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자 : 자녀로 하여금 공부만 하면 되도록 주변관리를 다 해 주는 어머니는 ‘너무 좋은 어머니’였을 수 있지만 결과적으로 나쁜 어머니가 되어 버릴 수 있겠어요. 그럼 ‘나쁜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일까요?
분석가 :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본성적으로 나쁜 어머니는 없습니다. 이런 어머니의 나쁨은 자신이 돌봄을 받지 못한 결과일 뿐입니다. 한 마디로 모성성의 부족으로 자녀가 원하는 것을 잘 챙겨줄 수 없는 어머니입니다. 그리고 그런 어머니의 모성성 부족은 바로 자신이 자신의 어머니로부터 받은 것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고요. 그 모성성애 관한 심리학적 접근방법 중 하나는 릴리스와 하와로 나눠서 설명하는 방식입니다.
신학자 : 기독교, 즉 개신교나 가톨릭에서 인정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유대교는 릴리스와 관련된 설화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건 신학적 교리로 들으면 안 되고 심리학적인 이야기로 들어주시면 좋겠어요.
성경에 창세기 1장에서 하나님의 인간창조가 나옵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27)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2장에 보면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 돕는 배필을 만드시고 그 이름을 ‘여자’라고 부르니라(21~23)…. 이렇게 되어 있단 말이죠.
정통 기독교 신학에서는 이 두 여자는 같은 여자라고 해석됩니다. 그러나 유대교 전승에서는 하나님이 여자를 두 번에 걸쳐서 창조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전자는 릴리스로, 후자는 하와라고 구별해서 불립니다. 그런 전승의 주장의 연장으로 이사야 34장 14절에 ‘올빼미’로 표현되는 것이 바로 밤의 유령 또는 요괴로 등장하는 것이라는 겁니다. ([엄마의 자세가 아이의 인생을 결정한다], 21쪽)
실제로 현대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이사야 34장 14절의 올빼미를 '릴리트(לִּילִית)'로 직접 표기합니다.
들짐승이 이리와 만나며 수염소가 그 동류를 부르며 올빼미가 거기 거하며 쉬는 처소를 삼으며(개역한글판)
וּפָגְשׁוּ צִיִּים אֶת-אִיִּים, וְשָׂעִיר עַל-רֵעֵהוּ יִקְרָא; אַךְ-שָׁם הִרְגִּיעָה לִּילִית, וּמָצְאָה לָהּ מָנוֹחַ.
(사막 짐승과 사막의 털 많고 소리 지르는 짐승(염소)들은 서로 만나 동료들을 부를 것이다. 게다가 릴리트/큰부엉이는 잠잠하게 쉴 (장소를) 찾으며) 현대 히브리어 성경
분석가 : 두 여자의 존재를 각각 구분해서 규명하는 유대교 전승은 오늘날 심리학에서 모성애를 두 가지로 구분해서 설명하는 데에 아주 유효 적절하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일찍이 문학은 창세기 1장의 여자의 이름을 바로 ‘릴리스’라고 지어준 적이 있습니다. 괴테의 파우스트에 릴리스라는 이름이 나오죠. 릴리스는 유대 전승에서 문학으로 전이되는 과정이 있습니다.
태초에 릴리스는 아담과 동등하게 창조되었기에 늘 남녀동등을 주장하다가 결국 에덴에서 추방되어 여러 곳에 숨어들게 됩니다. 릴리스는 각종 동화 속으로, 문학 속으로 들어가 마녀나 계모 등으로 나타나며, 오늘날에는 심리학으로 전이되어 릴리스 콤플렉스라는 개념을 형성하게 됩니다. 이로써 릴리스는 현대 여성 해방의 중심에 서게 되었고, 오늘날 페미니즘의 원조가 되었다는 겁니다.(위의 책, 28쪽)
릴리스 콤플렉스의 핵심개념은 여성들이 아기를 거부하는 자세로 나타난다고 합니다. 릴리스 콤플렉스에 사로잡힌 여자는 새로 태어난 아이를 훔치거나 죽이며, 아이의 피를 마시고 뼈에서 골수를 빨아먹는 끔찍한 어머니의 전형이 됩니다.(같은 책, 29쪽)
탐구자 : 릴리스라는 이름 자체는 현대 여성의 이름 같은데, 그 여자의 역사가 창세기, 파우스트, 각종 동화로, 심리학으로 끊임없이 이어진다는 것이 참으로 놀랍네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오늘날 릴리스는 더 이상 문학 속에 동화책 속에 숨어있지 않습니다. 릴리스는 여성 운동가들, 특히 페미니스트들의 심장 안에 파고들어서 사회 전면에 나서고 있습니다.
탐구자 : 칼 융도 릴리스에 대해 자신의 저서의 여러 곳에 언급을 하고 있던데요?
분석가 : 칼 융은 릴리스를 어머니 원형의 문제를 다루면서 자주 언급을 하는데, 릴리스는 ‘부정적인 아니마(남자 안에 있는 여성성)’의 전형으로 해석을 하죠. 탈무드에서 릴리스는 긴 머리카락에 가슴의 절반이 훤히 드러나는 모습을 한 채, 남자를 유혹하고 아이를 위협하는 요부로 묘사되어 있다고 해요.(18). 또 괴테의 [파우스트]에서도 멤피스토펠레스가 파우스트에게 릴리스가 아담의 첫 번째 아내로 소개하면서 그녀의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한 번 유혹하면 절대 놓아주는 법이 없는 그녀의 옷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죠.(Faust, Johann Volfgang von Goethe, trans by Bayard Taylor, The World Publishing Co., N.Y, 257))
탐구자 : 릴리스는 분명히 하와와 반대적 측면을 제시하기 위해 나오는 여인인 것 같은데, 두 사람의 결정적인 차이가 뭔가요?
분석가 : 릴리스는 모성애가 결핍된 여인으로 묘사되면서 다른 한편 자신의 삶을 개척해 가고 자신의 욕망을 포기하지 않고 성취해 내는 여자입니다. 그 반대의 입장에 있는 하와는 가부장적 사회에서의 전형적인 모성애를 갖춘 여자인 반면, 릴리스의 입장에서 하와를 보면 하와는 전통적인 가부장적 사회의 희생자에 불과합니다.
탐구자 : 두 사람 각각 장단점이 다 있는 거네요. 지금까지는 가부장적 사회여서 여자는 하와로 살아가는 것이 마땅하게 받아 여겨졌지만, 페미니즘이 득세하는 미래 사회에서는 릴리스로 살아가는 것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겠군요.
분석가 : 그렇게 보는 것보다는, 모든 여자 안에는 두 가지 측면이 있다고 보는 것이 더 교훈적이라 여깁니다. 여성은 자신 안에 있는 릴리스적인 측면과 하와적인 측면을 잘 통합해 가야 하는 과제를 가지게 됩니다. 만일 릴리스적인 측면만 가지고 살아가는 여성이 하와 측면을 통합해 내지 못하면, 결혼하여 자녀를 낳게 될 때, 그녀는 그 자녀에게는 아주 ‘나쁜 어머니’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머니가 아기를 낳고도 아기의 양육을 위해 집중을 해 줘야 하는데 전혀 모성애를 발휘하지 못하게 되면 그 아기는 생애 초기부터 존재 자체에 치명적인 문제를 안게 됩니다.
탐구자 : 실제로 우리나라에서 발생했던 유명한 사건이 기억이 나네요. 2006년도에 서울의 서래 마을에 살던 프랑스 여자가 아기를 낳은 후 양육에 대한 개념이 없어서 냉동실에 넣어서 얼려 죽이는 일이 발생했잖아요? 냉동실에서 영아 시체 2구가 발견된 사건이죠. 그 여자가 프랑스에서 살 때에도 갓난아기를 죽여서 벽난로에 넣었던 적도 있었다고 합니다.
분석가 : 매우 전형적인 ‘릴리스’입니다.
탐구자 : 그런데 그런 어머니조차도 ‘그 자체로 나쁜 어머니’는 아니다 하는 말씀인 거죠?
분석가 : 그렇습니다. 유대전승이 제시하는 것처럼, 본성적으로 릴리스를 타고난 여자는 없습니다. 여자라면 누구나 모성애를 가지고 태어나는데, 자신이 유아기 때부터 자라는 과정에서 어머니로부터 모성애 경험이 결핍되어 있어서 자신도 모성애 발휘가 불가능하게 된 것입니다.
탐구자 : 신데렐라의 계모, 백설공주의 계모왕비, 팥쥐 엄마 등이 다 릴리스를 표상하는 여인들이군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모성애라는 것은 그 자체가 완벽한 이데아 일뿐, 완벽한 모성애충족을 받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여자라면 누구나 하와의 측면과 릴리스의 측면을 다 가지고 있는데, 이 둘을 어떻게 조화롭게 통합하느냐가 중요한 이슈가 됩니다.
탐구자 : 우리나라의 경우 오랫동안 유교문화의 영향으로 하와적인 측면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겠군요. 우리나라의 대표적 여성상이라 함은 신사임당 같은 현모양처가 아니겠습니까?
분석가 : 지금까지는 그랬죠. 그런데 이런 상(像)도 많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모양처상이 우리 사회의 대표적인 여성상이라는 것도 이제는 좀 수정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같은 첨단과학 시대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거든요. 오늘날에는 현모양처 상에 너무 급격한 변화가 일어나서 좀 당황스러운 점도 있습니다.
2000년 이전에는 모성애가 지나치게 강조되다 보니까 여자들이 릴리스적 측면을 억압하면서 살다가 요즘같이 여자들이 자유로워진 시대에는 그동안 억압되었던 릴리스가 마구 튀어나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우리 사회가 이미 여성중심의 사회로 변모되어 가면서 릴리스를 더 이상 억압할 이유가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꼭 이런 사회적 변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여성이 하와로 살아오다가도 중년기가 되면서 갑자기 릴리스가 튀어나오기도 하거든요. 우리 사회는 ‘모’ 아니면 ‘도’로 가는 경향이 강한 면이 있어 여성들이 그 중간적 형태를 만들어 내든지 또는 여성성의 두 측면을 통합하는 힘이 매우 약화되어 있습니다.
탐구자 : 남성들에게는 그런 측면이 없나요? 여자가 두 측면을 가지고 있다면 남성도 마땅히 상응하는 이슈를 가지고 있을 것 같은데요.
분석가 : 남성에게 있어 그 갈등이 더 심각하게 드러납니다. 여성들의 문제는 최근에 이슈화되기 시작하였지만, 남성들의 문제는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으며 그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계속 있어 왔습니다.
남성은 무의식적으로 두 여자를 추구합니다. 하나는 어머니 같은 여자이고 다른 하나는 애인 같은 여자입니다. 남성에게는 자신의 여성성을 성숙시켜 나가는 과제를 안고 있는 셈인데, 남성의 과제 역시 이러한 두 측면의 통합을 이루는 것입니다. 남성에게 있어 어머니 같은 여자는 하와의 측면이고, 애인 같은 여자는 바로 릴리스의 측면이죠.
탐구자 : 보통 남성들은 어머니 같은 여자를 찾지 않나요? 대학생 정도의 남자 청년에게 ‘어떤 여자를 찾느냐?’고 물으면, 대개 ‘어머니 같은 여자’라는 답변을 많이 하거든요.
분석가 : 사실은 그게 문제입니다. 아직 어머니로부터 심리적으로 분리가 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하는 답변이거든요. 그런 남성이 어머니 같은 여자를 찾는 이유는 남성 자신에게 가장 안전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탐구자 : 그렇게 안전한 결혼이라면 행복할 수 있겠군요.
분석가 : 행복이요? 문제는 결혼의 행복을 찾아가기 위해서는 많은 고비를 넘어가야 합니다.
탐구자 : 무슨 고비가 기다리고 있을까요?
분석가 : 남성 입장에서 보면 어머니 같은 여자는 안정감을 주기는 하지만 여자로 느껴지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남성은 다른 여성에게 눈을 돌릴 가능성이 높아지게 됩니다. 말하자면 애인 같은 여자가 필요하게 되는 거죠. 어떤 집은 어머니 같은 여자와 결혼을 했는데, 남성의 성적 리비도가 성관계까지 발전하기가 매우 힘들게 되는 것이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남성에게 여자가 늘 어머니 같기 때문에 성욕이 잘 일어나지 않는 겁니다. 그래서 어머니는 딸과 같이 자고 아버지는 아들과 같이 자면서 각방 쓰는 것에 매우 익숙해져 버리더라고요.
탐구자 : 요즘 젊을 때부터 각방 쓰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더라고요.
분석가 : 그렇게 되면 아이들이 커서 결혼을 해도 남자와 여자는 같은 방에서 같이 자야 한다는 개념을 가지기가 힘듭니다. 어떤 부부는 둘 다 의사인데, 각각 자기 부모들이 각방 쓰는 것을 어릴 때부터 봐왔기 때문에 한방에서 자는 법을 알지 못하더라고요. 밤이 되면 여자는 피곤하니까 안방에 들어가서 자고, 남편은 거실 소파에 누워서 TV를 보면서 잠을 자는 거예요. 그 부부는 2년 만에 이혼했는데, 이혼할 때까지 여자는 처녀성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탐구자 : 그럼, 충분히 좋은 어머니는 어떤 어머니인가요?
분석가 : 일단 초기 몇 달 동안은 ‘일차적 모성몰두’를 잘 수행하는 어머니입니다. 이때는 아기가 가벼우니까 아기와 늘 함께 있으면서, 안고 있든지, 업고 있든지 하게 되죠. 그러다가 아기가 커가면서 6개월쯤 지나게 되면 어머니도 더 이상 아기를 업고 안는 것이 힘들어지게 됩니다. 그때부터는 어머니가 항상 아기 곁을 지킬 수 없게 됩니다. 때로는 어머니가 아기를 놔두고 가까운 슈퍼를 다녀올 수도 있고, 옆집에 잠시 둘렀다 올 수도 있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도 있고 등등의 일들이 발생하게 되죠. 그때 아기는 어머니가 일시적으로 사라짐에 대해 조금씩 적응하기 시작하고 차츰 어머니가 없어지는 시간이 길어져도 견딜만해지게 되는 것입니다.
탐구자 : 6개월 이전에는 그게 안 되는 것인가요?
분석가 : 6개월 이전에는 아기의 기억력이 작동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 시기에는 어머니가 있으면 살아 있는 것이고, 어머니가 없는 것은 죽은 것이거든요. 아기는 어머니를 통해서 자신의 생사를 확인하는데, 어머니가 죽었다는 것은 아기 자신이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6개월이 지나면 아기는 기억력이 작동하게 되면서 어머니의 사라짐을 경험해도 조금 전에 함께 있었던 어머니의 상을 내면 안에 가지고 시작하면서 조금씩 어느 정도 견딜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또 아기는 어머니가 사라지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자신의 남편 곁에 있기 위해서라는 사실을 알게 되죠. 아기가 어머니가 이런저런 이유로 사라지는 것을 감당하게 되면서 ‘적절한 좌절’, 즉 감당할만한 좌절을 겪게 되는 것이죠. 아기는 적절한 좌절을 통해 조금씩 자아를 형성해 갑니다. 이처럼 어머니는 아기에게 ‘적절한 실패’를 하고 아기는 ‘적절한 좌절’을 경험하게 하는 어머니가 ‘충분히 좋은 어머니’인 셈이죠.
탐구자 : 아기는 그런 적절한 좌절을 통해 어떤 유익을 얻게 되나요?
분석가 : 아기 스스로 존재 욕망을 다루는 법을 배우게 되는 유익이 있는 거죠. 한동안 어머니가 아기에게 모든 것을 다 해 주다가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어머니가 가끔씩 사라지기도 하고, 아기가 원하는 것을 안 해 주기도 하면서 적절하게 좌절을 주면, 바로 그때 아기는 스스로 정신 작용을 하게 됩니다. '엄마가 안 해면 나로도 하지 뭐' 이런 식이 되는 것이죠.
탐구자 : 적절한 좌절을 주지 못하는 경우 아기는 어떻게 되는 것인가요?
분석가 : 위에서 언급한 남미 소설처럼 사람이 자기 스스로 할 수 있는 능력을 상실하게 되어 버리든가, 동굴의 비유처럼 어머니가 동굴 뒤에서 인형을 조종해서 눈앞에 보이는 스크린만 보고 살게 만드는 것과 같은 결과가 되겠죠.
탐구자 : 적절한 좌절을 경험한다는 것은 아기가 성장해 가는 데 있어서 필수적인 과정인 것 같네요. 적절한 실패를 하지 않는 어머니도 문제가 있는 어머니인 거군요.
분석가 : 어머니의 적절한 실패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머니는 일종의 이중직을 감당해야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말하자면, 아기에는 어머니이지만, 그 어머니가 자신의 남편에게는 아내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아기에게 적절한 좌절을 주지 않는 어머니는 남편에게 아내의 역할을 충실히 하지 못하고 있다는 말이 되니까 그때부터 벌써 삼자 관계가 어그러지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탐구자 : 결국 세 사람 모두가 어느 정도의 자기희생 또는 헌신이 필요한 것이군요. 아기는 어머니의 중복적인 위치에 있음을 받아들여야 하고, 어머니는 아기에게 무한정 희생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분석가 : 결혼한 여성은 일차적으로 자신의 남편을 통해서 자아실현을 해야 하는데, 남편이 그 역할을 해 주지 못하면 여성은 자신의 자녀를 통해 자아실현을 하려고 하게 되기 십상입니다. 그러면 여성은 남편대신 아기를 자신의 소망을 실현시켜 주는 대상으로 삼게 됩니다. 그러면 어머니는 아기를 꼭두각시처럼 뒤에서 조종하는 동굴의 주인이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