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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종류의 가정(3)-2: 딸, 어머니를 극복하다

딸의 심리적 모친살해

어머니와 딸


남자는 부친살해를 해야 하고, 여자는 모친살해를 해야 한다.

물론 마마보이라면 아들도 모친살해를 해야 하고, 아버지의 딸이라면 부친살해를 해야 한다.


딸의 모친 살해에 대해 언급하는 정신분석학자는 멜라니 클라인(Melanie Klein)이다

클라인은 여아가 자신의 어머니에 대해 가지고 있는 시기심과 증오를 충분히 드러냄으로써 나중에 남자들에 대한 친밀함을 가질 수 있다고 말한다

참으로서 납득하기 힘든 이야기이지만, 이 지면을 빌어 함께 풀어보고자 한다.


아들은 아버지의 이름을 얻고, 아버지의 법을 지키면서, 아버지의 권위를 물려받게 되는 것이 어린 시절의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매우 자연스러운 것이다. 

그러다가 아들이 사춘기가 되면서 아버지에 대한 반항과 저항을 하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다

아버지와 아들의 삶의 방식이 달라지는 지점, 세계를 이해하는 방식이 달라지는 지점에 이르게 되면서 아들은 아버지와의 분리를 위해 아버지의 삶의 방식, 언어 사용방법, 사고방식들을 공격한다.

아들은 이를 통해 자기 정체성을 획득해 간다.


그러나 딸의 어머니와의 관계는 아들의 아버지와의 관계와는 달리 대단히 복잡 미묘하다.

딸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로부터 독립을 향해 몸부림쳐야 하지만 그런 경우는 매우 드물고 대개는 어머니-딸 관계는 복잡하게 얽혀있다. 

딸과 어머니는 같은 여자이기 때문에 모성적인 능력들을 차용해서 사용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기 때문에 딸은 모성성을 계속 사용하면서도 자기 것인 줄로 착각하며 산다. 

 

아들은 자신의 여자로부터 태어남으로 인해, 자기 안에 있는 여성적 요소들을 떨어내기 위해 여자들을 경멸하는 행동들을 하게 된다. 

아들은 일찍부터 그런 식으로 어머니로부터 독립해 간다.

그러나 딸은 어머니의 모성성을 차용하면서 자기 것인 줄 알고 사용하다가 결혼하고서도 자녀에게는 물론(이것은 당연하다) 남편에게까지 모성성을 사용한다.

여성은 모성성을 사용하면서 그것이 자신의 여성성인 줄 착각하면서 살아간다.

결국 여성은 자신의 고유한 여성성을 찾지 못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딸의 어머니로부터 독립

 

어머니와 딸의 관계가 복잡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서로 모성성을 공유하는 긴 삶의 여정 속에서 심리적으로 자연스럽게 얽히고설킨 것이 많아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딸의 어머니에 대한 심리적 모친살해는 아들의 아버지에 대한 심리적 부친살해보다 훨씬 복잡하다.


아들은 어머니로부터 일찍이 분리되는 경험을 하는 반면, 딸은 처음부터 지금의 나이까지 분리를 경험해 보지 못한 채 인생을 마감하는 경우가 많다.

바로 이 모성성 때문에 여성은 자기 정체성을 찾지 못하게 되고, 부부간의 문제가 발생하는 근원이 되기도 한다. 


딸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모성성을 공유하면서 동일시가 심해지기 때문에 상호간에 두 존재가 겹쳐 있다는 것을 인지조차 하기 어렵다. 

딸의 어머니에 대한 감정은 대단히 다양하며, 때로는 매우 극단적이다. 


상담을 통해 자기 분석이 이루어지는 딸이 어머니로부터 분리되고자 마음먹을 때는 어머니라는 존재는 갑자기 너무나도 낯선 존재처럼 다가오기도 한다.

그런 경우는 대체로 딸이 어머니와의 동체성(심리적 한 몸)을 유지해 오다가 어머니로부터 급격하게 분리될 때 일어나는 일이다.


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사랑과 증오의 변증법이 그대로 적용된다. 

딸의 자기 인식이 발생하면서, 어머니와 딸 사이에 혹독한 전쟁이 발발하는 경우가 있다.

그때는 대개 딸이 어머니를 공격하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 딸은 그동안 어머니와 동체성을 이루다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급격하게 분리되고자 하는 욕망을 발동시키면서 그렇게 급작스럽게 바뀌는 것이다.


자기 자각이 일어난 딸이 갑자기 어머니를 미워하며 잔인하게 공격하기 시작하는 경우가 있다. 

여느 집안이든 어머니와 딸 사이에는 정서적으로 매우 복잡한 관계 맺음이 있다.

딸과 어머니 사이에 사랑이 큰 만큼 시기심과 증오의 크기도 크다.


어머니를 증오하는 딸이 아버지를 좋아하게 되는 것도 사랑과 미움이 통합되지 않아서 그런 경우가 많다.

말하자면, 딸이 어머니를 극도로 사랑하기 때문에 의식적으로는 증오로 표현하게 되고, 반면 사랑하지만 미워하는 어머니를 견제하기 위해 미워하는 아버지를 사랑하는 것으로 위장한다.

그래서 이런 딸은 사랑과 미움의 통합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통합이 이루어지면, 딸은 사랑하는 어머니를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게 되고, 아버지를 진정으로 미워하게 된다. 


어머니와 딸의 동체성

 

딸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와 동체성의 관계를 맺고 있다.

일종의 누구도 끊을 수 없는 두 나라 간의 동맹관계와도 같다. 


그래서 어머니의 정서가 그대로 딸에게 전달된다.

엄마의 건강염려증은 딸의 건강염려증이 된다. 

어머니가 아프면, 아들은 아픈 어머니를 바라보며 마음만 아프지만, 딸은 함께 아픈 경우가 발생한다.

어떤 경우는 딸이 아픈 것인지 어머니가 아픈 것인지 구별할 수 없다.

왜냐하면 두 사람은 동체성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어머니가 아파야 할 때 딸이 대신 아파준다거나 그 반대도 성립된다.


예를 들어 딸이 수능시험을 쳐야 하는데, 독감이 들어왔다면 어머니가 딸 대신 독감을 앓아 준다.

또 다른 예는, 딸이 바이올린 연주로 콩쿠르에 나가 당당하게 연주하는 동안, 집에 있는 어머니가 딸 대신 온몸으로 떨고 있다.     


딸의 모친살해


 어떤 소설이든지 여성 관련 주제를 가지고 진행되는 경우, 여성은 대개 불행한 존재로 결말을 내는 경우가 많다.

여성에 대한 유교적인 관점에서도 


  "여자는 어릴 때는 아버지에게 순종하고, 결혼하면 남편에게 순종하고, 늙어서는 아들에게 순종해야 한다"


라는 점이 암암리에 강조된다.

모파상의 소설 [여자의 일생]에서도 여자의 일생은 어쩔 수 없이 불행하다는 점을 강조한다.


여성들의 이러한 불행은 여성이어서 불행한 것이 아니라, 여성의 불행은 바로 어머니와의 동체성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 때문이다. 


어머니는 어릴 때부터 딸에게 모성성을 물려줘서 여성성을 억압하게 만들어 어머니와 딸 사이의 관계 주파수를 동조한다. 

관계주파수 동조현상은 딸이 어머니와 모성성을 공유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다.

모성성을 사용하는 딸은 여느 남자들보다 탁월해질 수 있기 때문에 모성성이 자신의 고유한 것인 줄 알고 살아간다. 


딸은 결혼을 해도 어머니에게서 차용한 모성성을 여전히 남편에게 행사하며, 딸의 어머니는 모성성이라는 이름으로 딸의 영역에 들어와 딸의 결혼 생활 구석구석에 침투해 들어온다.

때맞춰 김치 해다 줘, 명절 때 딸과 사위가 오면 음식 챙겨 줘, 손주를 정성껏 봐줘... 하는 명목으로 수시로 딸 집에 왔다 갔다 한다. 

딸은 그런 어머니가 고마울 뿐이고, 사위는 여러 면에서 아내의 수고를 덜어 주시는 장모님을 마다할 이유가 크게 없다.


더군다나 딸은 남편을 고를 때 어머니가 원하는 사위를 골랐으니 그리 불평거리가 없다. 

이것 역시 따라와 어머니 사이의 동체성에서 일어난 일이지만 그렇게 문제의식을 느껴본 적이 없다.


문제는 어릴 때부터 딸의 마음속에 들어와 있는 어머니를 내 보내지 않으면, 남편이 아내 안에 들어갈 공간이 없다는 점이다.


나의 내담자 중에 결혼 20년 차가 되어도 남편과 한 마음이 되어 본 적이 없어 늘 이혼을 꿈꾸고 있었던 여성이 있다.

그녀는 이혼을 순조롭게 잘 하기 위해 상담을 요청했다.

그렇지만 나는 상담자로서 그녀 안에 있는 모성성을 비워내고 대신 여성성을 채워나갔다. 


내가 이 여성 안에 내면화된 어머니를 내어 쫓고 나니까, 그다음부터 남편이 마음속에 들어오는 것을 목격할 수 있었다.


그녀는 집을 수시로 들락거리는 친정어머니에게 아무런 통보 없이 현관문 비밀번호를 바꿔 버리고, 때맞춰 가져 오는 김치와 음식을 거절하였다.

거절 후에는 택배로 보내오는 것마저도 돌려보냈다.


어머니는 서운하기 그지없었지만, 딸의 의도를 간파하고 밀착되어 있던 딸을 내면에서 내 보내기 시작했다.


딸과 어머니는 그렇게 독립하게 되었다.

그리고 각자 분화된 삶을 살게 되었다. 

말하자면 딸은 무혈 모친살해를 감행한 것이었다.

 

그러자 그다음부터 남편과 크고 작은 사건들이 일어나는 중에, 어느 날 남편이 마음속에 쑥 들어오는 것을 경험했다. 

마치 연애시절 첫사랑을 마음속에 품고 살면서 밤낮으로 그리워하던 그때의 상황이 늘 남 같았던 남편과의 관계에서 일어난 것이다,

그때부터 이혼이라는 말은 목 안으로 쑥 들어갔다.


위의 케이스는 모친살해가 매우 순조롭게 이루어진 경우이다. 


어떤 경우는 딸이 어머니를 잔인하게 공격하는 형태로 모친살해를 진행하는 경우도 있다. 


어떤 딸은 늘 질식될 것 같은 어머니와의 관계에서 숨통을 트기 위해 모친살해를 하는 중에 매우 잔인하게 어머니를 공격했다.

평소에 그렇게 잘 지내던 모녀 관계가 갑자기 딸의 공격으로 바뀔 때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그것은


    "내가 그동안 어머니에 의해 얼마나 가스라이팅을 당해 왔는가?"


라는 자각 때문이다. 


어머니와 좋은 관계에 있을 때는 하나의 기억에 대해 같은 감정으로 서로 얽혀 있다가, 딸이 모친살해를 시작하면 그동안 얽혀있는 감정이 풀려나면서 엄청난 분노로 변해 마구 쏟아내게 된다. 


아들이 아버지를 부친살해할 때는 강한 아버지를 공격하여 아버지의 고집과 공격성을 무력화시키는 목적을 가지지만, 딸이 어머니를 공격할 때 대체로 그 어머니는 심리적으로 무기력한 상태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딸의 공격성은 극도로 심해지지만, 어머니는 마치 딸의 처분만 기다리는 입장과도 같다. 


딸과 어머니가 동체성으로 움직일 때는 하나의 기억에 대해 하나의 스토리로 서로 통했다.

그렇지만 딸의 모친살해가 시작되는 순간부터는 하나의 기억, 또는 같은 상황에 대한 두 가지 스토리로 갈라진다

스토리가 두 개로 갈라지면서, 각자가 억울함을 호소한다. 

다른 가족이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딸 이야기를 들어보면 딸이 맞는 것 같고, 어머니 이야기를 들어보면 어머니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두 가지 스토리가 하나의 스토리로 통합될 때, 그때야 비로소 딸의 모친살해는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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