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C(1) : 동일성의 혼돈
아래 텍스트 내용은 <[투사적 동일시와 심리치료 기법], 토마스 H. 옥덴, 경남 가족상담연구소, 83>에서 발췌한 것이다.
미스터 C는 29살의 결혼하지 않은 남자다. 그는 대학시절 두 번의 정신병 발병이 있어 단기 입원을 한 적이 있었다. 치료 당시 그는 증권 중개인으로서 활동하였으나 그가 평생 동안 씨름한 것은 자신의 아버지 속에서 늘 자신을 잃어버리는 느낌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C가 하는 많은 활동들에 지나친 관심을 갖고 있었다. 리틀 야구 리그, 과학 과제물, 각종 숙제, 여자 친구 등등. 그 때문에 C는 그 활동들을 자신이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질 수 없을 정도였다.
바둑을 두고 있는데, 바둑의 고수인 아버지가 옆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훈수를 두고 있다고 생각해 보라.
그때 바둑을 두는 주체는 누구인가?
아버지는 아들의 주체 자리에 들어와서 아들의 존재 동일성(sameness)을 흔드는 것이다.
아들이 아버지 없이 혼자 살 수 없게 만든다면, 그 아들은 주체로서 존재하는 것인가?
미스터 C의 아버지는 아들의 존재를 그렇게 사로잡아 버렸다.
C의 아버지는 아들이 자신의 손아귀에서 꼼짝 못 하도록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왔을 것이다.
아버지가 아들의 여러 가지 활동에 일일이 끼어들고 있다면, 아버지가 없는 사회적 활동을 하는 중에도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닌 아버지가 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게 된다.
어떤 아들은 아버지가 시키는 대로 의대에 입학했다.
아버지가 주변 사람들에게 마구 자랑하고 다녔다.
"내가 아들을 의대 입학하게 만들었다. 그러면 이런 아버지에게 감사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그런데 제 아들은 지금까지 이 아버지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어요. 오히려 아들은 내게 화를 내죠."
이런 소리를 듣는 아들은 고통스러웠다.
아무리 공부를 해도 내가 하는 것 같지 않아서 그랬다.
아들은 유급을 밥 먹듯이 했다.
그리하여 아들은 12년 만에 의대를 겨우 졸업했다.
의사 자격시험도 겨우 합격하여 '일반의'로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했다.
의사가 된 아들은 아버지의 큰 자랑거리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만나는 사람에게
"제가 아들을 의사로 만들었어요. 그런데 아직도 걔는 내게 고마워하지 않아요."
라고 아들 자랑을 하였다.
아버지의 욕심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에게 전문의가 되라고 강요했다.
아들은
"그렇잖아도 억지로 된 의사인데 그런 공부할 시간이 있으면 전 제 취미생활을 할 거예요."
라고 하면서 그림을 배우기 시작했다.
그런데 아들의 의사 생활은 원활하지 않았다.
일반의에 멈춰 있고, 더 이상 발전하고자 하는 욕망이 없다는 것을 안 상사와 간호사들이 그를 무시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아버지가 모르는 사이에 전공의 시험공부를 시작했고, 시험에 합격하여 마침내 모대학 병원에서 레지던트를 시작하게 되었다.
모든 과정을 아버지 몰래함으로써 더 이상 아버지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고유한 욕망으로 목표를 정할 수 있었으며 지금은 레지던트 직을 잘 수행하고 있다.
아버지는 한방 맞은 느낌으로 붕 떠 있는 느낌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과정에서 아들은 아버지의 손아귀에서 벗어나게 된 것이다.
그렇지만, 환자 C는 그러지 못했다.
C는 치료당시 증권 중개인으로서 기능을 잘하고 있었다. 그 환자는 아버지 속에서 자신을 잃어버리는 느낌과 평생 동안 씨름했다.
사람이 태어나면 어머니의 품 안에 있는 1년 안에 자기 동일성(sameness)을 획득한다.
자기 동일성이란,
I am.(나는 있다)
를 확보하는 것이다.
이렇게 확보된 I am은 어느 누구도 건드려서는 안 되는 고요한 존재의 영역을 가진다.
아버지는 C의 삶 모든 분야에 들어와서 아버지의 공간을 만들어 C로 하여금 숨 막히게 만든다.
그래서 C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키고 말았다.
아버지는 C의 동일성의 자리에 들어와 C의 주체로서 자리를 요구했기 때문에, C로서는 정신병 발작을 일으키면서라도 살아남기를 바랐다.
아버지가 C의 <I am>을 흔들어 놨기 때문에 정신병 발작을 일으키게 된 것이다.
정신분열증 환자는 애초부터 I am을 획득하지 못하였거나, 다른 사람(특히 부모)에 의해 자기 동일성(I am)을 빼앗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