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자 C(3) : 캔디 껍데기로 남다
앞의 두개의 글에서 보여 준 환자 C의 이야기는 부성적 갈등 전이가 치료사와 직장 상사 J와의 관계에서 투사적 동일시 형태로 일어나는 일에 관한 내용이다. 환자 C의 아버지는 매사에 아들에 대해 개입하여 존재가 섞이면서 환자 C는 삶의 많은 혼돈 때문에 일방적으로 아버지와의 관계를 단절했다.
그 후 두 가지 일이 일어났다. 먼저 상담 중 자신이 단절한 아버지 역할을 치료사가 하게 만들면서, 상담 중 환자 C가 상담을 주도하여 혼자 말을 다 하고 치료사로 하여금 말을 못하게 만들며 나약해 지도록 몰아갔다. 이 과정에서 치료사는 자신의 강한 아버지 앞에서 나약했던 자신의 모습을 떠올리게 만드는 등의 투사적 동일시가 일어났다. 환자 C는 나챡해 진 치료사에게 마치 마초처럼 굴수 있었다. 마초의 모습은 아마도 아버지의 모습을 닮고자 투사적 동일시를 실행한 결과였을 것이다.
그리고 두 번째 일은, 아버지와 단절하자 자신의 멘토인 미스터 J가 갑자기 다른 도시로 가서 직장을 다니는 일이 발생했다.
치료사와의 관계는 바로 앞의 글에서 다루었고, 지금은 직장 멘토 미스터 J와의 관계를 다룬다.
텍스트(3)
치료사는 미스터 J가 떠날 때 환자 C는 자신의 귀중한 일부를 잃어버린 것 같은 느낌이었을 것 같다고 지적했다. 그랬더니 환자 C는 그 사실을 인정했고, J가 떠날 때 자신의 '텅 빈 것 같았다'라고 했다. 미스터 J가 떠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환자가 제일 먼저 한 일은 그 건물 지하실에 있는 사탕을 파는 자판기에 가서 캔디바 몇 개를 사서 거의 한 입에 집어넣고 먹은 것이었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캔디바를 먹어도 배가 부르다는 느낌이 들지 않았지만 속이 메스꺼림을 느끼기 시작했기 때문에 더 이상 먹지 않기로 했다고 말했다. 그 회기 말미에 치료사는 미스터 C은 자신의 소중한 부분이 미스터 J와 함께 가버리고 쓰레기 같고 하찮은 자기의 부분들만 남은 것처럼 느끼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다음의 세션에서 환자는 자신이 꾼 꿈 하나를 가져왔다.
꿈속에서, 미스터 C는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을 너무 많이 잘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자신의 머리카락을 보고 흐느껴 울었다. 미스터 C는 그 머리카락을 보고 미스터 J의 회색 머리카락을 연상했다. 미스터 C는 그 머리카락을 가지고 삼손의 이야기를 연상했다. 데릴라가 삼손의 머리카락을 자른 후, 그는 힘을 잃었다. 머리카락 자르기에 의해 상징되는 거세되어 남성성을 잃는(삼손의 전설) 다는 생각과 연결되어 있다. 이런 수준의 의미는 투사적 동일시 과정에서 치료사 안에서 유발된 무력감과 직접적으로 연결된다.
보통 사랑하는 관계에서 자신의 소중한 것을 상대방에게 다 넘겨주고 자신은 껍데기로 남는 일이 일어난다.
일반적으로 남성이 여성을 사랑하면서 자신의 모든 것을 다 준다.
자신의 소중한 것, 마음과 내장 장기까지 상대방에게 다 준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다 줬기 때문에 그 대상이 소중해질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자신은 껍데기로 남아 버린다는 것이다.
이것이 남녀 간에 일어나는 투사적 동일시 현상이다.
옛날이야기 중에, 여자가 사랑을 고백하는 남자에게 그 사랑을 증명해 보이라면서 어머니의 심장을 가져오라고 한다.
남자는 어머니를 죽여 심장을 꺼내어 여자에게 갖다 바친다는 이야기이다.
자신의 소중한 것을 다 주고 나니 자신은 껍데기로 남아 버린다.
나의 소중한 것을 다 줘서 결혼이라도 하면 나중에라도 되돌려 받을 기회를 가질 수 있게 된다.
연애관계가 깨지게 되면, 내 소중한 것을 다 줘 버렸기 때문에 그 상대방을 그냥 가도록 내버려 둘 수가 없다.
그래서 살인까지 저지르고 마는 경우가 발생하는 것이다.
이런 과정이 바로 투사적 동일시의 형태로 일어난다.
데카르트가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유명한 명제를 남겼다.
이때의 '나'는 절대 주체로서의 '나'이다.
절대 주체는 상대방을 객체로 본다.
근대적 주체와 객체는 서로 상응하는 관계도, 대등한 관계도 아니다.
이때 객체라는 말은 영어로, object로서 굉장히 보잘것없다는 뜻이다.
object라 함은, 말하자면, 우유가 식으면 위에 생기는 막과 같은 것이다.
그리하여 근대 유럽이 보는 세계라는 것은, 자신의 나라는 절대적 주체가 되고, 제3 국가들을 object로 보았다.
그러한 국제정세 속에서 생겨난 것이 바로 제국주의이다.
유럽 국가(주체)는 제3의 국가(object)를 식민지로 만들어 지배하는 것을 당연하다고 여겼다.
위의 텍스트에서 환자 C는 멘토인 미스터 J를 떠나보내면서 상당한 심리적 난관에 부딪혔다.
미스터 J가 떠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제일 먼저 한 것이 건물 지하실에 있는 사탕 자판기에 가서 캔디바 몇 개를 산 후 거의 한 입에 넣어 먹는 일이었다.
그때 속이 메스꺼림을 느꼈고 자신이 마치 쓰레기 같고 하찮은 존재가 된 느낌을 받았다.
이 상황을 캔디바로 비유하여 설명하자면, 두 사람의 관계는 마치 캔디와 그 껍질과도 같은 것이었다.
멘토인 Mr. J는 자신의 소중한 것을 Mr. J에게 다 주고 자신의 껍데기로 남고 말았다.
그렇지만 치료 상황에서는 관계 역전이 일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크게 의존해 온 아버지를 단절한 후, 자신의 존재의 미약함, Mr. J가 자신을 버리고 떠나가자 캔디의 껍질같이 쓰레기가 되어 버린 자신의 나약함을 치료사에게 투사하였다.
그래서 환자 C 자신은 캔디가 되고 치료사를 캔디 껍질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환자 C 자신은 치료사 위에서 군림하는 위치에서 치료사를 구석으로 몰아가는 쾌감을 느꼈다.
환자 C가 치료사에게 그런 식으로 관계를 역전시키지 않았다면, 아버지와의 부성적 전이가 치료사와의 관계에서 나타나게 되면서 아버지의 간섭하는 언어 속에 녹아들어 가듯이 자칫 치료사의 언어에 녹아들어 갔을 것이다.
거기에는 강력한 거세 불안이 내포되어 있었다.
Mr. J는 왜 갑자기 환자 C를 떠나갔는가?
이 질문에 답변이 될 만한 것은 결국 자신을 사로잡는 아버지와의 갈등을 직면하지 못하고 일방적으로 단절한 데서 발견될 수 있다.
환자 C가 아버지를 일방적으로 밀어냈기 때문에, 직장에서 아버지의 위치에 있는 것으로 보이는 멘토 Mr. J도 일방적으로 환자 C를 떠났다.
환자 C가 늘 안고 있던 거세 불안이 Mr. J에 의해 나타나게 된 것이다.
Mr. J에 의해 일방적으로 거세를 당하자, C는 캔디의 껍질처럼 자신의 존재도 쓰레기로 전락했음을 느꼈다.
그래서 꾼 꿈이 이발소에서 머리카락이 너무 잘려 나가는 것에 대한 고통에 관한 것이었다.
잘려나간 머리카락은 삼손의 머리카락을 연상케 했다.
꿈속에서 잘려나간 머리카락을 보면서 삼손의 머리키락을 연상할 수 있었다는 것은, 그 연상 안에 부성적 전이를 통해 일어난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는 희망도 가질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도 담고 있다.
삼손은 머리카락이 다 자랄 때까지 묵묵히 연자 맷돌을 돌리면서 기다렸다.
환자 C의 부성적 전이를 일으킨 투사적 동일시에 대한 치료는 바로 환자 C가 침묵하면서 일어났다.
환자 C가 침묵하자 치료사가 그 침묵 속에서 말할 수 있는 공간을 찾게 되고, 동시에 치료사는 말할 수 있는 능력을 회복하면서 자신의 약함에서 벗어나게 되었다.
치료사의 약함이 회복되자 환자 C 안에서 치료가 일어났다.
이렇게 볼 때 치료라는 것은, 내담자 안에 있는 치료자를 회복하고 발달시키는 것이다.
그동안 아버지와 환자 C, 환자 C와 치료사, 환자 C와 Mr. J 사이에 경계가 모호해짐으로 인해 발생한 투사적 동일시 상황에서 벗어나 각자의 경계를 분명하게 되면서 각자의 자리를 서 있을 수 있게 되었다.
더 이상 아무도 타인의 밥이 될 필요가 없게 되었다.
각자가 자기 자리를 잡아가게 되면서 부성적 전이를 일으킬 필요가 없게 되었고, 상대방의 존재를 삼키거나 잘라내거나 몰아갈 필요도 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