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세 종류의 가정(3)-1 : 아버지를 극복한 아들

심리적 부친살해

남자는 두 번 꺾여야 한다


드라마 [아사달의 연대기]를 보면, 남자의 싸움은 아버지와 아들 간의 싸움이다. 

아버지는 아들에 의해 꺾여야 한다.

아들에 의해 한번 꺾인 아버지는 중년기 후반에 아내에게 꺾인다.

두 번의 꺾임을 겪어야 남자는 그때부터 철들기 시작한다.


사춘기를 넘어가는 아들이 아버지를 꺾고자 하는 것은  자신의 존재를 왜곡하는 아버지의 힘을 꺾는 것이다. 

한때는 아버지가 자신의 삶의 모델이자 동일시의 대상이었지만,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청소년기에는 자신의 아버지를 넘어서야 마땅한 것이다.

그동안 가정 내에서 지존의 자리를 장악하고 있던 아버지는 아들의 도전에 의해 그동안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자기 성찰의 기회를 가지게 된다.

아버지는 아들의 도전을 회피하지 않고, 또한 아버지의 권위로 누르지 않고 동등한 수준에서 맞서 싸워줘야 한다.

아버지가 왜 아들과 동등한 수준이 되어야 하느냐 하면, 아들이 높은 위치에 있는 아버지와 끝까지 싸워낼 수 있도록 도와주기 위해서이다. 

많은 아버지들이 이를 용납하지 않고 아버지의 권위로 눌러 버린다.

다시는 도전하지 못하게...


아들은 아버지를 이겨내는 만큼 어른이 되어 간다.

청소년기 ~ 청년기 아들이 아버지를 극복하지 못하면, 다른 기회를 찾게 된다. 

여기저기서 아버지와 같은 사람과 맞붙어 싸우느라 바빠진다.

사람에 따라서는 아버지 같은 권위자로 싸우는 데 일생을 바치는 사람도 있다.

청소년기~청년기에 아버지와만 제대로 싸우면 한 번의 싸움으로 끝나는 것인데, 그 과정을 겪어내지 못하는 사람은 평생을 권위자와의 전쟁터로 만들며 분노의 사람으로 살아가게 된다.


아버지가 아무리 사회적으로 가정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아들은 아버지를 이겨내야 한다.

아동기에는 아버지가 5미터 거인으로 완벽해 보이는 거대한 존재였지만,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아버지는 별 것이 없어 보이는 보잘것없는 존재라는 것을 인식하기 시작한다.

아버지에 대한 환상이 깨지는 만큼 아버지와 아들 사이에 현실적인 관계가 형성되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위해 아들은 심리적인 부친살해를 한다.


아들에게 져주지 못하는 아버지는 아들이 아버지 자리를 찬탈한다고 생각한다.

아들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를 극복해야 '내가 진정한 아버지가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과정을 겪어낸 아들은 아버지보다 나은 아버지가 된다. 

 

꺾이지 않은 아버지가 나이가 70이 되면 혼자 고립되어 외로움에 사무치게 된다.

세상에도 가정에도 내 편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을 발견한다.

특히 사회생활을 화려하게 한 사람일수록 은퇴 후 세상에 의해 그리고 가족들에 의해 소외되는 자신의 모습을 용납할 수 없어 자살까지 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철학, 부친살해의 역사


영조와 사도세자의 관계에서 잘못된 것은 아버지가 먼저 죽어야 마땅한데, 아버지가 아들을 죽인 것이다. 

아들이 진정한 왕이 되려면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

말이 좀 심하다 싶지만, 아버지를 죽여야 한다는 말은 심리적인 부친 살해를 의미한다.


서양철학의 역사는 부친살해의 역사다.

플라톤은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을 무너뜨리면서, 스스로 <부친살해>를 행했다고 [소피스테스]에서 고백하고 있다.

그 이후 <부친살해>는 철학의 역사가 된다.

플라톤은 그의 제자 아리스토텔레스에 의해 부친살해 당한다.

즉 플라톤의 이론을 파하고 자기 철학을 세웠다는 말이다. 

플라톤은 자기가 행한 대로 되돌려 받은 셈이다.


그래서 철학자들은 결혼하기를 두려워하고, 아들 낳기를 싫어한다.

스승이 가장 아끼는 제자는 결국 자기 스승을 부친살해하여 스승의 이론을 더욱 발전시킨다. 

그래서 키에르케고르나 니체는 결혼을 하지 않았다. 


  이도(세종), 이방원(태종)을 부친살해하다





[뿌리 깊은 나무] 역당의 노비라는 이유로 어린아이를 죽이려는 태종과 그 앞을 막아선 세종 | 2화https://www.youtube.com/watch?v=UtNrLVXtEA0&t=1159s

 

조선왕조가 세워졌을 때 구조적으로 왕권은 그렇게 탄탄하지 못했다. 

정도전이 지금의 헌법과도 같은 [경국대전]을 쓰면서 조선왕조의 권력구조를 위한 큰 그림을 그렸다. 

그 구조는 정치는 신하가 하고 임금은 윤허만 하도록 만들었다. 

역성혁명을 일으키면서 정도전이 쥔 권력은 임금의 권력보다 컸던 것 같다. 

이러한 이원집정부제 같은, 분절된 권력 구조 안에서 칼에 피가 마른 적이 없는 태종 이방원은 신하들의 권력을 약화시키기 위해 당대의 외척과 선위 한 아들 이도의 외척을 죽였다.  

태종은 500년 조선왕조 안에서도 잘 찾아볼 수 없는 미묘한 권력 구조를 만들어냈다. 

살아있는 왕이 아들에게 임금의 자리를 선위하고 자신은 상왕으로 물러난 것이다. 

아들의 왕권을 위해 그러나 곱게 물러난 것이 아니라 외교 군사 등 핵심 권력을 태종이 다 쥐고 왕이 할 수 있는 것은 나라 관리만 잘하라는 것이었다. 

강력한 권력을 거머쥔 태종은 아들을 왕으로 세워놓고 왕을 허수아비로 만들었다.

명목상 아들 이도의 왕권을 세워준다는 명목으로, 태종은 이도의 장인 심온과 그 형제까지 죽이려 들었다. 장인인 심온이 중국사신으로 다녀오는 동안 그의 동생 심정을 추포 하여 역적으로 몰아갔다. 

심온이 사신길에서 돌아오면 곧 역적으로 몰려 죽게 될 판이었다. 

그때 중전이 왕을 찾았을 때 왕은 마방진(지금의 스쿠도와 유사)을 풀고 있었다. 

태종이 이런 살해극을 벌일 때마다 이도는 마방진을 푸는 방에 들어가 복잡한 수수께끼를 푸는 일에 골몰했다. 

궁중 내에서 왕의 외척을 잡아 죽이는 참극이 벌어질 때, 왕이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었다.   


중전인 소헌왕후의 간곡한 부탁, 

     ”우리 아버지를 제발 살려주세요 “


라는 청원에 왕은 


      ”나는 살리지 못합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합니다. 미안합니다. “


라는 답변할 수밖에 없었다.  


심온이 사신길에서 돌아오는 길에 모함이 일어나고 심온은 역적이 된다. 


왕은 심온을 살리고자 ‘돌아오지 말라’는 밀지를 보냈으나, 태종은 왕의 밀지를 가로채 ‘거병하여 국본을 바로 세워라’는 내용으로 바꿔 역적으로 몰아간다. 


이를 안 왕은 몸을 바르르 떨며 뭔가를 다짐한다. 

심온의 집을 군사들이 들이닥쳐 쑥대밭으로 만드는 중 도망가는 노비 아이를 붙잡아 죽이려 하는 태종에게 이도는 당당하게 맞선다.     


태종: 역당의 노비이고 파옥을 하였으며 나의 병사를 공격한 노비의 목을 벨 것이다. (신하들에게) 어서!

신하들 : 네


이도 : 한 발짝도 움직이지 마라. 


태종 : 뭐라? (신하를 향해) 어서 그 아이를 데려와 즉시 참하라. 왕명이니라. 


이도 : (태종을 향하여) 왕을 참칭 하지 말라. 상왕은 왕이 아니다. 내가 조선의 임금이다.(몸을 떨고 눈에는 눈이 젖어 있다) 


태종 ; 이도! 네 놈이 미친 게로구나. 


이도 : 외숙들이 죽던 날 밤. 모후께서 목놓아 우시던 그날 밤. 저는 열한 살이었습니다. 제가 마방진을 시작한 것이 그날부터입니다. 삼방진을 풀었었죠. 아바마마께서 살육을 하실 때마다 저는 그 방으로 달려가 마방진을 풀었습니다. 하여, 어제(중전의 아버지 심온을 체포한 날)는 33 방진을 풀고 있었습니다. 


태종 : 너는 도망만 치는 놈이니까. 


이도 ; 이해해 보려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를. 저는 아바마마께서 조선의 근간을 만든 정도전과는 다른 이상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자의 뜻과는 다른 조선을 만들기 위해 그리하셨다 생각했습니다. 한데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그자를 죽인 이유는 오직 아버지만이 홀로 권력을 쥐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는 정도전이 만든 조선을 그대로 이어가셨사옵니다. 


태종 : 그자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 내가 정몽주를 죽였고, 내가 그자 대신 명에 볼모로 갔고, 내가 고려왕을 쳐내고 아바마마를 왕위에 올렸어. 그자는 정몽주를 죽이고 싶어 해도 명분 따위에 휘둘려 하지 못했어. 그자들은 더러운 물에 손을 담그려 하지 않았어. 내가 세운 조선이다. 내가 더러운 물에 손을 담그고 세운 나의 조선이야. 내가 마땅히 가져야 마땅한 권력이다. 그것이 나 이방원의 대의다. 이방원의 대의가 곧 조선의 대의니라.


이도 : 나의 조선은 다릅니다. 다를 것입니다. 


태종 : 어찌 다를 것인가? 어떻게 다르게 할 것인가? 답을 해 보거라. 너의 조선이라 했다. 너의 조선은 어떤 조선이냐? 답을 하고 방도를 말해보거라. (답변을 못하고 망설이는 이도의 모습을 보며 신하들에게) 뭣들 하는 게야. 그 아이 목을 가져오너라. 


이도 : 저도 베십시오. 패역한 역당의 노비를 비호했고, 삼봉의 이름을 입에 올려 아바마마의 권력에 도전했으

니, 베시지요. 그 아이를 죽이려거든, 나의 외숙들과 동지들과 삼촌들을 죽였듯이, 저도 이 자리에서 죽이시지요. 


태종 ; 으하하하하... 네 놈이 감히 뉘 앞에서 허세를 부리는 것이냐? 네가 베라면 못 벨 성싶으냐? (칼을 쥐며) 소원이라면 베어주마. (긴 칼을 이도의 목에 댄다.) 


이도 : 무휼~!! 내가 누군가에게 살해당한다면, 너는 즉시 임금을 시해한 자의 목을 쳐야 할 것이다. 알겠느냐? 사사로이는 아버지이나... 무휼, 넌 공의로서, 대의로서 너의 직분을 다하라. 이것이 아무것도 할 수 없던 왕, 이도가 마지막으로 내리는 명이니라. 실수치 말거라. (태종에게) 아버님께서 무휼을 제게 주시면서 일러주셨던 말씀을 기억하십니까? ‘능히 혼자서 백인의 무사를 대적할 조선 제일 검이니라’라고 하셨죠.   


무휼 : (한참 동안 머릿속에서 상황정리를 끝낸 후, 칼을 뽑는다.) 무사 무휼! 한 치의 실수도 없이 명을 수행할 것입니다. 


태종 ; (이도를 보며) 네가 감당할 수 있겠느냐?(칼을 거둬들이며 돌아선다. 그리고 칼을 버리며 그 자리를 떠난다.)     

이 정도면 확실한 ‘부친살해’이다. 이도는 ‘부친살해’라는 용어를 꽉 찰뿐 아니라 넘쳐나는 내용으로 채웠다.    

  

이도의 부친살해의 의미


이도의 심리적 부친살해는 이렇게 이루어졌다. 이도는 무지막지한 아버지를 이렇게 넘어섰다. 이도는 이렇게 어른이 되었고, 자기 자신이 되었을 뿐 아니라, 노비 백성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걸고 백성 사랑이라는 진정성을 지켜 낸 아버지 같은 임금이 되었다. 그는 이렇게 자신의 아버지와는 다른 가치를 추구하는 왕이 되었다. 아버지의 가치는 칼에 피가 마를 날이 없을 정도의 절대권력을 추구하는 것이었지만, 이도는 노비 아이의 생명을 자신의 생명과 맞바꾸면서까지 부친살해를 감행해 당대로부터 현대까지 이르러 찬란한 문화 대국을 열 수 있었다.

아버지를 거역하지 못하며, 자기 존재로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어 마방진을 세 칸에서 시작하여 서른세 칸까지 발전시킨 이도나 자기 존재로 살아가 본 적이 없어 부모가 시키는 대로 학원에 처박혀 시험 잘 치는 기계로 전락한 오늘날의 청소년들이나 무엇이 다르겠는가? 그런 자녀는 부모에게 존재론적으로 예속화되어 부모의 시선이 움직이는 방향을 짐작하며 따를 뿐, 자기 스스로 세운 목표도 없고, 이상과 가치 또는 자기 기준을 세워 본 적이 없는 자녀는 아닌가? 이런 자녀는 자신의 고유한 욕망이 뭔지 조차 알지 못한 채 부모의 욕망을 실현하기에 급급, 부모의 기쁨을 위해 살아가는 허수아비 같은 존재일 뿐이다. 


오늘날 우리가 아는 세종대왕이 탄생하는 데에는 이러한 부친살해 극복과정이 있어 가능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사람이 좋은 삶을 살기 위해서는 먼저 좋은 부모를 만나 좋은 양육을 받는 것이 중요하지만,  '나만의 고유한 삶'을 살기 위해서는 그렇게 좋은 양육환경을 제공해 준 부모를 넘어서야 하는 것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세 부류의 가정(2)-2: 유교적 효가 지배적인 가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