인이 되고, 나는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하기로 되어 있는 노예가 되는 것이다.
이런 모든 과정이 투사적 동일시의 형태로 이루어진다.
즉 나의 모든 소중한 것을 다 줬기 때문에 그녀는 나의 소중한 대상이 되는 것이다.
이제부터 K는 자신이 원하는 대로 상대 여성을 만들어갈 수가 있다.
그래서 결혼까지 골인하는 데에는 무리가 없게 된다.
결혼 후에는 투사적 동일시의 내용이 많이 달라진다.
K는 자신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려고 아내를 투사적 동일시 대상으로 삼았다.
K에게 있어 근본적인 문제란, 유아기에 마음껏 토하지도, 뱉지도, 마음 놓고 싸보지도 못했던 정서적 장애를 말한다.
K는 애초부터 어머니 같은 여성을 아내로 삼고 싶어 했다.
그렇다고 해서 어머니와 아내가 유사한 모성성을 가진 것이 아니다.
오히려 어머니와는 정반대의 모성성을 가진 여성을 찾은 결과 지금의 아내와 결혼한 것이다.
K는 아내에게서 처음부터 어머니와 다른 모양의 어머니 같음을 찾았다.
어머니가 해 주지 못한 결과 남은 결핍을 채워 줄 수 있는 어머니 같음이다.
자신의 결핍을 메워줄 수 있는 여성!
아기는 첫 6개월 동안 자신 안에 있는 나쁜 것을 어머니에게 투사(뱉음)하고 어머니의 좋은 것을 내사(들임)해야 한다.
투사하는 과정에서 아이는 똥오줌을 싸고 먹은 것을 토하기도 해야 한다.
몸 안에 있는 나쁜 것은 외부로 계속 투사되어야 한다.
K는 이것을 못한 것은 아니지만 다만 신체 물리적으로 했을 뿐, 심리적 과정으로서 나쁨을 투사해 내지 못했다.
그래서 K는 정서적인 문제를 안고 살아온 것이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모성성 결핍으로 짜증과 잦은 분노로 감당했을 뿐, 사랑과 공감으로 감당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K에게 좋음을 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K는 결혼하자 연애할 때는 하지 않던 언행을 마구 해 댔다.
그리하여 K는 아내를 모성적 대상으로 삼아 마음껏 뱉고 싸고 토해내었다.
화장실 들어갈 때 다르고 나올 때 다르다는 격언을 반드시 실천이라도 해야 결혼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고 여기듯이 K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아내에 대한 태도를 바꿨다.
그리하여 K는 아내에게 반찬이 왜 이렇게 싱겁냐, 밥은 왜 이렇게 적게 하냐, 냉장고 청소를 왜 안 하느냐, 화장실은 왜 이렇게 지저분하냐, 수건에서 왜 냄새가 나느냐 등 온갖 생활 잔소리를 뱉어냈다.
K는 아내에게 시키는 대로 해 내지 못하면, 이제는 분노를 마구 토해낸다.
여기서 K는 유아기의 어머니와 아내를 동일시하게 되었고, 유아기에 투사하지 못했던 것을 아내에게 투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투사적 동일시>를 사용하고 있는 셈이다.
K의 아내는 결혼하기 전에는 쇳덩이를 씹어도 다 소화해 낼 정도로 식욕이 왕성했고, 소화 기능도 원활했다.
K가 아내에게 본격적으로 잔소리를 뱉고 싸고 분노를 토한 이후 아내의 소화능력은 급격하게 떨어져서 어느 날부터 설사를 하기 시작했다.
K의 아내의 설사는 3년 간 지속되었다.
설사가 끝날 때쯤에는 치질이 생겨 설사를 대신했다.
K의 뺕고 싸는 문제를 아내가 감당해 낸 결과 설사와 치질로 신체화가 일어난 셈이다.
이 과정 또한 K가 투사적 동일시를 한 결과로 나타난 것이다.
어머니의 잘못된 양육으로 K가 유아기에 받아 주지 못해 아내에게 토하고 뱉고, 싸고 하던 것이 아내에게로 옮겨가서 설사로 치질로 신체화된 것이다.
개중에는 이런 상황 속에 처한 아내들이지만, 이렇게 당장 신체화가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사실상 이런 아내들이 더 큰 문제를 안게 될 수 있다.
남편이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별짓을 다하고 있는데 그것을 다 소화해 내는 아내가 문제인 것이다.
그런 사람은 나이가 들면서 더 큰 질병에 시달리게 될 확률을 남겨두고 있다.
그런 여성은 심각한 우울증, 화병, 당뇨, 고지혈증에서 발전할 수 있는 각종 성인병에서 벗어나기 힘들 수 있다.
아내는 K가 그동안 투사적 동일시로 아내에게 심어 준 생각들, 느낌, 감정들을 10년 동안 스스로 소화해 내다가, 10년이 지나면서, 정서적으로 토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알고, 부부갈등이 시작되었다.
결과적으로 K는 어머니에 대한 보복을 자신이 사랑하는 아내에게 해 버린 셈이 된 것이다.
이것이 바로 당사자가 지각하지 못한 채 투사적 동일시를 행사한 비참한 결과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