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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는 사람과 싸우지 말아야 하는 이유, 투사적 동일시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와 싸우지 말라

운전할 때 싸우면 안 된다


내가 운전할 때 한 가지 원칙이 있다.

그것은 운전 중에는 절대 싸우지 말라는 것이다. 

옆에 지나가는 차량 운전자가 아무리 몰상식한 운전을 하거나, 엉뚱한 일로 시비를 걸어 와도 절대 화를 내며 싸우지 않는다는 원칙을 내게는 있다.

왜 싸우면 안되느냐 하면, 그렇게 화를 내는 것은 다른 상황에서 화를 내는 것과 확연하게 다르기 때문이다. 

그런 기분은 운전하는 사람이라면 다 경험해 봤을 것이다. 


그것은 

첫째, 도로위에 두 운전자가 차를 세워놓고 짧은 시간 안에 감정을 다 표현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며,

둘째, 표현을 다 하지 못한 채 상대방과 헤어져야 하는 것 때문이다. 


그래서 싸워야 할 싸움을 다 싸우지 못해 분이 남아 있을 뿐만 아니라, 중요한 것은 상대방의 콤플렉스를 그 순간에 내가 다 받아 버린다. 


평소에 어떤 특정 대상과 갈등이 생기면, 신중하게 그 대상과 싸울 기회를 가질 수 있다.

신중한 싸움을 싸우지 못한다 할지라도 심기일전하여 마저 하지 못한 말을 다음 기회에라도 추가적으로 보충할 수도 있다.

모든 상황을 일일이 다 따져가면서 끝까지 싸워내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대상은 여전히 내 주변에 있기 때문에 다음에 싸울 수 있는 기회를 남겨둘 수도 있다. 


그렇지만 도로상에서 운전자 간에 짧은 시간 안에 싸우는 것이 전부라면 더 싸울 수 있는 기회는 없다. 

문제는, 싸우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다 싸우지 못한 것이 남아 있게 된다는 점이다.

더 큰 문제는, 싸우는 동안 상대방이 내면에 가지고 있는 콤플렉스를 내가 다 받아 버린다는 것이다.

나나 상대방이나 화를 낼 때 그 화가 올라오는 뿌리가 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상황에 맞게, 또는 그 갈등 상황에서의 내가 감당해야 할 몫만큼의 갈등을 화로 표현하지 못하고, 그 이상의 화를 낸다. 

누구나 그 화의 뿌리는 깊다. 

그 화의 근원을 따져 내려 가면, 자신이 인생을 살아 온 만큼이나 긴 역사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무의식 안에는 분노를 담고 있는 거대한 저수지가 있는데, 그 저수지 밑바닥에는 그동안 분노를 불러 일으켰던 수많은 사건들에 해당하는 바위들이 물을 받치고 있을 것이다. 

그 바위들이 바로 그 사람의 콤플렉스에 해당된다. 


그러한 콤플렉스는 마음의 주인이 화를 낼 기회를 틈타 함께 튀어나와 자신의 존재를 알리고자 하는 자동반응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싸움이 시작될 때 그 시발점에서는 그렇게 큰 원인이 아니었다해도, 싸우다 보면 점점 갈등의 규모가 커지는 이유는 바로 이 콤플렉스 때문이다. 


특히 부부 싸움을 보면 그런 경향이 짙다.

부부 간에 싸울 때는 절대 큰 주제로 싸우지 않는다. 

결혼한 사람이라면, 부부간에 매우 사소한 일이 발단이 된 싸움이 계속 진행되면서 그 규모가 한없이 커져 가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운전자 간의 싸움, 아는 사람들과의 싸움, 부부간의 싸움이 그렇게 큰 싸움을 번져 가는 것은 바로 투사적 동일시 때문이다. 

싸우다 보면, 나의 정당한 주장이 제대로 받아들여지기 보다는 갈수록 내가 억울해 지는 이유는 바로 상대방의 콤플렉스가 내게 넘어와서 나의 콤플렉스와 결합을 하게 되면서 겉잡을 수 없는 싸움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에게 투사할 때 그 상황에 맞는 것만 투사하는 것이 아니라, 어린 시절부터 쌓여 온 콤플렉스까지 투사하게 되면, 상대방도 똑같이 상황해결을 위한 싸움이 아니라 자신의 어린 시절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듯이 상대방이 꺼낸 만큼의 콤플렉스, 또는 그 이상의 콤플렉스를 끌어 올려 상대방에게 대응하려는 목적을 가지게 된다.


 전혀 다른 정서의 그림을 그린 화가


멜라니 클라인 학파의 어떤 학자는 '자신과 전혀 다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린 화가'에 대해 이야기한 적이 있다. 

이 화가는 운전을 하던 중 옆을 지나가던 운전자와 말다툼을 벌였다. 

그렇게 싸우고 나서 화실에 도착한 화가는 자신의 원래 화풍과는 전혀 다른 성향의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옆에 있던 운전기사가 술에 취해 있었고, 그가 그린 그림은 자신의 화풍으로 그린 것이 아니라 옆에 있던 운전기사의 정신세계를 투사적으로 동일시하여 그린 그림이었다고 한다. 

옆 운전자는 운전할 당시, 술에 취해 있었고 횡설수설하던 상황이었다.

이 화가는 그 운전자의 잠재된 정신성을 그대로 받아서 그림에 그대로 반영되었다. 


투사적 동일시는 멜라니 클라인이 제안한 개념으로, 한 사람이 자신의 감정이나 상태를 다른 사람에게 투사하여, 그 사람이 자신과 동일한 감정이나 상태를 경험하도록 만드는 정신적 과정을 설명한다. 

이 과정을 통해 개인은 자신의 불편한 감정을 외부화하고, 동시에 타인과의 깊은 감정적 교류를 경험할 수 있다.

위의 예시에서, 화가는 분노와 같은 감정을 옆 차량의 운전자에게 투사하였지만, 그 운전자 역시 이 화가에게 투사한 감정이 있다.

화가는 그 운전자가 투사한 감정과 동일시 되어 화실에서 그림을 그릴 때 자신의 화풍과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려냈던 것이다.

이는 클라인 학파의 관점에서 볼 때, 내부적 갈등과 외부 세계와의 상호작용이 어떻게 창조적 표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예시로 해석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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