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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상담사의 투사적 동일시

나는 왜 자꾸 이런 일에 말려들지?

D에게 일어나는 두 가지 패턴


2년 전에 만났던 D는 유능한 상담자였다.

D는 보다 나은 상담을 하기 위해 내게 교육분석을 받았던 적이 있다.

상담자로서 D는 내담자에게 모성적 공간을 넉넉하게 제공해 준다는 면에서 남다르게 넓은 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내담자들은 D에게 상담받는 것을 매우 좋아한다.


상담 종료 기념 선물

상담이 끝날 때 내담자들은 그냥 끝내도 되지만 떡 서너 팩이나 초콜릿 서너 판 정도를 사 와서 감사인사를 한다.

그런데 D는 이를 부담스럽게 여겨 자신의 주머니로 넣는 것이 아니라, 센터직원들 먹으라고 사무장에게 가져다준다.

그러면 사무장은 직원들에게 공평하게 나눠준다.

그런 일이 한두 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몇 년째 지속되어 온 일이다.


그런데 D가 나중에 상담센터로부터 들은 이야기는


"D가 내담자를 의존적으로 만들어서 선물을 사 오는 것이다."


라는 피드백이었다.

D로서는 기가 막힌 일이었다.

만일 내담자가 상담을 받는 중에 선물을 사 온다면 맞는 말일 수도 있지만, 마지막 인사로 가지고 온, 마음을 담은 선물이었는데, 그 선물을 함께 나눠 먹었던 사람들이 그런 말들을 서로 귀속말로 주고받아 온 것이었다.


내담자가 몰려오는 패턴

상담을 종료한 내담자들은 선물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다니는 직장의 동료들에게 자랑하고 소개하게 되면서, 한 사람을 종료할 때마다 10명 이상의 내담자들이 몰려왔다.

그런데 정작 D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코로나 사태가 발발하기 시작하면서 D가 속한 상담실은 기존 내담자들 말고는 한 사람도 새로 찾아오는 사람이 없었다.

D는 자신이 내담자로 유지해 오던 사람의 상담을 종결하면서 위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다.

마지막 상담 때 초콜릿 네 팩을 사가지고 왔다.

D는 센터 사무장에게 맡겨 직원들에게 나눠주도록 했다.

그리고 공무원인 내담자가 주변 공무원들에게 D에게 받았던 상담을 소개하면서 동료들 뿐 아니라, 그들의 가족까지 상담실을 찾아와 상담을 받았다.


D는 이러한 사실을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무장이 사직을 하면서 D에게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함께 식사를 하는 중에 D는 사무장으로부터 충격적인 사실을 듣게 되었다.

그동안 D의 상담한 내담자들이 소개해서 온 내담자가 70명은 족히 넘었지만, 상부의 지시로 다른 상담사들에게 다 나눠주었으며, 자신은 사무장으로서 정작 망해가는 상담실을 살린 공로에 대해 마땅히 감사해야 할 D에게는 한 건도 주지 못해 양심을 가책을 받아 왔다고 고백했다.


그래서 촘촘히 살펴본 결과, D 자신은 겨우 세 건의 상담을 하고 있고, 나머지 상담사는 10건, 15건씩 하고 있는데, 모두 D의 내담자들이 소개한 케이스들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10명의 상담자와 센터장, 사무장은 바로 D 덕분에 잘 먹고 잘 살고 있었지만, 정작 D 자신은 늘 궁핍한 상태에서 허덕이고 있는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D는 내게 억울함을 하소연하면서,


'나는 왜 자꾸 이런 일에 휘말리게 되는 거죠?'


라고 울부짖었다.


D에게 일어나는 투사적 동일시


D에게 일어나는 일의 뿌리는 어머니와의 관계에 있다.

어머니는 D가 능력 있다고 생각해서 손에 들고 있는 것은 항상 다른 형제들에게 나눠 주셨다.

어린 시절의 D는 자신이 보는 앞에서 어머니가 밖에서 가져온 각종 전리품들을 형제들에게 나눠주는 것을 보고 구경만 하고 있어던 적이 많았다.


D는 분석 시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어머니와 관계에서 일어난 바로 그 일은 제 일생 동안 너무나도 자주 일어났던 것 같아요."


그래서 D는 남에게 주는 것은 잘하는 데 남으로부터 받는 것은 거절하기 바쁘다.

내담자들이 마지막 선물로 그리 크지 않은 선물조차 받는 것을 힘들어했던 것은 바로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제대로 받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말하자면, D가 어릴 때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일어났던 일이 투사적 동일시의 형태로 자신의 삶 속 여기저기에서 마구 일어났던 것이다.


D는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친구집 청소에 밀린 설거지에 도와줄 것을 찾아 일하느라 친구들과 이야기할 시간을 별로 가진 적이 없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은 D집에 놀러 와도 함께 밥만 먹었지 설거지 한번 한 적이 없다.

친구들은 내가 오는 날이면 일부러 청소도 안 하고 설거지 거리를 남겨 두고 있지 않나 하는 의심을 남길 정도였다.


이런 일은 바로 사촌여동생에게서 일어났다.

남편이 무능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손가락 빨고 있던 사촌여동생에게 D가 장사 밑천 다 대줄 뿐 아니라 어떻게 하면 장사를 잘하게 되는지도 다 가르쳐 줘서 지금은 수십억 부자가 되었다.

그러나 현재 사촌여동생은 지금까지 D에게 고맙다는 말 한마디 없었고, 오히려 자기가 능력이 출중해서 성공할 수 있었다고 자랑하고 다녔다.


분석 후 일어난 일


D가 내게 분석을 받으러 오기 전에 상담센터에 위의 상황에 대한 자신의 억울함을 하소연하였다.

센터장은 D의 입장을 진지하게 들었다.

센터장은 D의 억울함은 전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는 듯이 매우 생소하게 그리고 진실되게 받아들여진 느낌이었다고 한다.


분석에 임한 D는 내게도 이런저런 억울함에 대해 호소했다.

그때 나는 위의 해석,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비롯되는 투사적 동일시에 대한 해석을 했다.

D는 센터에서의 일 뿐 아니라, 자신의 주변에서 일어나는 억울함의 상황의 원인을 자각하게 되었다.


분석 다음날, 센터에서 전화가 왔다.

센터장은 D에게 진지하게 사과하였고, 앞으로 D가 그런 억울함을 당하지 않도록 상담케이스를 골고루 분배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런 과정을 지켜보면서 나는 다음의 성경구절이 떠올랐다.


"무엇이든지 너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리리라" (마 18:18)


나는 D에게 센터의 일과 어머니의 일을 다음과 같이 연결해 주었다.


센터장은 D를 차별하기 위해 의도적으로 상담케이스를 그렇게 분배한 것은 아니었다.

센터장은 "D는 상담 능력이 탁월해서 어렵고 힘든 케이스를 소화해 낼 수 있는 사람이다. 그래서 쉬운 상담케이스는 다른 사람에게 분배하고 어려운 케이스는 D에게 줘야 되겠다."라고 생각한 것이다.

센터의 태도는 어릴 때 D에 대한 어머니의 태도와 같다.

어머니는 'D는 능력이 있으니 다른 형제들에게 많이 나눠줘야 되겠다'고 생각하면서 어머니가 줄 수 있는 많은 혜택과 배려를 D에게 배제해 왔다.


나는 D에게 이렇게 당부했다.


"당분간 남에게 필요이상으로 베풀지 말라. 지금까지 베푸는 만큼 되돌아오는 것은 없었고 계속 억울함만 되돌아왔다. 이제는 주는 것보다 받는 것에 익숙하도록 노력하라. 주고받는 것이 원활해지면, 내가 많이 베풀 때, 그만큼 되돌아올 것이다. 그때 모든 억울함이 해소될 것이다."


D는 그동안 힘겹게 풀어 온 인간관계에 또 한 번 큰 자각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 이후 D는 어디서든 선물을 받으면 잘 챙겨서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습관도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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