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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적 부성극복(1) : 아들의 모성극복

근친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한 아들

  다 큰 아들의 몸을 만지는 어머니


A라는 여성은 사회교육 연수를 가서 2인 1실을 쓰게 되었다.

만나는 사람은 모두 처음 보는 사람이었고, 온돌방에서 두 사람이 함께 자게 되어 있다. 

밤 2시쯤 되자 옆에서 자던 여성 룸메이트가 A의 몸을 더듬더란다. 

A가 깜짝 놀라서 소리 지르며 깼더니, 옆의 여성도 같이 놀라서 깼다.

자초지종을 물으니, 그 룸메이트가 하는 말이, 


    꿈에 유학 간 아들이 돌아오는 꿈을 꿔서 아들인 줄 알고 더듬었다.


라는 답변이었다. 

A는 자기에게 일어났던 이상한 상황보다 더 심각한 이야기를 듣게 된 셈이다. 

그래서 A는 룸 메이트에게 아들에게 실제로 그렇게 하느냐고 물었다.

룸 메이트는 당연하다는 듯이 '그렇다'라고 답변하더란다.

A는 너무 생소하기도 하고 비위도 상하고 해서 아들이 싫어하지 않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룸 메이트가 


   '우리 아들도 내가 그렇게 해 주는 것을 좋아하고 나도 좋아해요.'


라는 답변에 A는 말문이 막혔으며 왠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느끼함을 느꼈다고 한다.

그 아들은 어머니가 자신의 몸을 만져줄 때 발기하는 대신 온몸을 성감대로 만들었을 것이다.


   유보된 모성 극복


모친살해라는 무시무시한 말에 좀 익숙해 지자. 

심리적으로 일어나는 모친살해는 정상적인 남자라면 아동기에 누구나 다 하고 넘어오는 통과의례와도 같은 과정이다.

아들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신에게서 여성적인 요소를 떨쳐 버리려고 무진장 노력한다. 

그래서 남성들은 어릴 때부터 자연스럽게 여성을 경멸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

여자 아이들이 노는 놀이를 방해하고(옛날에는 고무줄놀이의 고무줄을 끊으러 다녔다), 여자 아이의 치마를 들춰 '아이스케키'를 한다.

남자아이는 이러한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모친살해를 감행한다. 


위의 사례에서 보이는 아들은 아동기에 바로 이러한 모친살해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 같다.

아동기의 아들이 모친살해를 한다는 것은, 어머니와의 근친적 관계를 확실하게 끊어낸다는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남자아이는 아동기에 친구들과 남자다움의 경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모친살해를 진행한다.

예를 들면, 남자아이들은 친구들과 오줌 멀리 싸기 시합을 한다.

경쟁을 잘 못하는 남자아이는 그냥 고추를 꺼내어서 오줌을 싸지만, 남자다움의 경쟁에 능한 남자아이는 발기를 하여 오줌을 싼다. 

그냥 오줌 싸는 것이 직사포를 쏘는 것이라면, 발기한 상태에서 오줌을 싸면 멀리 쏘기 위해 긴 포신을 하늘로 향해 쏘는 곡사포와 같아서 오줌이 적어도 두 배는 멀리 날아갈 것이다. 


아동기에 남자다움은 이처럼 발기 경쟁을 통해 확인되는 것이 중요하다.

왜냐하면 아동기에 발기를 할 수 있다는 것은 바로 어머니와의 근친적 관계에서 벗어났다는 일종의 메타포어(은유)에 해당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위 사례 중 룸 메이트의 아들이 어머니의 마사지를 몸으로 즐긴다는 것은 어머니와의 근친상간적 관계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왜냐하면 어머니가 마사지해 줄 때 두 사람 사이에는 어머니가 아무리 황홀하게 마사지를 해줘도 절대 발기를 해서는 안된다는 암묵적인 약속이 걸려 있기 때문이다. 

그 아들은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만 3세 이후에는 해결하고 넘어왔어야 할 유아기의 근친상간적 관계를 청산하지 못한 채 아동기를 보냈고, 그런 상태에서 성인이 된 것이다. 

근친적 관계라고 해서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성적인 주제가 개입되는 것으로 생각하면 엄청난 착각이다.

그 관계는 어머니가 아들을 예속화시켜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한 몸으로 움직이는 동체성관계를 말한다.

아들이 발기를 하지 않는 것은 근친적 관계에 있는 두 사람 사이에 존재하는 최소한의 도덕이다.


  현실에서의 근친적 관계란?


아들이나 딸이나 모든 유아들은 어머니와의 근친상간적 관계를 반드시 거치게 되어 있다. 

이 불편한 용어의 의미는 유아가 어머니와 밀착되어 있는 관계라는 뜻을 포함한다. 

이러한 밀착관계가 사회적으로 적용될 때에는 일종의 상징성을 가지게 된다. 


살인자가 누군가를 죽일 때 살인하는 형태를 보면, 그 사람이 타자와 어떤 관계성을 가지고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잔인한 살인자는 사람을 살해한 후 토막을 낸다거나 인육을 먹는다거나 하는 경우가 있다.

이런 것이 바로 그의 근친상간적 관계를 보여 주는 한 형태이다.     


  일본의 경우

근친상간적 관계라는 불편한 관계가 일본에서는 목욕문화로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 같다.

일본의 경우 섬나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목욕을 자주 해야 한단다.

일본에서는 물이 귀하기 때문에 우리나라처럼 욕탕에 단독으로 들어가서 홀로 목욕하는 경우는 드물다고 한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큰 목욕통에 물을 받아놓고 온 식구가 한 번에 다 들어가서 목욕을 한다고 한다. 

어느 J팝 걸그룹 멤버가 고백한 것은 일본에서는 시집간 딸도 친정에 오면 함께 목욕통에 들어가는 경우도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 걸그룹

 멤버의 증언에 따르면, 그렇게 온 가족이 옷을 벗고 한 목욕통에서 함께 목욕을 하는 가정이 일본에서 약 20%는 된다고 한다.


   일상적 가족관계에서

칼 융은 근친적 관계를  불어로 'puer aeternus(마마보이)', 'puella aeterna'(마마걸)라고 표현했다.

우리 사회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아버지의 딸', 즉 '딸 바보 아버지'가 대표적이다. 

물론 어머니의 아들, 아버지의 아들 중에도 그런 관계 안에 있는 경우가 있다. 


가끔은 형제들 간에, 또는 자매들 간에, 남매간에도 그런 관계는 존재한다.

어릴 때 오빠가 여동생의 똥을 닦아준다거나, 2살 위의 형이 동생의 옷을 입혀주고 신발신겨 주는 등 어떻게 보면 매우 감동적이라고 할 수 있는 관계들 중에 근친상간적 관계가 많다. 

어릴 때나 청소년기에는 그냥 가족 간에 우애가 좋은 것으로 여길 수 있는 장면들이다. 

그렇지만 예민한 사람은 그런 관계를 느끼하다고 표현한다.


3살 위의 형이 결혼하여 새 살림을 차린 신혼집에 남동생을 데리고 산다.

이 동생은 방안에 하루종일 처박혀 살면서 전업주부인 형수를 거들 떠 보지도 않는다. 

동생은 형이 퇴근하기만을 기다렸다가 형이 집에 들어오는 순간부터, 형은 형수의 남편이 아니라 동생의 형으로 전유된다.

이 형도 역시 자신의 아내가 동생 때문에 불편하게 느끼는 것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다.

퇴근한 형은 이 동생과 함께 저녁 식사를 하고, 거실에서 함께 TV 앞에서 노닥거리면서 2~3시간을 보낸다.

아내는 두 사람 사이에 혹시 불편함을 끼치지 않을까, 자칫 잘못 실수라도 하면 남편의 분노를 사지 않을까 노심초사하며 홀로 안방에서 형제간의 우애의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릴 뿐이다.  

 동생은 7시에 퇴근한 형을 밤 10시나 되어서야 형수에게 인계한다.


형이 보기에도 무뚝뚝한 아내보다 애교가 넘치는 남동생이 더 사랑스럽다. 

아내로서는 더 이해하기 힘든 상황이 밤늦은 시간에 벌어진다.

12시가 넘어 부부 성관계를 하는 동안, 남편은 방문을 살짝 열어놓는다.

아내가 불편해하는 줄 알면서 남편은 어쩔 수가 없다.


아내가 남편에게 성관계를 할 때마다 문을 열어놓는 이유에 대해 물었다,

남편 왈,


   "쟤는 장가도 못 갔잖아. 나 혼자 재미 보는 게 미안해서 그러지. 문을 닫으면 쟤는 얼마나 서운하겠어."


아내는 어이가 없어 할 말을 잊는다. 


아내는 형제간 다정한 관계를 경험해 본 적 없이 늘 불화 가운데서 지냈기 때문에 한동안 남편과 시동생간의 관계를 부러워했다.  

남편의 형제간의 다정한 ‘우애’라고 생각하면, 형제간에 그렇게 우애를 나눠 본 적이 없는 자신의 가족관계를 부끄러워할 뿐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남편과 시동생관계가 징그럽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어느 날 아내는 두 형제가 날마다 일상적으로,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르는 우애가 형제간에 일어나는 근친상간적 관계라는 자각을 하게 되면서 몸을 바르르 떨며 비명을 질렀다. 

아내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내장에서 튀어나오는 비명소리를 들었고, 목청이 터지도록 비명을 지르면서 자신의 귀청이 찢어질까 귀까지 막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때 아내는 에일리언의 영화에 나오는 괴물이 끈적거리는 수액을 내뿜는 수많은 촉수를 들어대면서 접촉하고자 덮치는 장면이 떠 올랐다고 한다.  


위의 A가 룸 메이트에게 느꼈던 느끼함 또한 그런 류의 것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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