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구자 : 요즘 우리나라 학교가 왜 이렇게 이상하게 돌아가는 것일까요?
분석가 : 어머니들이 자녀들을 한 존재로 보지 못하고 자신에게 예속화된 소유물로 보는 시각을 가지고 있는 것이 제일 큰 문제입니다. 어머니들이 자신의 인생에서 자아실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부분을 하지 못하고 자녀들을 통해 대리만족을 하려는 잘못된 태도를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부모는 자기 자신의 자녀의 미래를 망치고, 자녀가 자기 주체를 가지고 살아가지 못하도록 만들어서 사회 부적응자로 키우게 되는 겁니다.
탐구자 : 그런데 현실적으로 보면, 그런 아이들이 사회 부적응자만 되는 것이 아니고, 공부능력이 탁월해져서 유능하다는 인정을 받으면서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분석가 : 인정합니다. 사람의 외부적 환경과 내면의 상태가 다 다르기 때문에, 동일한 원인이 다양한 결과를 가져 올 수 있습니다. 탐구자가 언급한 사람은, 공부 잘하는 사람으로 양육 받아서 시험 치는데 유능하고 경쟁에서 뛰어난 결과, 사회적 지도자가 될 수도 있겠지요. 그런 모양으로 사회적 성공을 이룩한 사람이 약자가 억울한 일을 당할 때 약자의 편에 서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요? 이미 그런 사람은 어릴 때부터 약자들과는 다른 차원에 있는 존재로 살아왔을 뿐 아니라, 그들을 딛고 올라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약자의 편에 서는 경우는 드뭅니다. 그런 사람은 자신과 같은 존재차원에서 함께 자신과 어깨를 겨뤄왔던 경쟁자편, 즉 강자의 편에 서게 될 가능성이 높죠.
탐구자 : 그래도 그런 사람들은 청소년, 청년 시절에는 사회정의를 외치고, 부조리를 타파하고 약자에 대한 배려를 다짐하면서 청운의 꿈을 꾸어 왔던 시절이 있었을 텐데요?
분석가 : 사법연수원이나 의과대학에서 설문지를 돌려서 한번 물어보세요. 그런 꿈을 꿔 본 적 없이 이 자리까지 온 사람 있는지. 한 사람도 없을 겁니다. 그런데 권력의 자리에 앉는 순간, 자신이 지향하던 위치에 서는 순간, 그 곳은 내 꿈이 실현될 수 있는 시스템이 돌아가는 곳이 아닌 겁니다. 권력시스템, 상류계층의 시스템은 지금까지 살아 온 세계와 다른 법칙이 작동하는 곳이라는 것을 그때야 자각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런 세계에서는 상하좌우에서 밀려오는 힘의 중력의 법칙, 관계를 맺는 관성의 법칙, 권력이나 돈의 힘이 작동하는 가속도의 법칙 등이 일상에서 체득해 온 법칙들과 다르게 작용합니다.
탐구자 : 그렇다면 그렇게 새로운 법칙에 적응하고 난 후, 내가 권력 상층으로 올라가면 그런 법칙을 바꿀 수 있는 힘도 생길 것이고, 그때는 세상을 바꿀 수 있지 않을까요?
분석가 : 천만에요. 그런 사람은 그런 상황을 즐기게 되죠. 처음 그런 세계에 들어왔을 때에도 쉽게 적응을 해냅니다. 왜냐하면 어릴 때부터 익숙해 왔던 세계이거든요. 어릴 때부터 자기 존재로 살지 못하고 사회적 요구에 맞춰서 살아왔고, 어머니에게 휘둘려서 살아온 전력이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너무나도 익숙한 세계에 들어온 것입니다. 이런 사람이 무슨 약자에 대한 공감이나 배려가 있겠습니까? 살아온 세계가 일반인들의 세계와 다르고,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돌아가는 세계에 들어왔는데, 그리고 내가 그 세계에 진입해 보니 이미 너무 익숙한 시스템이 돌아가고 있고, 내가 누릴 것이 많은데... 약자에 대한 배려?, 사회 정의?, 평등?, 나도 이런 것을 외쳐 보지만, 그것보다 더 큰 이면이 내 뱃속에 숨겨져 있는 것입니다.
탐구자 : 세상에 대해 매우 비관적으로 말씀하시는군요.
분석가 : 문제는 그런 사회적 강자들이 가지고 있는 전체주의적인 속성입니다. 평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의 인격을 개별화시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의 인격의 속성을 권력의 속성과 동일시해 버리면 만사가 편해지는 겁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에도 전체주의 안에 들어가 있지만, 그 안에서도 자신을 개별화시키는 몇몇 사람이 분명히 있습니다.
탐구자 : 유아기 때는 가장 좋은 장난감은 바로 어머니라고 말씀하셨잖아요? 아이가 커 가면 아버지가 놀아줘야 되겠죠? 어머니와 놀 때와 아버지와 놀 때는 분명한 차이가 있을 것 같아요. 서로 보완적이기도 할 것이고요.
분석가 : 당연하죠. 어머니나 아버지나 놀이의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 안에서 놀아주는 것까지는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런데 어머니는 아이가 정해진 틀 안에서 놀기를 선호한다면, 아버지는 그 규칙의 틀이 유동적이며, 또 유동적이어야 합니다. 아이들이 어머니와의 놀이와 아버지와의 놀이의 차이가 그렇다는 것을 미리 알고 있습니다. 아이는 아버지가 정한 규칙과 한계 안에서 놀다가 어느 순간 그 규칙들을 슬쩍 넘어서게 되면서 희열을 느끼게 되고, 아버지는 그것을 허용해 주는 너그러움을 표현할 수 있게 됩니다. 바로 이점이 어머니와 아버지와의 차이이기도 합니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세상을 상징하고, 세상으로 나아가는 관문이며, 아버지 뒤에는 세상이라는 것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에 아버지의 규칙을 넘어선다는 것은 아버지에 대한 도전에 그치지 않고 세상에 대한 도전이라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이 과정에서 아이는 세상에 대한 상징화 작업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아이는 어머니를 넘어서는 것에 대해서는 의미 부여를 할 필요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늘 함께 있는 어머니이기 때문에 어머니라는 존재의 본성은 ‘함께 있음’에 있기 때문에 어머니를 넘어 설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늘 눈앞에 있는 의미에서 어머니이기 때문에 어머니 뒤에는 어둡고 침울하며 우울한 곳이기 때문에 어머니도 꺼리는 공간이에요. 그런데 앞에서도 말했듯이 아버지는 출근하면서 세상을 한 바퀴 돌고 퇴근하면서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는 순간, 아이가 궁금해 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다 담고 들어오는 존재로서의 아버지이기 때문에 짠!하고 나타나는 순간, 아이는 온갖 기쁨과 흥분을 감출 수가 없게 됩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경계를 넘어서게 만들고, 경계를 넓혀줌으로써 아이들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두려움으로 혼돈스러울 수 있는 것을 몸의 흥분과 즐거움으로 넘어설 수 있고 광대한 세상에 압도되지 않을 수 있게 되면서, 세상을 만만하게 볼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됩니다. 아이들은 어머니와 아버지를 잘 경험함으로써 신체적으로, 그리고 정서적으로 발달하게 되는 겁니다.
탐구자 : 청소년기에는 아버지가 어떻게 놀아줘야 하나요?
분석가 : 특히 청소년기 이전에 아버지는 자녀와 몸을 움직이면서 놀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딸의 경우에는 아버지와 함께 베드민턴을 친다거나, 아들과는 축구나 씨름을 하는 등 몸을 서로 부딪히면서 놀아주면 좋습니다. 뭐가 좋으냐 하면, 요즘 아이들이 사춘기가 너무 빨리 오지 않습니까? 그게 아이들 정서에 별로 좋은 것이 못 되거든요. 자연스러운 것이 못되는 것이, 놀이를 하지 않고 몸을 움직이지 않는데다가 인스턴트식품을 많이 먹어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으면 성적으로 매우 조숙해지게 됩니다. 그 결과 여자아이는 초경이 빨라집니다. 그런데 아버지가 자녀와 몸으로 놀아주고 같이 뛰어 주고 하면 성적 조숙을 늦추게 되면서 사춘기가 급격하게 불청객처럼 들어오는 것을 막아주게 됩니다. 사춘기라는 것은 신체 발달 속도에 비해 정신 영역의 발달이 너무 늦게 이루어지기 때문에, 그 시기는 정신과 신체의 괴리를 일으킵니다. 그런데 아버지와의 놀이, 또는 아버지와의 대화는 그 괴리를 메워주고, 신체와 정신 사이의 완충 역할을 하게 되니까, 청소년들이 큰 갈등 없이 그 시기를 매우 효과적으로 보낼 수 있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