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C(2)에게 일어난 투사적 동일시
투사적 동일시는 용어가 생소할 뿐, 모든 사람에게 밥먹 듯이 일어나는 현상이다.
내가 얼마나 변화될 수 있는가는 내 주변에 일어나는 투사적 동일시를 인지하느냐 못하느냐에 달려 있다.
(아래 텍스트는 [투사적 동일시와 심리치료 기법], 토마스 옥덴, 83~84에서 발췌한 것임)
두 번째 정신병 발작을 일으킨 후 4년 동안, 미스터 C는 자신이 아버지와 분리된 고유한 존재라는 느낌을 갖기 위해 아버지와의 관계를 모두 끊어야만 했다. 환자는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자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고 단순히 어머니는 아버지의 그림자였다고만 했을 뿐이다.
심리치료가 두 달째로 갓 들어갔을 때, 환자가 일하는 증권 거래소에서 그의 멘토 역할을 하던 상사가 갑자기 다른 도시에서 직장을 잡아 회사를 떠났다. 환자는 마치 자유연상처럼 들리는 말들을 세션 내내 늘어놓기 시작했고 그 결과 치료사가 밀려나는 결과를 낳았다. 미스터 C는 치료사가 무슨 말을 하도록 허용하지 않았고, 치료사가 언어적으로 개입할 여지를 주지 않으며 말을 했다.
몇 주 후, 환자는 치료사에게 자신의 사무실 앞에서 치료사가 치료사의 동료처럼 보이는 사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보았다고 말했다. 미스터 C는 그 때 치료사가 어색해보이고 주변을 의식하며 미약해 보였다고 말했다. 미스터C는 치료사의 동료가 보다 더 유능하고 성공한 사람이고 치료사가 동료에게 몇가지 조언을 받고 있다고 상상했다. 그는 이 사실을 치료사에게 말을 하니 죄책감이 느껴진다고 말하면서 자신은 치료사에게 상처를 주고싶지는 않지만 그렇게 느꼈다고 말했다.
그 치료사는 보통 자신의 환자들이 한 모욕 때문에 흔들리지 않았지만 그는 시간이 지남에 따라 불편한 감정을 느꼈다. 치료사는 그 환자가 자신에게 이야기 할 기회를 줄 때, 자신의 목소리가 가냘퍼진다고 느끼기 시작했다. 미스터 C는 회기 중에 자신이 굉장히 마초처럼 느껴진다고 말했다. 그는 자신이 치료사보다 더 잘 생기고 운동을 잘한다는 점 때문에 또 어느 스포츠 종목에서나 간단히 치료사를 물리칠 수 있다는 점 때문에, 죄의식을 느낀다고 말했다.
치료사를 약하고 매력적이지 못하며 남성적이지 못하다고 여기는 폄하가 그 후 몇 주 동안 계속되었다. 치료사에 대한 이런 생각들은 더이상 느낌 정도로 끝나지 않았고 객관적인 사실로 여겨지게 되었다. 표면적인 모욕보다 현실을 왜곡하는 미묘한 과정이 더욱 강력하게 대인 간에 영향을 미쳤다. 치료사는 환자와의 상호작용 안에서, 치료사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느꼈던 미약함의 감정이 다시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치료사가 이러한 감정을 경험하면서 치료사는 환자가 마침내 자신이 무능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새로운 치료사를 찾아갈 것이라는 판타지를 가지게 되었다. 그 시점에 치료사는 그러한 판타지가 환자와 아버지와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깨닫게 되었고 그런 점에서 현재 상황이 어떻게 된 것인지를 스스로 탐색하였다.
환자 C는 자신의 동일성을 확보하기 위해 존재론적으로 뒤섞여 자신의 정체성을 혼돈스럽게 만드는 아버지와 단절하였다.
그의 아버지와의 단절은 일상생활 전반을 개입해 들어오는 아버지 속에서 늘 자신을 잃어 버리는 느낌 때문에 나타났다.
환자 C가 자기 존재의 고유함을 찾기 위해 아버지를 끊어냈지만, 그동안 자신의 존재 기반 역할을 해 주었던 아버지를 끊어낸 만큼 자신의 심리적 상태는 매우 취약해졌을 것이다.
대학 시절 두번이나 정신병이 발병하여 정신병원에 단기 입원을 한 전력이 있었던 터라, 심리적 상태가 취약해짐에 따라 정신병이 다시 도질까 두려워, 이번에는 상담을 받기로 했다.
상담을 시작한 지 두 달쯤 되던 시점에 자신의 주변에 두 가지 현상이 나타났다.
첫번째 현상은 C가 일하는 증권 거래소에서 그동안 자신에게 멘토 역할을 해 주던 상사 J가 갑자기 다른 직장을 구해 다른 도시로 가버린 일이었다.(멘토 J에 관한 이야기는 다음 글에서 다룰 예정이다)
두번째 현상은 멘토가 자신의 눈 앞에서 사라지는 충격으로 상담사 앞에서 앞뒤 맥락이 없이 자유연상하는 듯한 말들을 마구 쏟아내면서 상담사가 자기 역할을 못하도록 구석으로 밀어냈다.
C는 계속해서 말을 쏟아내면서 상담사가 언어적으로 개입해 들어올 틈을 주지 않는 형태로 상담사를 통제했다.
그것은 마치 아버지가 C의 모든 일상을 개입해 들어와 자기주장을 할 틈을 주지 않았던 것의 반복과도 같았다.
아버지를 떠나 보내면서 자신의 자리에 상담사를 놓고, 자신은 자신의 삶에 늘 개입해 들어오는 아버지의 역할을 상담사에게 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것이야 말로 투사적 동일시이다.
C가 아버지에 대해 가장 싫어하던 짓을 자신이 치료사에게 그대로 하고 있었던 것이다.
C는 아버지라는 권위자를 잘라내었고, 또 다른 권위자인 상담자를 무력화시킨 후 그를 휘두르고 있었던 것이다.
실제로 상담사는 C앞에서 수동적 위치로 밀려나게 되었다.
상담 중 C가 상담사에게 이야기할 기회를 주면 상담사는 자신의 목소리가 가냘퍼지면서 스스로 불쌍하게 느껴졌다고 한다.
그럴 때마다 C는 스스로를 마초처럼 여기게 되었다.
그러한 상담사는 환자와의 상호 작용 안에서 상담사 자신의 아버지에 대해 느꼈던 미약한 감정이 다시 일어나는 것을 느꼈다.
환자와 환자 아버지 사이에서 일어났던 일이 환자와 상담사 사이에서 일어나고야 말았다.
급기야 치료사에게 투사적 동일시가 확장되어 상담사와 상담사 아버지 사이의 관계로 전이현상이 일어나 C는 상담사로 하여금 자신의 아버지 앞에서 나약했던 객관적 사실 관계로 들어가게 만들었다.
이 모든 것이 환자 C의 환타지 안에서 일어난 일이다.
이 모든 과정이 투사적 동일시를 통해 일어났다.
어떤 여성 B는 결혼 후 남편에게 일방적으로 얻어 맞고 욕설을 당하는 것을 여자가 결혼하면 마땅히 당해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었다.
결혼한 지 7년이 되어도 남편은 자격증 공부한답시고 돈 한푼 번 적 없고, 아기를 낳을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B는 결혼 이후 모든 경제적 책임을 혼자 다 지고 살았다.
B는 누구나 결혼하면 다 이렇게 사는 줄 알았다.
그래서 B는 남편에 대한 분노는 커녕, 어떤 형태의 억울함 조차 가지면 안 되는 것으로 알고 노예의 삶을 살았다.
B의 말을 가만히 들어 보니, 그녀늬 남편은 경계선 성격장애자이자 편집증 환자임에 틀림없어 보였다.
나와의 상담을 통해 B 자신이 억울함을 당하고 있다는 사실을 겨우 알게 되었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남편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이 올라오면서 공격성을 한껏 끌어 올렸다.
어느 날 B는 남편에게 이혼을 선포했다.
남편은 태도를 바꿔 B에게 싹싹 빌기 시작했지만, B는 더 이상 불행해지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B는 과감하게 7년의 불행했던 결혼생활을 청산하게 되었다.
B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몇년 더 하다가 어느 날 고향으로 돌아갔다.
B의 친구가 여행 중 그녀의 집에서 며칠 유하게 되었다.
그 친구는 B가 살아가는 모습과 부모 형제를 대하는 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는 그 친구가 전해 주는 B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B는 자신의 부모님과 여동생에게 폭언과 기물파괴, 그리고 각종 욕설을 밥먹듯이 하고 있었던 것이다.
B의 분노가 발동할 때 자기 친구가 와서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완전히 잊어 먹은 듯이 전혀 상관치 않고 감정 표출을 했다.
B의 이야기를 전해 주는 친구는 의아해 하면서 B가 왜 이렇게까지 변했는지 의문스러워했다.
나는 B의 친구에게 <투사적 동일시>라는 개념을 풀어서 설명해 주었다.
사람이 정서적 경계가 무너지면 그동안 자신이 당해 왔던 억울함을 자신의 가까운 가족이나 만만한 친구 또는 이웃에게 그대로 행하는 것이라고 알아듣기 쉽게 설명해 주었다.
그 상황에서 투사적 동일시는 그녀가 남편에게 당했던 것을 그대로 자신의 원가족에게 행사하는 형태로 나타났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