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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더쇼크(2) : 아동 존중의 역사

서구와 우리나라에서의 아동 존중

아동 존중의 서구 역사


서구에서 아동에 대한 개념에 변화를 가져온 것은 20세기 초 이탈리아의 몬테소리 교육, 영국의 서머힐 학교에서 아동을 대상으로 교육학 실험을 진행되면서부터였다. 

의학, 심리학, 교육학을 겸비한 마리아 몬테소리(Maria Montessori)는 1907년 노동자 자녀 중 3세~6세 사이 아이들을 위한 유치원 '어린이 집(Casa dei Bambini)'을 열어 몬테소리법에 의한 교육을 실시하였다. 

그녀는 아동의 인격을 중시하여 <인간의 가능성의 교육>이라는 책을 저술하였다. 


프랑스 정신분석학자 클로드 알모(Claude Halmos)에 의하면, 이 두 교육이 서구에서 아동에 대한 개념을 바꾼 최초의 일이며 그것도 아동을 보호의 대상, 그리고 교육의 대상일 뿐이었다.

클로드 알모에 의하면, 서구에서 아동에 대한 근본적인 변화가 일어나는 것은 1960~70년대의 급속한 경제성장과 의학의 발달, 활발한 사회 운동이 일어나면서 가능해졌다고 한다.

클로드 알모는 아동에 대한 존중은 여성의 사회적 활동과 무관하지 않음도 지적한다.


우리나라 아동 및 여성(어머니) 존중의 역사


조선시대 아동교육

우리나라는 아동 존중에 대해서는 매우 긴 역사를 가지고 있다. 

그것은 우리나라가 서구와 달리 여성이 존중받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흔히 '남녀 칠세 부동석'을 남녀 차별, 남존여비의 표식정도로 생각하지만, 이는 아동의 인격을 남자와 여자로 구별된 존재로 분화하는 획기적인 윤리적 기표이다.

  

조선시대의 아동교육서 가운데 당시 대중적으로 널리 보급되었던 교육서, 곧 「명심보감」, 「소학」, 「동몽선습」, 「격몽요결」, 「사소절」등은 아동교육을 위한 윤리 교과서이다. 

이러한 교육서를 통해 실시된 우리 전통사회의 아동교육원리는 (1) 모범과 동일시의 원리, (2) 동기유발과 자발성의 원리, (3) 통합과 경험의 원리, (4) 조기교육과 단계적 학습의 원리, (5) 개인차 존중과 개별화의 다섯 가지 원리로 대별해 볼 수 있었다. (김향은, '조선시대 아동교육서를 통해 본 전통아동교육원리', <민족문화연구>에서 참조)


조선시대 여성(어머니) 존중

우리의 유교사상에서는 여성에 대한 이미지로서 <남존여비>를 대표적 개념을 상정하지만, 그것은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다.

우리는 조선시대의 사대부들이 자신의 부인을 존경의 대상으로 봐 왔다는 사실에 대해 주목해야 한다. 

사대부의 가문은 부인이 아들을 어떻게 교육하느냐에 달려 있으며, 부인이 주도하는 그 교육은 곧 자녀가 벼슬을 얻기 위한 필수 요건이었다. 

자녀가 벼슬길에 나아간다는 것은 곧 그 가문의 명성이 대대로 이어져 가는 데 있어 필수적 요건이었기에 사대부 가문의 영광을 이어가기 위해서는 자녀 교육을 맡은 부인의 역할이 절대적으로 중요했다


부모자녀관계 전문가 최성애 박사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나라 여성은 고려 시대 때까지 참 활달했습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에 유교가 국가 이념으로 자리 잡으면서 가부장적인 나라가 되었지요. 이전까지는 자유로웠던 여성의 많은 권리들이 사라졌어요.... 하지만 가정 안에 아이를 키우는 일만큼은 실질적인 주도권을 쥐고 있었어요. 특히 아들을 낳아 그 아들이 커서 벼슬이라도 하게 되면 아버지 못지않은 대우를 받았습니다. 즉 아이의 성공이 여자로서 삶의 성공이 된 것입니다. "([마더쇼크], 중앙 books, 62)


  어린이의 아버지 소파 방정환 선생

우리나라에는 모든 어린이들의 아버지 소파 방정환 선생이 있다. 

방정환 선생은 아이들을 존중하는 개념을 '어린이'라는 혁명적인 용어를 사용해 어린이들의 존재를 확고하게 인정하였다는 평가를 받는다.

일제강점기에 나라의 미래는 어린이에게 있다는 의도에서 1923년 최초의 월간 아동 잡지 <어린이>를 발간했다.

1925년 서울 인구 30만 명이었는데, <어린이> 판매량이 10만 부였다고 한다.

방정환 선생 혼자 39개의 필명을 사용하며 거의 홀로 어린이를 위한 글을 써서 잡지를 발행했다.

이로 인해 소년단체들이 결성되고 그 단체들은 독립운동의 역할을 하였고, 잡지 <어린이>역시 독립의 내용을 담은 글들을 연재했다. 


   방정환 선생의 세계 최초의 '어린이 인권선언'

소파 방정환 선생은 1922년 5월 1일 '어린이날'을 선포하고 어린이날 인권 선언문을 '어린이에게 쓰는 글'로 발표하였다

이것은 훗날 아동권리의 근간이 되었다고 한다. 

이는 'Save the Children'의 창시자 에글렌타인 젭 여사가 작성한 아동권리선언의 초안이 1924년 국제연맹에서 제네바 선언으로 채택된 것보다 2년 앞선 일이다.  

소파 방정환 선생은 '어린이'를 '어린' + '이'의 합성어로 만들어, '젊은이' '늙은이'용어와 함께  '어린이'를 존칭의 반열로 올려놓았다.

이처럼 소파 선생의 어린이 존중 사상은 그의 독보적인 사상 행보이지만 세계에서 선두적 추세에서 앞장선 위치에 서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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