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파친코 1; 선자와 한수

불행의 시작

선자, 불행의 시작

지금은 자갈치 시장으로 불리는 남포동 시장에서 한수는 생선 중매상으로 새로운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다.

어느 날 한수는 그렇게 예쁘지도 매력적이지도 않은 순자(선자의 1편에서의 이름은 순자다)를 보자 한참을 빤히 쳐다본다.

당시 한수 나이 34세면 16살의 순자에게는 아버지 뻘 되는 나이였다.

그래서 옆에서 이런 장면을 지켜보던 아주머니가 순자에게,


"아이고야, 부끄럽은 줄도 모르는갑네. 니를 저래 쳐다보고 있노. 니 아버지뻘은 될 것 같은 인간이!"


라고 말한다.

그러고 난 후에도 한수가 계속해서 순자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었으니, 옆에 있던 아주머니가 목까지 빨개질 정도였다.

한수가 그렇게 순자를 주변 시선을 아랑곳하지 않고 빤히 쳐다본 것은 어린 시절에 돌아가신 자기 어머니를 닮았다는 점 때문이었다.

순자는 처음엔 한수의 접근을 뿌리칠 수 있었지만 일본인 불량배들의 횡포와 희롱의 위기에 처했을 때 한수가 혜성같이 나타나 순자를 구해 줌으로써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두 사람의 인연은 이렇게 이어지면서 결국 순자는 임신하게 된다.

순자는 결혼을 원했지만 한수는 유부남이기에 그럴 수 없었다.


남자의 두 가지 여성상

20220420_225343.jpg

한수는 순자를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삼거나 또는 노리개 감 정도로 생각하여 가지고 놀다 언제든지 버릴 수 있는 대상으로 여긴 것은 아니다.

한수는 순자를 사랑하였지만, 그 사랑 자체가 빗나간 사랑이었다.

사랑이 아름다운 것이라 해서 모든 사랑이 다 아름다운 것은 아니다.

한수는 자신이 기혼자라는 것을 알리지 않았다는 것이 결정적인 잘못이다.

그 결과 순자는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잘못된 선택을 하게 된 것이다.


남자는 두 가지 여성상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엄마 같은 모성적인 여자, 또 하나는 애인 같은 여성적인 여자이다.

상대적으로, 여자는 두 개의 남성상을 가지고 있다.

하나는 아빠 같은 부성적인 남자, 또 하나는 애인 같은 남성적인 남자이다.

결혼이란 부부로서 긴 세월을 살면서 이 두 가지 상을 통합해 가야 하는 목표를 부여하는 제도이다.

한수는 고리대금업자인 야쿠자의 후계자가 되어 의 딸을 아내로 맞이하면서 야쿠자의 2인자가 된다.

아내는 남편과 잠자리를 역겨워하여 정사 후에는 몇 시간 동안 목욕을 하는 결벽증 환자였다.

한수에게 아내는 둘 중 어느 것에도 해당되지 않아 어떤 애정도 느끼지 못한다.

데릴사위로 들어왔지만 장인은 자기 딸의 결벽증을 알게 되면서 한수가 다른 여자를 만나는 것을 묵인해 주었다.

한수는 순자를 엄마 같은 여자라는 점이 동기가 되어 만났다가 애인 같은 여자로서 사랑하게 된다.

순자는 임신하고서야 한수의 상황을 파악하였지만, 그의 현지처나 첩이 되는 것을 거부하여 과감하게 한수를 떠난다.

순자가 백이삭과 결혼하여 오사카로 가서 위기에 처했을 때 한수가 나타나 모든 어려운 상황을 해결해 준다.

한수는 평생 사랑을 품고 순자 주변을 떠나지 않으면서 선자가 위기에 처할 때마다 나타나 선자를 보호한다.

한수는 순자에게서 엄마 같은 여성상과 애인 같은 여성상을 통합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결혼 제도 밖에서는 불가능하다.


선자의 두 남자


선자가 처음 사랑한 남자는 고한수다.

한수는 선자를 만나기 시작하면서 자신이 유부남이라는 것을 선자에게 알리지 않았다.

한수는 일본 야쿠자 보스의 딸과 결혼하여 딸 셋을 두었지만 사랑으로 맺어진 결혼은 아니었다.

한수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돈 버는 사업에 충실하게 살아왔을 뿐이었다.

그는 조선인으로서 일본에서 존재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방식은 냉철하게 돈을 버는 사업가가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고리대금업자든 야쿠자든 크게 상관없었다.

한수는 혼외 사랑에 대해 양심의 가책을 가진 적이 없었다.

그것은 결혼 자체에 가치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사랑하는 대상을 만나면 얼마든지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한수는 선자를 사랑하였지만, 결국 이기적인 사랑이었다.

만일 처음부터 한수가 선자에게 자신이 기혼자라는 것을 알렸다면 선자는 한수를 사랑하지 않았을 것이다.

선자 나이 17세, 한수 나이 34세면 거의 두배에 가까운 나이 차이다.

선자가 한수를 사랑을 전제로 만나기 시작할 때 오빠처럼 다정했던 점은 아버지의 사랑을 떠올리게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진정으로 아버지 같은 남자는 바로 백 이삭이었다.

백이삭은 기독교적 사랑의 가치를 몸소 실천한 사람이다.

그는 아버지가 누군지 밝히기 힘들어하는 선자에게 청혼하여 태어날 아이에게 자신의 성을 주고 노아라는 이름을 지어줘 선자와 태어날 아이가 정상적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배려한 사람이다.

백이삭은 선자와 아이를 데리고 일본에 있는 한국 장로교의 어느 교회 부목사로 청빙 되어 오사카로 간다.

그는 최저생계비도 안 되는 15엔의 사례금을 받고 목회를 하는 중 신사 참배 거부의 문제가 불거지면서 일본제국 체제를 위협한다는 죄명을 씌워 고문 끝에 죽는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3; 중년기 남성성-여성성관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