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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부류의 가정(2)-2: 유교적 효가 지배적인 가정

가족관계로부터 독립과 분화

                ( 이 글은 [세 부류의 가정 (2)-1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느 노인의 독립과 분화


50대에 아내가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B 씨는 홀로 남겨진 후 여러 가지 어려움에 직면했다. 

아내가 세상을 떠나기 전에는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고 가족들의 생활을 원활하게 관리하며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해왔다. 

반면에 B 씨는 살아오면서 책임감을 가져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앞으로 다가올 세상에 대한 준비가 부족했다.


아내의 부재 초기, B 씨는 아들의 집에서 위안을 얻으며 그곳에 자주 머물렀다. 

하지만 머문지 며칠이 지나면서 그와 아들, 며느리 사이에 긴장이 고조되기 시작했다. 

장기간의 체류는 자녀 가족들에게 부담이 된 결과, 아들-며느리 간에 잦은 충돌과 다툼이 이어졌다.


자녀에게 의존하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든 B 씨는 자신의 삶을 이모양 저모양으로 돌봐줄 사람을 찾기 위해 여러 여성을 만나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자신의 마음을 사로잡는 어떤 여성이 그의 관심을 끌었고, 그는 함께 살자고 제안했다. 

그러나 그녀는 신뢰할 수 없는 여성으로 판명되었고, 여러 가지 방법으로 B 씨를 속이고 많은 돈을 빼돌려 도망쳤다.

이런 관계실패는 한번으로 끝나지 못했고, 두번째 실패까지 겪어야 했다. 


이러한 불행한 경험은 B 씨에게 경각심을 불러일으켰고, 그는 스스로 독립적으로 집안일을 관리하는 방법을 터득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결연한 의지를 가지고 자급자족의 여정을 시작했다. 

그는 인터넷과 유튜브를 뒤져가며 각종 요리, 청소, 빨래, 은행 업무 처리, 금전 지출 관리 방법, 시간관리 등을 배우기 시작했다.


몇 달이 지나면서 B 씨는 집안과 개인 관리가 점점 더 체계적으로 정리되기 시작했다. 

옷도 깔끔하게 걸 수 있게 되었고, 깔끔한 외모를 유지하는 데 자부심을 갖게 되었다. 

점차 다른 사람에게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를 돌보고 가정을 꾸려나갈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겼다.


처음에는 B 씨의 변화가 타인의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높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품위를 잃지 않았고, 점차 지역사회에서 주목받는 사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어느 날 그가 살던 빌라의 부녀회 회장이 그를 찾아왔다.

 B 씨의 변화된 모습에 감명을 받은 그녀는 빌라 전체를 관리하는 데 도움을 요청했고, 그의 수고에 대한 월급형태의 보상을 제공했다. 

몇 달 후, 이웃 빌라의 부녀회 회장도 비슷한 제안을 하며 그에게 다가왔다.


이제 B 씨는 더 이상 평범한 노인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영위하는 법을 터득한 현명한 노인, 지혜자가 되었다. 

한때 불평만 늘어놓던 며느리도 이제는 그의 자기 계발 여정에 존경과 감탄을 늘어놓게 되었다. 

역경을 극복하고 삶을 재건한 B 씨의 능력은 개인적인 성취감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존경까지 얻었다.


일찍이 평생의 동반자를 잃은 상황에서 B 씨의 이야기는 인간 정신의 회복탄력성을 보여주는 증거이다. 

변화를 받아들이고 도전에 정면으로 맞서면서 그는 다른 사람들의 롤모델이 되었다. 

그는 70세가 넘은 나이에 역경에 맞서 자신을 재창조하고 힘을 찾는 데 언제 시작해도 결코 늦지 않았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 냈다.


더 이상 아들과 며느리로부터 효행을 기대하지 않게 되었고, 자신의 삶을 자기 규모에 맞게 꾸려가는 법을 배운 것이다.

한때 아들과 며느리 앞에서 입버릇처럼 하던 말,


    "나는 시골 가서 살란다."

    "조용히 산에 들어가서 자연인으로 살란다."


이런 말은 더 이상 할 필요가 없게 되었다.

B 씨는 아들과 며느리로부터 철저하게 독립되었을 뿐 아니라, 그 독립은 분화된 삶으로 안정감을 찾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유교적 효와 형제 우애에 묶인 어느 여성 


    분화되지 못한 가족이야기

지금 이야기하는 사례는 유교적 효가 강요되어 분화가 불가능했던 집안의 이야기이다. 


L 은 30대 초반의 미혼 여성이자, 성공적인 증권투자 상담사이다.


L 은 아버지의 권유로 '청년 안심주택' 분양을 신청하게 되었고 당첨까지 되었다.

약 4억의 분양금을 입금하는 과정에서 아버지가 1억 5천을 내고, L 본인이 1억 5천을 냈다.

아버지는 처음부터 L과 분양금을 반반씩 부담하고 몇 년 살다가 팔아서 반반 나누자고 했다. 

 내년 3월 입주를 앞두고 1억 원을 대출받아서 잔금을 치러야 한다.


입주할 때는 부모님과 직장 다니는 미혼 남동생이 함께 들어와 살기로 했다.

1억 원 대출에 부담을 느껴 아버지에게 도움을 요청을 하자, 남동생이 나섰다.


  "이 아파트가 누나 이름으로 분양을 받았으면 누나가 알아서 해결해야지 왜 아버지에게 자꾸 부담을 주느냐?"


남동생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혹시 자신에게도 대출의 부담이 돌아올까 봐 미리 선수를 친 것으로 보인다.

말하자면, 남동생은 그저 숟가락 하나만 더 얹겠다는 심산이다.


이 남동생은 어릴 때부터 부모님으로부터 편애를 받아 L 은 늘 찬밥신세였다.

자라면서 남동생은 동생이 아니라 오빠행세를 했다. 

이런 편애 관계로 자란 경우, 양육과정에서 동생은 대부분의 혜택을 독차지하게 되고, 책임으로 돌아오는 부분은 딸에게 지워지게 되어 있다. 

L 은 어릴 때부터 집안의 온갖 궂은일들을 도맡아 해 왔다.

그래서 그녀는 마치 그 집안을 위해 희생하는 하인이나 무술이, 좀 심하게 표현하면 식모 같은 근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30년 넘게 이런 가족관계로 살았으니 얼마나 억울한 일이 많았을 것이며, 이런저런 복잡한 상황 속에서 마음에 정리되지 않은 채 얼마나 원통한 삶을 살았겠는가?

그녀의 그러한 마음 상태는 자신이 독립하여 혼자 사는 집의 살림살이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자기가 사는 그리 넓지도 않은 집을 온통 쓰레기장으로 만들고 정리를 할 수 없게 되었다.

이런 사정을 아는 친구들이 날을 잡아 쳐들어와서는 온 집을 뒤집어 놓을 정도로 잘 정리해 주고 가지만, 그 후 보름만 지나면 다시 쓰레기통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잠을 잘 때는 이불을 깔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방바닥에 늘려 있는 짐들을 발로 밀어낸 후 이불을 깔고 잠을 잔다.

L은 휴일이 되어도 집을 치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Must에서 벗어나기

L은 어릴 때부터 자녀로서 누릴 수 있는 권리보다는  부모로부터 강요된 의무가 많았다.

권리는 남동생의 것이었고, 남동생이 져야 할 의무까지 L의 몫이 되어 왔다.

지금 아파트를 분양받고 입주하는 과정에서도 어릴 때부터 있어 온 두 사람의 패턴이 그대로 드러났다.

L은  그리 많지 않은 나이에 아파트를 분양받은 후 엄청난 부담을 안고 입주를 앞두고 있다,

이 아파트에 입주하면 연로한 부모님도 모시고 살아야 하고 남동생까지 챙겨야 하는 부담을 안고 살게 생겼다. 

그동안 독립적으로 살았다고 생각해 왔지만, 이제 온 가족이 다시 합쳐지면서 L은 한 집안의 가장이 되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빠져 들고 있는 것이다. 


L 은 어릴 때부터 Must(의무)가 많았고, 남동생은 May(권리가 많음)로 살았다. 

May로 사는(현실성 없음의 삶)  남동생이 살아내지 못하는 삶은 항상 누나인 L의 몫으로 돌아왔다.

지금도 똑같은 현상이 일어나는 것으로 볼 때, 이것은 남매 관계에서 일정한 패턴이 되어 버렸다. 

남동생이 누나의 아파트에 들어와 숟가락만 얹으면 되는 삶은 부모의 입장에서도 당연하게 받아들여지고 있고, L  본인도 마땅히 감당해야 하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L이 어릴 때부터 지고 살아온 Must의 덕목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으니 이런 상황을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 가족은 유교적 가족애에 매몰되어 독립과 분화를 이루지 못한 것이다.     

L로서는 어릴 때부터 누적된 가족관계 얽힘의 일이기 때문에 하나하나 풀어가기란 너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입주를 몇 달 앞두고 있다는 것이다. 

이대로 입주를 하면 지금까지의 Must의 패턴과 남동생의 may의 패턴이 더욱 강화될 것이며, 연로한 부모님의 때 이르게 부양해야 하는 must까지 안고 살아가게 되었다.

만일 이러한 가족형태로 함께 입주하여 살게 되면, L의 must는 더욱 증폭되고, 지금까지의 관계의 얽힘은 더욱 심화될 전망이다. 


         알렉산더 대왕의 실타래 풀기

L이 가족과의 관계에서 유교적 도리가 강요되는 얽힘이 얼마나 복잡하고 심각한가 하는 것은 자신이 사는 좁은 집을 항상 치우지 못하고 늘 쓰레기장처럼 지내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그 쓰레기장 같은 집이 그녀의 무의식 세계를 현상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복잡하고 심각한 문제를 심리적으로 풀어가는 일이 몇 달 남겨두지 않은 입주일까지 도무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나는 비상조치를 취해야 했다. 


L에게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를 했다.

알렉산더 대왕이 정복전쟁을 떠날 때, 어느 예언자가 복잡하게 얽힌 실타래를 보여주며 수수께끼를 풀라 한다.


  "이 실타래를 단숨에 푸는 자가 있다면, 그는 세계를 정복할 것이다."


알렉산더 대왕은 칼집에서 칼을 빼들고 그 실타래를 두 동강이 나도록 절반을 잘라버렸다.

실타래가 너무 쉽게 풀려 버린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L이 복잡하게 얽혀 온 가족관계의 실타래를 풀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아버지가 투자한 1억 5천만 원에 대해서는 전세 계약금으로 전환하여 나중에 집을 팔 때 그 금액 그대로 되돌려 드리면 된다. 숟가락 하나 더 얹으면 된다고 생각하는 남동생에 대해서는 남동생 명의로 지금 남은 1억 원에 대해 대출을 받아서 잔금을 치르도록 한 후 남동생과도 그 금액으로 전세계약을 맺으라. 남동생이 거부하면 매월 월세를 받는 것으로 월세 게약을 하라. 그것마저 거부하면 남동생이 합류하는 것에 대해 거절하라"


나의 조치는 각자 독립적인 삶을 살던 가족이 다시 뭉쳐 하나의 가족으로 다시 살게 될 때 L 이 더 이상 must로 살지 않을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이 될 것이다. 

지금 가장 필요한 것은 가족 간의 분화된 삶인 것이다. 

이 방법은 분화된 가족으로 새 출발을 하게 만들 것이다. 


부모님이나 남동생은 L을 엄청나게 비난할 것이지만, 그 비난을 감당해야 유교적 가족개념에서 벗어나 분화된 삶을 살기 시작할 것이다. 

L의 희생에도 절대 고마워하지 않는 가족, 갈수록 Must의 의무감으로 짐 지우는 가족이다.

만일 이렇게 분화하지 못하면, 부모님께 대한 효도의 덕목과 남동생에 대한 우애의 강령만 늘어나게 되면서, 결과적으로 L은 자기 삶을 살지 못하고 말 것이다. 

  

다행히도 부모님은 차용증서를 쓰고 나중에 그 금액대로 되돌려 받는 방향으로 선회하셨다.

남동생과의 해결점은 아직 보이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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