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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친코 2: 노아의 아버지

노아의 친 아버지 고한수


입양되어 부모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다가 성인이 되어 어느 시점에 이르면 생모를 찾는 경우가 많다.

이미 성인이 되어 정체성이 확고한 상태에서 왜 생모를 찾을까 하는 궁금증이 누구에게나 있다.

당사자는 입양되어 성장한 사회에서 확고한 정체성을 가졌다 해도 그 정체성은 뿌리 없이 부유하는 정체성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과정에서 생모를 만나게 되면 입양자는 대개 자기를 버린 어머니에게 분노하기보다는 용서하기 위한 심리적 절차를 밟는다.

달리 말하면 분노를 용서로 바뀌는 과정을 경험하게 된다.

생모에 대한 분노를 멈추는 입양자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멈춘다.

그리하여 분노에서 자유로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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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파친코]에서 노아는 생부를 확인하는 순간부터 분노를 전체 삶으로 표현한다.

노아가 한수가 생부임을 알지 못할 때, 한수가 와세다 대학 등록금, 식비, 방세 등을 다 대 주는 것을 언젠가 갚아야 할 빚으로 알고 받았다.


"노아는 한수의 제의를 거절하지 않았다. 이미 그 돈을 받아들였다. 와세다대학에 그토록 가고 싶었던 것이다. 요셉의 고함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당장 그만두라고, 이런 어리석은 여자 같으니, 라고 소리치는 소리가 귓가를 울렸다."(2권, 57)


노아는 이렇게 두 아버지의 소리를 듣고 있었다.

선자로부터 고한수가 노아의 등록금과 식비를 대주겠다고 하자, 백이삭의 형인 요셉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안 돼. 어리석은 소리 하지 마. 생각 좀 하고 말해! 그 개자식의 돈을 받을 수는 없어! 그건 더러운 돈이야."


노아는 한수가 자신의 친부라는 것을 정말 몰랐나 보다.

3년 동안 등록금과 식비 그리고 거주비까지 한수의 신세를 졌다.

노아가 고한수가 아버지라는 사실을 안 순간,


"엄마가 내 인생을 앗아갔어요"


라고 말하며 와세다 대학을 그만두었다.

노아는 친아버지가 야쿠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에 자신의 더러운 피를 저주했다.

그 이후 노아는 나가노에서 <반 노부오>라는 이름으로 철저하게 일본인으로 살았다.

그는 '코스모스 파친고 사장을 위해 부지런히 일하며 눈에 띄지 않는 소박한 인생을 꾸려나갔다.'(2권, 188)

선자의 부탁으로 한수는 오랫동안 노아를 찾았다.

선자가 노아를 발견했을 때는 노아 나이 45세였다.

한수가 선자에게 노아를 멀리서만 바라볼 것을 요구했지만 선자가 노아를 보는 순간 모성애가 선자의 몸을 잡아당겼다.

노아는


"엄마"


라며 웅얼거리며 선자 가까이 다가가 팔을 만졌다.

노아는 엄마를 반갑게 맞이하였고, 다음 주에 만날 것을 약속까지 하고 엄마를 배웅했다.

한수는 선자의 얼굴을 조심스럽게 살펴보고는 인상을 찌푸렸다.

"노아를 만나지 말았어야 했어."(2권, 232)

한수의 이 말은 정확하게 적중했다.

한수는 선자가 노아의 사무실을 떠난 직후 노아가 총으로 자살했다는 소식을 선자에게 전했다.



노아에게 진정한 아버지는 누구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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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장면에서 알게 되는 것은, 노아가 '어떤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었는가?' 하는 것이다.

노아는 고한수의 아들로 산 것이 아니라, 백이삭의 아들로서 정체성을 가지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은 노아가 나가노에 살았던 15년 동안 매달 마지막 목요일 백이삭의 산소에 왔다 갔다는 사실에서 밝혀진다.

백이삭이 묻힌 묘지공원 관리인의 노아에 대한 증언을 들은 선자의 마음은 매우 복잡했을 것이다.

바로 이 대목이 노아의 자살의 의미를 유추해 볼 수 있게 만든다.

사람은 피가 가까운 법인데, 노아는 자신에게 이름을 준 아버지가 진정한 아버지였다.

노아에게 이름이 왜 그리도 중요했을까?


'아버지'는 <이름을 주는 자>


아기에게 엄마는 존재 자체로 들어온다.

엄마는 눈에 보이는 엄마가 전부이다.

그래서 누구나 엄마는 만만하다.

엄마는 누구에게나 그리 어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말이다.

엄마는 보이는 육체, 엄마의 말, 엄마의 시선, 엄마의 표정, 엄마 피부에 닿았을 때 느껴지는 감각 등이 엄마의 전부다.

엄마의 존재는 아이 0세에서 3세까지 지배적으로 들어온다.

3세부터 6세까지 아버지가 엄마와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아이 안에 들어온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존재로 들어오는 것이 아니다.

아이에게 아버지는 <아버지의 이름>으로 들어온다.

처음부터 아버지는 아이에게 이름을 명명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3세가 된 아이에게 아버지가 이름으로 들어온다는 말은, 아버지의 존재는 이름으로 상징화된다는 말이다.

왜 아버지는 상징화되어야 하는가?

아버지는 아버지 존재 자체로만 아이에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다.

아버지 뒤에는 넓은 세상이 있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세상을 가져다주는 존재이다.

아버지는 아이와 세상 사이의 중간적 존재이다.

아버지는 아이에게 이름을 명명해 줄 뿐 아니라, 세상의 사물들의 이름을 명명해 준다.

그래서 아이에게 아버지는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들어온다.

노아는 자신에게 유전자를 전해 준 고한수보다는 자신에게 성씨를 물러주고 이름을 지어준 백이삭을 진정한 아버지로 여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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