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프는 [올랜도]를 통해 양성성을 강조하고 있으면서도 남자 올랜도와 여자 올랜도로 분열시켜 존재 연속성을 가진 두 인격으로 보여준다.
앞의 글에서도 지적했듯이, 울프가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그 당시에는 어떤 심리학도 남자나 여자가 하나의 인격 안에 남성성과 여성성을 동시에 가지고 있음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울프의 소설을 출판한 동시대에 칼 융이 분석심리학이라는 분야에서 남자 안에는 남성성과 여성성, 그리고 여자 안에서 여성성과 남성성을 제시했다.
울프가 이러한 사실을 진작 알았다면, 굳이 올랜도를 남자로 그리고 여자로 굳이 성전환까지 시도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우리는 올랜도가 남자에서 여자로 바뀌게 되는 동기에 대해 초점을 맞출 필요가 있다.
올랜도는 남자로서 충실하게 살고, 남자로서 행동하고, 남성적 사회역할을 탁월하게 수행해 냄으로써 사회적 지위를 최상위 위치에서 누리면서 주변인, 특히 중년 여성들로부터 많은 칭송을 받는다.
올랜도는 이러한 사회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사회적 페르소나를 많이 사용해야만 했다.
자신의 남성성이 제시해 주는 사회적 역할을 수행하느라 그는 내면의 에너지를 많이 사용하게 된다.
뜬금없이 발생하는 터키인들의 반란은 바로 올랜도가 남성성 발휘의 최고점에 도달할 때 더 이상 남성적 특권을 계속 누릴 수 없다고 하는 한계를 그어주는 사건이다.
울프는 그 사건을 통해 남성 중심의 세상은 끝나가고 있다는 암시를 던지고 싶었던 것 같다.
이런 사건이 발생하면서 올랜도는 깊은 잠에 빠진다.
올랜도는 그동안 자신의 사회적 페르소나를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사용하여 탈진되면서 깊은 수면에 빠진다.
이러한 깊고 긴 수면 중 올랜도는 자신의 남성적 에너지를 여성적 에너지로 전환한다.
올랜도는 그동안 남자로 살다가 여자로 바뀐 사실에 대해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오히려 성적 존재 변화를 기쁘게 받아들이며 만족한다.
올랜도는 남성과 여성을 존재론적으로 횡단하면서 어느 한쪽이 우월하거나 다른 쪽이 열등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울프가 판타지를 동원해 현실적으로 말도 안 되는 상황을 조작하면서 이런 묘사를 해야만 했던 것은 당시 지성의 한계 때문이다.
이러한 일은 한 남성의 인격발달을 말하는 것으로서, 중년기가 되면 남성 안에서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일이다.
울프는 올랜도를 왜 남성에서 여성으로 성전환하는 모습을 그렸을까?
올랜도는 자신의 동성애 파트너 비타를 전치한 인물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모습이기도 하다.
가부장적 사회에서 여성은 어릴 때부터 히스테리화 되어 살아간다.
즉 히스테리란 남성화된 상태에서 자신의 여성성은 가려진 상태라는 것이다.
여성은 중년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내가 여자다'라는 정서적 진실을 알게 된다.
그래서 올랜도의 성전환은 울프의 히스테리화 된 남성성으로 살다가 중년기가 되어서야 비로소 여성성을 인지하게 되는 당혹감을 표현한 것이다.
그것은 여성에게만 일어나는 변화가 아니라 남성에게도 똑같이 일어난다.
그렇다면 중년기의 남자는 과연 무슨 일이 발생하는가?
올랜도가 그러했듯이, 남자는 청년기~초기 장년기에 접어들기까지 사회적 활동에 집중한다.
그 기간 동안 남자는 사회적 기반을 탄탄하게 만든다.
결혼을 하여 한 가정을 세우고, 자녀를 낳고 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확고한 가족공동체를 만든다.
그리고 어느 정도의 사회적 지위를 확보하고 경제적 기반도 마련해 놓는다.
가정에서 그리고 사회에서 확고한 자기 좌표를 설정해 가는 과정에서 재물, 명예, 사회적 성취를 달성한다.
중년기가 되면 남자는 사회적 위치를 어느 정도 정점에 도달해 간다.
이처럼 남자는 사회적 활동을 하면서 최대한 객관적 세계를 확보하는 데에 주력한다.
소위 '자아실현(ego-realization)'을 하는 것이다.
자아실현을 하는 데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페르소나(사회적 가면)를 갖추는 것이다.
자아실현을 위해 남자는 자신의 인격 중 남성성을 극대화시킨다.
사람은 누구나 페르소나를 갖추기 위해 노력한다.
사회 활동을 하는 데 필요한 능력과 자격을 갖추기 위해 교육을 받아 필요한 학력을 갖춘다.
사회적 자아를 형성해 가는 과정에서 페르소나는 필수적이다.
예를 들어 대학교 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박사학위를 따야 한다.
전문 기술 분야에서 능력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해당 기술 자격증을 따야 한다.
제반 자격과 능력을 갖춰 필요한 페르소나를 갖춰 가면서 각자가 목표하는 사회적 성취를 이룩하여야 '자아실현'이 가능해진다.
남자는 자아실현을 중년기가 되기까지 반드시 해내야 한다.
올랜도가 바로 자아실현하는 데에 온갖 에너지를 다 쏟아부었다.
30대 중반이 되면서 남성성의 에너지를 다 소비한 후, 깊은 잠에 빠진다.
30대 중반은 그 당시 중년기의 시작이다.
자아실현은 생명력을 극대화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생명력이란 인생의 중반기에 정점에 이른다.
인생 중반(올랜도 당시 최고 수명 70세 기준에서 절반인 35세)이 되면 더 이상 생명력이 목표가 아니라, 죽음을 향한다.
인생은 생명력을 향해서는 상향곡선을 그리다가, 죽음을 향해서는 하향곡선을 그린다.
생명력을 향한 상향곡선이 바로 자아실현 곡선이라면, 죽음의 개념이 들어오기 시작하는 중년기에는 더 이상 자아실현이 아니라, '자기실현(sefl-realization)'을 위해 살아간다.
이것이 바로 칼 융의 분석심리학에서 언급하는 핵심이다.
남자의 경우 자아실현은 남성성이 하는 것이지만, 자기실현은 여성성 없이 남성성만으로는 불가하다.
중년기가 되면 부부관계가 한계에 도달하여 어찌할 바를 모르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중년기에는 여자는 자신의 여성성을 찾아야 하고, 남자 역시 여성성을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중년기 부부관계는 여성성의 잔치이다.
여자의 여성성은 오랫동안 억압해 온 <지금-여기의 감정>을 찾는 것으로 나타나지만, 남자의 여성성을 지금까지 스스로 높아지는 데에 힘써온 남성성의 기고만장함을 꺾는 데서 시작된다.
즉 남자의 여성성은 자신의 사회적 페르소나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남자가 그동안 객관적 세계를 정복해가는 데 열중했다면, 이제 그 일의 속도를 늦추고 자신 내면에 있는 주관적 세계에 관심을 가지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대부분 남자는 자신 안에 여성성이 작동하는지 조차 알지 못한다.
그래서 현실 부부관계에서 아내가 그 역할을 한다.
울프의 경우, 이러한 메커니즘을 알지 못했기 때문에 남성 올랜도를 여성 올랜드로 성전환을 시켜야 했다.
울프의 심정은 마치 근대 러시아 화가들의 당혹함과도 같다.
러시아 화가들은 유럽의 원근법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 원근감을 만들어 내느라 그림의 어느 한 구석은 공간을 깨지게 만들어야 했다.
울프의 심정이 바로 그러했을 것이다.
그 당시에 남성성과 여성성과의 관계에 대해 누군가 설명해 주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울프는 올랜도를 눈물을 머금고 남자에서 여자로 성전환을 시켜야 했다.
[올랜도]는 울프의 자기실현을 표현하기 위해 그런 아픔을 담고 있는, 매우 의미 있는 작품이다.
칼 융이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아니마)과 여성 안에 있는 아니무스(남성성)'에 관한 이론을 {무의식의 구조}라는 표제 하에 1916년 12월 [심리학 논총]에서 발표하였다.
영국의 버지니아 울프의 문학과 와 스위스의 칼 융 심리학 사이에 지성적 인과관계가 동시대에 형성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남성 안에 있는 여성성'이 서구에서 사회현상적으로 발견된 것은 겨우 20세기 말경이었음을 감안한다면, 울프와 융 사이의 물리적, 시간적 간격은 충분히 이해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