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깃털과 몸통

깃털과 몸통


깃털과 몸통!

이 용어는 정치세계에서 풍자적으로 많이 사용되어 왔다.

정체세계에서 대중에게 보여주는 모습 중 책임 있는 자(깃털)와 힘 있는 자(몸통)가 다르다는 것이다.

정치영역에서 이 둘 사이의 괴리는 비리의 온상이 된다. 

힘 있는 자는 책임 지울 자들을 세워서 각가지 일을 추진하게 만들어서 문제가 생기면 책임을 물어 물러나게 만들든지, 처벌받게 하는 것으로 마무리 짓게 만든다. 

그 후 힘 있는 자는 또 다른 책임자를 내세우면 그만이다. 

그런 와중에 책임 있는 자는 자신이 맡은 직무를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직책을 최대한으로 활용해서 무언가를 해내게 될 것이다. 


그 책임 있는 자가 자기 책임하에 계획하던 것을 잘 마무리할 수 있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외압에 의해 스스로 책임질 수 없는 직무를 행하면서 자신의 직책을 걸고 일하게 될 때에는 반드시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가 발생하지 않을 때 오히려 그 문제는 안으로 들어가게 되면서 부패의 근원이 될 것이다. 


문제가 발생하면, 눈앞에 드러난 책임 있는 자는 처벌을 받지만, 그 뒤에 있는 힘 있는 자가 드러나지 않을 뿐 아니라 아예 숨어버린다.

그래서 정치권에서 무슨 문제가 발생하면, 깃털과 몸통으로 나뉘어서 거론되는 것이다.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가 발생할 때 책임 있는 자가 처벌을 받기 전에, 힘 있는 자가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면서 자기 책임으로 돌리 수 있다면, 그는 건강한 지도자임에 틀림이 없다. 

우리는 그동안 사회적으로 수많은 대재앙이 일어나는 것을 봐 왔지만, 불행하게도 힘 있는 자가 스스로 책임지는 건강한 모습을 본 적이 없다.

만일 책임 있는 자가 힘을 가지고 있다면 자기 책임 하게 힘 있게 즉각적으로 문제해결을 해낼 것이지만, 책임만 있고 힘이 없다면 책임진 자가 힘 있는 자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고, 그 사이에 사건해결의 골든타임을 놓치게 된다. 

골든타임 안에 해결되어 사태가 확대되는 것을 멈출 수 있으나, 깃털과 몸통이 다른 이유로 호미로 막을 수 있는 사건을 가래로 막아야 하는 일이 발생한다. 


 가정에서의 깃털과 몸통


  자녀의 미성숙할 수 있는 특권

이런 일들이 가정에서도 그대로 일어나고 있다면 어떻겠는가?  

자녀는 자신의 인생에 대해서 책임을 져야 한다. 

자녀는 부모 슬하에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가면서 미성숙하게 존재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지고 있다.

자녀는 자신의 미성숙함으로 인해 발생하는 문제들을 스스로 감당하고 책임질 수 있는 능력을 훈련하는 중이다. 

자녀는 이런 책임을 미성숙하게 짊어지면서 미성숙하게나마 감당해 낼 수 있는 힘과 책임을 동시에 키워가는 과정에 있다.

부모의 역할은 자녀의 미성숙함을 견뎌주고 기다려주는 일이다.

자녀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자신의 삶을 꾸려가는 동안 실패하고 실수할 때 지켜봐 주고 도움을 청할 때 손을 내밀어주는 것이 부모의 일이다.

자녀의 인생에서 부모가 주도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화려한 깃털과 빼앗긴 몸통

자녀가 자신의 고유한 존재 욕망을 가지고 자신이 나아갈 바를 정하고, 자신의 책임하에 분별력을 가지고 판단할 수 있게 된다면, 그것이 아무리 부족해 보여도 자녀가 스스로 책임감 있게 감당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많은 자녀들이 부모의 힘에 의해 좌지우지되면서 자기 존재로 살지 못하고 있다.

그렇게 되면 자녀는 자신의 존재욕망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부모가 원하는 대로 살아가는 방식을 선택한다.

자신이 스스로 인생계획을 세우지 못하고 부모가 정해준 코스대로 살아가는 것이다. 

부모는 자녀를 사회가 요구하는 대로, 자본주의 시장이 요구하는 대로 품질과 가격에 맞춰 자녀를 명품으로 만들어 시장에 내어놓고 자녀가 비싼 값에 팔리기를 원한다. 

자녀는 자신의 위해 부모가 애써 주는 덕분에 화려한 삶을 살 수 있다. 

자녀는 부모의 깃털로 살 수 있을 뿐, 자녀의 몸통을 부모에게 빼앗긴 채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렇지만 그는 화려한 깃털로만 살 수는 없다.

그는 빼앗긴 몸통을 찾기 위해 사회적 약자를 휘둘러 그들의 몸통을 빼앗으며 살아가려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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