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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쇼크(1): 모성 부재의 어머니들(1)

가족개념 부재의 서구사회

모성 부재의 어머니들


2012년 EBS에서 마더 쇼크 4부작을 방영했던 적이 있다. 

나는 방영결과로 나온 책, [마더쇼크]를 읽었다.

그 책을 통해서 어머니와 아기에 대해 많은 점을 배웠다. 

나의 이 글은 그 책을 통해 내가 배운 점과 그 책이 보여주는 관점의 다른 측면, 즉 정신분석학적 관점으로 확장해 보고자 하는 의도이다.


그 책을 보니 많은 어머니들이 아이만 낳으면 모성이 자연히 생겨나는 줄 알았는데, 그렇지 못한 자신을 보며 좌절하는 모습들이 많다. 


   "아이만 낳으면 자연히 생겨야하는 모성, 그런데 왜 나에게는 안 생기는 걸까?"

   "아이가 아무 조건 없이 예쁘고 사랑스러워야 하는데 가끔 너무 힘들어서 울고 싶어지는 건 왜일까?"

   "사실 저는 아이를 키우면서 '예쁘다'라는 느낌을 가져본 적이 없어요. 아이가 많이 예민하기도 했고 아이의 울음소리는 늘 제 신경을 곤두세우게 했어요. 아이 눈높이에서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는 엄마가 되고 싶었는데, 지금의 제 모습은 얼음 같은 침묵과 칼날 같은 말들로 상처만 주었던 친정 엄마와 꼭 닮아 있어요."(4세 여자아이의 엄마)

   "저는 아이가 정말 사랑스러운지도 모르겠고, 책임감과 의무감만 있어요. 심지어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는 소리를 듣는 것도 굉장히 어색해요. 아이가 "엄마"라고 부르면 이상하게 얼굴이 화끈거려요."(5세 남자아이, 4세 여자아이 엄마)


[만들어진 모성]


이 책은 이에 대한 위로가 될만한 근거를 프랑스 철학자 엘리자베스 바댕테르(Elisabeth Badinter)의 저서 [만들어진 모성]에서 찾았다.

이 책에서 모성은 만들어졌다는 것이 핵심인 것 같다.

유럽에서 영국의 산업혁명 이전에는 모성 개념이 형성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17세기 프랑스에서는 공립 고아원에 자신의 아이를 맡기는 것이 유행처럼 번졌고, 1700년대 중반, 파리에 버려진 아이들은 3만 명 정도였다가 10년이 지나자 두배로 늘어 6만 명 이상이 되었다고 한다.

당시에는 갓 태어난 아기 셋 중 하나는 버려졌다고 한다.

부유한 계층에서는 어린 나이의 아들과 딸을 기숙학교나 수녀원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가 유럽의 근대 소설을 보면 아이들이 기숙사 생활을 하면서 학교교육을 받는 모습, 여자는 수녀원을 배경으로 하는 장면들을 많이 볼 수 있었던 것 같다.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장 자크 루소(Jean-Jacques Rousseau)가 이상적인 교육론으로 쓴 [에밀]이 유명해진 것 같다. 

이 책은 앞으로 1000년은 읽혀야 하는 명저로 손꼽힌다. 

바댕테르는 자신의 책에서


  "어머니들은 모두 자기 자식에 대해 모성본능, 혹은 자연발생적 애정을 지니고 있다는 신화를 만들었다."


고 말했다. 

그리하여 이 책은 우리가 당연하게 여기는 것과 달리 모성이 반드시 여성 모두에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강조한다. 


  아동 무시의 유럽 역사


유럽에서는 모성이 만들어졌다는 것, 가족 개념이 없었다는 것은 우리에게는 생소하지만 전혀 틀린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 우리를 경악하게 만든다.

필립 아리에스(Phillip Ariès)의 저서 [아동의 탄생]를 보면, 서구사회에서 ‘가족의식’이 등장한 것이 불과 16~17세기이다. 

아리에스는 중세의 서구 사회에는 가족의식의 부재로 13세기 초의  '소년 십자군'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1212년 프랑스 양치기 소년 에디앵이 예루살렘 성지회복을 회복하는 계시를 받아 소년 십자군을 모집하여 1만여 명의 어린아이들을 모아 ‘소년 십자군’을 결성하였다. 

국왕의 해산 명령을 어기고 에디앵이 여세를 몰아 남쪽 도시 마르세이유에 이르렀을 때는 어린아이들이 거의 3만 명이 모여들었다고 한다.

모두 부모가 내어 버린 자식들이었을 것이다. 

그들의 나이가 7세 정도였고, 최연장자가 12세의 아이들이었다고 한다.  


왜 서구에서는 부모들이 이렇게 어린아이들을 양육하지 않았는가?

16세기 사상가 몽테뉴의 <수상록>에서도 가정에서 어린 자녀들을 인격적 존재로 보지 않고 애완동물과 동급으로 봤다는 기록도 남아 있다.  

[에밀]을 쓴 루소도 자기 집안의 하인과의 사이에서 낳은 자식들을 모조리 고아원으로 보냈다고 한다.


그러다가 “18세기 중후반에 들어서는 아동기에 커다란 변화가 생겼다. 그전까지는 아버지의 권위에만 초점을 맞추었으나 어머니의 감정에도 주의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어머니의 모성애가 인정되기 시작한 것이다.”(클로드 알모, [엄마, 왜 그런 거예요?], XO Books, 16) 


유럽에서 18세기에 계몽주의를 주도한 백과전서파가 등장하면서 아동을 어들들의 교육과 보호가 필요한 미성숙한 존재라는 이미지로 새롭게 만들어졌다. 

필립 아리에스는 이 시점에 현대적 가족 개념이 탄생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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