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자 : 어떤 아이는 수많은 인형을 가지고 놀면서 골고루 놀아 줘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 잡혀있더라고요. 왜 그러냐고 물어보니까, 한 인형하고 놀아주면 다른 인형들이 삐칠까봐 미안해서 그런다는 거예요. 그 아이는 왜 그렇게 행동하는 것일까요?
분석가 : 아마도 그건 어머니와의 관계에서의 문제점을 보여 주는 대목이에요. 그 어머니는 그 아이에게 단 한 사람과의 중요한 관계를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지 못한 것 같아요. 어머니가 아이의 유아기 때에 무관심했다든가, 양육자가 자주 바뀌었다거나 등의 문제로 주(主)양육자를 배타적으로 경험하지 못한 것입니다. 유아는 어머니와의 배타적인 관계를 경험할 수 있어야 하거든요. 지금 말한 그 아이의 경우, 하나의 인형을 배타적으로 좋아하지 못하게 된 것은, 하나의 중요한 대상, 즉 어머니 경험이 부재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머니를 배타적 관계로 경험한 아이에게는 중간대상도 하나일 수밖에 없습니다. 아기는 자기 주변의 여러 대상들 중 단 하나의 대상에 대해 특별한 애착을 느끼는 것입니다.
탐구자 : 배타적 관계라 함은 단 한 사람 외에 다른 사람은 의미가 없다는 말씀인 거죠?
분석가 : 그렇습니다. 말하자면 부부 관계는 배타적 관계 그 자체이죠. 세상에 여자가 아무리 많아도 내 아내만이 가지고 있는 배타성이 있는 것이죠. 부모에게는 자녀도 다른 아이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죠. 그건 자녀가 부모를 생각할 때도 마찬가지이고요. 유아는 중간대상 역시 다른 사물과는 배타적 관계성의 의미를 부여하게 되죠. 주변에 수많은 대상들이 있지만 유독 한 가지만을 배타적으로 애착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 배타적인 대상은 위에서 언급했던, 부드러워야 하고 잘 부숴져서는 안 된다는 것 외에도 그 성질이 불변하는 것이어야 합니다. 불변해야 한다는 것은 중간대상은 쉽게 변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지저분하고 냄새나고 더러워져도 그것을 세탁을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냄새와 모양 등에 변형이 와서는 안 되는 것이 중간대상입니다.
탐구자 : 어떤 사춘기 소녀는 고양이를 예뻐해서 어머니가 고양이를 사다주셨어요. 그런데 이 소녀는 자기 집 고양이뿐만 아니라, 어디를 가든지 고양이만 보면 예뻐하는 겁니다. 그래서 길을 가다가도 길 고양이를 발견하면 예뻐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거예요. 가만히 보면 모든 고양이를 다 예뻐하는 건데, 이 경우 역시 배타적인한 마리의 고양이를 가지지 못한 것인가요?
분석가 : 그 소녀의 문제는 가장 중요한 한 사람의 경험이 없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겁니다.
탐구자 : 어떤 사람은 자기 아기가 유독 애착을 가지는 인형이 있었는데, 주변의 사람들이 ‘왜 아이에게 그렇게 더러운 것을 가지고 놀게 만드느냐?’고 질책하는 사람들이 많은 거예요.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눈치를 보느라 세탁기에 넣어서 빨아 버렸어요. 그랬더니 그 다음부터는 아기가 그 인형을 두 번 다시 쳐다보지 않더라고 하더라고요.
분석가 : 안타까운 일입니다. 그 아이는 중간대상을 잃어 버렸고, 어머니는 그 대상이 지닌 상징성을 빼앗아 버린 것입니다. 그 어머니는 아기를 위하는 것이 아니고, 주변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는 인정받기 위해 아기를 키우는 사람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아기는 어머니 자신의 존재 증명을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것이죠. 아이로서는 참으로 불행한 경험을 하게 된 겁니다.
탐구자 : TV 프로 중 고민을 나누는 프로가 있는데, 어느 아버지가 건담 같은 조립형 장난감을 사다가 거실에 장을 짜서 쫙 진열해 놓을 뿐만 아니라 모든 장난감을 진열만 해 놓을 뿐, 정작 5~6 세의 자녀는 가지고 놀지 못하고 구경만 해야 하는 경우가 나오더라고요. 또 어떤 아버지는 축구공 수집을 하는 분인데, 기념할만한 축구공을 사다가 진열을 해 놓고 자녀들은 가지고 놀기는커녕 손도 대지 못하게 만들더군요. 그런데 이 집의 아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하루는 그 아이가 학생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공을 발로 차는 것을 보고는 충격을 받았다는 이야기가 나온 적이 있어요. 이런 경우의 자녀들은 무엇이 문제가 될까요?
분석가 : 건담을 조립해서 진열을 하는 아버지는 어릴 때에 장난감을 제대로 가지고 놀아본 적이 별로 없는 분인 것 같아요. 어릴 때 해 보지 못한 것을 지금이라도 해 보고자 하는 것이죠, 문제는 진열만 해놓고 자신도 즐기지 못하고, 특히 한참 그런 것을 가지고 재미있게 몸으로 놀이를 할 수 있어야 하는 나이에 있는 아이에게 놀이의 도구들을 그림의 떡으로 만들어 놓았다는 점입니다. 그 아버지는 자신 안에 자라지 못한 아기를 키워내느라, 자신의 자녀를 제대로 키워내지 못해 버린 것입니다. 결국 그 아버지는 자신이 어릴 때 놀아보지 못한 상태를 자녀의 내면에 재생산해 버린 것입니다.
탐구자 : 중간대상과 장난감과는 뭔가 관계 연속성이 있는 듯해요.
분석가 : 아이가 어머니의 부재의 문제에 직면하면서 특정한 사물을 중간대상으로 삼아 그 시기의 심리적 위기를 극복한 후에는 그 중간대상은 폐기처분 됩니다. 그러나 아이는 촉감적으로 부드러웠던 중간대상을 점점 더 딱딱한 장난감들로 대상을 확대시켜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놀이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 겁니다. 그래서 이 장난감을 통한 놀이는 외부의 ‘놀이터’로 이어지게 되고 그 다음에는 ‘유치원’으로, 그 다음에는 ‘학교’로 그 개념이 점차 확장되어 가게 됩니다.
탐구자 : 아이는 어머니와의 융합으로 시작해서 어머니를 대상화하게 되고, 그 대상은 다시 중간대상으로 바뀌게 되면서 장난감으로 확장된 후에는 놀이터, 유치원, 학교 등으로 확대되어 가는 것이군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어머니와의 관계를 그렇게 계속 확장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탐구자 : 그래서 자기 출신학교를 ‘모교(母校)’라고 부르는군요.
분석가 : 그렇죠. 학교는 모성적 요소, 즉 모성애와 연결되는 부분이 많습니다. 저는 중간대상을 부성애와 연결되는 경우도 본적이 있습니다. 어떤 어머니가 남편이 하도 외국출장을 자주 나가니까 중학생인 딸이 아버지에 대한 부재를 느끼는 것 같더랍니다. 이 어머니는 중간대상이라는 개념을 배운 적이 있어 아버지의 부재를 인형으로 메울 수 있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를 가지고 아이보다 더 큰 곰 인형을 사다 줬대요. 그런데 이 딸이 그 곰 인형을 아빠모양으로 장식을 하더랍니다. 이 딸이 인형에게 아버지 모자도 씌워주고, 콧수염도 달아주고, 안경도 씌워 주고, 양복도 입혀주는 등등의 작업을 하더랍니다. 마침내 그 인형은 아버지의 모양을 갖추게 되었어요. 딸은 방학을 맞이하여 집안에 틀어박혀 있으면서 늘 이 인형과 같이 놀더랍니다. 둘이서 조곤조곤 대화도 하고, 화가 날 때는 발로 차거나 목을 비틀기도 하고, 잘 때는 꼭 껴안고 자기도 하는 등 아이 자신의 감정을 그 인형에게다 표현을 하더니 차츰 안정감을 찾아 가더랍니다. 그러고 나서 새 학기를 맞이하게 되면서 중간고사 시험을 치는데 성적이 갑자기 수직상승을 하더라는 겁니다. 이 딸은 아버지의 부재를 그런 중간대상을 통해서 극복해 나간 것입니다. 즉 인형을 아버지로 상징화시킨 것이죠. 그리하여 아버지에 대한 분노를 그 인형에 쏟아 붓고, 아버지로부터 받지 못한 사랑 그리고 아버지에게 드리고 싶은 사랑을 인형을 중간대상으로 상징화하여 해결해 낸 겁니다.
탐구자 : 이런 상징화를 통해 결핍된 사랑을 채운 것과 성적이 올라간 것과 무슨 상관관계가 있을까요?
분석가 : 사람이 자라는 동안 어느 시점에 결핍이나 상처가 있으면, 리비도 즉 감정의 에너지가 그 시점에 머물러 있게 됩니다. 그리하여 그 리비도와 관련된 어떤 특정한 상황이 전개되면 그때 그 리비도는 자아에게 퇴행을 요구하게 됩니다. 사람은 자신이 늘 현실에서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과거의 시점에 머물러 있는 리비도를 남겨 두고 있다면 현실에서 사용할 수 있는 리비도가 적어지게 됩니다. 이 소녀의 경우, 그러는 중에 이런 중간대상 경험을 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까 더 이상 리비도를 과거에 남겨둘 필요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그 리비도를 현실의 상황에서 가장 필요한 곳에 투여를 할 수 있게 된 것이죠. 이 소녀는 학생 신분이기에 공부를 열심히 해서 성적을 올리는 것이 급선무였기 때문에 리비도를 공부하는 데에 제대로 쓸 수 있게 된 겁니다. 그래서 성적을 올릴 수 있게 된 것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