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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금지와 아버지의 법

아버지의 이름으로 호명된다는 것

어머니는 존재 자체로 들어온다.


  어머니의 금지

아이에게 어머니는 존재 자체로 들어온다.

어머니는 눈에 보이는 존재다,

그래서 자녀에게 있어 어머니는 늘 만만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아버지보다 어머니는 만만한 존재다,

그래서 어머니와 자녀는 존재로 만난다.

여기에는 상징성이 별로 없다.


하지만 어머니가 하는 금지는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그것을 어기면 아기는 위험해진다.


엄마의 금지는 일상적인 금지이다.

그 금지는 존재와 관련된 금지이다.

아버지의 금지는 권위가 있지만, 어머니의 금지를 어기면 아이의 존재자체를 무너뜨릴 수 있다.


그 금지는


    뜨거운 것에 손 대면 안 된다.

    높은 곳에 올라가면 다친다.


등등이다.


어머니는 아이에게 금지를 꼭 필요한 것만으로 최소화하고  아이를 마음껏 사랑하고 공감해 주는 존재여야 한다.

3세까지 충분히 사랑하고 공감하고 찬사와 칭찬을 보내고 했다면, 오이디푸스 시기에 아버지가 내리는 이런저런 금지를 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수 있다.


   어머니의 잘못된 금지는 아이에게 치명적이다 

엄마가 처음부터 불필요한 금지하고 사랑하지 않고, 공감해 주지 않고, 칭찬도 찬사도 없이 밋밋한 관계를 유지해 왔다면, 어머니의 한 마디는 촌철살인하는 말이 된다.

왜냐하면 어머니의 금지는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아기에게는 너무나도 직접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아기가 어머니를 통해서  보는 세상은 어머니의 등에 업혀서 보는 세상이다.

아기는 어머니를 통해 세상 자체를 적나라하게 본다.

어머니는 세상 속에서 아기의 존재를 세워주면서 아이에게 격려하고 위로하고 공감해 주면, 아기는 어머니가 주는 긍정적인 것을 중심으로 자기 존재를 세워 나간다.


그런데 만일 그 엄마가 꾸짖고, 때리고, 저주하고, 욕하고,


    '너는 왜 이렇게 미운 짓만 골라서 하냐?'

    ' 네 손에 뭔가가 들어갔다 하면 다 깨지든지, 부서지든지 하네?'

    '너 때문에 내 인생이 망쳤다.'

    '네가 태어나서부터 뭐든 잘 되는 게 없다.'


어떤 여성은 어머니로부터 더 심한 저주도 들었다.


    '네가 뱃속에 있을 때 진작 죽였어야 했는데..."


이런 말을 들으면 아이는 몸에 힘이 쫙 빠져 버린다.

어머니의 그런 말은 마치 아이에게 존재를 몰수하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이런 말은 어머니로서 해서는 안 되는 금지에 해당한다.


어머니의 이런 말은 아기로서는 '나는 할 수 없다'는 무기력을 준다.

5~6세가 되어 '나는 못한다'라고 생각하게 되면, 하고자 하는 의욕이 상실되면서 딴짓을 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나이에 맞게 진짜 해야 할 일을 하지 않는다.

어른들이 볼 때, 이런 말을 듣고 자란 아이는 다른 아이들과 함께 있어도 중심부에서 놀지 못하고 주변부에서 혼자 엉뚱한 짓을 하고 있다.

성인이 되어도 무기력감이 오면, 몸이 느려지고, 생각이 막히고, 나이에 맞는 판단이 서지 않게 된다.

어머니의 금지는 구약성서의 하나님의 금지와도 같다.

신의 언어가 몸에 딱딱 박히는 느낌이다.

그러면 돌처럼 굳은 몸이 된다.

그렇게 어머니의 금지는 운명적으로 느껴져 영혼을 묶어 버리는 것과도 같은 금지이다.

구강기에 가까운 금지일 수록 아이에게는 잔인하고 무서운 것이며, 아이는 존재를 부정당하는 느낌을 받는다.  


   어머니가 화나 있으면...

어머니가 화가 나 있는 장면을 자주 목격하면 아이는 무서워서 아무것도 못한다.

어머니의 화를 아이는 가감 없이 존재 자체로 느끼기 때문이다.

이것은 아이의 학습능력, 그리고 문제해결능력과도 연결된다.

다른 아이가 10분이면 하는 것을, 이런 아이는 4시간 5시간 걸려도 잘 못해 낸다.

아이는 어머니의 존재에 압도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아이는 포부(ambition)를 가질 수 없다.

포부를 가질 수 없다는 말은 어떤 목표가 있어도 몸이 안 된다는 말이다.


자신의 화가 자녀에게 미치는 악영향을 자각한 어머니라면, 화를 멈추고 아이에게 어머니 자신이 화가 날 수밖에 없었던 현실과 마음의 상태를 설명하고 사과를 해야 한다.

이러한 설명과 사과는 아이가 언어를 이해할 수 없는 나이라 해도 상관없다.

오히려 아이는 아이일수록 더 잘 알아듣는다.

그것은 의식이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무의식이 알아듣는다.

무의식에 치명적인 상처를 남겼다면 무의식을 치료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이 어머니의 설명을 통해 아이를 이해시키고 사과를 해야 한다.

그러면 아이는 무기력감에서 슬슬 풀려나기 시작한다.

프랑수와즈 돌토에 의하면, 이런 마법 같은 효과는 만 3세까지 가능하다고 한다.



아버지는 존재가 아닌 '아버지 이름'으로 들어온다


   아버지의 권위

아버지는 자녀에게 존재로 들어오지 않는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아버지의 이름으로 내면화된다.

어머니의 존재로 들어오는 것과 아버지의 이름으로 들어오는 것의 차이는 <상징성>에 있다.

그래서 아이가 아버지의 금지를 받아들이는 방식이 어머니의 금지와는 매우 다르다.

어머니는 아이를 등에 업어 세상을 직접 보게 만들지만, 아버지는 자신의 이름으로 외부세계를 대변하는 상징성을 가진다.

아버지의 금지는 자녀가 세계로 나아가는 데 있어 세상의 거절을 미리 혹독하게 맛보게 만든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금지는 아이로 하여금 세상이 만만치 않은 곳이라는 것을 자각케 한다.

아버지의 이름과 아버지의 금지와 법을 통해 자녀는 세계를 상징화하는 방법을 터득한다.

아버지의 금지와 법은 자녀가 세계로 진입하는 관문이 된다.

그리하여 아버지의 금지와 법을 잘 지켜내면 아이는 아버지의 권위를 체득하여 세상으로 나가는 법을 쉽게 터득한다.  


아버지의 금지는 엄격하기 때문에 그 엄격함에 압도되거나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는 아이가 3세가 되기까지 어머니의 사랑과 공감, 칭찬, 박수와 인정을 많이 받아야 한다.

자녀는 3년 동안 어머니로부터 존재의 근간이 되는 재료들을 받게 되고, 아버지의 금지는 존재 재료들을 세상에서 세울 수 있는 뼈대가 된다.


아이에게 넓고 복잡한 세계는 공포와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아버지의 이름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면 상징화되어 바둑판이나 장기판 정도로 한눈에 들어오는 만만한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이 정도 되면, 그 아이는 아버지의 권위를 물려받은 셈이 된다.


   아버지의 이름으로 각인되지 못한 사람

어떤 교회의 강도사가 40대 나이에 목사 안수를 받게 되었다.

안수를 받는 다음날부터 성불능 증상이 찾아왔다.


이런 사례는 프로이트의 전집에 나오는 [쉬레버] 사례이다.

다니엘 폴 쉬레버(Daniel Paul Schreber)는 19세기말 독일의 법관이자 정신분열증 환자로, 프로이트는 그의 사례를 분석하지는 않았지만 쉬레버의 기록을 바탕으로 이를 연구했다.

쉬리버는 1903년에 "광기의 메모"라는 자서전을 발표했는데, 이는 정신 분열 및 말초적 경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쉬레버는 자신의 몸과 정신에 대한 변화, 신비한 경험, 신이나 외계 생명체와의 관계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했다. 그의 메모는 오늘날에도 정신분열증에 대한 연구에서 중요한 자료로 여겨지고 있다.


그에게 왜 이런 일이 발생했는가 하면, 바로 오늘 주제인 '아버지의 이름'과 관련되어 있다.

부장판사로 임명되는 순간부터 정신분열증이 왔다는 것은, 그가 아버지로 호명되는 순간 일어난 일인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를 배운 적이 없기 때문에 아버지의 자리, 즉 권위의 자리에 앉는 순간, 드넓고 광대한 세계에 의해 압도되어 정신분열이 일어난 것이다.


위의 사례에서 강도사가 목사 안수를 받는다는 것은 권위의 자리에 앉는 것을 의미한다.

강도사나 쉬레버나 아버지의 이름으로 호명되는 순간 감당해 본 적이 없는 권위에 압도된 결과, 성불능으로 정신분열증으로 고통받게 되는 것이다.


나의 내담자 중에는 ROTC 임관을 몇 달 앞둔 4학년 2학기 11월 말에 ROTC에서 탈퇴한 청년이 있다..

그는 마지막 학기를 1주일 남겨두고  2년 동안 견뎌 온 ROTC훈련의 마지막 학점을 포기해 버린 것이다.

장교로 임관된다는 것은, 그에게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호명되는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편집분열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경험한 그로서는 아버지로부터 어떤 권위를 배울 수 없었다.

그리고 그는 다음 해 3월에 일반병으로 영장을 받아 입대했다.

제대한 사람입장에서 보면 쥐꼬리만한 계급이지만, 이등병에서 일등병, 상등병, 병장으로 진급할 때마다 그는 엄청난 무게로 감당해 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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