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간대상(1) : 중간현상과 중간대상

자꾸 사라지는 어머니를 대신하는 중간대상

중간대상이란?


탐구자 : 중간대상은 어떤 의미를 가지게 되는 것인가요?


분석가 : 중간대상의 첫 번째 의미는 사라지는 어머니를 대신한다는 것이고, 두 번째 의미는 유아가 어머니와의 존재 융합을 탈피하면서 현실 인식의 시작을 알리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중간대상은 두 가지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어머니를 상징화시키는 것과 바깥의 현실세계를 대표하는 상징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 중간대상입니다.


탐구자 : 중간대상이란 구체적으로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요?


분석가 : 유아는 그 동안 외적 대상으로서 어머니의 젖가슴을 어머니와의 융합적인 존재경험을 통해 자신의 내적 세계 안으로 들이게 되는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이 과정을 가만히 보면, 아기는 어머니의 젖가슴을 단순히 밥그릇으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놀고 있다는 점을 주목해야합니다. 아기는 어머니의 젖가슴을 잘 가지고 놀게 됨으로써, 외부에 있는 젖가슴이 아기 내면으로 내사되면서 내적 대상, 또는 내적실재가 됩니다.


철학자 : 분석가가 지금 하신 말씀을 존재론적으로 보자면, 아기에게 타자성이 들어오게 되는 것입니다. 아기는 통합되지 않은 상태에서 존재의 기원이 되는 자체성의 상태에 충분히 머물면서 차츰 자기 동일성을 형성하게 됩니다.

자기 동일성이란 자기만의 것으로 형성해 가는 것이 아니라, 타자라는 대상을 자기 안에 들이게 되면서 일자(一者, the One)로서의 자체성에서 분리되어 나오면서 자기 동일성을 가지기 시작하는 겁니다.


분석가 : 그렇습니다. 타자가 들어옴에도 불구하고 자기 동일성이라 할 수 있게 되는 것은 바로 유아는 어머니와 존재적으로 융합상태이기에 서로 간에 경계가 없고, 서로의 것을 주고받을 수 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가능하게 됩니다. 아기는 어머니에게 줄 수 있는 것이 없기 때문에 어머니의 것을 일방적으로 내면화시키게 되는 것입니다.


철학자 : 자기 동일성의 주제를 놓고 볼 때, 순수하게 자기 것만으로 동일성을 가지는 경우는 없습니다. 이것은 동물도 식물도 마찬가지입니다.

뇌 과학자인 박문호 박사가 이것을 진화론적으로 잘 설명하더군요. 박문호 박사에 의하면, 지구 외의 다른 별에서는 단세포 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는 지구에 생명체가 있게 된 이유에 대해, 지구에서는 단세포가 다른 세포를 수용하면서 다세포로 발달해 가면서 진화가 가능했던 결과라고 하더군요. 이때 단세포 안에 다른 세포가 들어온 그것이 바로 미토콘드리아라는 것입니다. 이 미토콘드리아가 세포 안에 타자로 들어와서 그 세포의 동일성을 유지시켜 줄뿐만 아니라, 그 세포가 존재할 수 있도록 에너지를 생성해 내는 역할을 하게 됩니다. 하나의 세포 안에 수백 개의 미토콘드리아가 있는데, 그 수가 많으면 많을 수록 그 세포는 건강할 뿐 아니라 많은 에너지를 만들어낸다고 합니다. 세포 내의 미토콘드리아의 존재와 역할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것은 바로 ‘내 안에 있는 타자’라는 점에 주목하는 것입니다.


분석가 : 그것은 한 사람이 인격을 형성해 가는 과정을 설명하는 것과 똑같은 이치입니다. 사람이 태어나면 오로지 자기 자신만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제일 먼저 어머니라는 대상이 아이 안에 들어가 내적 대상으로 형성됩니다. 물론 세 살 이후에는 아버지도 내면화되어 '초자아' 형성에 중요한 형식과 내용이 됩니다. 아이는 그 다음부터 수많은 사람을 만나 그 사람들의 어느 부분을 동일시하는 것으로 자신의 인격을 형성하게 되고, 그것이 또한 그의 후천적인 성격이 되기도 합니다.


중간현상과 중간대상


탐구자 : 사람은 자신만의 순수한 것으로 자기 동일성을 확립할 수 없다는 말씀이군요. 우리는 평생 타자를 동일시하면서 나를 구성해가는 존재라는 말씀에 동의합니다. 또한 나와 타자 사이에는 이 둘을 연결해 주는 중간 역할을 대상이 있을 것 같아요. 그 중간대상이 바로 오늘의 주제인데, 중간대상이 뭔지를 좀 설명해 주시죠.


분석가 : 중간대상이란 먼저 어머니가 사라지는 것에 대한 대체물로서 애착을 가지게 되는 하나의 물건을 말합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어머니가 늘 불러주는 자장가, 또는 ‘엄마가 섬 그늘에’같은 노래이거나, 유아 자신의 옹알이 또는 자신의 주먹을 입에 집어넣는 행동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중간대상이라기 보다는 어머니와 유아 사이에 있는 중간영역에서 일어나는 ‘중간현상’이라고 부르는 게 낫습니다.

‘중간현상’은 중간대상 경험보다 훨씬 일찍 일어납니다. 넓게 보면, 중간대상 경험 역시 중간현상에 속하는 것입니다. 유아가 어떤 특정한 사물을 대상으로 사용할 때, 그때 그 사물은 중간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유아가 중간대상을 사용하는 데 있어 중요한 동기는 아이의 자발적인 능동성에 있습니다. 아기는 어머니의 사라짐에 대해 수동적으로 당하는 입장인데 비해 이러한 수동성에서 벗어나기 위해 중간대상을 세워 아기가 주도적으로 그 대상을 자기 통제하에 두는 능동성을 발휘하게 됩니다. 그럼으로써 어머니가 사라지는 불안에 대해 대처하게 되고, 아울러 그 중간대상에게 생명력을 부여하는 창조자가 됩니다.


신학자 : 맞습니다. 생후 1년이 지난 아기로서 어머니과 자신 사이에 중간대상을 세울 수 있다는 것은 그 아이는 이미 자기 존재 동일성, 즉 <I am>을 획득했다는 말입니다. 위니캇도 <I am>을 전능환상을 충분히 경험한 아이들은 이미 스스로 창조자임을 선언하는 것이고, 전능자가 되는 것이죠. 그래서 아이는 중간대상에게 생명력을 부여할 수 있게 되고, 나중에는 이 대상을 버리기도 하는데, 이는 생사여탈권을 가지게 되는 전능자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분석가 : 전능자 경험이지만 아기도 그 중간대상의 한계를 분명하게 정합니다. 중간대상은 어디까지나 사라진 어머니를 대신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중간대상은 딱딱하거나 잘 부셔지거나 잘 부러지는 것 일이어서는 안 됩니다. 중간대상의 성질에 대해서는 아기가 더 잘 알고 있습니다. 아기는 보통 곰 인형과 같은 부드러운 장난감, 유아 자신의 베개나 덮는 이불 같은 부드럽고 유연한 것을 중간대상으로 사용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아기에게 소중한 것은 어머니의 존재 연속성을 연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라져도 어머니의 존재를 중간대상을 통해서 연속성을 연장해 나가는 거죠. 어머니는 사라짐으로써 아기를 배신하지만, 아기는 이처럼 자신을 배신하지 않는 중간대상을 세웁니다. 그래야만 아기는 자신을 분리불안으로부터 보호할 수 있게 됩니다.


탐구자 : 유아는 새로운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매우 기발한 아이디어를 사용하게 되는군요. 그렇다면 어머니와 중간대상은 상호 간에 경쟁자가 되는 것인가요? 만일 건강하지 못한 어머니라면, 아기가 어머니 대신 중간대상을 사용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 시기심이 올라와 그 중간대상을 싫어하지 않을까요?


분석가 : 아이가 중간대상을 데리고 노는 것을 시기할 만큼 건강하지 못한 어머니 밑에서 자란다면 그런 아이는 중간대상을 사용할 생각조차 못할 수 있습니다. 생후 1세 이후 모든 아이들이 중간대상을 세울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일상적 삶에서 상징성을 가지지 못하는 어머니, 심각한 우울증에 걸려 있는 어머니, 불안에 시달리는 어머니 등 정서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어머니 슬하에서 자라는 아이는 중간대상을 경험하지 못할 수 있습니다.

중간대상은 어디까지 현존하는 어머니 대신 사물 대상으로 상징화하는 대단한 정신적 작용입니다.


탐구자 : 그 시기의 아이를 관찰해 보면, 어느 시점이 되면 아이에게 중간대상은 실제 어머니의 현존보다 더 중요해지는 시점까지 도달하게 되더라고요?


분석가 : 그렇게 되죠. 곰 인형이 사라져서 아기가 마구잡이로 울어대면, 어머니가 곰 인형을 기를 쓰고 찾아줘야 비로소 울음을 멈추게 되는 경우가 바로 그런 예라 할 수 있습니다. 유아가 어머니의 부재에 대처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주변에 있는 가장 친근한 사물을 어머니와 같은 의미를 가진 존재로 삼는다는 점에서 상징화시키는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입니다.

상징화라는 것은 사물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의미보다 훨씬 많은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아기가 이 시기에 중간대상을 경험함으로써 이후의 삶에 굉장한 영향을 미칠 수 있습니다.


Violist 용재 오닐의 아기담요


탐구자 : 용재 오닐이라는 비올리니스트의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그 연주자는 혼자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꼭 가지고 다니는 것이 있다고 해요. 바로 자신이 어릴 때 할머니가 덮어주던 담요라는 것입니다. 그것도 중간대상의 개념이겠죠?


분석가 : 정확하게 보셨습니다. 아기가 하나의 사물에 어머니의 현존이라는 상징성을 부여하는 중간대상을 충분히 경험하면서, 유아 자신은 다른 존재 차원으로 진입하게 됩니다. 아기에게 중간대상이 매우 중요한 대상이었다가 더 이상 사용할 필요가 없게 되는 시점이 되면 마치 다 먹은 젖병을 뒤로 던져 버리듯이, 언제 그렇게 소중하게 여겼던 적이 있었든가 싶을 정도 폐기처분을 해 버리게 되죠. 그런데 가끔 이미 중간대상으로서 폐기처분 되었던 것이기는 하지만, 유아기 때 불안이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든가, 존재의 위기 상황에 처해 있을 때, 자신의 존재가 위축되어 누군가의 위로가 필요할 때, 보관해 놓았던 중간대상을 끄집어내어 위기 상황을 대처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용재오닐의 담요가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런 위기 상황에서는 중간 대상이 구세주 역할을 하는 것입니다.


탐구자 : 아기는 어머니가 사라지는 불안에 대한 대처를 중간대상을 세움으로써 극복한다는 말씀이시군요. 그렇다면 어머니가 하나이듯이 그 중간대상도 하나여야 하겠고, 어머니가 아이에게 존재연속성을 유지해 주는 것이 중요 하듯이 이 중간대상의 존재 연속성도 매우 중요하겠군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아기는 이 중간대상에게 생명력을 부여하게 된다는 점에서 매우 마술적인 전능환상 체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아기가 기분이 좋을 때는 중간대상을 좋은 대상으로 여기지만, 기분이 나쁘거나, 화가 났을 때는 엄청난 공격성을 투사하게 되는 대상이기도 하죠. 그럼으로써 자신의 심리적인 기질을 새롭게 다루어 가게 됩니다. 아기는 대상을 창조하고, 고안하고 생산하고, 다정스럽게 대하기도 하고 죽이기도 할 수 있는 대상으로 중간대상을 사용하게 됩니다.

용재 오닐이 그 담요에 대해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가 세계 각국으로 연주여행을 다니면서, 혼자 여행다니고 많은 관중 앞에 홀로 무대위에 서야 하는 등을 생각하면 늘 불안하다고 합니다. '연주를 잘 해 낼 수 있을까?' '수많은 사람 앞에 혼자 무대 위에 올라가 연주해야 하는 부담감' 등을 생각하면 불안감이 밀려 온다고 합니다. 그때 할머니가 덮어 주던 담요를 꺼내 덮고 자면 불안이 사라지고 잠을 푹 잘 수 있게 된다고 합니다.

이런 것이 바로 중간대상이 가진 상징의 힘이죠.


광증의 보증서로서 중간대상


탐구자 : 중간대상의 의미가 불안대처를 위한 대상을 위해 고안해 낸 것이지만, 그 외에도 많은 의미가 있을 것 같습니다.


분석가 : 그렇습니다. 의미를 정리해 보면, 중간대상은 광증의 보증서 역할을 한다는 점입니다. 성인의 관점에서 보면, 아기의 행위는 미친 짓에 불과하죠. 생명이 죽어있는 사물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로 대한다는 것 자체가 미친 짓이지만, 이 중간대상이 가지고 있는 상징성이 바로 이런 광증의 보증서가 되는 겁니다. 이 말을 확대해서 말하자면, 유아기 때 중간대상을 경험한 사람은 현실적 상황이 자신의 존재를 뒤집어 버릴 만큼 힘들어서 미칠 지경까지 간다고 해도 다시 돌아 올 수 있는 보증서를 가지게 된다는 말입니다.


탐구자 : 광증의 보증이라 함은, 어떤 미친 짓을 해도 끝까지 가지 않을 수 있다는 말도 되겠군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사람은 어느 한 가지에 미칠 수도 있고, 깊이 빠져들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에 빠져 들어 이상해져서 현실로 나오지 못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아무리 깊이 빠져도 현실감을 놓치지 않고 제자리에 돌아올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학자 : 개신교 주변에는 수많은 이단들이 있는데, ‘이단 연구하다가 이단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런 경우가 바로 분석가가 방금 하신 말씀 중 전자에 해당되는 것이군요.


분석가 : 그렇지만 중간대상 경험만으로 모든 것을 다 재단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말하기가 조심스러워 집니다. 중간대상을 확실하게 경험한 사람은 이단에 빠질 일도 없고, 다단계에 쉽게 빠져들지 않습니다. 그런 유혹에 빠져드는 일이 있다 해도 빠져 나오는 힘은 바로 상징화능력으로부터 나옵니다. 일단 중간대상 경험을 가진 사람이라면 아무리 위험한 상황에 빠져 든다고 해도 자신 안에 있는 상징화 능력이 건강한 현실을 찾아 올 수 있는 복원력을 가지게 됩니다.


탐구자 : 광증이라 함은 아무래도 감정과 연결되는 것 같은데, 상징화 능력은 감정보다는 이성의 영역인 것 같단 말이죠. 이 둘 사이의 관계가 중간대상에서 어떻게 연결될까요?


분석가 : 광증이라고 하니까 감정 통제가 안 된다거나 이단이나 다단계 유혹에 쉽게 넘어 갈 때처럼 이성이 마비된다거나 하는 데에 국한 되는 것이 아닙니다. 감정 없이 너무 이성만 가지고 판단을 하게 되는 경우에도 광증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때의 광증은 더 잔인해집니다.


탐구자 : 이해가 좀 안 되는데요. 이성적인 사람이 광증을 부릴 때 더 무섭게 변할 수 있다는 말씀이잖아요.


분석가 : 좋은 예로 나치 독일 군인들을 예로 들 수 있습니다. 나치 치하의 독일군인들이 유대인을 잔인하게 학살할 때, 그들의 감정이 뒤집어져서 할 수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아주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 감정 없이 유대인들을 죽일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독일인들은 냉철한 이성을 가지고도 광증이 될 수 있다는 좋은 예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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