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질적으로 나쁜 부모는 없다

너무 좋은 어머니는 나쁜 어머니다

본질적으로 나쁜 부모는 없다


탐구자 : 오늘은 어머니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싶습니다. 세상에는 나쁜 어머니가 되려고 노력하는 어머니는 없을 것 같아요. 어머니라면 누구나 자신은 자녀를 위해서 좋은 어머니라고 생각하면서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 같아요.


분석가 : 그렇습니다. 누가 자신이 스스로 나쁜 어머니라고 자처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누구나 어머니라면 최선을 다해 자녀를 양육하게 되어 있죠. 어떤 어머니가 좋은 어머니인가 하는 문제는 정서적으로 얼마나 건강한 어머니인가의 주제와 연결됩니다. 세상에는 본질적으로 나쁜 어머니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닙니다.


탐구자 : 먼저 ‘좋은 것’이 무엇이고 다음에는 ‘나쁜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이 있어야 될 것 같아요.


철학자 : ‘좋음’과 ‘나쁨’을 본질적으로 동등하게 대립하는 것으로 볼 수는 없습니다. 말하자면 이 둘을 이원론적으로 보면 안 된다는 말입니다. 호불호(好不好)라는 한자에서 볼 수 있듯이, ‘나쁨’은 좋음이 없는 상태, 즉 결핍의 상태인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이원론에서 벗어날 수 있죠. 플라톤은 [국가] 제2권에서 좋음에 대해서 언급을 합니다. 좋음을 ‘자체로 좋음’과 ‘결과로써 좋음’으로 구분하죠. 그러나 플라톤은 ‘나쁨’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나쁨’은 ‘좋음’의 이데아가 존재론적으로 ‘있지 않음(無)’, ‘결핍’에 있기 때문입니다. 플라톤은 ‘무’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신학자 : 아우구스티누스도 선과 악에 대해 설명을 플라톤식으로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플락톤 철학을 가지고 신학화하였기 때문이지요. 아우구스티누스는 오랫동안 마니교에 빠졌다가 하나님을 만나고도 마니교에서 쉽게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그 이유가 그가 마니교가 제시하는 선과 악의 이원론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마니교는 세상의 모든 것에는 선과 악이 있고, 신도 선신(善神)이 있고 악신(惡神)이 있다는 구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이 문제를 해결하느라 마니교에서 빠져나오는데 시간이 걸렸습니다. 그가 내린 결론은 악이 존재하지만 실체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선의 결핍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탐구자 : 존재는 하는데 실체는 아니다? 좀 이해가 안 되는데요.


신학자 : 예를 들어, 밤이 되면 어두워질 때 전등을 켜면 어둠이 사라져 버리죠. 어둠이 존재는 하지만 실체가 없기 때문에 빛의 실체가 나타나는 순간 그 존재조차 사라져 버린다는 것입니다. 선과 악도 바로 이와 같은 것입니다.


탐구자 : 그렇다면, ‘좋음’과 ‘나쁨’, 또는 ‘선’과 ‘악’을 오늘의 주제가 되는 어머니 존재에 대해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요?


분석가 : 철학자가 제시하신 플라톤의 구분에 따르면, 좋은 어머니는 그 자체로 좋은 어머니가 있고, 그리고 결과적으로 좋은 어머니가 있겠지만, 그 자체로 나쁜 어머니는 없습니다. 어머니로서 ‘좋음’의 결핍, 즉 모성애의 결핍으로 나쁜 어머니가 있을 수 있겠습니다. 그 중간 형태라고 볼 수는 없지만, 그 두 어머니 사이에는 ‘너무 좋은 어머니’가 있습니다. 좋은 어머니는 ‘충분히 좋은 어머니(good enough mother)’이면 되는데, ‘너무 좋은 어머니’는 결국 아이의 존재를 망쳐 버리는 결과가 됩니다.


탐구자 : 그렇다면, ‘너무 좋은 어머니’는 어떤 범주에 들어가나요?


분석가 : 그런 어머니는 ‘자체로 좋은 어머니’는 아니고, ‘결과적으로 좋은 어머니’가 있듯이, 그런 어머니는 ‘결과적으로 나쁜 어머니’로 전락하는 어머니가 되는 거죠.



너무 좋은 어머니(Too good mother)는 나쁜 어머니다


탐구자 : ' 나쁜 어머니', 그리고 '너무 좋은 어머니', '충분히 좋은 어머니'. 요즘은 이 셋 중에 어떤 어머니가 많은가요?


분석가 : 불행히도, 우리 사회에는 ‘너무 좋은 어머니’가 너무 많습니다. 그래서 자녀 입장에서는 ‘좋은’의 의미에 꽂혀서 좋은 어머니인 줄 압니다. 그리하여 자녀는 자신을 생각해 주고 배려해 주고 사랑해 주는 어머니라 여겨서 끝까지 순종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런 아들은 자신을 망가뜨려 가면서까지 그런 어머니를 보호하기도 하죠. '너무 좋은 어머니'에 대한 아들의 이러한 태도 때문에 아들의 부부관계가 심각한 문제를 안고 살게 됩니다.


철학자 : 남미의 어느 작가의 소설에서 ‘너무 좋은 어머니’의 내용을 담아내고 있습니다. 남편이 바람을 피워서 낳은 아들을 데리고 옵니다. 그의 아내는 이 아들을 잘 대해 줍니다. 아들이 요구하는 것은 어느 하나 거절하지 않고 모두 들어줍니다. 이 아들이 성인이 되어 사회로 나가게 되는데, 그때서야 어머니가 모든 것을 다 해 줬기 때문에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결국 그 아들은 자살을 하게 됩니다. 그 아내는 이런 식으로 남편의 외도에 대해 보복을 행한 것이었습니다.


분석가 : ‘너무 좋은 어머니’의 예를 보여주기에 적합한 소설이군요. 너무 좋은 어머니는 위험한 어머니입니다. 보통의 경우 어머니들은 그 위험을 자신이 알지 못하고, 오히려 너무 잘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어머니에 의지하면서 자란 자녀는 위기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데 그 자녀는 ‘너무 좋은 어머니’ 때문에 위기가 다가 오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위기에 깊이 빠져들면서 헤어나올 수 없게 됩니다. 모든 것을 '너무 좋은 어머니'가 다 해 줬기 때문에 위기에 대해 대처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지 못한 것입니다.


탐구자 : 그 소설의 경우는 의붓어머니가 의도적으로 아들을 그렇게 만든 것이잖아요. 일상적으로 만날 수 있는 어머니들 중에도 그렇게 ‘너무 좋은 어머니’가 있을까요?


분석가 : 우리 사회에 그런 어머니들이 너무 많은 것이 문제죠. 그런 ‘너무 좋은 어머니’가 일반화되어서 그런 어머니가 좋은 어머니인 줄 착각하고 있고 용인되고 있는 것이 우리 사회의 슬픈 단면입니다. 특히 서울의 어느 특정학군의 대부분 어머니들은 ‘너무 좋은 어머니’입니다. 자녀의 스케줄을 어머니가 다 만들어 주고 등하교와 학원, 또는 학원 간 차량 이동까지 책임져 주는 어머니들은 대개 ‘너무 좋은 어머니’들입니다. 자녀로 하여금 자신의 일을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는 기회를 빼앗아 버리게 되고, 자녀들은 그런 도움에 대해 아무런 거부감 없이 타성에 젖어 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안타까운 것은 그런 어머니들이 대부분 자신이 학교 다닐 때 공부를 제대로 해 보지 못했거나, 공부를 잘했어도 자신의 꿈을 이루지 못한 부모들이 내 자식만큼은 제대로 공부를 시켜서, 어머니가 원하는 직업을 가질 수 있도록 만들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그런 어머니들이 자기가 사랑하는 자식의 존재와 인생을 얼마나 왜곡시키고 있는가를 전혀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습니다.


탐구자 : 그런데 현실적으로는 그런 환경에서 자란 자녀들이 공부를 잘하게 되고 원하는 대학을 들어가게 되고 원하는 직업, 소위 최고의 직업이라 할 수 있는 판검사, 의사 등이 되는 데에 경쟁력을 갖추게 되는 것이 사실이자, 그 자체가 현실이기 때문에 부모로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받아들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요?


분석가 : 지금 탐구자의 말은 분명히 맞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그 말에는 학교를 다니는 목적이 오로지 공부라는 것에 있고, 사회로 나가서는 반드시 출세를 해야 된다는 전제가 깔려있습니다. 그래서 앞에서 이미 언급했듯이 많은 어머니들이 자녀를 자녀의 존재가 요구하는 대로 양육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요구하는 자녀로 양육해 나가게 되는 겁니다. 그렇게 볼 때 공부를 얼마나 잘해 내느냐, 어떤 사회적 위치에 올라가느냐가 삶의 가치를 평가하는 유일한 척도가 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본인에게 크게 불행한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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